언론보도

미국의 고민, 한국의 선택

  • 2006-08-25
  • 임현진 (매일경제)

요즘 국제선 비행기 타기가 꺼려진다. 테러 위험도 겁나지만 보안검색이 성가시기 때문이다. 미국에 들어가려면 사진과 지문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표정관리까지 해야 하니 귀찮은 정도가 말이 아니다.

 

안전여행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세계화 시대의 역설이다. 지난 8월 10일 영국발 미국행 여객기 폭파 기도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한편에서 9ㆍ11 테러 5주년을 겨냥한 알카에다 개입설과 다른 한편에서 영국 정부가 테러 위협을 부풀리고 있다는 음모설이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득실을 따져보자. 알카에다와 미국 중 누가 이번 사건으로 실익이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미국 부시 대통령이다.  "테러와 전쟁" 명분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알카에다의 빈 라덴이다. 테러 공포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시작되어 이라크전으로 확대된 대(對)테러전에서 지금까지 5000억달러라는 막대한 전비를 썼다.

 

만약 이 돈이 중동 평화건설에 투입되었다면 오늘의 세계는 테러와 전쟁 위험에서 벗어났을지 모른다.
"테러와 전쟁"은 테러 원인을 없애기보다 오히려 키우는 대증요법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상 미국 군사력에 의한 "테러와 전쟁"은 증오와 원한을 키워 테러의 확대재생산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고민이 적지 않다. 미국에 대한 국제여론이 나빠지고 있다. 매년 국제여론을 조사하는 퓨연구소에 따르면 2003년 이래 반미주의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늘어나고 있다.

 

올해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영국ㆍ일본ㆍ인도를 빼고 50%를 넘지 못한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이 많은 중동ㆍ동남아시아 지역에선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

 

미국 내 여론도 좋지 않다. 이라크전에서 전사자 수효가 이미 2000명을 넘었다. 미국 국민 중 과반수 이상이 이라크전은 잘못된 전쟁으로 본다. 더욱이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민이 이라크에서 철군을 주장한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보혁논쟁이 나타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참전중이면서 이란과 북한에 확전을 고려하는 네오콘에 대해 리버먼 비판이 만만치 않다.

 

지난 8일 코네티컷 민주당 상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중진의원 조지프 리버먼이 정치신인 네드 러몬트에게 무너졌다.

 

리버먼이 누구인가. 2000년 대선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고어의 러닝메이트로서 3선 상원의원이다.
참패 이유는 리버먼의 이라크전 지지 때문이었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의 우군 리버먼을 살리기 위해 그가 무소속으로 나온다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리버먼의 재기를 통해 이라크전 정당성을 과시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계산이다.

그러나 지금 여론으로는 오는 11월 7일 상하원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선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동아시아 전문가로 일본ㆍ한국ㆍ대만ㆍ싱가포르 등의 경제기적을 `발전국가`론으로 설명한 찰머스 존슨이라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가 있다.

 

지난날 미ㆍ소 냉전 시대에 미국 옹호론자였던 그가 오늘의 미국이 세계경영이라는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미래는 결코 없다고역설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독존과 오만에서 벗어나 공존과 타협을 찾으라는 얘기다.

 

미국이 시끄럽지만 우리도 어수선하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놓고 이념대립을 넘어 명분싸움이 심하다.

 

통일 이후 한국이라는 동북아의 지정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자주와 외세 차원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주권국가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엄청난 국방비 수요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과정에서 한국 자주파의 주권국가론이 미국 네오콘의 전략적 유연성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도와주는 결과다. 미국을 걸림돌로 여기는 민족공조나 디딤돌로 보는 한미동맹을 넘는 전망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통해 통미(通美)하려는 것에서 우리의 반미 혹은 친미가 지니는 허실이 드러난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선린과 적대를 상대화하는 것이 국익이다. 국익을 상대화하는 실사구시의 외교안보 정책이 필요하다.

 

임현진 EAI 이사 ·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