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국민투표가 만능인가

  • 2006-08-18
  • 강원택 (경향신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이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문제를 들고 나왔다. 정치 공세의 일환이었겠지만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인 국민투표 회부의 문제를 야당 대표가 들고 나온 것 자체가 사실 흥미롭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최근 들어 국민투표에 대한 요구가 이전에 비해 잦아졌다는 점이다.


-야당 대표의 발언은 직무유기-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찬반 여론이 들끓었을 때도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고, 최근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고용 문제도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냐는 주장이 과거에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대체로 대통령과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반대 수단을 국민투표 실시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도가 바닥인 점을 감안해 국민투표가 실시되기만 한다면 효과적으로 그 정책의 추진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계산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 만능주의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투표는 대체로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동해 왔으며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의회 내에서 반대가 심할 때 의회를 우회하여 대통령의 뜻을 관철하는 좋은 수단으로 국민투표가 활용되었다. 그 때문에 국민투표의 실시는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회의 권한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드골 전 대통령은 중요한 정책 쟁점에 대해서 의회에서의 논의보다 국민투표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남미에서도 대통령이 정국 돌파용으로 종종 국민투표 방식을 사용해 왔다. 우리에게도 3선 개헌이나 유신헌법을 위한 국민투표 등 좋지 않은 기억이 적지 않다.

 

그런데 사실 국민투표가 부결되어도 골치 아프다. 대통령이 국민투표의 결과를 자신의 신임에 연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드골이 대표적 경우이다. 드골은 1968년 학생 소요 등 정국이 불안정해지고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게 되자 상원 개혁과 지방 조직 개편을 위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로 이를 돌파하고자 했다. 드골은 국민투표 결과를 자신에 대한 신임 평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개헌안이 부결되자 드골은 즉각 사임했다.

 

사회적 갈등은 결국 국회 내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되어야 마땅하다. 사회 내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의회가 갖는 제도적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번 강대표의 국민투표 발언이 실망스러운 것은, 그것이 아무리 정치공세용이었다고 해도, 제1 야당의 대표가 제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 국회서 풀어야-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국회의 현주소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국회는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최종적인 해결장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란이 생길 때마다 심지어 정치인들까지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헌법재판소로 들고 간다.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 속에 국회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국회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싸움터로만 여긴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와 영향력은 조사 대상 기관 중 제일 바닥이었다. 믿을 수도 없지만 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를 탓하랴. 주어진 밥그릇도 제 발로 차버리고 있는 것을.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