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대선 1년전, 국민 의식변화 조사…] 한국사회 이념지형의 변화

  • 2006-12-18
  • 이내영 (한국일보)

34%→25%… 20代서 진보이탈 가장 많아

     

이념이란 정치적 태도와 행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인 가치정향과 신념체계이다. 한 사회의 이념적 지형은 국민들의 이념 성향 분포를 의미하는데 그 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갈등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한 사회의 이념 지형이 변화하면 그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정책 방향은 물론 정당 경쟁 구도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번 정치사회의식 조사는 2002년 5월에 실시한 1차 조사와 동일한 설문으로 국민들의 이념 성향을 측정하였기 때문에 지난 4년 6개월 동안 한국사회의 이념 지형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우선 응답자 스스로 자신들의 이념 성향을 평가한 주관적 이념 성향의 변화를 살펴보면 진보의 비율은 2002년 24.9%에서 2006년 18.6%로 뚜렷하게 감소한 반면 중도의 비율은 38.6%에서 45.1%로 증가했다. 보수의 비율은 34.7%에서 36.3%로 약간 증가하는데 그쳤다. 진보의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는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에서 확인된 것처럼 진보개혁세력을 자임해온 현 정부ㆍ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깊은 실망과 부정적 평가의 결과로 보인다. 특히 정부ㆍ여당과 진보개혁세력의 입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핵심 지지층 역할을 했던 젊은 세대의 이념이 보수화하는 추세이다.

 

2002년 조사에서는 20대 응답자 가운데 진보 34.2%, 중도 39%, 보수는 26.3%로 진보의 비율이 보수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20대 가운데 진보 25.0%, 중도 45.9%, 보수 29.2%로 나타나 보수의 비율이 진보보다 많아졌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젊은 세대의 지지기반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

 

진보적 이념이 퇴조하는 추세는 구체적 정책 현안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조사에서 경제성장보다 분배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70.2%에 달했으나, 2006년 조사에서는 오히려 경제성장이 분배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 53.5%로 나타났다. 장기간의 경제 불황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이 분배보다는 경제성장을 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안보 위협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에서도 진보적 정책에 대한 지지가 줄고 신중하면서도 현실적인 정책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2002년에 비해 올해 조사에서 자주적 외교에 대한 지지는 줄고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하는 의견은 늘어났고,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대북경제지원에 대해 2002년 조사에서 ‘현재 수준으로 지원해야 한다’가 23%, ‘더욱 확대해야 한다’ 가 16.6%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각각 18.6%와 5.8%로 감소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진보개혁 세력과 이념에 대한 불신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이념으로의 이동이 크게 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다수 국민들의 이념 성향이 진보에서 중도로 이동하는 변화가 나타났지만 전체 국민들의 이념 성향이 보수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보수 세력과 그 이념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또 현재 지지자들의 이탈로 곤경에 처한 진보개혁세력이 지지기반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