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① 서론: 민주주의 퇴행의 세계적 확산과 한국](/data/bbs/kor_workingpaper/20250515141258733110491.jpg)
[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① 서론: 민주주의 퇴행의 세계적 확산과 한국
| kor_workingpaper | 2025-05-15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시니어펠로우, 성균관대학교 특임교수
이숙종 EAI 시니어펠로우(성균관대 특임교수)는 200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로 전환되는 퇴행이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발생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세계적 민주주의 퇴행의 흐름을 막고 민주주의 복원력을 제고하기 위한 함의를 제시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저자는 이번 "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연구가 제도 개혁을 넘어 정당 및 정치인의 행태, 정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향후 사법부 독립 및 시민 참여 등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는 요소에 관한 실증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Ⅰ. 민주주의 퇴행의 세계적 확산
2000년대 후반부터 세계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행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레짐 유형 분류를 제시하여 연구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두 가지 민주주의 관련 글로벌 보고서가 있다. 첫째는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소재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매년 3월에 발간하는 보고서이다. 2025년도 보고서는 세계 179개 국가를 조사했는데, 세계 시민 개인이 향유하는 민주주의의 수준은 1985년 수준으로, 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으로 보자면 1996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한다(V-Dem Institute 2025). 동 연구소 학자들은 지난 25년을 ‘독재화의 제3의 물결(Third Wave of Autocratization)’이라고 표현한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깨끗한 선거, 법치 분야에서 퇴행이 두드러지며, 지역적으로는 동유럽,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의 퇴행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한다. 이러한 퇴행의 결과, 2024년도에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88개국)가 전제주의 국가(91개국)보다 적어졌고, 전체 조사 지역 인구의 72%가 독재주의 치하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민주주의 국가 군에서도 자유민주주의는 29개국에 불과해 4개의 레짐—자유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 선거독재주의, 폐쇄독재주의—가운데 가장 적은 것이 되어 버렸다.
둘째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매년 3월에 발행하는 Democracy Index 보고서이다. 2025년 보고서는 세계 민주주의 지수 평균점이 지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분석하며, 특히 시민의 자유,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 법치 영역에서의 퇴행 추세를 보여준다(Economist EIU 2025). 이러한 지속적 퇴행의 결과 2024년도 기준으로,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는 25개국으로 167개 조사 대상 국가 및 영토의 15%, 조사 대상지 인구의 6.6%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는 46개로 조사 대상의 27.5%, 인구의 38.4%를 차지한다. 완전하든 결함이 있든 두 종류의 민주주의를 합치면, 전체의 43%, 인구의 45%에 해당한다. 한편, ‘권위주의 레짐(Authoritarian Regime)’의 숫자는 60개로 조사 대상지의 35.9%, 인구의 39.2%이다. 나머지 ‘하이브리드 레짐(Hybrid Regime)’은 36개국으로 조사 대상지의 20.6%, 인구의 15.7%를 차지한다.
이렇게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가 줄어드는 세계적 추세는 민주주의 퇴행 연구를 활성화시켰다. 일군의 연구자들은 민주주의 체제가 과거처럼 군사 쿠데타로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형태보다는 점진적 퇴행 과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선거를 치르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해치는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적 연구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Bermeo는 민주주의 퇴행을 세 가지 유형으로 말한다(Bermeo 2016: 10). 첫째는 ‘언약적 쿠데타(promissory coups)’로, 선출된 정부를 내쫓으면서 그 명분은 민주적 법질서를 방어하기 위함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언약적 쿠데타의 주도 세력은 앞으로 선거를 치러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대표적 사례로 태국이나 미얀마에서의 군사 쿠데타를 들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2021년 2월 1일에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선거를 약속했지만 벌써 5년째 선거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 둘째는 ‘행정부의 비대화(executive aggrandizement)’로 정권 교체 없이 기존의 선출된 정부가 반대 세력 약화를 위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다. 보통은 먼저 입법부나 사법부를 장악해 반대 세력 척결에 이들을 이용한다. 터키나 헝가리를 비롯해 선거를 치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퇴행의 대부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전략적으로 ‘선거를 조작’하는 것으로 과거의 부정선거와는 다른 교묘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여기에는 선거의 공정한 기회를 후보자에게 주지 않거나, 미디어 접근을 방해하거나, 정부 자금을 여당 후보 캠페인에게만 지급하거나, 선거 등록을 어렵게 만들거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자기 편을 심어 두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복수가 결합하여 발생한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네트워크 학자들은 민주주의 퇴행과 복원의 과정에 주목한 연구들을 내놓고 있다. 그 대표적 학자인 Lührmann은 독재화 단계의 진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독재화 위험을 높이는 구조적, 맥락적 도전들이다. 이 단계에서는 경제적 위기, 불평등, 이민 문제, 정치적 양극화, 소셜미디어 등을 둘러싼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다. 이때 민주적인 정당들이나 민주적 과정이 결여되어 있고, 시민들의 민주적 규범이 약하면 두 번째 단계인 반다원주의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반다원주의적 정당과 지도자들이 유권자 동원에 성공해 선거에서 이기면 독재화 시초(onset autocratization)가 일어난다고 본다. 그런데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시민, 시민집단, 정당 등 독재화에 반대하는 결집이 일어나면 퇴행을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복원력이 없으면 마지막 단계인 민주주의의 붕괴(democratic breakdown)에 이르게 된다(Lührmann 2021).
퇴행의 반대 움직임인 복원력의 차원에서는 독재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내는 ‘초기 복원력(onset resilience)’과 독재화가 진행되어도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은 ‘붕괴 복원력(breakdown resilience)’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Boese 등의 연구는 1900년부터 2019년 사이 64개 민주주의 국가의 4,372개 에피소드를 분석했는데, 다행히 98%에 이르는 대부분의 경우 독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화가 일단 발생하면 민주주의 치사율이 커서, 19개 즉 23%의 경우만이 민주주의 붕괴를 피할 수 있었음을 발견한다. 흥미롭게도 이들 64개 에피소드의 6할이 냉전 종식 이후인 1993년부터 일어났다. 이들 연구는 민주적 복원력을 돕는 요인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는데, 사법부의 견제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대로 퇴행을 막고, 퇴행이 일어나더라도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경제 발전은 퇴행이 시작되지 않게 하는 단계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일단 퇴행이 시작되면 경제가 발전한 나라든 아니든 이를 저지하는 데 차이가 없었다. 이들 연구는 퇴행을 저지해 민주주의 붕괴를 막는 데에는 지리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웃에 있고, 오랜 민주화 경험의 역사가 도움이 되었다는 점도 발견한다(Boese et al. 2021).
한국의 사례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퇴행과 복원을 연구하는 데 상당히 의미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퇴행의 움직임과 복원의 움직임은 길항 관계에 있다. 어떻게 방향을 전환하고 어떻게 한 방향의 힘을 몰아가는지, 한국은 주요 사례로 국제적 연구에서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Ⅱ.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
작년 말 세계가 주목한 선진 민주국에서의 퇴행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한국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였기에 계엄령 선포는 국제사회에서도 충격적 사건이었다. 계엄령 해제 이후 한국은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하고 선거를 다시 치러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복원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양분된 대중의 대규모 시위, 법적 절차에 관한 시비, 최초의 법원 난동 사건 등 크나큰 상처를 한국 민주주의에 남겼다. 위에 언급된 보고서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보고서는 1990년대 초부터 자유민주주의로 분류되던 한국을 선거민주주의(세계 41위)로 분류했다. 이코노미스트 보고서도 한국을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세계 32위, 아시아 5위)로 분류했다. 동 보고서는 오랜 기간 한국 민주주의의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 시민 자유는 높게 평가해 왔지만 정치문화는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해 왔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일으키는 요인들이 많겠지만, 국가 권력기관의 차원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정당 간 대립에 따른 입법부 마비, 정치의 사법화, 사법부의 정치화 등의 문제점이, 사회 일반의 차원에서는 정치적 양극화, 사회 갈등 심화, 허위정보 확산, 소수 극단주의 세력의 대두 등이 지적된다. 동시에 퇴행을 저지하는 복원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도 능동적 시민 참여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복원력의 원천이 되어 왔고, 헌법질서 수호에 대한 존중은 퇴행의 한계를 씌워주는 병마개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한국인의 민주화 쟁취에 대한 국민적 자존심 없이는 이러한 퇴행 억지력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계엄령과 이후 혼란스러웠던 수습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경고음을 울렸다.
‘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연구 시리즈는 이러한 경고음에 대응하기 위한 학문적 차원의 노력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 민주주의 퇴행을 제대로 진단해야 효과적인 해결 방법도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서 권력구조를 바꾸자거나 선거법을 고쳐 정치적 양극화를 벗어나자는 등 제도 개혁에 초점을 둔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개혁이 과연 정당이나 정치인의 행태를 바꿀 수 있을지, 정치문화를 고쳐 나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네 명의 학자들은 그러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제도와 행태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리즈 첫 편인 ‘한국 대통령제의 민주주의 퇴행 요인’에서 배진석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주주의 퇴행 현상이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분석한다.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그에 따른 헌정 위기는 대통령제라는 정치 제도의 구조적 속성, 정당과 시민사회의 비대칭적 발전,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가 결합되면서 발생한 복합적인 결과라고 진단한다. 국제비교 관점에서 한국 대통령제는 헌법적 권한 측면에서는 제왕적이라고 할 만큼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집권당 의원 공천, 예산, 인사, 여론 등을 통해 입법·행정 전반을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청와대 중심 통치, 수직적 정치 구조, 분점정부 하의 정치적 교착, 단임제의 경직성, 이원적 정통성 충돌 등은 한국 대통령제의 민주주의 퇴행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로 인해 대통령 권력에 대한 제도적 책임성 요구와 견제는 취약하고, 정당은 대통령의 선거 기계로 전락하며, 시민은 감정적 동원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 정치 양상이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도 개혁의 이중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개헌 없이도 달성할 수 있는 수직적 권력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정당 내 민주화, 공천 과정의 투명성 확보, 시민 참여 확대를, 둘째, 헌법 개정을 통한 과제로는 대통령-국회 사이의 권한 조정, 비상권한 제한, 선거 주기 일치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제도, 구조, 정치문화는 서로 결합되어 있기 마련이라 퇴행 요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 재설계, 행동으로 드러나는 실천, 민주주의 문화 확산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시리즈 두 번째 편 ‘계엄 전후 한국 헌정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김정 교수는 계엄 전후의 헌정 위기를 헌법 조항이 생성하는 비공식적 규범, 즉 상호 용인과 제도적 권한 자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저자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발동은 국회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야당의 행정부 고위 공무원에 대한 연쇄 탄핵 소추권 발동과 이에 맞선 대통령의 입법부 법률안에 대한 연쇄 재의 요구권 발동이 상승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는 양측의 ‘헌정 압박 전술’이 장기화되면서 대통령이 발동한 비상계엄 선포는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헌정 압살 전술’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술의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 반세기 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이 격화되는 선거 경쟁에서 ‘국민 서사(national narrative)’를 당파적으로 양극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양대 정당 지지 유권자들 사이에 중첩하는 정도가 감소하고, 그들 사이의 감정적 거리가 크게 벌어지는 정서적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정당의 득표 전략은 중도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야당의 헌정 압박 전술 및 대통령의 헌정 압살 전술이 선거 득표 전략으로 적실성을 띨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양 진영의 이러한 전술로 인해 제도적 권한을 자제해야 한다는 민주적 규범이 상당 수준 붕괴하게 되었고, 윤 대통령이 선택한 계엄령은 상호 용인 규범을 파괴하는 정치적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내게 되어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고 저자는 예상한다.
시리즈 세 번째 편 ‘한국 정치 엘리트와 민주주의 퇴행’에서 박선경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성격을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로 규명한다. 즉, 대중의 인식 변화나 행동 탓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키우고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정치 엘리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 엘리트의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 후안 린츠(Juan Linz)가 제시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분류를 사용한다. 부정선거 주장을 믿고 퍼뜨리는 정치인이 국민의힘에 상당수 있었고, 서부지법 난동사태의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정치인이 극소수였지만 이 당 소속이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당시 여당에 더 많았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가 발생하게 된 배경으로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제시한다. 첫째는 현상적 원인이다. 반복된 수도권 총선 패배로 인해 보수정당 내 중도 성향 정치인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지역 기반 강경파 정치인이 당을 주도하게 되면서 당내 민주적 자정 기능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초당적인 교류와 정치학습 기회의 축소이다. 국회의원 연구단체 현황 분석을 통해 초당적 교류와 학습기회가 줄었음을 확인한다. 셋째는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이다. 소수의 강성 지지층과 편향된 일부 뉴미디어의 압박으로 인해, 정치인은 다수 시민이 아닌 소수 극단적 집단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비상계엄 이후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들은 이를 활용해 정당 내 입지를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시리즈 네 번째 편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아래로부터의 퇴행?’에서 강우창 교수도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이 ‘아래로부터의 퇴행’보다는 ‘위로부터의 퇴행’에 있다고 본다. 후자가 정치 권력을 가진 엘리트, 특히 행정부 수반의 권력의 강화나 확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전자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거나 민주적 체제에 대해 규범적 지지를 보내지 않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일곱 차례의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해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다. 그 결과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꾸준하게 상승해 왔고, 최근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음을 발견한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유일한 게임의 규칙’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다만, 산업화 세대 남성, 밀레니얼 세대(M세대) 남성, Z세대 남성들의 경우 2025년 조사에서 과거 조사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감소하고 독재에 대한 지지는 증가했다. 그러나 X세대 남성, M세대와 Z세대 여성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여 전반적인 응답 비율에서는 큰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M세대 남성과 Z세대 남성들의 민주주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고, 특히 계엄 국면에서 상당한 감소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6-7할가량이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견고한 지지는 위로부터의 퇴행을 극복해 나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Ⅲ. 앞으로의 연구 과제
이 연구 시리즈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대통령 탄핵이 8년 사이 두 번이나 발생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외형만 보고 “K-민주주의”라는 말까지 만든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보수정당은 탄핵된 대통령이 모두 보수정당 출신이라는 점을 뼈아프게 성찰하고 보수 대개혁과 재건에 나서야 한다. 진보정당도 입법부 독재라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자당의 힘을 절제하고 경쟁 관계의 정당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 퇴행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모든 민주주의 퇴행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를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법과 제도 개선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위기마다 민주주의 복원의 원동력이 된 대중 시위도, 퇴행 이후의 길거리 동원 견제에서 나아가 퇴행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치 참여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여야의 입장은 바뀌게 마련이고 대중의 지지도 변화하기 마련인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단기적인 당파적 이익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이고 초당적인 정치개혁에 나서서 그야말로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가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실증적인 연구 과제가 되길 바란다.
또한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퇴행에도 주목해야 한다. 학술적으로는 국가 간 달리 관찰되는 민주주의 퇴행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가려내는 비교 연구가 필요하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복원이 이루어지는 여건과 그렇지 않은 여건을 가려내는 일도 중요하다. 2025년이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되돌려 건강한 민주주의로 복원하는 해가 되길 소망한다. ■
참고 문헌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 1: 5-19.
Boese, Vanessa A., Amanda B. Edgell, Sebastian Hellmeier, Seraphine F. Maerz, and Staffan I. Lindberg. 2021. “How democracies prevail: democratic resilience as a two-stage process.” Democratization 28, 5: 885-907.
Economist EIU. 2025. “Democracy Index 2024: What’s wrong with representative democracy?” https://www.eiu.com/n/campaigns/democracy-index-2024/ (검색일: 2025. 5. 14.)
Lührmann, Anna. 2021. “Disrupting the autocratization sequence: towards democratic resilience.” Democratization 28, 1: 22-42.
V-Dem Institute. 2025. Democracy 2025: 25 Years of Autocratization - Democracy Trumped? March 2025. https://www.v-dem.net/documents/61/v-dem-dr__2025_lowres_v2.pdf (검색일: 2025. 5. 14.)
■ 이숙종_동아시아연구원 시니어펠로우, 성균관대학교 특임교수.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DRN)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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