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해리스의 패배한 원인은 후보자의 정체성 문제 때문이아니라, 월가를 비롯한 기득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에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트럼프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험 인물로 강조한 메시지가 유권자들에게는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편가르기식 정파적 주장으로 인식된 점이 핵심적으로 중요한 패배 요인들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민주당이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공존해온 정당이었음을 기억할 때, 가치와 이념에 기반한 공화당에 비해 변화의 폭이 크고, 때로는 모순되는 정책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Ⅰ. 2024년 미국 대선 분석 및 국내 정치 전망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로 마무리되었다. 트럼프는 일곱 개의 경합주 - 미시간(Michigan), 위스콘신(Wisconsin),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애리조나(Arizona), 조지아(Georgia), 네바다(Nevada),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 에서 모두 승리하며 예상보다 큰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전국 단위 득표율에서 트럼프가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 민주당 후보를 앞선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는 전국 득표율에서 밀렸던 트럼프가 세 번째 도전에서 승리한 것은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와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고는 트럼프의 승리 원인을 분석하고, 2024년 선거에서 다루어진 주요 경제 및 사회 현안들, 그리고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이번 선거 결과가 미국 정치 지형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고, 민주당이 2026년 중간선거 그리고 2028년 대선을 앞두고 고민해야 될 지점들을 짚어본다.

 

1. 트럼프 승리 원인: 인플레이션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재선을 준비하고 있을 때만 해도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이 높지 않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바이든 행정부는 단점정부(unified government)였던 2021년~2022년(제117대 의회) 굵직한 법들을 연방의회에서 통과시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 수립에 성공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로 피해를 본 서민을 위한 구제 금융법(American Rescue Plan Act), 낙후된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를 위한 보건법(Honoring our PACT Act), 제한적이지만 총기 사용 규제를 강화하는 법(Safer Communities Act), 반도체 생산 및 연구 육성을 목적으로 한 지원법(The CHIPS and Science Act), 그리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이라는 이름의 친환경정책, 보건, 세제 관련법이 있었다. 이 중에서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내 외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동시에, 미국 정치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미국 내 물가가 너무 올랐던 점이 문제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물가 현안이 주목을 받은 경우는 1980년 이후 2024년이 처음이다. 1980년 당시 재선을 노리던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은 오일 쇼크, 물가 상승,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레이건(Ronald Reagan)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 국내 현안으로 인플레이션은 주목받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유무역이 확산되는 세계화 과정에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현상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다가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관세를 올려 자유로운 물품의 이동을 제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급망에 교란이 생겼는데, 트럼프 행정부 말기와 바이든 행정부 초기에 팬데믹으로 손해를 본 서민들을 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돈을 풀며 물가가 급속도로 상승한 것이다. 2022년 6월 물가상승률은 9.1%에 달했는데, 이는 카터 행정부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중반에 들어와서 물가상승률은 낮아진다. 2023년에 들어서는 물가상승률이 4% 미만으로 떨어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정보는 (1) 코로나 팬데믹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돈을 풀어 어쩔 수 없이 생긴 인플레이션을 (2) 임기 3년차 때부터는 확실하게 잡아 현재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것이었겠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느끼는 정서는 4년 전에 비해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심지어 선거를 몇 달 앞두고 파월(Jerome Powell)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이자율을 낮추는 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물가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정임을 인지하는 유권자의 수는 많지 않았다. 결국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된 가계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심판으로서 선거 구도가 잡힐 수 밖에 없었다.

 

2. 트럼프 승리 원인: 불법이민과 국경 문제

 

불법이민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법이민자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제적 이유이다. 미국의 농축수산업은 불법이민자들의 노동력 없이는 운영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농업을 보면, 2000년대 중반 전체 노동자의 약 50%가 불법이민자였고, 2020년대에 들어서도 약 40%의 노동자가 불법이민자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불법이민자를 모두 추방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경제적 충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임금 인상 역시 야기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물가 상승 요인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법적 이유이다.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르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는다. 부모가 불법이민자라 할지라도 본인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미국 시민권자이다. 이 상황에서 불법이민자를 색출하여 추방하는 정책을 강화하면 부모를 추방하고 아이는 미국에 두는 결정을 하거나, 아니면 불법이민자 부모와 시민권자 아이를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불법이민자 문제 및 이민법 개혁 문제는 난항을 겪었다. 2000년대부터만 봐도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에서 1.5세 불법이민자(부모의 손에 이끌려 어린 나이에 월경해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시민권 부여 가능성까지 열어둔 법(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 DREAM Act) 논란이 뜨거웠고, 이 법이 의회에서 좌초됨에 따라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발효한, 1.5세 불법이민자에게 갱신 가능한 취업 기회를 주는 내용의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그리고 이것을 폐기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 등이 잇달아 관찰된다. 역설적으로 2000년대 이후 유입되는 불법이민자의 수가 가장 작았고 불법이민자 추방이 가장 많았던 행정부는 오마바 행정부이다. 부시 행정부 때는 불법이민자의 유입이 심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어느 정도 안정화된 불법이민자의 수는 트럼프 행정부 말기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급감했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면서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남에 따라 급증하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급증하는 불법이민자 문제를 직시하고 있었다. 임기 초기 해리스 부통령을 중남미에 보내 불법이민자 유입의 뿌리를 건드리고자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리고 연방의회에게 새로운 이민법 제정을 요구하였으나 이 역시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연방정부의 미온적인 반응을 참지 못한 주 정부(텍사스, Texas)가 주도적으로 국경 봉쇄를 시행하자, 국경 문제의 관할권은 연방정부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거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에서 바이든 행정부(연방정부)의 승리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불법이민자 유입 문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연방의회가 법을 만들어 이민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책임회피라고 보았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공화당 입장이 반영된 초당적인 이민법 개정안이 연방상원에서 논의되었다. 2024년 초 민주당 머피(Chris Murphy), 무소속 시네마(Kyrsten Sinema), 공화당 랭포드(James Lankford) 상원의원이 초당적으로 발의한 이민법 개정안은 장외에 있던 트럼프의 반대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에 좋은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이민 문제가 연방의회 내 합의로 선거 전에 마무리 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뒤늦게 대통령의 직권으로 (전면적이지는 않은) 국경봉쇄를 실시하고, 그 결과 불법이민자의 유입량은 2024년 하반기에 눈에 띄게 줄게 된다. 하지만 불법이민자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불식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3. 해리스 패배 원인: 임신중절 문제

 

임신중절 문제가 미국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된 것은 2022년 돕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연방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이 판결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 의해 보장된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크게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돕스 판결은 임신중절권의 보장 여부를 주 정부에게 맡겨야 된다는 판결인데, 적지 않은 수의 주 정부에서 과거보다 임신중절권을 크게 제한하는 주 법들을 만들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보수 성향이 강한 주에서는 임신중절권의 ‘완전 금지(full ban)’까지도 만들었는데,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지라도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임신중절을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는다. 이에 따라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이 현안은 핵심적인 의제가 되었고, 예상보다 그 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했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해리스가 임신중절 문제를 선거운동의 핵심 메시지로 삼은 이유는 이것이 트럼프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돕스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6-3으로 결정된 것으로, 다수 의견을 제시한 판사들이 모두 보수 성향의 판사들, 즉 공화당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판사들이고, 그 중 세 명이 트럼프 행정부 때 지명된 판사들이라는 점이 부각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지명한 세 명의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아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주장을 트럼프가 임신중절권 제한에 기여했다는 선거운동 레토릭(rhetoric)으로 만들어 접근했다. 그런데 문제는 트럼프가 직접적으로 임신중절권의 제한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트럼프는 임신중절권이 언급될 때 마다 말을 아꼈다. 따라서 트럼프와 임신중절권 간의 관계는 연방대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뿐이고, 이러한 간접적 관계를 일반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2022년 중간선거는 기본적으로 주 단위의 선거이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 결정하는 임신중절권의 범위가 주요한 현안으로 작동했겠지만, 대통령 선거는 연방 단위의 선거이기 때문에 이 현안의 파괴력이 약했다. 게다가 2022년 판결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이 현안을 재활용하는 데에서 비롯된 피로감 역시 무시하기 어려웠다.

 

4. 해리스 패배 원인: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당이 적극 활용한 또 다른 현안은 ‘민주주의의 위기’ 담론이다. 이것은 2021년 1월 6일에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방의회 의사당에 침입한 사건을 환기시키면서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에 덧붙여 트럼프가 걸려있는 총 네 건의 형사소송도 언급되었다.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설득 될만한 부분이 많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침입 사건을 직접 이끌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조지아 주지사와 주무장관에게 전화하여 부정 선거임을 확인하라는 통화 기록은 공개된 바 있고,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부정선거론을 확산시켰기 때문에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임기 중 두 번 연방하원에 의해 탄핵되었고,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도왔거나 방조했다는 혐의로 특별검사의 조사까지 받았을 뿐 아니라, 트럼프 1기 때 주요 보직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들 역시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는 의견을 뒷받침해준다.

 

문제는 이 주장이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정치인과 유권자 차원에서 양극화(polarization)가 심화되었기 때문에 특정 정치인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정파적인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해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주의 위협’ 논리가 많은 일반 유권자들이 신뢰하지 않는 기성 정치권 혹은 기존 정치제도 수호의 논리로 들렸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엘리트와 기성 정치인들로 구성된 외집단을 정책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믿는 유권자들에게 ‘위기에 봉착한 민주주의 수호’라는 메시지는 현상 유지 혹은 기득권 유지의 메시지로 잘못 읽힐 가능성이 컸다.

 

II. 2024년 선거에 나타난 유권자 지형 변화

 

그렇다면 트럼프의 승리를 가져온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어떠한가? 출구조사(exit poll) 결과를 보면 과거에 비해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트럼프를 더 선택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만을 보면 여전히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선호하고 있지만, 2008년과 2012년 소위 ‘오바마 연합’이 형성되었을 때의 수치와 2016년과 2020년 선거 결과와 비교해 보면 소수인종 유권자의 친공화당·친트럼프 성향이 확연하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남성에게서 이러한 경향성이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졸 백인 여성 유권자들이 과거에 비해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했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에 기반해 공화당이 다인종 연합 정당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흑인·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재정렬(realignment)을 의미한다고 판단하기엔 시기상조이다. 미국 정치에서 통용되는 재정렬(남부 민주당 지지 백인 유권자들이 공화당으로 전향하는 긴 흐름)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 보면 성급한 결론은 곤란하다(Schickler 2016).

 

또한 이번 대선에서 고졸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고졸 백인 유권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상징적(문화적) 현안 입장에 의해 투표했음을 시사한다. 해리스가 흑인 여성 후보였다는 점, 최근 미디어 환경이 변함에 따라 미국 대도시 지역에서 벌어지는 지엽적인 범죄, 성 지향성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Pierson and Schickler 2024). 다음선거에서도 이러한 ‘문화전쟁(culture war)’이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를 나누는 주요 사안이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번 대선의 주목할 만한 특징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2020년과 달리 생애 최초 투표자들이 해리스보다 트럼프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보통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유색인종 비율이 높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서 민주당 친화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올해 여름 대학가를 강타한 친팔레스타인 시위(pro-Palestine protests)가 있을 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다른 세대에 비해 20-30대에게서 친팔레스타인·반이스라엘(pro-Palestine·anti-Israel) 성향이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2020년 생애 최초 투표자들이 진보정당 후보 바이든을 더 많이 선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2024년에는 보수정당 후보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는 것이 인플레이션 및 이민 문제 등 주요 선거 현안에 대한 입장이 반영된 결과인지, 아니면 근본적 선거 지형변화일지는 앞으로 추가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소수 인종 유권자와 생애 최초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 변화가 관찰되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 나타난 투표행태 정보만을 보고 섣불리 미국 유권자의 지형 변화를 논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졸자/고소득자의 정당’, 공화당은 ‘고졸자/저소득자의 정당’이라는 구도가 확연해졌다는 것이다(Grossman and Hopkins 2024).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이것은 유권자 지형만 보여줄 뿐 정당의 정책과 일치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고졸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폈던 것은 바이든 행정부이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1기는 감세 정책을 추진하여 고졸 노동자의 안녕에 도움을 주었을 수 있지만, 사실 2017년 감세법(Tax Cuts and Jobs Act)은 과거 공화당 주도의 감세법과 마찬가지로 부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었다. 즉, 정책 차원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저소득층 노동자 정당이고 공화당이 부유층 정당이다. 다만 공화당·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활용한 전략은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화 현안’이다. 이민 문제, 인종 문제, LGBTQ 문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맥락에서 공화당의 통치 철학을 잘 요약해 주는 개념으로 금권주의 포퓰리즘(plutocratic populism)을 주목해야 한다(Hacker and Pierson 2020). 이 개념은 1980년 이후, 더 짧게는 민주당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받아들인 1992년 이후 미국 정치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금권주의 포퓰리즘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공화당은 1980년 레이건 이후 ‘가진 자(haves)’의 정당이었음. 공화당은 집권할 때 마다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의 ‘가진 자’의 의제를 충실히 정책으로 실현시켰음.

 

2) 공화당의 정책들은 심각한 경제 불평등을 낳음(시장과 정치 간 고리를 외면하는 경제학자들은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켰음’을 검증한 정치학 연구들은 무수히 많음).

 

3) 실제로 미국의 정치 제도를 보면 ‘금권주의(plutocracy)’라고 부를 만한 요소들이 많음. 대표적으로 선거자금법. 2010년 시민연합 대 연방선거관리위원회(Citizens United v. FEC)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슈퍼팩(Super-PAC)을 비롯한 ‘가진 자’의 큰 손이 선거 및 정책 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함.

 

4) 그런데 ‘가진 자’에게 하나의 큰 장애물이 있음. 그것은 ‘일인일표제’에 근거한 민주주의 선거제도임. 억만장자인 자기도 한 표고, 가난한 노숙자도 한 표임.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유력 정치인들과의 네트워크가 있다 해도, ‘가진 자’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음.

 

5) 이에 사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극소수의, 공화당을 적극 지지하는 ‘가진 자’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됨. 그 와중에 발견한 것이 문화전쟁 전선임. 개신교 가치관, 전통적인 가족관,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인종 간 위계질서,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국가정체성 등을 활용하여 넓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자 함(그러나 정작 ‘가진 자’ 자신들은 이것에 관심 없음).

 

6) 다시 말해 공화당은 (1) 극소수의 ‘큰 손’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당인데, (2) 선거 목적으로 전통 가치관·국가정체성을 활용해 ‘가지지 못한 자’들의 표를 확보하는 정당이라는 이야기임. 첫 번째 부분이 금권주의, 두 번째 부분이 포퓰리즘, 합쳐서 금권주의 포퓰리즘임.

 

트럼프가 1기 행정부 때 감세법을 제외하고는 고졸 백인 노동자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편 적이 없다는 사실, 역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그들의 이익을 위한 산업정책 정책을 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쪽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은 금권주의 포퓰리즘의 맥락에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III. 민주당의 미래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겉으로 보아 1980년대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종말을 의미한다. 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며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다자주의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며 글로벌 경제와의 연결을 강화했지만, 이러한 경제정책은 결국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해외로 일자리가 유출되고, 전통적인 제조업 지역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많은 중산층 유권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시골의 고졸 백인 기독교 신자 남성’들의 표심을 파고들며, 그들의 불만을 정치적 자산으로 변환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책을 보면 여전히 부유층 친화적인 흔적이 남아있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1992년 클린턴(Bill Clinton)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유지하고 있었던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후폭풍을 2016년 선거에서 쓰라리게 경험한 바 있다. 뉴딜 연합의 일원으로서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고졸 백인 노동자 계층이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예상치 못한 패배를 맛보았던 것이다. 이에 근본적인 태세 전환을 시도하여 내세운 바이든이 2020년 백악관을 탈환하면서 노골적인 친노동, 친노조 정책을 취하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유사했다는 점,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민주당 내 급진파인 샌더스(Bernie Sanders)의 목소리와 유사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바이든이 가져온 민주당 내 변화가 2024년 선거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 민주당의 미래를 점검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해리스의 패배는 기본적으로 거시경제적 요인의 함수이다. 그러나 흑인 남성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를 과거에 비해 덜 얻었다는 점, 생애 첫 유권자의 지지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이 고졸 백인 노동자들의 동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만한 지점이다. 일각에서는 사회문화 현안에서 민주당이 취하고 있는 진보적 입장, 즉 ‘정치적 올바름성(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선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Lilla 2018). 하지만 이 주장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해리스의 선거운동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강조한 바 없다. 트럼프 선거운동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광고를 제외하고는 2016년 혹은 2020년에 비해 문화 현안에 집중하지 않았다. 만약 정체성 정치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2020년에 왜 바이든이 승리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2020년은 공권력에 의한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사건이 촉발시킨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극에 달해 있었던 시기였는데 말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2024년 선거를 복기하면서 나오는 분석이 2004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2004년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의구심과 사회 기저에서 흐르고 있는 문화적 자유주의(예를 들어 동성간 결혼 합법화 및 줄기세포 활용)가 얽혀있던 시기였다. 2000년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의 재선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과는 민주당 후보 케리(John Kerry)의 패배였다. 이 결과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일반 국민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만 접근한다는 점(Westen 2007), 동성간 결혼과 같은, 시골 백인 중산층에게 인기 없는 현안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Frank 2004) 등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이 지적사항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크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민주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오바마를 내세워 승리를 거둔다.

 

문제는 오바마 당선부터 새롭게 대두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에 대한 반발이 정치권을 휩쓴 것이다. 우선은 오바마 당선에 큰 도움이 되었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월가(Wall Street)의 이익을 대변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취했다. 망해가는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동원된 막대한 세금에 많은 유권자들이 불만을 표출했고, 이는 ‘티파티 운동’으로 이어진다(Skocpol and Williamson 2012). 이 운동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대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오바마의 인종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정치 현안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미국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는 음모론(birther conspiracy)의 확산을 주목해야 한다. 이 음모론의 재생산에 앞장섰던 인물이 트럼프였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과 2012년 오바마의 정치적 성공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진보적인 방향으로 미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가져다 주었다. 2015년 연방대법원이 동성간 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Obergefell v. Hodges)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은 이제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Hillary Clinton)을 배출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다음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히스패닉, 흑인 여성, 동성애자 등으로 꾸며지게 된다. 2020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서 백인 남성은 바이든과 샌더스 밖에 없었다. 나머지 후보들은 여성(Elizabeth Warren, Amy Klobuchar), 흑인(Cory Booker), 흑인 여성(Kamala Harris), 아시아계(Andrew Yang), 히스패닉(Juan Castro), 게이(Pete Buttigieg) 등이었다. 이 때 민주당은 전통적 이미지의 중도 성향 후보 바이든을 선택하였고, 좋은 결과를 낳았다.

 

공교롭게도 2016년과 2024년 여성 혹은 소수인종 후보를 내어 실패한 민주당은 미국 사회에 내재된, 그리고 아마도 트럼프의 등장으로 증폭된 성·인종차별주의의 물결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8년에 백악관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젊은 바이든’으로 불릴 수 있는 중도성향의 백인 남성 후보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고려도 필요하다. 만약 민주당을 이탈한 고졸 백인 노동자 계층의 포섭이 필요하다면 중도성향보다는 조금 더 노동친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젊은 샌더스’를 키워야 할 것이다. 바이든은 중도성향으로 시작하여 집권 후 친노동 성향으로 전환한 경우이다. 해리스의 실패는 그녀의 정체성(성 및 인종)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월가를 비롯한 기득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체성 정치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고졸 백인 유권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젊은 백인 남성 후보가 필요하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인물로는 현재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지사 샤피로(Josh Shapiro)와 켄터키(Kentucky) 주지사 배쉬어(Andy Beshear) 등이 있다.

 

한편 민주당에서 2004년 패배에서 2008년 승리로 간 공식을 재현한다고 결심하면 맞불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문화 현안 혹은 경제 현안에서 급진적인 입장을 보이는 후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 범주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뉴섬(Gavin Newsom), 교통부장관 부티지지(Pete Buttigieg), 급진파 여성 연방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미시간 주지사 휘트머(Gretchen Whitmer)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이 공존하는 정당이었다(Grossman and Hopkins 2016). 뉴딜 연합은 중공업지대의 노동자, 이민자, 소수 인종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인 남부 백인까지 끌어안은 집단이었다. 오바마 연합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노동자와 소수인종 및 대졸자 엘리트를 묶은 집단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치와 이념에 기반한 공화당에 비해 변화의 폭도 크고, 모순되는 정책을 생산하기도 한다. 트럼프화된 공화당과 경쟁하기 위해 민주당이 어떠한 정체성을 띠어야 하는지를 단언하기는 어려우며, 클린턴에서 오바마로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유지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곧 친노동, 친소수자 정당으로 고착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선거자금 동원과 지출이 자유로운 미국 선거 맥락에서 ‘큰 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Frank, Thomas. 2004.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New York: Metropolitan Books.

 

Grossman, Matt, and David A. Hopkins. 2024. Polarized by Degrees: How the Diploma Divide and the Culture War Transformed American Politic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Grossman, Matt, and David A. Hopkins. 2016. Asymmetric Politics: Ideological Republicans and Group Interest Democrat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Hacker, Jacob S., and Paul Pierson. 2020. Let them Eat Tweets: How the Right Rules in an Age of Extreme Inequality. New York: W. W. Norton.

 

Lilla, Mark. 2018. The Once and Future Liberal: After Identity Politic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ierson, Paul, and Eric Schickler. 2024. Partisan Nation: The Dangerous New Logic of American Politics in a Nationalized Er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Schickler, Eric. 2016. Racial Realignment: The Transformation of American Liberalism, 1932-1965.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Skocpol, Theda, and Vanessa Williamson. 2012. The Tea Party and the Remaking of Republican Conservat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Westen, Drew. 2007. The Political Brain: The Role of Emotion in Deciding the Fate of the Nation. New York: Public Affairs.

 


 

하상응_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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