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사회 역량 강화” 프로그램은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발전을 위하여 미얀마의 신생 민간 싱크탱크가 건전한 정책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역량 및 연구역량을 지원하고 있다. EAI는 한국의 민간 독립 싱크탱크로서 네트워크에 기반한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EAI는 성장의 경험을 미얀마의 신생 싱크탱크들과 공유함으로써, 미얀마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개진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보다 발전된 거버넌스 체제 구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얀마 파트너 기관으로는 산디거버넌스연구소(Sandhi Governance Institute), 양곤정치학교(Yangon School of Political Science), 오픈미얀마이니시어티브(Open Myanmar Initiative), 살윈정책연구소(Salween Institute for Public Policy), 언아더디벨로프먼트(Another Development), 욘치야(Yon Kyi Yar), 나우셩개발연구소(Nawshawing Development Institute) 등 총 7개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논평이슈브리핑
[EAI 미얀마 특별 논평] ⑤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시민사회의 중단 없는 투쟁: EAI의 미얀마 협력 사업에서의 소회

2021년 2월 1일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서 역사상 또 하나의 비극이 한 에어로빅 강사의 비디오카메라에 희극처럼 포착되었다. 군부가 이끄는 일련의 차량들이 연방의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진입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에어로빅 강사는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젊은 세대 다운 발랄한 몸동작을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 포커스는 2021년의 현대를 담고 있었지만, 배경이 된 차량 행렬은 1962년과 1988년의 먹구름을 떠올리게 했다.   미얀마의 민주의 역사는 좌절의 역사였다. 식민지 지배를 뒤로 하고 독립 정부를 수립했을 때에도 정부의 무능과 분열적 정치 사회 환경은 불안과 무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군부의 정권 찬탈로 귀결되었다. 군부독재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결집했던 1988년의 8888 항쟁과 미얀마의 국교라고 할 불교 승려까지 가세했던 2007년 샤프란 혁명도 모두 두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군부의 폭력 진압에 좌절되었다. 미얀마 군부는 국가적 통합과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손쉽게 국가 권력을 찬탈하는 쿠데타 전문 집단이 되었고, 그 속에서 시민적 저항의 피와 목숨은 좌절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규율” 속에서 마치 군부의 “시혜”가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미얀마 시민의 열망은 간단히 좌절되지 않았다. 많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투옥되고 정치적 망명의 길에 올랐지만, 시민사회는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내적 역량을 결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2015년에 찾아왔다.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11월 총선에서 떼인 세인의 연방단결발전당(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USDP)을 압도하면서 군부독재의 긴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무려 75%가 넘는 미얀마 시민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결집된 시민사회의 의지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치적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다.   2021년의 쿠데타는 과거처럼 손쉽게 군부의 뜻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 저항은 비록 쿠데타 초기에 비해 규모가 줄었지만, 양곤과 만달레이 등 대도시의 거리에서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하는 등의 폭력적 진압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시민적 저항은 전술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민주주의 복원의 구심점이 되고자 하는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지지는 전국적이며 광범위하다. NUG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은 10시간 만에 모두 소진되었다.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민주주의 복원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무분별한 폭력으로 공포를 조장하며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군부와 지치지 않고 저항의 메시지를 발신하며 민주주의 복원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시민불복종운동과 민주진영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1. 2015년 총선과 미얀마 시민사회의 과제   2015년 미얀마 시민사회는 역사적인 기회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떼인 세인의 자유화 정책에 따라 수감되었던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석방되었고 해외로 망명하여 국내 저항운동을 지원하던 반체제인사들이 귀국하였다. 전향적 자유화 조치로 군부의 통제가 이완됨에 따라, 과거의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미얀마의 정치 발전 도모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모색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그들의 조국은 과거와는 달랐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남은 마지막 ‘잠재력의 땅’이라는 평과 함께 해외 자본의 투자가 적극 이루어지고 있었고, 과거 중국에게만 의존했던 경제는 새로운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속에서 미얀마 시민들도 빠르게 적응하며 사이버 공간에서 사회관계망을 활발하게 형성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서 피켓을 들고 확성기로 외치는 방식은 변화한 미얀마 시민사회에서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미얀마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기회를 포착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수의 정치지도자에게만 기대서는 민주주의의 성취와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주목한 것은 2015년 11월로 예정된 총선이었다. 정부가 공언한 것처럼 예정된 일정대로 치러진다면 군부의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 문민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를 위해서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수였다. 그러나 연방의회뿐 아니라 중층적인 지역 단위의 의회를 구성하는 총선은 선거의 기회가 정기적으로 주어지지 못했던 일반 시민들에게 복잡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과제”였다.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시연을 통해 이해시키는 교육이 필요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미얀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총선을 앞두고 투표 교육을 조직적으로 실시했다. 시민사회단체를 조직하여 전국을 돌면서 시민들을 가르쳤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변방을 순회하며 조직적인 투표 교육을 실시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과 함께 미얀마의 낮은 문맹률은 교육의 효과를 고양시켰다. 총선의 높은 투표율은 2015년 내내 전국을 돌아다니며 땀을 흘렸던 미얀마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과 그들이 설립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총선 이후의 과제 또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견에 따른 압력단체(advocacy group)나 과거의 운동가 집단(activist group)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민주주의 실현이란 역사적 기회에 기여할 수 있는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이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 강화(Strengthening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 Myanmar)’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이 사업의 목적은 미얀마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주주의 의제와 정책 과제를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싱크탱크(think tank)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추진되었다. 첫째는 경험 공유였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발전, 그리고 경제적 성공의 경험에 대한 미얀마 시민들의 호기심은 매우 컸다. 작은 규모의 민간 독립 싱크탱크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EAI의 경험은 미얀마 시민사회단체들이 미래의 조직 발전 방향을 설계하는데 현실적인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었다. 경험 공유는 일방적인 지식과 경험 전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EAI 또한 한국이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이해하고 탐구해야 했다. 독립 이후 현대 미얀마가 경험했던 정치 경제적 과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생생한 역사와 정보는 외부세계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EAI는 미얀마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토대로 아시아 민주주의 연구 범위를 확장시키고자 했다. 또한 한국의 개도국에 대한 지원이 경제적인 측면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을 문제로 인식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적 발전 경험과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수혜국의 내적 역량이 경제 원조의 견고한 성과를 견인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유일하게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기여외교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사례를 미얀마에서 찾고자 했다.   두 번째 축은 네트워크였다. EAI는 주요 전문가들을 노드로 하고 이들을 엮는 네트워크 구축의 허브로서 민주주의 협력의 성공 스토리를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확장시키고자 했다. 지역 차원에서는 이미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sia Democracy Research Network, ADRN)를 구축하여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고 민주주의 싱크탱크들과 공동 의제를 발굴하고 연구를 진행하고있었다. ADRN의경험을 바탕으로 EAI는 먼저 미얀마 내부에서 민주주의 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를 다시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면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제고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하였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상호 교류를 통해 성장하듯,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상호 교류의 채널을 구축하고 EAI를 비롯한 아시아 다른 지역의 싱크탱크들과 소통하며 변화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2015년 8월 처음으로 경험 공유 및 정책 연구를 위한 워크숍을 시작했다. 그동안 미얀마는 역사적인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아웅산 수찌와 NLD가 이끄는 민주주의 문민정부를 수립했고, 또 이듬해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책임성을 결여한(irresponsible)’ 정부를 퇴진시킨 촛불 혁명을 일으켰다. EAI와 미얀마의 파트너 기관들은 양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생생하게 나누었다.   2. 시민의 열망과 NLD 정부의 한계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미얀마 시민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비약적인 성장을 경험하였다. 여기에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민주주의 진영 인사들의 노력이 주요했다. 군부는 8888 항쟁 이후 양곤대학을 학생운동의 핵심부로 지목하면서 폐쇄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의학, 기술 등의 교육을 제외한 인문사회 고등교육을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하였다. 군부 정권은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까지 박탈하면서 권력의 자율성을 탐하였다. 부분적으로 주어진 자유의 틈 속에서 미얀마 시민사회는 그동안 박탈당했던 교육의 권리를 만회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EAI와 함께했던 파트너 기관의 주요 활동 영역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산디거버넌스연구소(Sandhi Governance Institute)는 미얀마 여성의 역량 강화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양곤정치학교(Yangon School of Political Science)는 군부가 대학 공교육에서 금지했던 정치학 교육을 민간 차원에서 부활시켰다. 오픈미얀마이니시어티브(Open Myanmar Initiative)는 정부와 의회의 현황을 데이터화하고 정치인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국내외 연구자 및 일반 시민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만달레이의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욘치야르(Yone Kyi Yar Knowledge Propagation Society)는 도서관을 설립하여 지역 사회에 지식을 전파하고 젊은 세대의 건설적인 토론의 장을 구축하였다. 카친주의 주도 미찌나에 위치한 나우셩개발연구소((Naushawng Development Institute)는 공공교육 서비스로부터 소외된 소수민족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해외 NGO들과 협력하여 학교를 운영했다.   특별히 2015년 전국을 누비면서 펼쳤던 시민사회단체들의 투표 교육이 결실을 거두면서, 이들의 시민사회 역량 강화 활동은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미얀마 민주주의 연구 네트워크(Myanmar Democracy Research Network, MDRN)’는 아시아 지역의 싱크탱크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해외의 성공 사례들을 배우고 이를 다시 국내 어젠다로 개발했다. 아시아와 세계의 민주주의 전문가 및 학자들은 양곤을 방문하여 지식과 경험을 나누었고, 사회관계망을 통해 소통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5년 전 투표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했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제한된 조건에서도 미얀마 국민들의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등 연구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적인 열망을 등에 업고 등장했던 NLD 정부는 민주주의 과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기득권의 군부와 국민의 민주주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오히려 민주적 가치를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자칫 다시 군부에게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정치 엘리트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었는지, 군부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떼인 세인 정권 하에서도 보장되었던 시민사회와 의회 의원들 간의 소통 채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해외 NGO의 자유로운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고 관리하고자 했다.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폭력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두둔까지 했다. 캠퍼스 내에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고 학생운동 지도자를 체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2015년에 비해 소수민족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더욱 제한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팬데믹을 핑계로 2020년 선거 캠페인을 통제하고 언론인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정부 방송사만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NLD 정부를 향한 ‘민주적 독재(democratic dictatorship)’라는 비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국민적 지지 말고는 정치적 자산이 없었던 NLD 정부는 비록 2020년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승리로 관대한 국민의 재신임을 얻었지만, 군부의 쿠데타 앞에 너무나도 조용히 무너져버렸다. 다시금 역사의 난제는 시민의 손에 맡겨졌다.   지금껏 많은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2021년 12월 25일 시점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만 1,375명에 이른다. 8,254명이 투옥되었으며 이 중 39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수 중에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도 2명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수치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중론이다.   미얀마 시민의 저항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중심에 있었고, 밤마다 일정 시간 동안 냄비와 양철을 두드리면서 저항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집회도 있었다. 또한 밤에 일정 시간 동안 소등하여 위성을 통해 전 세계가 깜깜한 미얀마를 볼 수 있도록 하며 저항 의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하는 등 군부의 잔혹한 진압이 계속되자, 마치 플래시몹(flash mob)과 같이 게릴라성 시위를 하고 순식간에 흩어진다거나, 사람이 아닌 곰 인형을 거리에 전시하여 시위를 하기도 했다. 상공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We Want Democracy)“라는 거대한 글귀를 새기고, 세 손가락을 펼친 사인을 페이스북에 릴레이로 공유하면서 의지를 다짐하기도 했다.   다양한 저항 운동과 함께 군부 정권에 대한 시민불복종운동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초기에는 군부가 소유한 산업 생산품의 불매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현재는 군부 정권의 자금줄을 압박하기 위해 납세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는 전기 요금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하고 더이상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이 초래되고 있지만, 미얀마 시민들은 기꺼이 그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에도 시민의 안전과 보건을 철저히 외면했던 정부에 더이상 기대하는 바가 없다. 공적 서비스는 마비되었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정부와 시민사회의 이격은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미얀마 시민은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을 지원해주기를 끊임없이 호소했다. 주 UN 미얀마 대사의 용기 있는 선언과 미인대회에 참가한 미스 미얀마의 눈물어린 호소는 아직도 많은 세계 시민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선언만을 되풀이할 뿐 실질적으로 미얀마 시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실행하지 못했다. 중국은 사실상 민 아웅 흘라잉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고, 아세안은 미얀마 군부 정권의 대표성을 인정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최근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네피도를 방문하여 민 아웅 흘라잉을 접견했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미얀마 시민들은 수개월 전처럼 UN과 국제사회에 눈물로 호소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무위를 겪으면서 이번 사태 해결이 오로지 그들의 투쟁임을 값비싼 교훈으로 깨달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싸움을 미얀마 시민들은 해나가고 있다.   3. 에필로그     군부가 네피도를 장악한 지 1년이 다 되었다. 여전히 미얀마 사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군부는 무고한 시민과 취약한 변방 소수민족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과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NUG는 아직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할 만큼 힘과 자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리고 도시 거리에서는 시민들의 기습 시위가 지침 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젊은이들은 무장을 택했다. MDRN의 일원이었던 만달레이 주의 한 의사는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미얀마 연방주의를 꿈꾸던 소수민족 학생은 혁명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편 젊은 부부는 2세를 출산했고 결혼 소식을 전한 새로운 커플도 있다. 그들이 ‘봄의 혁명(Spring Revolution)’이라 불렀던 저항은 한 치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험난한 혁명 속에서 미얀마 시민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역사가 그들의 편에 서는 순간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     ■ 저자: 신영환_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에서 위촉연구원, 대구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장.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관심은 동아시아 국제관계, 중러관계, 지정학, 한국외교, 개발협력 등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Myanmar’s Broken Democracy “Disciplined” by the Military: Analysis on the Quality of Procedure in Fledging Democracy“(2022), "중국의 협력적 대륙전략과 팽창적 해양전략: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의 지정학 이론을 중심으로"(2021), "Is Japan the "Britain" of East Asia? A Geopolitical Analysis of Japan's Long-term Strategy on the Korean Peninsula"(2020)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신영환 2022-02-28조회 : 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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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미얀마 특별 논평] ④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한국 시민사회의 상호적 경험

* 본 보고서는 민주화사업기념회의 네트워크(미얀마 현지인들, 미국에 망명 중인 미얀마 인사들, 아시아권 시민사회단체 지도자) 멤버와의 연락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1. 민주화 운동의 불가역성과 내전 상황   군부 쿠데타 발발로 촉발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1년을 맞고 있다. 2022년 1월 16일 자 기사에 따르면 그동안 1,469명이 사망하고 1만 1,554명 이상이 체포당했으며, 1,966명에 이르는 수배자가 발생했다고 한다(오마이뉴스 2021/01/16).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러한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타깝게도 1년이 넘도록 상황은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얀마 시민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2021년 4월 16일에 있었던 EAI 컨퍼런스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주의의 미래”에서 필자는 이번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성격을 불가역성, 전방위성, 융합성, 쌍방향성, 4가지로 정리하였다 (동아시아연구원 2021/04/16). 2010년을 기점으로 개방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이후, 미얀마는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다른 개발도상국들처럼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미얀마인들을 전 세계 트렌드를 파악하고 동시대를 사는 세계시민이 되었다. 정보의 확산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군부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역사에 역행하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인들은 이제 이전의 군부독재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1년을 버텨 온 그들의 목숨을 건 항전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민주화운동사업기념회의 한 미얀마 네트워크 멤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미얀마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군부의 종식입니다. 지금 군부가 유화적인 행동으로 민주화 운동을 막고,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자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2008년의 불완전한 헌법으로 인해 시민들에게는 권력의 절반만이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든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될 거예요. 우리의 싸움은 군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겁니다.” 미얀마 시민들에게 오늘날의 투쟁은 단순히 군부를 향해 민주주의를 내놓으라고 외치는 구호가 아닌 목숨을 건 싸움이 되었다.   쿠데타와 더불어 군부의 양민에 대한 폭력이 지속되자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을 위시한 민주 진영은 주요 민족들과 연합하였고, 상황은 전국적인 내전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지난 4월 16일 민주 정부는 각 지역의 주요 민족들과 연합하여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를 출범시키고,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 PDF)’을 창설하였다. 외부적으로는 미얀마 민주 진영을 결집하여 국제사회에서 미얀마를 대표하고, 군부의 정당성을 무력화하기 위함이었다. 내적으로는 양곤 같은 대도시에서조차 평화적인 시위가 불가능해지고, 인터넷 소통을 기반으로 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시위 진압 수준을 넘어 테러와 학살의 징후를 보이는 군부의 폭력에 대응하여 시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   무력 투쟁은 친족에서 시작되어, 카야족, 라카인족, 카렌족까지 번진 상태이며, 이미 각 주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군부는 각 민족의 무장투쟁에 대응하여 전투기를 띄우고,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일반 시민들이 사는 마을에서도 총소리와 폭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군부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이용하여 무장지역을 공습하고 색출과 연행을 자행하며 무장투쟁 세력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 친족은 주요 민족 가운데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민족으로, 가장 먼저 무력투쟁에 돌입한 친족 자치주는 상당 부분 토벌이 진행되었다. 일례로 탄달랑 지역의 1,600여 가구가 거주하는 마을에서 군부의 폭격으로 1,300가구 이상이 불타 없어졌다고 전해진다.[1]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인 게릴라 시위와 무자비한 대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군부가 12월에도 40여 명의 소규모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돌진하여 8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88년 민주화 운동 이후 정치범과 그 가족들을 지원해온 현지 단체인 정치범 지원 연합(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AAPP)의 집계에 따르면 이미 작년 9월에 사망자는 1,400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2. 군부의 전방위적 탄압과 쌍방향성의 위기   사실상 내전이 시작된 이후에는 외신을 통해 가끔 전해지는 뉴스 외에 미얀마 현지의 피해 상황을 알 방법이 없다. 단편적인 뉴스 기사와 현지의 증언을 종합하여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1년 4월부터 이미 미얀마 현지의 상황을 청취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군부의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대한 통제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인접국의 SIM 카드를 이용해서 휴대전화 차단을 피했다. 국가가 모든 이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적으로 막을 수는 없겠으나, 개개인에 대한 SNS 검열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쿠데타 발발 100일 정도를 기점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민주화 요구 시위와 인명 피해를 전달하던 이들은 군부의 색출로 포스팅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그들은 이제 SNS가 아닌 추적이 불가능한 휴대전화 앱을 이용하여 바깥세상에 미얀마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군부의 위세는 여전히 강력하다. 군부는 내부적으로 토벌을 통해 국민을 억압하고, 외부적으로 국제사회의 외교적 승인을 통해 정상 정부로 인정받기 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SEAN은 2021년 10월에 열린 정상회의(의장국 브루나이)에 미얀마 군정의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의 참석을 불허하고, 미얀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합의안의 이행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올해의 의장국인 캄보디아는 미얀마 군정에 매우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1월 훈센 총리가 전격적으로 미얀마를 방문하여 흘라잉 총사령관과 평화적 해결의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연합뉴스 2022/01/16). 이 소식은 언뜻 봐서는 얼마 전 국가수반 자리를 아들에게 대물림한 훈센 총리가 인근 국가인 미얀마 군부와의 결속을 통해 정권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단순한 외신 뉴스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뼈아픈 의미를 지니고 있다. 캄보디아가 의장국을 맡은 2022년에는 아시아 지역 기구인 ASEAN을 통한 군부에 대한 외교적인 제재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는 아시아 시민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려되는 일이다. 실제로 미얀마 시민들에게도 이번 훈센 총리의 방문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들에게 ASEAN이 2021년에 보여준 흘라잉 총사령관 방문 거부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는데, 이번 의장국인 캄보디아 정상의 공식 방문으로 NUG의 외교력 부재와 ASEAN으로부터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실질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얀마에서는 훈센 총리의 사진을 불태우고 발로 밟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재한 미얀마 교민들과 연대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도 이를 규탄하는 성명이 발표되었지만, 파장은 미미하였다.   3. 다면적인 재난, 그리고 불확실성과의 싸움   UN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꾸준히 전문가, 특사 등을 통해 군부에 폭력을 멈출 것을 호소하고, 기업들이 군부로 가는 자금줄을 차단해줄 것과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도움을 호소하고 있으나, 군부에 대한 직접적인 성토와 제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2021년 9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얀마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인 접근과 지원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아웅산 수찌 여사와 윈 민트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는 119개 국가의 찬성, 중국을 비롯한 36개국의 기권, 벨라루스 1개국의 반대를 거쳐 승인되었다. 11월에는 안보리에서 미얀마 폭력 종식을 위한 촉구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군부에 의한 폭력보다는 로힝야 난민의 안전보장에 방점이 찍힌 모양새다. 미얀마 상황의 개선을 위해 ASEAN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함 역시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ASEAN은 일부 회원국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분열에 가까워 보이는 행보를 보이며 군부에 대한 제대로 된 외교적 압박을 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12월에는 유엔 인권 고등 판무관 명의의 성명으로 아웅산 수찌 여사의 유죄판결을 ‘가짜 재판’으로 성토하기도 하였으나, 이 역시 실질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선언적인 행동에 불과해 보인다.   2021년 10월 UN 미얀마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분쟁 상황, 식량 위기, 자연재해,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어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인구는 300만 명에 달한다(UN News 2021/10/19). 현지의 증언으로도 심각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산업과 상업은 붕괴되었고, 전기, 수도 등 필수자원의 공급도 불안하다. 군부는 이 모든 상황을 국민을 탄압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붕괴한 의료시설을 복구하기는커녕, 의사, 변호사, 언론인, 지식인들에게 테러를 자행하고, 연행, 구금하면서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다. SNS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던 사회 지도층과 연예인 등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무차별적으로 구금되거나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도시를 버리고 무장투쟁을 위해 각 지방으로 흩어져 산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 역시 사재를 털어 산으로 보내고 있다. 88년도 민주화 투쟁이 대학생과 지식인층 등 청년과 그 이상의 연령층에 의해 주도된 것과는 달리, 이번 민주화 운동에서는 30대 이하와 20대, 심지어 17, 8세에 불과한 청소년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무장투쟁에 뛰어들고 있다. 고등학생 밖에 안 되는 어린 청소년들이 산으로 들어가 총기 사용법과 폭발물 제조 기술을 익혀 군부와의 교전에 나서고 있다. 필자에게 미얀마 소식을 전해주는 지인 역시 하던 사업을 모두 접고, 매달 무장투쟁 세력에게 금전적 지원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돈을 보낼 여력이 있어 도시에 남아 있지만, 자신 역시 때가 되면 무장투쟁을 위해 산으로 올라가 목숨을 걸고 싸울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혼란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미얀마 시민들은 한국 사회가 보내주는 지지를 잘 알고 있으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다. 국제 시민사회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미얀마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는 국가는 한국, 일본 정도라고 한다. 특별히 한국 시민사회는 재한 미얀마 교민, 유학생들과 연대하고, 단체들끼리 교류하며 지속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성명,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모금 활동 또한 활발하게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통하여 미얀마로 자금이 조달되는 것과는 달리, 공식적인 지원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한계와 우려를 안고 있기도 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얻은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한국의 시민혁명의 경험은 현재 미얀마 시민사회에서 상호적 경험(interactive experience)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한국 학생운동이 해외의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듯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 역사는 경제·사회적 발전상과 더불어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도모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대표적인 성공모델로써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보며 광주의 아픔과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던 기억을 떠올리고, 지속적으로 응원과 지원을 보내는 것은 미얀마 시민들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보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 한국사회가 어둠의 시간을 지날 때 국제사회의 연대는 국제기구를 통한 직접적인 지원 외에도, 책과 노래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학생과 시민들에게 힘을 주었다. 오늘날 시민사회의 연대는 정보의 날개를 달고, 세계 각지에서 민주화 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동력이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4. 글을 마치며   안타깝게도 현재 미얀마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원은 목적만 확실할 뿐 지속적인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우리가 보내는 지원을 어느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말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은지, 직면한 인도적 위기에 집중해야 하는지, 아니면 무력투쟁을 측면으로라도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실제 NUG의 한국대표부 특별 대사는 미얀마 내전을 위한 무기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국민일보 2022/01/10).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의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안타까워하며 그냥 있을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너무나 거대한 재난이 다면적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웃을 위해 우리 시민사회는 자기 몫의 싸움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국제사회가 당신들의 손을 잡고 있다고 끊임없이 알려주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 지원을 보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공고한 연대가 시민사회를 통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미얀마의 문이 다시 열리는 날, 지금의 연대는 미얀마 시민사회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의 4·16 컨퍼런스를 마친 후 현장에 참석했던 미얀마 유학생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면,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버릴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서 한국과 국제 시민사회가 미얀마를 위해 해야 할 일의 실마리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지고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찾고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미얀마 시민들을 외면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   참고문헌   국민일보. 2022. “새해 군부 독재 축출 ‘성공의 해’ 될 것... 국제사회 무기 지원 필요.” 1.2022.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26788&code=11141200&cp=du). 동아시아연구원. 2021. “EAI 컨퍼런스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주의의 미래.”” 4.2021 (http://eai.or.kr/new/ko/event/view.asp?intSeq=20478&board=kor_event&keyword_option=board_title&keyword=%EB%AF%B8%EC%96%80%EB%A7%88&more=). 연합뉴스. 2022. “아세안, ‘친 미얀마 군정’ 의장국 캄보디아에 제동.” 1 2022. (https://www.yna.co.kr/view/AKR20220116023100084?input=1179m). 오마이뉴스. 2021. “미얀마 쿠데타 뒤 시민 1469명 사망...2월 세계곳곳 ‘연대집회.’” 1 202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3184&CMPT_CD=RDAUM&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related_news). UN news. 2021. “Myanmar: Three million in urgent need of life-saving assistance, protection.” 10.2021. (https://news.un.org/en/story/2021/10/1103482).       [1] 통신 사정으로 인해 정확한 지명과 숫자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음..     ■ 저자: 이현윤_브랜다이즈 대학교 대학원에서 지속가능한 국제개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에서 말레이시아 시민사회 역량강화 사업에 참여 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따비에에 미얀마 어린이 이야기책 제작 프로젝트, 하트하트재단의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안과 및 준전문안과인력 양성 프로젝트, 하트하트재단 & 삼성꿈장학재단 버마이주노동자교육위원회(BMWEC) 카렌족 난민 어린이학교 프로그램, ATASK의 광역 보스턴 지역 아시아계 이민여성 법률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유엔개발계획(UNDP) 허리케인 카트리나 복구 프로젝트 그레나다 젠더교육 보조 트레이너로 재직하였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이현윤 2022-02-24조회 : 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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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미얀마 특별 논평] ③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와 아세안

1. 들어가며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2020년 11월에 있었던 선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회가 소집되려던 바로 그날 쿠데타를 일으켜 2015년부터 5년 남짓 유지되었던 민간정부를 무너뜨리고 2011년 군부에 의한 정치 개혁 이전으로 미얀마의 상황을 후퇴시켰다. 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얀마에서는 1,5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군부에 의해 희생당했고, 11,000명 넘는 사람들이 투옥되었다. 옥중 고문에 의해 사망한 사람도 100여 명에 달한다(The Irrawaddy 2022/01/05). 물론 실제 숫자는 이보다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군부통치에 저항하는 수많은 미얀마 국민들,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와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 PDF)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동요하지 않는다. 아세안을 비롯한 지역 기구와 지역 국가들, 미국, 유럽을 위시한 서방국가들, 국제연합(UN)의 비판도 상황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2. 2021년 미얀마와 아세안   1948년 미얀마의 독립 이후 지금까지 70년 넘는 역사 가운데 군부통치가 아닌 시기는 길게 잡아도 1948~1962년까지 14년, 그리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도합 19년에 불구하다. 54년간 군부통치를 경험했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었던 미얀마 군부는 2011년 갑작스럽게 정치적 개혁과 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자유화 조치 4년 만인 2015년 선거에서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정권을 잡았고 미얀마의 정치적 자유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2020년 11월 5년 만에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민족민주동맹은 또 승리했고 2021년 2월 1일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의회가 소집될 예정이었다. 두 번째 민간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바로 그날 군부는 쿠데타로 미얀마 정치적 자유화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1997년 미얀마가 아세안의 회원국이 된 이후 미얀마는 아세안의 정치적 부담이었다. 아세안은 어렵게 마련된 미얀마 정치적 자유화가 계속되어 이런 정치적 부담을 해결하기를 바랐다. 2021년 2월 쿠데타는 이런 아세안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아세안과 개별 아세안 회원국의 반응이 쏟아졌다. 쿠데타 당일 아세안은 의장성명을 통해 정상으로 복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호소하며 아세안 헌장(ASEAN Charter)의 민주주의, 법치, 인권, 자유를 언급했다(ASEAN 2021, 1).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도 성명을 발표해 정상으로 복귀와 민주화 과정 회복을 호소했다(Ministry of Foreign Affairs, Singapore 2021/03/02). 곧이어 브루나이(2월 24일), 인도네시아 (2월 8일), 태국 (3월 1일, 3월 11일), 필리핀 (2월 9일, 3월 3일), 캄보디아(3월 9일) 등 다른 아세안 회원국도 미얀마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Al Jazeera 2021/02/01).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레트노 마르수디(Retno Marsudi)는 아세안 주요국 외교장관 논의를 통해 아세안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는 동시에 2월 24일 태국을 방문 중인 미얀마 외교장관을 만나 아세안 차원의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Erwida and Koya 2021/02/24).   개별 국가의 반응과 대응을 넘어 아세안 전체 차원에서 움직임이 나온 것은 쿠데타가 일어난 지 거의 3개월이 다 된 4월 24일이었다. 아세안 정상은 아세안 사무국에서 회동을 가지고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한 5개항 합의(Five-Point Consensus)를 도출했다.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주역인 미얀마군 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도 이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정상들은 1) 폭력의 즉각적 중단과 모든 세력의 자제, 2) 평화적 해결책 모색을 위한 건설적 대화, 3)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아세안 의장의 특사 파견, 4) 아세안의 인도적 지원, 5) 아세안 특사단에 모든 정치세력 접근 허용 등 5개항 합의를 담은 의장성명을 발표했다(ASEAN 2021/04/24).   아세안이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 합의를 도출한 점은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의장성명은 미얀마 상황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부적 갈등과 긴장을 회피하고 이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아세안의 태도를 담고 있다. 아세안 의장성명은 제목에 미얀마를 언급하지 않는다. 5개항 합의는 부록처럼 별도로 달려 있다. 9개항으로 이루어진 의장 성명도 아세안 중심성 등 일반사항, 브루나이의 아세안 의장국 역할에 대한 기대와 평가, 아세안 공동체 건설에 대한 평가, 코로나-19 대응, 대화 상대국과 협력 사항 등을 모두 언급한 후 8, 9항에 미얀마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그나마 제9항은 로힝야(Rohingya) 문제로 압축되는 미얀마 라카인(Rakhine) 주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쿠데타 문제는 아니다.[1] 미얀마 쿠데타와 그로 인한 문제는 제8항과 부록으로 들어간 5개항 합의가 전부다.   4월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5개항의 이행 과정은 더욱 문제가 많았다. 4월 정상회의에 참여했던 민 아웅 흘라잉이 귀국하자 미얀마 군부는 사실상 이 합의안을 무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아세안의 “건설적 제안을 최대한 고려하겠지만” 현재 미얀마 군부의 최우선 과제는 “법질서의 회복”과 “국내적 평화와 안정”이라고 못 박았다(Bhavan 2021/04/27). 아세안 특사의 파견은 미얀마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것인데, 미얀마 군부는 일단 군부가 국내 질서를 회복한 이후에야 아세안의 5개항 합의를 고려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6월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 제2 외교장관 에리완 유소프(Erywan Yusof)와 아세안 사무총장 림족호이(Lim Jock Hoi)가 미얀마를 방문했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 방문은 아세안 특사와 관련해 아세안 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취해진 조치로 이들의 방문이 아세안 특사 자격인가 아닌가를 놓고 아세안 내 혼선만 가중시켰다 (Editorial Board 2021/06/10).   이런 혼란 끝에 특사 임명은 공식적으로 8월에 이뤄졌다. 아세안은 8월 4일 에리완 유소프를 특사로 공식 임명했다(Tom 2021/08/05). 우여곡절 끝에 임명되었지만 특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세안은 아웅산 수치에 대한 접근과 면담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미얀마에 특사를 파견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고, 미얀마 군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Grant 2021). 10월에 파견 예정이었던 아세안 특사의 일정은 연기되었다. 아세안 특사 파견이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사이 하반기 아세안 정상회의가 다가왔다. 미얀마 문제를 다루는 아세안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아세안 특사 파견을 둘러싼 여러 실수로 인해 증폭되었다. 국제사회는 아세안이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로 볼 때 미얀마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비판했다. 아세안으로서는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아세안은 화상회의로 치러진 10월 말 아세안 정상회의에 미얀마 대표를 초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ABC News 2021/10/16).   아세안 입장에서는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가지고 있는 아세안이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에 어떻게든 반응을 해야만 했다. 미얀마 배제는 아세안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논리적으로 아세안은 미얀마를 배제할 수 없다. 아세안의 의사결정은 특별한 반대의 부재라는 만장일치의 원칙을 따른다(Rodolfo 2006). 아세안이 미얀마를 정상회의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하면 회원국인 미얀마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얀마 군부 이에 반발했을 것이고 미얀마는 정상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세안이 미얀마를 정상회의에서 배제했다는 것은 미얀마 배제에 관한 아세안 내 합의에서 미얀마는 제외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확대 해석하자면 미얀마 배제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미얀마는 회원국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얀마의 회원국 지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기술적으로 미얀마를 아세안에서 배제함과 동시에 아세안 차원에서 미얀마의 현 군부를 미얀마의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이 결정에 포함되어 있다.   상징적으로 미얀마의 정상회의 배제가 주는 메시지는 있지만 실질적 효과에서는 제한적이다. 미얀마 군부를 정상회의에서 배제하든, 아세안이 미얀마를 인정하지 않든 미얀마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군부의 통치에는 직접 영향을 줄 수 없다. 군부가 아세안 정상회의를 앞두고 5,000명이 넘는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런 군부의 제스처가 군부의 통치를 약화시키지도 않았고, 미얀마 내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해결하지도 못했다(BBC 2021/10/18).   3. 두 번의 봉합, 세 번째 실패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그에 따른 아세안의 부담은 이미 1990년대부터 예견된 사태였다. 1990년 선거 결과를 뒤집고 권력을 공고히 한 미얀마 군부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 대외 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아세안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가입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달리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아세안 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킨 것이 아세안과 미얀마 사이 악연의 시작이었다. 미얀마가 아세안에 가입을 추진하던 시기는 국제사회, 특히 서방국가들이 미얀마에 본격적으로 경제적 압력을 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1988년 민주화운동을 억누른 미얀마 군부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 마지못해 실시한 1990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에게 크게 패배했다.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집권을 이어나갔고 국제사회는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선거 결과에 따른 의회 소집, 군부 퇴진을 요구했다. 미국, 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경제적 제재를 실시했다.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은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었다.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은 미얀마 군부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아세안에 쏟아졌다. 유럽의 반대가 매우 강했다. 유럽연합은 1996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미얀마 대표단이 참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같은 해 유럽연합은 미국의 선례를 따라 모든 고위공직자의 미얀마 방문을 금지했고, 미얀마 군부 인사의 유럽 방문 역시 금지했다. 이 조치로 인해 아세안 회원국이 되더라도 미얀마는 아셈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유럽연합도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가진 아세안이 주최하는 회의에는 참여할 수가 없었다(Alice 2009, 122-123). 캐나다도 미얀마 회원가입을 들어 아세안과 협력 사업을 중단했다. 미국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얀마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국제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1995년부터 미얀마의 가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하나씩 해나갔다(Stephen 2010, 336).[2] 미얀마의 회원가입을 위한 논리를 만들어 냈다. 흔히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라 불리는 주장이다. 미얀마와 같이 군부통치, 민주주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를 그냥 내버려 두고 변화하기를 바라기보다는 아세안 내로 끌어들여 대화와 유인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아세안은 역설했다(Rodolfo 2006, 131-135).[3] 물론 아세안 국가 모두의 입장이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보다 자유주의적이었던 필리핀과 태국 정부는 미얀마 가입에 대해 유보적이었고, 권위주의적 통치하의 인도네시아, 1997년 의장국을 맡은 말레이시아는 미얀마 가입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었다.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은 미얀마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넘어간 첫 번째 봉합이었다.   첫 번째 논란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넘어간 문제는 곧 두 번째 논란을 배태했다. 아세안은 알파벳 순으로 회원국이 돌아가면서 의장국을 맡는다. 2006년 아세안 가입 9년 만에 미얀마가 의장국을 맡을 순번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미얀마를 둘러싼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2005년까지 미얀마의 민주주의, 인권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안으로 끌어들여 미얀마를 변화시키겠다는 1997년 아세안의 논리는 무의미해졌다. 미국은 미얀마가 의장국을 맡는다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참석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 당시 영국 외교장관 이안 피어슨(Ian Pearson)은 미얀마가 2006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다면 미국과 유럽은 아세안 관련된 모든 회의에 불참할 것이라 발표했다(Al Jazeera 2005/07/26). 아세안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와 사전 협의를 통해 미얀마 스스로 의장국 차례를 한 차례 건너뛰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문제를 대강 봉합했다(Murray 2005). 아세안은 외부의 압력을 무마하고 미얀마는 체면을 차린 임시방편이었다. 아세안이 미얀마 문제를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간 두 번째 장면이다.   두 번의 기회에서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두고 갔던 아세안의 과거가 2021년 아세안의 곤란한 상황을 자초했다. 2021년에는 단순한 아세안의 행태뿐만 아니라 아세안의 근본 원칙까지 도마에 올랐다. 아세안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자협력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국제관계, 다자협력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아세안 회원국 내 쿠데타에 대한 문제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지역기구가 어떻게 지역 내 보다 큰 국가를 포함하는 다자협력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다(Aaron 2021).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아세안은 아세안 중심성이라는 담론에 기반해 지역 내에서 존재 의미를 찾아왔다. 나아가 미얀마 문제를 놓고 아세안 내 의견 충돌은 ‘아세안의 단결(ASEAN Unity)’까지 흔들었다.   1997년, 2005년 그리고 2021년 미얀마 문제와 그에 대한 아세안 대응의 밑바탕에는 ‘아세안의 방식(ASEAN Way)’이라는 원칙이 있다. 아세안 회원국 내 문제에 대해서 내정으로 치부하고 이에 간섭하기를 꺼려온 아세안의 방식과 같은 전통은 지금까지 아세안 회원국들이 아세안 무대에서 자신의 국내 문제로 인해서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작용해왔다.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논의하고 당장 고통이 있더라도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하게 타협하고 이면에서 합의하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이런 안전장치와 행동방식을 스스로 폐기하고 한 단계 높은 지역협력으로 나갈 유인이 부족하다. 이런 아세안의 태도가 1997년, 2005년의 미얀마에 관한 타협을 만들어 냈고, 이때 해결하지 못한 미얀마 문제는 2021년 또다시 아세안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4. 글을 마치며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아세안은 문제 해결에 있어 또 한 번의 한계를 노정했다. 아세안의 방식에 안주한 아세안, 아세안이라는 지역 기구 뒤에 숨은 아세안 개별 국가들은 미얀마 상황 해결을 위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제적인 여론에 등이 떠밀려 개최한 4월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5개 항의 합의도 이행되지 못했다. 아세안 특사를 임명하는데 아세안 국가들은 혼선을 빚었고, 4개월 만에 임명된 아세안 특사도 미얀마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 군부에 가로막혀 군부세력을 반대하는 쪽에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높아지는 비판 속에 아세안은 10월 말 정상회의에 미얀마를 초청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아세안이 미얀마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음으로 미얀마의 회원국 자격과 지위에 대한 암묵적 메시지를 전달했는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미얀마 군부세력을 비난하거나 미얀마 회원국 자격에 대해 언급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아세안 내에서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미온적인 대응은 결국 아세안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아세안의 중심성, 아세안 단결 등 아세안의 중요한 원칙들이 미얀마 사태를 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지난 일 년 동안의 과정 속에 아세안 만을 탓할 수는 없다. 2월 1일 쿠데타가 일어나자 들끓었던 국제적인 여론,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난, 언론의 관심은 3~4개월 만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미얀마에서 군부에 대한 투쟁은 오롯이 미얀마 국민들의 몫이 되었고 이들을 외부에서 지원하는 소리는 잦아들었다. UN 안보리도 중국, 러시아라는 상임이사국의 반대에 가로막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미얀마에서 관심을 거두고 국내 코로나-19 대응으로, 미-중 경쟁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그러는 사이 오히려 아세안에 대한 비판은 증가했다. 물론 아세안의 대응이 바람직했던 것은 아니다. 효과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가면서 국제사회는 미얀마 상황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역할을 하기보다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아세안에 대한 비판 수위만 높여갔다.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력했던 국제사회가 아세안을 희생양으로 삼고 아세안에 대한 비판으로 자신들의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   참고 문헌   Aaron Connelly. 2021. "The coup in Myanmar and the threat to ASEAN centrality."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March 1. ABC News. 2021. “ASEAN members elect not to invite Myanmar`s military leader Min Aung Hlaing to summit.” ABC News. October 16. Alice D. Ba. 2009. (Re)Negotiating East and Southeast Asia: Region, Regionalism, and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Pp. 122-123. Al Jazeera. 2005. “Myanmar to forgo Asean chairmanship.” Al Jazeera. July 26. Al Jazeera. 2021. “‘Serious blow to democracy’: World condemns Myanmar military coup.” Al Jazeera. February 1. ASEAN. 2021. “Chairman’s Statement on the ASEAN Leaders’ Meeting.” April 24 (https://asean.org/wp-content/uploads/Chairmans-Statement-on-ALM-Five-Point-Consensus-24-April-2021-FINAL-a-1.pdf). ASEAN. 2021. “ASEAN Chairman’s Statement on The Developments in 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January 1 (https://asean.org/asean-chairmans-statement-on-the-developments-in-the-republic-of-the-union-of-myanmar/). BBC. 2021. “Myanmar to release 5,000 prisoners held over coup.” BBC. October 18. Bhavan Jaipragas. 2021. “Myanmar’s junta to consider Asean’s five-point consensus after ‘stabilising’ the country.” South China Morning Post. April 27. Editorial board. 2021. “Brunei’s disastrous mission.” The Jakarta Post. June 10. Erwida Maulia and Koya Jibiki. 2021. “Indonesia and Myanmar foreign ministers meet in Bangkok.” Nikkei Asia. February 24. Grant Peck. 2021. “Envoy aborts visit to Myanmar, straining ASEAN relations.” AP News. October 15. Ministry of Foreign Affairs, Singapore. 2021. “Minister for Foreign Affairs Dr Vivian Balakrishnan’s Intervention at the Informal ASEAN Ministerial Meeting on 2 March 2021 at 1600hrs.” March 2 (https://www.mfa.gov.sg/Newsroom/Press-Statements-Transcripts-and-Photos/2021/03/02032021-IAMM)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alaysia. 2021. “LATEST SITUATION IN MYANMAR.” February 2 (https://www.kln.gov.my/web/guest/-/latest-situation-in-myanmar). Murray Hiebert. 2005. “Myanmar Yields Asean-Chair Turn to Defuse Tension.” The Wall Street Journal. July 27. Rodolfo C. Severino. 2006. Southeast Asia in Search of an ASEAN Community: Insights from the former ASEAN Secretary-general.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p. 34-35. The Irrawaddy. 2022. “Head of Myanmar’s Shadow Govt Vows to Continue ‘Second Struggle for Independence’” The Irrawaddy. January 5. Tom Allard. 2021. “ASEAN appoints Brunei diplomat as envoy to Myanmar.” Reuters. August 5.     [1] 로힝야 문제에 관한 언급도 미얀마에서 꺼리는 로힝야족의 직접적인 언급 대신 이 문제가 주로 발생하는 미얀마 ‘러카인주 상황(situation in the Rakhine State)’이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아세안은 1994년 미얀마를 아세안회의에 초청에 아세안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TAC)에 서명하게 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듬해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아세안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1996년에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 미얀마가 회원국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97년 아세안에 가입했다. Stephen McCarthy. 2010. “Burma and ASEAN: A Marriage of Inconvenience.” in Lowell Dittmer. Burma or Myanmar: The Struggle for National Identity. Singapore: World Scientific Publishing. p. 336. [3] 보다 자세한 내용은 Rodolfo C. Severino. 2006. Southeast Asia in Search of an ASEAN Community: Insights from the former ASEAN Secretary-general.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p. 131-135.     ■ 저자: 이재현_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ARF Eminent and Expert Persons’ Group (EEP) 멤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전 한국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관련 연구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남방정책의 역할” (2018), “비정형성과 비공식성의 아세안 의사결정” (2019), “G-Zero 시대 글로벌, 지역 질서와 중견국” (2020)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이재현 2022-02-23조회 : 10711
논평이슈브리핑
[EAI 미얀마 특별 논평] ②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사회 경제적 위기: 역사의 반복인가? 새로운 역사인가?

1. 시작하며   2021년 2월 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12월 31일 기준 총 1,384명이 사망했고 1만 1,289명이 체포되었다. 또한, 2월 1일부터 2022년 1월까지 군부는 8,647회에 걸쳐 민간인과 시민군을 공격했는데, 이 수치는 2020년 같은 기간보다 762%(1,003건)나 증가한 것이다(ALTSEAN 2022/02/09, 2). 약 59만 3천 명의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ople, IDP) 중 22만 3천 명도 쿠데타 이후 발생했다(OCHA 2021, 17).   쿠데타는 군부의 결단이었으나 그 원인은 정부-군부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간정부는 군부를 홀대했고, 간간이 각 진영의 지도자 간 감정적 대립이 표출되기도 했다. 군부는 연방을 수호하는 애국 집단으로서 무력에 의존해서라도 그들의 위상과 기능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지만 군부 주장대로 국가의 분열과 국민 갈등은 명시적이지 않았으므로 역대 군부의 정치개입 명분을 차용하여 정권을 장악했다는 주장은 졸렬하기까지 해 보인다.[1]   1958년, 1962년, 1988년 등 세 번에 걸친 군부의 정치개입이 정치적 쇠퇴와 국가 저발전의 연속선 상에서 발생했다면, 2021년 군부 쿠데타는 정치·사회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있는 국가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역사의 반동이다. 만약 2023년 8월, 총선을 통해 형식적 대의제가 마련된다면 미얀마는 다시 군부 중심의 사회로 돌아갈 것이며, 국가의 재건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정치적 비용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국가 정상화 과정에서 목격한 군부의 퇴행적 행태는 정치적 쇠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얀마가 안고 있던 사회 구조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노출하면서 사회 모든 분야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이미 군부가 통치했던 반세기 이상 미얀마는 실패한 국가가 되었지만, 군부는 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그들만의 왕조를 재건하고자 한다. 현재 미얀마는 역사의 반복적 위기를 재현할 변곡점 위에 있다.   2. 설상가상의 경제: 코로나 19 팬데믹을 압도한 군부 쿠데타의 효과   1988년부터 2011년 3월까지 군사정부는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10% 이상으로 발표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군사정부에서 통계 업무 담당자는 상급자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통계를 왜곡했는데, 이 행태는 군사문화와 관료사회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였다. 이에 떼잉쎄인(Thein Sein) 정부(2011-16)는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청산하고 상황에 부합하는 개혁과 개방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확한 통계 시스템의 구축을 국정 운영과제로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을 곡해하는 군부 행태는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2021년 12월 7일, 미얀마 투자 및 대외경제부(Ministry of Investment and Foreign Economic Relations) 아웅나잉우(Aung Naing Oo) 장관은 미얀마의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18%에 달한다는 통계를 두고 정권을 반대하는 측에서 낸 신뢰할 수 없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는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8-9% 수준이며, 포스트 팬데믹 이후 성장률은 IMF가 예측한 2.5%를 웃돌 것이라고 주장했다(Duangdee 2021/07/26; Nitta 2021/12/10; World Bank 2021/07/23). 주요 기관은 2022년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4-5%로 예측함에 따라 역시 그의 예측과 괴리를 보인다.   아웅나잉우 장관의 주장과 달리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경기침체는 심상치 않고, 이로 인해 국민의 생활 수준도 다시 군사정부 시기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졌다. UNDP에 따르면, 2021년 2월 1일 이후 가구소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75%가 쿠데타였고, 코로나 19 팬데믹은 25%라고 응답했다(UNDP 2021, 35).   이미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2019년 말부터 2021년 7월까지 320만 명이 일자리를 일었고, 수백만 명은 근로시간을 단축했다(ICG 2021, 8). 쿠데타 직후부터 현금 인출과 미국 달러와 금 매입자가 증가함에 따라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 달러 대비 짯(Kyat) 가치는 33% 하락했다(OCHA 2021, 14). 미얀마의 위기에 국제사회는 경종을 울렸다. 2022년 초까지 약 5천5백만 미얀마 인구 중 절반에 가까운 2천5백만 명이 국가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할 것이며, 이 현상은 2005년 이전 생활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UNDP는 경고한다(UNDP 2021/12/01).   미얀마 경제의 적신호는 환율 문제로 가중될 전망이다. 미얀마 중앙은행(Central Bank of Myanmar)은 환율 급변동을 완화하기 위해 2021년 12월에만 6차례에 걸쳐 8,800만 달러를 판매했다(GNLM 2021/12/25).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환율은 급등하지 않았다(<그림> 참조). 그러나 세수 감소와 군비 지출을 충당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2021년 12월,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지폐용 종이 35톤을 수입했다. 만약 화폐 유통량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은 기정 사실화할 것이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화폐 추가 발행 및 유통은 과거 군사정부에서도 흔한 정책이었다.[2]   <그림> 미얀마 짯화 변동 추이(달러 대비) ※출처: https://www.xe.com/currencycharts/?from=USD&to=MMK   쿠데타로 인해 2021년 한 해만 사업 등록 건수가 44% 감소했다(Walker 2021/12/01). 그러나 군부는 서방의 제재 강화를 돌파하고,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군 기업과 정실 기업을 동원하여 중국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11월, 국경이 재개방되자 중국 기업은 희토류, 루비와 옥을 포함한 보석류, 원유와 천연가스 등 군부가 독점하는 추출산업 분야에서 교류를 복원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군 고위인사, 군 기업 등에 대한 표적 제재를 단행했고, 국내외 NGO는 미얀마 군부와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의 투자 철수를 포함한 관계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서방세계는 20년 이상 미얀마를 포괄적 수준에서 제재했으나 효과는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 미얀마 제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처럼 미얀마 경제에 지대한 국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참여 당사국의 제재를 동시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쉐브론(Chevron)을 포함하여 싱가포르와 태국 정유회사들의 로비와 이의제기에 부딪혔고, 미얀마 고위 군 인사의 자금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아닌 동남아 국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자금을 옥죄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중국 자본과의 협력이 중장기적으로 군부에게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현실적 대안은 없다. 중국과의 밀월관계는 군부 내 반중 정서를 넘어 국민까지 더 강화할 것이다.   코로나 19 팬데믹에 대한 군부의 대처는 위기관리에 취약한 역대 군사정부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군부는 대규모 시민 저항이 사그라든 8월 이후 코로나19 대책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21년 12월 28일 현재, 보건부(Ministry of Health)는 1,345만 명의 성인이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등 인구 50%의 접종 완료라는 2021년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GNLM 2021/12/28). 그러나 약 3개월 만에 1천만 명 이상이 접종했다는 객관적 통계 자료가 없고, 미얀마에 보급되는 백신의 다수가 국민이 접종을 꺼리는 중국산이라는 사실에서도 군부의 주장은 재차 따져볼 만하다. 국내에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군부의 주장도 검증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2022년에는 중국 지원으로 백신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하지만, 생산 시설 준비와 인력 투입 등 구체적 계획도 명확하지 않다.   2021년 7월, 각 주택에서는 가족 전체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으니 도와 달라는 의미로 노란 깃발을 내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부는 이들의 치료에 필요한 산소통 보급을 차단하고, 불경(佛經)을 외우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황당한 대책을 내세웠다. 당시 군부는 국민의 생명보다 정권을 장악하는 일에 치중했고, 이미 반군부 시위에 가담하는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국민을 품을 의도가 있는 군부였는지 되물어 본다.   3. 지역 간·세대 간 균열: 사회적 갈등과 통합 가능성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군부가 독점하는 무기도 있지만, 국민적 연합과 궐기가 불가능하다는 확신에 기반한다. 1962년 이래 군부는 소수민족 무장단체(Ethnic Armed Organization, EAO)가 연방의 분열을 꾀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 그들이 정치권에 남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수인 버마족(Burman)은 소수민족에 대한 지지는커녕 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연민도 보이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소수민족은 연방에서 철저한 탄압의 대상이자 이방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소수민족은 정권을 장악한 주체가 군부이든, 민간이든 관심이 없으며, 군부 쿠데타는 버마족 정치 엘리트 간 갈등으로 본다(Ardeth Maung Thawnghmung and Noah 2021, 301). 이 시각은 1988년 민주화운동과 2007년 샤프론 혁명에서도 동일했다. 만약 두 번의 정치적 격랑에서 소수민족이 시위대와 연대했다면 미얀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을 수도 있다.   2011년부터 두 정부는 EAO와 정전협정을 통해 국민화해와 국민통합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채택했다. 그 결과 떼잉쎄인 정부 말기에 15개 무장단체 가운데 8개 단체와 연방 수준(Union level)의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아웅산 수찌 정부는 기존 방식을 바꾸어 21세기 삥롱회담(21st century Panlong conference)이란 이름으로 총 네 차례에 걸친 정전협정을 시행했다.   소수민족이 아웅산 수찌 정부를 지지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최소한 폭력과 강제적 병합으로 일관하던 군부와는 다른 노선을 취할 것으로 기대했다. 21세기 삥롱회담에서 정부-군부-EAO가 협상 대상자가 되었으나 정부는 EAO를 배려하지 않는 고자세로 일관했고, 군부는 정부와 EAO를 이간질했다. 그 결과 정전협정의 성과는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과 2018년 보궐선거에서 국민민주주의연합(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은 소수민족 지역에서 패배함에 따라 정부와 여당의 국민통합을 위한 저의마저도 의심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가 EAO와 연대하여 연방군(federal army)을 창설한다는 포부는 비현실적이다. 일부 EAO는 PDF에 대한 군사훈련 및 무기를 지원하고 있으나, EAO가 전격적으로 연방군에 가담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만약 NLD 정부가 진정성으로 소수민족에게 접근했다면 양자 간 신뢰 구축은 가능했을 수도 있다.   2022년 초 군부는 각 EAO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연말까지 일방적 휴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군부는 PDF의 활동지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약 8천 명의 PDF 소속군이 40만 명이 넘는 정규군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1988년 민주화운동이 실패한 뒤 일부 청년들은 무장투쟁으로 군부를 타도하기 위해 전버마학생연합전선(All Burma Students` Democratic Front, ABSDF)을 조직하고 밀림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무장투쟁은 채 5년을 넘기지 못했다. 정규군과 PDF 간 교전은 해당 지역민의 피해만 더욱 키울 것이다.   2021년 2월 17일, “88세대” 지도자인 밍꼬나잉(Min Ko Naing)은 “이 혁명은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X, Y 그리고 Z세대의 결합”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구성원의 일치단결을 요구했다(Jordt et. al 2021, 18). 그러나 실제 거리를 메운 시민이나 시위 주동자로 체포된 인물들은 모두 Z세대였다. 일부 88세대도 시위에 참여했지만, 지도자급이었던 인물은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삼갔다. 그 대신 청년들은 부모의 만류에도 큰 절인 거도(kadaw)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왜 청년만 거리를 메운 것일까?   미얀마 Z세대는 정치적 개혁과 경제적 개방의 산물이다. 지난 10년간 미얀마 경제는 매년 6-8%의 성장률을 보였고, 경제적 과실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모바일 보급은 정치적 의견의 표출을 온라인까지 확산할 수 있게 했다. 개방이후 국민은 외국인과 접촉 기회를 늘리면서 국제적 기준과 외국인의 사고방식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으며, 특히 Z세대는 정의의 원칙을 확고히 세웠다.   이에 반해 기성세대는 군부에 대한 도전보다 패배의 기억과 생명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이 없으면 저항하지 않는 생계 우선의 도덕적 생활 방식에 익숙하다. 이런 행태는 2021년에도 반복되었는데, 쿠데타 이후 식용유와 정유 등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자 전체 가정의 76.2%는 비식품 소비를 줄여 생계를 유지한다(ICG 2021, 8; UNDP 2021, 31). 일례로 2007년 8월, 군사정부가 유가를 5-10배 인상하자 반정부 시위에 나선 승려와 달리 대다수 국민은 이에 수긍하는 입장이었다. 즉, 군부의 잔학성을 경험하거나 직접 목격한 승려와 기성세대는 쉽게 거리로 나서지 못한 반면, 20대 청춘은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다만 이들의 의지를 집결하고 표출할 지도세력의 부재는 역대 민주화운동의 맹점과 맞닿았다.   한편, 2021년 4월, 실각한 민주진영은 국민 지지를 등에 업고 국민통합정부(NUG)를 설립하고 군부통치 종식과 민주주의 재건에 나섰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첫째, NUG의 위상으로서 과연 이 단체가 군부 통치에 반대하는 국민과 밀착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NUG는 NLD 고위 당국자가 코로나 19 감염으로 사망할 때마다 애도를 표했지만, 거리의 사상자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21년 9월, 대 군부 선전포고를 발표하면서 희생되는 국민이 영웅이나 애국자가 될 것이라고 선동하면서 정작 NUG는 몇 장의 성명을 내는 복지부동의 자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 NUG가 국민과 괴리되어 있는 것을 넘어 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집단이 아닌가 한다.   둘째, NUG의 활동이다. NUG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은 NLD 당원과 버마족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실제 행정부나 입법부 근무 경험이 없고, 군부의 체포를 염려하여 활동 영역을 온라인으로 국한하고 있다. 업무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의사결정 구조도 투명하지 않은 탓에 NUG는 국제사회에 군부가 아닌 그들을 미얀마 공식 정부로 인정하라는 요구에만 천착한다. 이 행태는 1990년 창설부터 2012년 해체할 때까지 미얀마보다 버마라는 국명을 홍보한 것이 유일한 치적이었던 망명정부 버마연방국민연합정부(National Coalition Government of the Union of Burma, NCGUB)의 전철을 따르는 것 같다. [3] NUG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나 민주진영의 주도권을 독식할 권리가 없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집단이 아니다. 각종 구호와 선동이 아니라 군부와 대적해서 승리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행할 방안을 국민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4. 맺으며: 위기 속 희망을 찾아서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사회·경제적 위기에 봉착해 있고, 군부의 전향적인 자세나 퇴진 없이는 이 위기를 돌파할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쿠데타는 국민의 각성을 불러일으킬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민주진영에 대한 내부 비판, 탄압받은 소수민족의 역사에 대한 객관적 이해이다. 아웅산 수찌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었으나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 이미 성인(聖人)이 된 그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았으며, NLD 정부는 아웅산 수찌에 의한, 그리고 아웅산 수찌를 위한 정부가 되는 형국이었다. Z세대는 특정 인물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비난해 왔으며, 군부에 거세게 저항한 이유는 아웅산 수찌의 복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일부 정치인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로힝자족(Rohingya)을 포함한 소수민족 지역에서 인권을 무시한 아웅산 수찌 정부의 행태를 사과했다. 그러나 청년층을 중심으로 소수민족과 관련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 갈등을 빌미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군부의 전략에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청년들은 종족적 정체성을 버리고 연방의 구성원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담론을 쌓기 시작했다. 이번 쿠데타는 연방 내에서 타인처럼 살아온 집단 간의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확인했다는 차원에서 향후 국민화해와 통합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전기가 되었다.   여러 분야의 위기 속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점은 군부는 과거를 좇지만, 국민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군부가 정치권에서 더 오랫동안 생존하려면 그들의 선배들처럼 무력을 전시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인 출신인 떼잉쎄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이유를 군부는 성찰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ALTSEAN. Coup Watch Special Edition: A Year of Struggle in Burma. Bangkok: ALTSEAN. 2022/02/09. Ardeth Maung Thawnghmung and Khun Noah. 2021. “Myanmar`s Military Coup and the Elevation of the Minority Agenda?” Critical Asian Studies. 53(2). 297-309. Duangdee, Vijitra. “World Bank: Coup and Coronavirus Shrink Myanmar’s Economy by 18%.” VOA(Voice of America). 2021/07/26. GNLM(Global New Light of Myanmar). 2021/12/25; 2021/12/28. ICG(International Crisis Group). 2021. The Deadly Stalemate in Post-coup Myanmar. Asia Briefing No.170. Yangon/Bangkok/Brussels: ICG. Jordt, Ingrid, Tharaphi Than and Sue Ye Lin. 2021. How Generation Z Galvanized a Revolutionary Movement against Myanmar’s 2021 Military Coup. Trends in Southeast Asia Issue 7. Singapore: ISEAS. Nitta, Yuichi. “Myanmar to End Kirin Row Based on Law: Investment Minister.” Nikkei Asia. 2021/12/10. OCHA. 2021. Humanitarian Needs Overview: Myanmar. https://reliefweb.int/sites/reliefweb.int/files/resources/mmr_humanitarian_needs_overview_2022.pdf Steinberg, David I. 2021. The Military in Burma/Myanmar: On the Longevity of Tatmadaw Rule and Influence. Trends in Southeast Asia, Issue6. Singapore: ISEAS. UNDP. 2021. People’s Pulse: Socio-economic Impact of the Events since 1st February 2021 on Households in Myanmar. Yangon: UNDP Myanmar Office. _____. “Myanmar Urban Poverty Rates Set to Triple, New United Nations Survey Finds” 2021/12/01. Walker, Tommy. “Myanmar’s Coup Economy is ‘Boom and Bust’.” VOA. 2021/12/01. World Bank. “Myanmar Economy Expected to Contract by 18 Percent in FY2021: Report.” 2021/07/23.     [1] 쿠데타의 배경에 대해서는 Steinberg(2021, 30)를 참조하라. [2] 정보 접근을 제한하려는 현 군사정부의 정책도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기 전 군부는 심(Sim) 카드 가격을 2천-3천 달러를 유지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정보 접근을 제안했다. 2021년 12월 들어 군부는 시민방위군(PDF: People’s Defence Force)을 포함한 반군부 세력의 연락체계를 약화하기 위해 모바일 데이터 가격을 2배 인상했고, 2022년 1월에는 심 카드 개통 세금으로 2만짯을 부여하고, 데이터 가격도 추가로 15% 인상했다. [3] 1990년 이후 해외에서 전개한 민주화 운동은 사실상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2007년 샤프론 혁명 당시 필자는 방콕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민주화 운동가들은 자신과 소속된 단체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외부의 재정적 지원을 호소했다. 국내 민주화 운동가와 협력과 연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는 원론적 대답만 했다. 태국에서 활동하는 한 언론인은 이들의 행태를 두고 망명 산업(refugee industry)으로 정의했다. 2011년 미얀마 정부가 대사면을 발표했지만, 해외에서 활동한 다수의 민주화 운동가들은 고국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 저자: 장준영_서강대에서 동남아학과 정치학 석사(2003)를 취득, 미얀마 군부 연구로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2009)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얀마 외교정책의 변화와 주요국과의 관계』, 『미얀마의 정체경제와 개혁개방: 성과와 과제』, 『하프와 공작새: 미얀마 현대정치 70년사』, 『언어 평등 미얀마어 첫걸음』 등이 있다. 주요 일간지를 비롯하여 다수의 언론 매체에 미얀마 관련 기고를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북벵골만연구단 연구교수, 인도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동남아연구소 연구교수 및 미네르바 교양대학에서 재직 중이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장준영 2022-02-21조회 : 11617
논평이슈브리핑
[EAI 미얀마 특별 논평] ① 뉴 미얀마를 향한 ‘봄의 혁명’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

1.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출범시킨 유일 합법 민족통합정부(NUG)   미얀마가 위기에 휩싸인 지 1년이 되었다. 2021년 2월 1일 새벽, ‘국가 안의 국가’로 불리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Tatmadaw)가 쿠데타를 단행했다. 33년 만의 쿠데타이다. 민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이 이끄는 쿠데타 세력은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과 윈민 대통령을 비롯해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 당 간부들을 구금하고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2020년 11월 8일 선거 이후 유령처럼 떠돌던 군부 쿠데타 소문이 현실화 됨으로써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NLD 정부가 집권 2기에 진입하기 직전 붕괴된 것이다.   2016년 3월 1기 NLD 정부(2016-2021)가 출범했을 당시 내건 공약은 2008년 헌법 개정, 소수민족과의 화해를 통한 평화 정착, 경제 부흥을 통한 빈곤으로부터의 탈피였다. NLD 정부는 이중 땃마도의 특권을 보장해놓은 2008년 헌법 개정에 주력했다. 일각에서는 NLD 정부가 땃마도가 개헌을 수용하도록 중국의 힘까지 빌리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2016년 NLD 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아웅산 수찌가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로힝야 인권 문제로 서방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수찌의 친 중국 행보는 뚜렷해졌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2·1 쿠데타를 두고 내정 불간섭이라는 명분 뒤에 숨더니 결국은 군사정권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친중 노선을 걸었던 아웅산 수찌와의 외교적 신의를 저버린 것이다. 특히 국익에 도움에 된다면 자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정부와의 우호적 외교관계도 상관없다는 중국의 ‘속된 실용주의(vulgar pragmatism)’는 유엔 안보리의 군부 쿠데타 규탄 결의안을 막아냈다. 그 결과 미얀마 국내에 반중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심지어 쿠데타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반면 쿠데타를 두고 미얀마 민주진영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쿠데타 직후, 11월 8일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aw, CRPH)가 결성되었고, 이어 4월에는 임시정부격인 민족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가 출범하였다.   현재 미얀마는 지난 해 9월 NUG가 땃마도를 상대로 저항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에 내전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NUG는 미얀마 영토 안에 존재하는 지하정부이자 땃마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30년 전 해외 망명정부였던 버마민족연립정부(National Coalition Government of the Union of Burma, NCGUB)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NUG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린 민아웅 흘라잉 불법집단을 대체할 제반 정치세력을 조직해내고 있고, 특히 70년 동안 지속되어온 소수민족들과의 분쟁상황을 끝내기 위해 명실상부한 연방 민주주의 구축을 선언했다. 이러한 뉴 미얀마를 만드는 프로젝트에는 쿠데타 직후부터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을 주도해온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10년의 개혁·개방 시기를 보내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시민의식은 한층 고양되었다. 이는 2·1 쿠데타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났는데도 지속되고 있는 CDM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동안 CDM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장교와 병사들의 병영 이탈이 이어졌고, 이를 기회로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는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 PDF)의 공세가 탄력을 받았다. PDF의 일환으로 외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도시로 다시 들어와 군부를 위협하는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군부 기업으로 알려진 이동통신회사 마이텔(Mytel) 소유의 중개탑들(towers)이 PDF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정당방위 차원에서 ‘조직화된 폭력적 저항(organized violent revolt)’이 시작된 것이다. CDM에서 분화된 PDF는 소수민족무장단체(Ethnic Armed Organizations, EAOs)와 함께 땃마도를 대체할 미래의 연방군으로 기대되고 있다.   2. 아세안(ASEAN)의 무능과 중국의 ‘속된 실용주의(vulgar pragmatism)’에 분노한 미얀마 국민   11·8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쿠데타 직후 긴급 결의로 구성한 CRPH는 쿠데타 초기에 민아웅 흘라잉을 수장으로 하는 군부세력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이들을 인정하지 말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러한 미얀마 민주진영의 요청에 국제사회, 특히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아세안(ASEAN)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2011년 정치 개방이 시작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군부 폭정 하의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단행한 바 있다. 무기 거래 중단, 군 출신 외교관 추방, 군 고위급 간부 비자 발급 불허, 인도적 구호를 제외한 일체의 양자 원조 중단 등을 실행했다. 특히 미국은 군부 통치 하의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로 규정했다. 반면 내정 불간섭을 규범으로 삼고 있는 아세안은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 즉 일종의 ‘포용을 통한 변화’ 차원에서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켰다. 그렇지만 이듬해 아세안 장관 회의에서 태국 외무장관에 의해 제안된 ‘유연한 관여(flexible engagement)’ 개념은 내정 불간섭이라는 아세안 규범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아세안 회원국의 국내 정책이 다른 회원국들에게 부정적 여파를 미칠 경우 이를 공개 토론에 부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 이후 이러한 아세안 규범의 변화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아세안은 내전 상황으로 악화된 미얀마 위기에 이렇다 할 대처를 못하였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4월 쿠데타의 주역인 민아웅 흘라잉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로 불러 미얀마의 평화 회복을 위한 다섯 가지 합의사항을 받아냈지만 이 중 어느 하나 이행된 것이 없다.   결국 지난해 10월 아세안은 정상회의에 민아웅 흘라잉의 참여를 배제하는 강수를 두었지만 미얀마 군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 2022년 새해 들어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총리 훈센이 미얀마를 전격 방문, 민아웅 흘라잉의 환대를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반발하자 훈센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해 다소 강경한 태도로 선회했다.   국제사회의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는 땃마도의 무시 전략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아웅산 수찌의 NLD가 압승한 1990년 5월 총선 결과를 뒤엎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가중되기 시작했을 때도, 군부와의 투쟁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아웅산 수찌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졌을 때도 군부는 요지부동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미얀마 군부의 태도는 이들에게 우호적인 국제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지난해 3월 27일 쿠데타 군부가 관장한 국군의 날 기념식에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과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과 같은 아세안 국가들이 외교사절단을 보냈다.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던 같은 시간에 군과 경찰은 CDM을 벌이고 있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였다.   특히 땃마도의 반인륜적 행위를 눈감으며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듯한 중국의 속된 실용주의가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중국은 자신들이 그리도 강조하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이행하려 했다면 미얀마 군부 땃마도와의 관계를 끊고 군부와 반(反)군부 어느 진영도 지지하지 않는 불가담의 외교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냉전 시기 중국은 땃마도 통치하의 미얀마를 있게 한 장본인인 1962년 군부 쿠데타의 주역 네윈 장군이 친미나 친소가 아닌 비동맹 고립노선 ‘버마식 사회주의의 길(Burmese way to socialism)’을 걷는 이상 적대시할 필요는 없었다. 그랬기에 네윈 휘하의 군부가 전격적으로 국유화 조치를 실행하면서 화인(華人)들의 재산을 강탈했을 때도 중국 정부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인내하였다. 네윈이 이끄는 일단의 군부 엘리트들이 실행한 국유화 정책은 자력갱생 모델(autarky model)의 전형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하나는 독립 이후에도 광공업, 상업 분야에서 경제 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외국인의 경제 지배를 종식하고 경제의 버마화(Burmanization)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신(新)식민주의의 침투’를 막아내어 다시는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온전한 자주·자립 경제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건 군사혁명 엘리트들은 불교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선언하는 등 유물론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비공산주의적 좌파(non-communist left)였지만 이들의 혁명노선은 공산주의 모델과 매우 흡사했다.   3. 아시아의 비(非)자유주의적 지배구조와 ‘포복형 중국화(creeping sinicization)’   현재에 이른 미얀마를 보면 레이건 정부 시기 극우 성향 외교 노선의 중심에 있었던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의 ‘반공 우파 독재가 전체주의적 좌파 독재보다 낫다’는 냉혹한 체제 비교론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요컨대 버마식 사회주의를 천명했던 땃마도의 혁명노선은 버마를 정치적으로는 군부 지배 전체주의 체제의 전형으로 만들었고,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실패에 따른 부족의 경제(the economy of shortage)로 전락시켰다. 반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중심이 되었던 반공성향의 아세안 회원국들은 ‘독재자 클럽’이라는 조롱을 받기는 하였지만 추격 성장(catch-up growth)을 이루어냈다. 예컨대 싱가포르 정부가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 담론을 띄울 수 있었던 것도 경제 기적을 이루어낸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기에서의 ‘아시아적 가치’ 혹은 ‘아시아성(Asianess)’의 핵심은 국가 규율에 대한 복종의 문화이자, 경제적 성과(economic performance)에 기반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승리주의(illiberal governance's triumphalism)에 대한 대중들의 인정과 지지이다. 탈냉전 시기로 접어들면서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으로 표현되는 자유주의적 승리주의(liberal triumphalism)에 도전하였다.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옹호하는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보다 많은 규율, 보다 적은 자유(more discipline less freedom)’를 미덕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리콴유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가 주조해낸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illiberal governance)와 땃마도의 비자유주의적 지배 구조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자가 대외적으로는 개방 정책, 대내적으로는 효율적 관료제를 기반으로 높은 경제적 성과를 냈다면, 후자는 고립주의를 취하면서 군부 엘리트에 특혜를 할당하는 정실주의(nepotism)를 만연시켰기 때문에 한 나라를 최빈곤 국가로 추락시켰다.   그나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편 테인세인 정부(2011-2016)는 성과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기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08년 헌법에 근거, 대부분의 행정을 군이 통제하는 규율 중시 민주주의(discipline-flourishing democracy)는 능력 본위 지배 구조로의 개혁에 장애가 되었다. 아웅산 수찌의 NLD 정부가 들어섰지만 50년 넘게 고착된 군부 지배의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혁파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배경이다. 특히 2008년 헌법에 따라 내무행정의 최고 관리자가 군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기에 2008년 헌법의 대폭 개혁 없는 미얀마의 정상국가화는 가능하지 않았다. 2008년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평화와 번영은 없다는 아웅산 수찌와 NLD에 미얀마 국민들이 선거 때마다 연거푸 절대적 지지를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러한 ‘NLD 신드롬’은 땃마도에게 규율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그들이 그어놓은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땃마도는 이러한 상황을 쿠데타라는 시대착오적인 군사행동으로 대응했다. 국민의 부모를 자처하는 땃마도가 그들 집단의 특권을 수호하기 위해 합헌적 쿠데타까지 가능하게 한 2008년 헌법에 기대어 무모한 행동을 벌인 것이다.   1년 전 쿠데타 이후 CDM, 즉 시민불복종운동은 ‘봄의 혁명’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시민 불복종이란 개념은 자유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삼은 서구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구 열강은 자유주의를 자국의 국경 안에서만 허용하고 식민지인의 자유권은 무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을 태동시켰다. 이를테면 미얀마 독립투쟁의 주역인 땃마도의 극단적 민족주의 노선도 분할지배정책을 일삼았던 영국 식민주의와의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식민종주국 네덜란드와의 민족독립 투쟁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과 일본 파시스트 세력 간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의 경우도 민족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식민주의와 투쟁하면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대안으로 삼았다. 비(非)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아세안 국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의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기원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탈식민화 과정에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수용 정도의 차이는 내부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로서의 국가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공통배경으로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서는 '불균등 속도를 보이는 아시아(multi-speed Asia)'를 주조해냈다.   특히 중국 공산당국은 1989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과거사를 안고 있으면서도 이렇다할 시민사회의 도전을 받지 않고 건재하다. 그러기에 중국 공산주의 모델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학습 교재가 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유지와 확대에 촉진 요인이 되고 있다. 일례로 태국에서 2014년 5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는 비난이 있었지만 쿠데타 군부를 묵인해준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복형 중국화(creeping sinicization)’ 현상이다.   미얀마 군부 땃마도 역시 반식민주의 운동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반세기가 넘도록 자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또 다른 식민주의자이다. 2011년 3월 테인세인 개혁·개방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미얀마 국민은 자유권을 철저히 유린당한 ‘군부 수호자주의(military guardianship)’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1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민들은 이러한 악몽 국가(nightmare state)로의 회귀를 꾀하는 군부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자유주의 사상이 연원인 CDM이 토대가 되는 NUG는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대폭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지배구조로서의 연방 민주주의를 선언했다. CRPH는 연방 민주주의 건설을 향한 연방민주주의헌장(Federal Democracy Charter)을 공표함과 동시에 2008년 헌법의 폐기를 선언했다. 연방민주주의는 버마족 중심주의(Burman centralism)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아웅산 수찌 1인의 카리스마에 갇혀 있었던 기존 NLD 중심의 지배구조와는 뚜렷한 차이를 갖는다. 이러한 변화는 CRPH와 NUG의 대표, 제(諸) 정당, 시민사회단체, 총파업위원회(General Strike Committee, GSC), CDM, 소수민족무장단체(EAOs) 등으로 구성되는 민족통합자문위원회(National Unity Consultative Council, NUCC)가 추동해나갈 것이다. ‘봄의 혁명’을 이끄는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NUCC는 혁명평의회이자 제헌의회이다. 나아가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라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결함을 넘어서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실험되고 있는 소통정치의 장이다. 영국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단결 투쟁과 독립 후 연방국가 건설에 합의했던 핀롱회의(Panglong Conference)의 재현이 기대되는, 뉴 미얀마를 만들어갈 중추조직이다.[1]   4.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지평은 초국적 의의를 갖는 ‘봄의 혁명’에서부터   땃마도와 암묵적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 대부분은 저항권을 통제하는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다. 그리고 이들 동맹의 선두에는 중국이 있다. 하지만 진마웅 NUG 외교부 장관은 미얀마 민주진영에 대한 주변 대국들의 우호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NUG와 땃마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태도를 보이려 한다고 판단한다. [2] 중국을 배척 대상이 아닌 변화 가능성 있는 견인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 외교(active diplomacy)는, 우선 작년 쿠데타 이후 싱가포르와 같은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는 나라들도 땃마도를 향해 즉각적인 폭력중단을 촉구하는 ‘고급 실용주의(cultivated pragmatism)’를 보여주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도 온전한 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쿠데타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는 이들 두 나라는 국익 중심 외교를 펼치더라도 자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는 다른 나라 정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마다하지 않는 실용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아세안 회원국 중 안정된 모습으로 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안착시키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미얀마 민주 진영에 비교적 우호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싱가포르(S), 인도네시아(I), 말레이시아(M) 세 나라가 아세안 회원국 중 땃마도를 압박하는데 앞장서 왔다.   심(sim) 카드는 정보화시대에 중요한 통신수단이다. 미얀마에서는 심카드가 개혁개방 시기에 비로소 대중화되면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공론장을 성장시켰고, 그 누적효과는 2·1 쿠데타 이후 전국적인 CDM으로 분출하였다.   SIM 3국이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심카드와 같은 역할을 보다 많이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땃마도에 맞서고 있는 NUG의 외교력이 중요하다. SIM 3국과 아세안이 쿠데타 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땃마도의 병영으로의 퇴각에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NUG가 외교력을 펴야한다. 민아웅 흘라잉의 쿠데타 세력이야말로 아세안이 이룬 아세안 연계성(ASEAN connectivity)을 파괴하고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이 세력이 역내 가치사슬(regional value chain)을 교란시키고 있는 주범이라는 것에 중국, 인도와 같은 대국들이 공감하도록 SIM 3국의 힘을 빌어 총력외교를 펴야 한다.   <그림1> ‘포스트 쿠데타’와 땃마도-민주진영-국제사회   유럽의회는 2·1 쿠데타로 축출된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CRPH와 그들이 띄운 NUG만이 미얀마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 유일 합법 대표기구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미국도 유럽연합(EU)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민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한 땃마도 지도부과 이들의 조력자들에 대한 제재에 나섬과 동시에 아웅산 수찌 등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쿠데타 이후 독자적 제재에 나서는 등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방 진영과 행보를 맞추고 있다.   위 <그림1>에서 보면 B1에는 땃마도에 대해 제재를 결단한 미국, EU 등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포함된다. 이와는 반대로 B2에는 땃마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과 같은 대국들이 속한다. 아세안도 땃마도에 우호적 국가군과 비우호적인 국가군으로 나뉜 상태이다.   아래 <그림2>에서 B1에서 B1'로, B2에서 B2'로의 변화가 가능하려면 범민주진영 내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가장 폭넓은 정치적 대화 플랫폼인 NUCC가 총력외교, 설득외교, 적극외교를 실행해 땃마도에 우호적인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줄이고, 그 대신 NUG에 우호적인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키워 최소한 현재의 땃마도와 NUG의 힘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 상태로 바꾸어야 한다.   <그림2> ‘포스트 쿠데타’ 국면 속의 땃마도-범민주진영 간 힘의 관계   2·1쿠데타는 정치 혼돈은 물론 경제 파국까지 감수하면서 테인세인 정부 이전 전체주의적 악몽 국가로의 회귀를 불사하겠다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의 비이성적 행동이다. 미얀마 전 국민은 이러한 땃마도의 무모함에 맞서 세대, 성, 계층, 종족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어 저항하고 있다. 반면 쿠데타 군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tate Administration Council, SAC) 의장직과 총리직을 겸임하고 있는 절대권력자 민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은 애초 1년간 비상통치를 공표했다가 이후 말을 바꾸어 비상통치 기간을 2023년까지 연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군부가 2011년 개혁·개방 국면 이전처럼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해 규율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1962년 항영(抗英)·항일(抗日) 투쟁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네윈 장군 주도의 쿠데타 이후 땃마도는 소수민족들에게 평등과 자결권을 보장하는 연방주의(federalism)를 거부하면서 내부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를 고착시켰다. 그러기에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종식을 전제로 연방민주헌법과 연방군을 준비하고 있는 미얀마 민주 진영으로서는 항전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미얀마 ‘봄의 혁명’이 34년 전 8888 민주항쟁 때처럼 실패로 끝난다면 미얀마는 네윈 군부 치하에서처럼 ‘시간이 정지된 땅’으로 회귀할 것이다.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에 필요한 통치술을 전수하고 있는 중국화(sinicization)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아시아에 자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가 뉴 미얀마 건설을 향한 ‘봄의 혁명’의 성패에 달려있다. ‘봄의 혁명’에서 아시아적 경로(Asian way)는 비자유주의적 경로(illiberal way)라는 기존 아시아적 가치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지평을 열고 있는 초국적(cross-national)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     땃마도는 8888 민주항쟁 이듬해인 1989년에 국명을 일방적으로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었다. 2012년 4월 1일 보궐선거 참여를 NLD가 결정하기 이전까지 민주진영은 군사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버마라는 국명을 고수했다. 이 글에서는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여 버마와 미얀마 두 국명을 혼용하겠다. [1] 2022년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NUCC가 소집한 첫 번째 인민의회(people's asseambly)가 38개 조직, 388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 2022년 1월 23일 NUG 한국대표부에서 조직한 간담회에 참석한 진마웅 장관 기조연설을 참고하길 바란다.     ■ 저자: 박은홍_현 성공회대학교 정치학과 및 아시아비정부기구학과(MAINS) 교수. 동대학 아시아NGO정보센터 소장. 대표 저서로 <동아시아의 전환: 발전국가를 넘어> 등이 있고, 미얀마 관련 논문으로 “미얀마 ‘봄의 혁명’: 땃마도 수호자주의의 파국적 선택에 이르는 서사”, ”“미얀마, ‘질서있는 이행’ 모델:‘체제내 변화’에서 ‘체제 변화’로의 진화”, “미얀마2018: ‘로힝자 위기’와 민주주의 공고화의 갈림길”, “민족혁명과 시민혁명: 타이와 미얀마”, “탈식민체제로서의 ‘우리식 사회주의’의 식민성: 수카르노와 네윈 시기의 혁명노선을 중심으로”, “한국민주주의와 인권외교: 버마 군사정부에 대한 외교적 제재의 타당성” 등이 있다. 태국 국립 탐마쌋대학교 정치학부에서 수학한 바 있다. 태국 왕립 쭐라롱껀대학교 정치경제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자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박은홍 2022-02-18조회 : 1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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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미얀마 특별 논평] "2022, 미얀마를 조명하다"_기획 의도

“2022, 미얀마를 조명하다!”   동아시아연구원은 2015년부터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 (MDRN)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MDRN은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미얀마의 신생 싱크탱크가 건전한 정책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 역량 및 연구 역량을 지원하는 국제 교육 협력 프로그램으로, EAI는 네크워크 기반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의 경험을 MDRN 파트너들과 공유함으로써, 미얀마가 시민사회 성장을 바탕으로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워크숍과 강의를 지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2021년 2월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현지 파트너 기관들과의 프로그램 운영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면서 프로젝트의 성격을 미얀마를 향한 국제사회의 지원 및 연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며 민주주의 가치를 시대적으로 내면화하고 것이 미얀마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민주주의 전환 과제임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쿠데타 발발 1년을 지난 시점에서 미얀마 민주주의를 논하기 위하여 미얀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총체적으로 돌아보는 미얀마 특별 논평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보고서의 게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박은홍, 뉴 미얀마를 향한 ‘봄의 혁명’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 (2월 18일 발간) [보고서 읽기] 2. 장준영,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사회 경제적 위기: 역사의 반복인가? 새로운 역사인가? (2월 21일 발간) [보고서 읽기] 3. 이재현,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와 아세안 (2월 23일 발간) [보고서 읽기] 4. 이현윤,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한국 시민사회의 상호적 경험 (2월 25일 발간) [보고서 읽기] 5. 신영환,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시민사회의 중단 없는 투쟁: EAI의 미얀마 협력 사업에서의 소회 (2월 28일 발간) [보고서 읽기] 6. 김영화,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한국 언론에 던진 질문 (3월 2일 발간) [보고서 읽기] 7. 김헌준, 2021년 미얀마 사태와 국제 인권 (3월 4일 발간) [보고서 읽기]

2022-02-18조회 : 11275
논평이슈브리핑
[EAI 이슈브리핑]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저항과 연대 활동의 재점검

1. 미얀마의 겨울, 쿠데타 발발 후 1년   미얀마는 1948년 독립 이후 70년이 넘도록 군부 통치 역사를 겪었다. 군부 주도로 2011년 급작스럽게 정치 개혁과 자유화를 경험했으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2015년 선거에서 정권을 잡으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점차 키워왔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NLD가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머쥔 후, 2021년 초의 미얀마는 두 번째 민간 정부 출범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는 2020년 총선을 부정 선거로 규정하고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금까지 1500여 명이 살해되었고 8,700여 명이 체포, 구금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1년이 넘도록 미얀마 민주주의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추위에 떨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끊임없는 반(反) 군부 시위로 민주주의를 되찾고 이 과정에서 과거 민족 갈등을 치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내전 상황과 함께 코로나 위기마저 지속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미얀마 국민들의 피로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관심도도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인권 유린적 군부 통치와 시민 불복종 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내적으로는 군부의 폭력 진압은 지역 커뮤니티 단위까지 확산되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일상과 생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미얀마인들이 국내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주변국 난민 캠프로 향하게 하고 있다. 한편, 민주 세력은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를 발족하였고, 시민항쟁군(People’s Defense Force, PDF)을 결성하였다. NUG는 한국 대표부를 시작으로 체코, 호주, 영국, 일본, 노르웨이 등에 미얀마연방공화국대표부를 설치했다. 또한 여덟 개의 무장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저항 시민의 연합체인 민족통합자문회의(National Unity Consultative Council, NUCC)를 창설하여 미얀마 내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연대를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연방 민주주의 헌법 입안과 향후 총선 전략도 논의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국가들과 국제사회는 성명 외교를 펼치면서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인권탄압을 규탄해 왔다. 지구촌 시민사회 행위자들도 기성 미디어와 SNS를 비롯한 여러 채널을 통해 군부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은 지난날 자국의 민주화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미얀마 국민들을 군부 폭압으로부터 지켜주고 그들의 민주화 열망에 공감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은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의 후원으로 2015년부터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Strengthening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 Myanmar)”란 프로젝트를 운영해 오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2년 1월 27일,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미얀마 쿠데타 발발 1주년 특별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본 보고서는 해당 세미나의 발표 및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간의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저항과 연대의 내용을 돌아보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진단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군부 탄압 장기화의 이면, 전화위복   NUG는 군부 독재 타도와 함께 미얀마의 다양한 민족과의 연방 민주주의 국가 결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반 군부 시위로 한 데 뭉친 미얀마 국민들이 연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버마족과 135개 소수민족들 간의 불협화음을 줄여 보기로 한 것은 미얀마 사태의 전화위복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 통합의 꿈은 2017년부터 거세게 불어온 미얀마의 민주화 바람을 체험한 2030 세대가 CDM에 적극 참여하면서 더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소수민족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이전보다 더 많아짐에 따라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서는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 ‘함께 해야 한다’는 의식이 더 짙어졌다. 이는 자연스레 NUG가 기존 NLD 정부보다 더 포용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방 민주주의 구축을 위한 선거 전략을 고민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로힝야 이슈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 건설적 대화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로도 이어졌으며, ‘현 상황은 오히려 향후 미얀마에서 군부 세력이 퇴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라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결연한 선언을 동반했다.   NUG가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 정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그를 지원하는 활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PDF를 비롯한 CDM의 거침없는 항쟁이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라며 이들을 지원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중앙 차원에 국제사회와의 연대나 경제 제재 등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커뮤니티 별로 풀뿌리 수준의 시민저항운동에 주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편, 미얀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군부의 전략도 교묘해지고 있다. 군부는 지금껏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른바 “네 가지 단절 전략”을 펼쳐 왔다. 자금과 식량, 정보, 인력을 끊고 상당한 수의 민간인을 학살해 공포를 조장하는 잔혹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수호하려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개별 국가나 풀뿌리 지역 공동체, 국제기구 등이 모니터링만 제대로 한다면 향후 미얀마 군부에 제재나 처벌 등의 조치를 내릴 때 유용하게 쓰일 증거 자료를 모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정 불간섭을 방패 삼아 그간 적극적이지 않았던 아세안 내부에서 지난 10월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의 초청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내부 분열이 일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UN 총회에서도 지난 6월 ‘미얀마로 더이상 무기가 흘러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강한 결의를 내비쳤다. 비록 중국이 기권을 하긴 했으나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군부의 취약성 중 하나인 정당성을 걸고 넘어질 구실이 생긴 셈이다. 또한 치열한 반 군부 저항 과정에서 태국이나 인도 등지로 국경을 넘은 미얀마 국민들이 많아졌으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활동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3. 민주화 운동 장기화의 이면, 풀뿌리 연대의 부상   미얀마 국민들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공동의 문제를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체를 만들고 연대하여 변화를 이끌어낼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1년이 넘도록 이어온 저항 운동을 재정비하고 있다. 한국 또한 쿠데타 발발 바로 다음날부터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며 미얀마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국가로서 그간의 인권 존중 촉구 및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조치를 평가하며 새로 준비하고 있다. 시민사회 및 국제개발협력 단체, 풀뿌리 레벨에서는 이미 점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주로 성명 외교와 같이 선언적이거나 상징적인 연대의 활동은 열심히 참여해왔는데 정작 가스공사나 포스코 이슈와 같이 경제 제재와 ODA 삭감 조치를 제대로 진단하였는지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주민운동연대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은 이제 겨우 한 살이 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미얀마 현지와 한국 내 미얀마 커뮤니티의 민주화 운동이 2015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양국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위해 연대의 네 가지 쟁점을 제시한다. (1)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풀뿌리 레벨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 (2) 포스코나 이노그룹을 비롯한 일련의 기업들과 함께 군부의 경제력, 자금줄을 끊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3) 민 아웅 흘라잉이 선포한 차기 선거가 제대로 된 절차 속에서 민주적으로 진행되어 결국에 시민들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도록 NUG의 선거 전략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저항의 과정에서 유실된 커뮤니티를 일자리와 교육 등의 정책으로 복원해 가려 하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생계의 문제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상황을 경험하지 않게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미얀마 민족 공동체의 청년들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살아내는 리더십 교육을 제공하여 그들이 향후 미얀마의 지역 커뮤니티 회복 작업에 주체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를 위해선 정부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연대의 다각화 작업이 필요하며, 풀뿌리 레벨의 연대가 중요해진다.   한편 국경을 넘나드는 연대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개발 협력 분야는 기술 중심의 역량 강화와 서비스 전달의 프로그램에서 진정한 의미의 권한 강화를 강조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축으로 한 연대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미얀마처럼 국정 운영 세력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을 때는 협력국 정부와의 밀접한 협의와 정치와의 거리두기를 미덕 삼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를 위해 첫걸음으로 국제개발협력커뮤니티얼라이언스는 한국 정부가 중단 및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미얀마 ODA 프로그램을 면밀히 검토해 주길 요청한다. 유상원조 사업인 미얀마 송전망 구축 사업이나 전자 정보 통합 데이터 구축 사업은 유지하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생계와 가까운 농업 및 복원 사업, 즉 무상원조 사업이 설 자리를 거의 앗아갔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미얀마 정부를 주요 대상으로 원조 예산을 집행했던 영국이나 미국, 스웨덴의 경우를 참고 사례로 들면서 미얀마 시민사회 강화와 지원을 위한 ODA 프로그램 운용을 촉구한다.   예를 들어 농촌 개발 사업을 벌이더라도 해당 지역 내 권력 구조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크고 작은 시민 조직에서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변화를 주체로 삼을 것을 당부한다. 해당 사회의 정치 문화나 거버넌스 구조를 세심히 살피지 않고서 기획, 실행되는 프로그램은 기존에 존재하던 구조적 불평등, 기득권층의 특권을 오히려 더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얀마의 봄맞이, 주인공은 곧 미얀마 국민들   동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결국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것입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기에 양국 시민사회의 논의가 미얀마 민주주의 회복으로 한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어떻게 도울 것인가?: 미얀마 쿠데타 발발 1주년 특별 온라인 세미나”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축사 중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협약에 의한 민주화(pact democracy)’로 민간 정부와 군부 간의 타협에서 비롯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과거의 경험 때문일까, 관련하여 연방 민주주의 국가라는 NUG의 목표가 또 다른 타협을 주춧돌 삼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얀마 역사에 깊게 뿌리내린 군부 통치를 끝내고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길에 접어들자는 의견도 많아졌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만 돌아보더라도 미얀마의 민주화는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연방 민주주의 국가 설립에서 끝날 게 아니라 군부 세력의 정치적 권한 축소와 나아가 민족 통합과 국내외 이슈의 공론화 등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봄맞이를 지원하고 성원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결국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견뎌야 하는 주체는 미얀마 국민들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지원 방안을 고민할 때 당사자들의 주체성과 현장성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 저자: 전주현_EAI 연구원.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의 프로그램 매니저이자 거버넌스 및 민주주의 연구 사업의 실무자이다. 매거진리더십코리아의 기자이자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가톨릭루벤대학교 유럽학 석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유럽지역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 학사 교육 과정을 밟았다. 주요 관심 분야로는 독일 및 유럽 정체성, 미디어 리터러시와 세계 시민 교육, 국가별 문화원 운영 전략, 영화 평론 및 한국 문학 번역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문의 :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전주현 2022-02-07조회 : 1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