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이해 당사국의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이번 사태가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방향에 주는 함의를 논의하기 위해 특집 이슈브리핑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보고서에서 강윤희 국민대 교수는 이번 전쟁은 최근 강화된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긴밀한 군사협력이 러시아에게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촉발된 것으로 분석합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푸틴 한 개인의 광기에 입각한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자국의 안보이익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에서 비롯된 계산된 행동이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협상에 이르기까지 지난할 과정을 거칠 것이며, 그 여파는 양국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러시아는 지난 2월 24일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다. 작년 11월 이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경고가 있었지만,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 원칙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해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고 광범위한 제재가 부과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무리수를 감행한 것일까? 이것은 푸틴의 “소비에트(Soviet) 재건의 꿈”, 혹은 “강대한 러시아의 부활” 야욕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가 서방의 강경한 대응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상황을 오판함으로써 일어난 것인가?

 

본 이슈브리핑은 러시아의 시각에서 이번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근거를 제시하고,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분석한 후, 향후 평화협상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를 예측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본 원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를 전적으로 군사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지극히 현실주의적 강대국 국제정치의 틀로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러시아의 이번 군사행동은 “개인의 광기”에 입각한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자국의 안보적 국익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에서 나온 준비되고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러시아는 군사작전을 왜 돈바스 분쟁에 한정하지 않았을까?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란?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에서 떨어져 나간 15개 국가 중 하나이다. 러시아로서 이들 구소련 국가들은 자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혹은 영향권 하에 있어야만 하는 국가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러시아의 바람과 거리가 멀다. 발트 3국은 이미 나토(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나토) 및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에 가입하여 러시아권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그 뒤를 이으려 한다. 문제는 방대한 영토(러시아 제외 유럽 최대 규모)를 가진 우크라이나가 동으로는 러시아, 서로는 EU/나토국들과 국경을 접하는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흑해와 아조프해에 접하고 있어 군사 전략적으로도 너무나 중요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동과 서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서는가에 따라, 소위 서구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러시아 권위주의 세력 간의 세력균형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자유롭게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Euromaidan) 사건 이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전격 병합함으로써 크림반도의 흑해함대를 온전히 러시아의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친러 반군 세력이 주도하는 돈바스 분쟁을 남겨두었다.

 

돈바스 분쟁과 민스크협정 불이행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러시아의 침공이 돈바스 분쟁 해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바스 분쟁은 2014년 친러 성향의 반군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onetsk People's Republic: 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uhansk People's Republic: LPR)의 독립을 선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에 들어감으로써 일어난 분쟁이다. 2014년 당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병합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돈바스 분쟁에는 “공식적으로는” 개입하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 측의 무기와 용병이 돈바스 지역으로 투입된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는 2015년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와 민스크협정[1]을 맺고 돈바스 지역을 우크라이나 내의 자치 지역으로 남겨두려고 했다.

 

돈바스 분쟁을 이런 식으로 남겨둔 것은 두 가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첫째, 민스크협정이 그대로 이행되는 경우에는, 자치권을 획득한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에서 친러 반유럽 성향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에 간접적으로 간여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둘째, 민스크협정이 이행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를 핑계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런 의미에서 돈바스 분쟁은 러시아 측의 꽤 영리한 장기적 포석이었다.[2]

 

불행히도, 민스크협정은 2022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 세력의 무장 해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군 세력은 자치 지위 보장을 먼저 내세웠기 때문이다. 8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돈바스 분쟁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돈바스 반군 세력이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군사작전은 돈바스 분쟁을 해결하는 것에 한정될 수도 있었다. 실제 러시아군 측의 설명에 따르면, 돈바스 분쟁에 한정하는 옵션과 군사작전의 범위를 넓혀서 우크라이나 전역을 공격하는 옵션 두 가지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러시아군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목표를 가지고 한정된 지역에 군사력을 투사하는 것이 훨씬 쉬운 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측의 결정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 전면전 결정 이유?

 

그런데 왜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공으로 결정되었을까?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러시아의 그간의 군사적 승리(러시아-조지아 전쟁, 시리아 내전 개입)에 대한 도취감, 푸틴(Vladimir Putin)의 슈퍼에고(superego), 혹은 우크라이나군 과소평가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엄밀히 보자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를 돈바스 분쟁에 국한하지 않는 것에는 그들만의 판단 근거가 존재한다. 군사 및 정보기관 출신이 주를 이루는 현 푸틴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군사 전략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러미 대립 혹은 러시아 대 나토 대립이라는 보다 큰 군사 전략적 지도 속에 놓고 판단한다. 여기서 나토의 동진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1999년, 2004년에 있었던 나토의 1차, 2차 확대 이후 나토의 동진에 대해 줄곧 문제를 제기해왔다. 러시아는 특히 소련의 일원이었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절대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2008년 나토가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논했을 때, 러시아는 이에 크게 반발한 바 있다. 2021년 12월 러시아가 나토 측과 미국에 보낸 서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러시아는 분명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상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하는 질문은 나토의 동진(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이 왜 2022년 이 시점에서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유발했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사실상(de facto) 나토 회원국?

 

혹자는 우크라이나가 분쟁 지역이기 때문에 어차피 나토 가입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는 러시아 측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3] 맞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말이 꼭 맞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우크라이나와 나토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2006년 나토와 파트너십 협정을 맺은 나토 파트너국가이다. 우크라이나는 현재까지 나토 회원국 지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2020년 심도 있는 양자 관계를 의미하는 “확대된 기회의 파트너(Enhanced Opportunities Partner: EOP)” 지위를 인정받았다. 문제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군사협력이 파트너국 수준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첫째, 나토와 우크라이나는 2015년 이후 해마다 대규모 군사 훈련을 계속해 왔으며,[4] 일부 훈련은 우크라이나 영토 및 영해에서 이루어졌다.[5]이는 나토군이 우크라이나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고 러시아는 이를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미국 및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를 지원하였다. 미국의 살상용 무기 수출은 2017년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 시절에 시작되었는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재블린(Javelin) 미사일과 같은 고성능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6] 미국이 2021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만도 약 4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7] 한편 우크라이나는 터키제 무인 공격용드론 “바이락타르(Bayraktar) TB2”을 수십 대 수입했는데, 이로 인해 돈바스 반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셋째, 미국 등 서방의 군사고문과 교관이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켰다. 폴란드 접경지역 야보리우(Yavoriv) 기지는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온 외국인 군사고문이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키는 곳이었다. 이 기지는 우크라이나군과 나토동맹국이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는 중심지이기도 하다.

 

넷째, 우크라이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더욱 밀착하였는데, 양국은 2021년 전략적 방위(strategic defense) 협력을 심화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더하여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대통령이 자국 내에 미군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미국을 설득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8]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법률상(de jure) 나토회원국은 아니지만 사실상(de facto) 나토회원국이었다고 평가한다.[9]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당시보다 훨씬 잘 훈련되었고, 제대로 무장되기 시작했다. 또한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지속적인 전투로 전투 경험이 축적되어 2014년 크림 병합 시와는 질적으로 다른 군대로 변모하였다. 따라서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러시아군의 우위가 잠식될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수 없다면 군사적으로라도 풀어야 했고, 이것을 더 늦게 하기 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해야만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 도발된 전쟁(provoked war)

 

여기에 덧붙여 2020년부터 러시아가 보다 구체적으로 위기감을 가지게 될 만한 상황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 돈바스 문제: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향상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돈바스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특히 터키제 드론을 활용한 공격은 돈바스 반군에게 매우 위협적이었고 큰 타격을 가했다. 결국 러시아는 민스크협정이 이행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과 러시아군의 도움 없이 반군이 우크라이나군을 대상으로 버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크림반도 문제: 우크라이나와 나토는 2020년부터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크림반도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그 이전에 크림반도 문제보다는 돈바스 분쟁을 해결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나 2021년 젤렌스키 대통령은 크림 반환을 위한 국제적 지지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크림 플랫폼(Crimea Platform)”을 개최하는 등 크림 반환을 위한 외교적 행보를 적극적으로 펼쳤다.[10] 더 심각한 도전은 나토 측에서 나왔다. 2020년 9월 4일 나토 훈련의 일환으로 미국 B-52 폭격기가 역사상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영공에 들어와 크림반도 국경을 따라 비행을 했다.[11]다음 해 6월에는 영국의 구축함 디펜더(HMS Defender)가 크림반도 쪽 러시아 영해를 침범하여 양 측이 사격 및 경고 폭격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12]

 

크림반도가 러시아에게 가지는 군사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나 나토측이 크림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크림 병합을 기정사실화하려던 러시아에게 심각한 도전이 된다. 러시아는 향후 우크라이나군이 나토군의 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거나 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경우, 우크라이나가 크림 문제를 바로 잡고자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후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크림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러시아는 판단한다.

 

3. 우크라이나의 핵무장 가능성: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러시아를 겨냥한 핵무기를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배치할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경계한다.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의 핵심이 핵무기인 바, 우크라이나의 핵무장은 러시아의 전략무기 우위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실험용 원자로가 있는 원자력연구소, 그리고 핵무기 원료를 추출할 수 있는 핵발전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더욱이 러시아의 침공 4일 전인 2월 20일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과거 핵무기 포기 결정을 재고할 것”이라는 돌출 발언을 함으로써,[13] 러시아의 이러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특별군사작전을 명령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자체 핵무장을 추진 중이라고 주장하고 러시아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14]

 

결국 러시아는 향후 민주화된 우크라이나가 서방세계에 편입되고, 군사적으로 더 잘 무장하고, 나토 회원국에 상응하는 지위를 획득할 경우, 이것이 가져올 미래의 위험성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는 이번 군사작전을 돈바스에 국한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국가 전역을 대상으로 실행하게 된다.

 

2. 러시아의 군사적 목표는 무엇인가?

 

이번 군사작전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주민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탈나치화”를 목표로 제시하였다. 일단 이것은 이번 작전이 돈바스 분쟁 해결에 국한되지 않고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까지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 기간 시설의 파괴

 

첫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궁극적으로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간의 나토 파트너국으로서 누렸던 많은 것들을 무효화하려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비무장화”가 목표로 설정된 것이다. 사실 비무장화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패전국 독일이나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일본이 강제적으로 당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시키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투 행사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부, 동부, 남부 등 3개 전선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체적으로든, 나토국의 지원을 받든, 러시아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는 것은 원천봉쇄하고자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시의 함락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 기반 시설의 파괴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우크라이나 군사 기반 시설, 즉 군 헤드쿼터(headquaters), 탄약 저장고, 군사용 유류 저장고, 군 기지 등등을 파괴한다. 러시아 측의 발표에 따르면 약 80여 개의 이러한 기반 시설을 파괴했다고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핵무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리키우의 원자력연구소를 폭격하고, 체르노빌 및 자포리자 핵발전소 등을 장악했다. 우크라이나 군 기반시설의 파괴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강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고, 러시아 측이 “1단계” 작전이 거의 끝났다고 말한 것도 이것을 의미한다.

 

민간 기간 시설 파괴: 도시의 초토화, 주민의 난민화

 

이와 더불어 러시아는 키이우, 하리키우, 마리우폴 등 주요 도시를 포위하고 민간 기간 시설을 파괴하였다. 전력, 수도, 난방 시설을 차단하고, 도시 기간산업 및 방송탑 등을 파괴하고 있다. 특히 남부 돈바스 지역의 마리우폴 항구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폭격으로 도시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도시에 대한 폭격은 민간인 희생자를 급증시켰고 더불어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 난민을 발생시켰다. “인도주의적 통로” 제공도 사실은 우크라이나 도시민들의 난민화를 가속화시킨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 등 EU로 들어간 난민의 수는 약 4백만 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난민화는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인구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구는 2014년 크림 병합 이후 이번 전쟁 발발 전까지 이미 천만 명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다시 5백만 명에서 천만 명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인구가 줄어들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실로 중소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EU로 몰려 들어가게 되면 후일 EU는 난민 문제로 경제적,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의 “초토화”, 우크라이나 국민의 “난민화”는 러시아의 명시되지 않은 숨겨진 목표라 할 수 있다.

 

돈바스 지역 및 남부 우크라이나 장악

 

전쟁 전에 러시아 반군 세력이 돈바스 지역의 약 1/3만을 장악했던 것에 비추어볼 때, 러시아군은이번 군사작전을 통해 돈바스 지역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향후 돈바스 지역에 대한 영토 병합 혹은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군사작전 2단계에 들어갔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한 크림 반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크림 반도와 돈바스를 잇는 아조프해 연안을 장악했다.

 

3.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 전망

 

우크라이나 정부 및 국민이 러시아군에 대해 결사항전하고 우크라이나군이 기대보다 선전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군사 및 민간 시설의 파괴, 민간인들의 피해 및 난민화를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선전과 서구의 방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궁극적으로 러시아군을 자국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휴전협상 와중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볼 때, 평화협상은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우크라이나에게 강제하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중립국화안

 

일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의 군사동맹 가입 금지, 우크라이나 영내에 외국군 주둔 금지, 외국 군사기지 제공 금지, 그리고 외국 무기의 도입 및 배치 금지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즉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나토와의 군사협력을 중지하고 나토 측이 제공한 무기를 제거해야 한다. 한편 비핵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즉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배치하는 것이 금지된다. 결국 우크라이나 중립국화안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제기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중립국화안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자국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국제적인 안전보장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기존의 중립국, 예컨대 핀란드와 오스트리아가 각기 미국과 소련, 혹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로부터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던 것에 비추어볼 때,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터키, 이스라엘 등 보다 많은 국가의 안전보장 약속을 받고자 하며, 안보 위협 시 이들 국가의 자동개입을 전제로 하는 안전보장조약을 맺으려 한다. 그러나 관련 국가가 많을수록, 분쟁 개입 강제조항이 명시적으로 삽입될수록, 조약 합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크림반도와 돈바스 영토 문제 해결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영토 문제를 조정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러시아로의 영구귀속을 승인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한편 돈바스 지역의 경우, 민스크협정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침공 개시 전에 돈바스의 독립을 이미 승인함으로써 돈바스 지역을 우크라이나에게 돌려줄 의사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현재 러시아는 군사작전 2단계를 목표로 돈바스 지역의 “해방”을 내세우고 이 지역의 완전한 장악에 몰두하고 있다. 러시아가 여러 지역에 펼쳐져 있던 군사력을 돈바스 지역에 집결한다면 돈바스 지역이 러시아에게 넘어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추가적 영토 요구?

 

이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요구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넘어서서 더 커질 수 있다. 러시아가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우크라이나 남부의 “노보러시아(Novorossiya)”라고 불리는, 드니프르 강 아래 쪽 영토를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군의 선전은 눈에 띤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을 포함하여 크림반도에서 돈바스에 이르는 흑해 및 아조프해 연안 지역을 거의 다 차지했다. 러시아가 이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지, 혹은 아조프해 연안의 벨트 지역만을 요구할지는 향후의 군사 상황 및 우크라이나의 저항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편 돈바스, 크림 등지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군사 갈등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드니프르 강 우안의 비무장지대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 향후 전망

 

협상의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처음부터 두 협상당사자가 타협을 통해 상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협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협상은 러시아의 목표가 명료한 가운데 이를 우크라이나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러시아의 요구는 우크라이나에게 매우 가혹하고 수용하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딸려가지 않기 위해 최선의 외교적, 군사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는 점차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포기, 중립국화안 수용(조건부), 돈바스 지역을 둘러싼 타협을 논하기 시작했다. 물론 최대한 상황을 비틀어서 러시아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국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려 하지만,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이 와중에 러시아군의 희생도 예상보다 훨씬 커지고 있지만, 이것이 푸틴이 계획을 수정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방식은 끔찍한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서도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되고 서구의 경제제재로 인해 러시아가 전쟁을 지속할 재정 능력에 심각한 훼손을 입는다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다시금 군사적, 물리적 폭력으로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강대국의 행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현실주의적 국제질서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는 러시아-우크라이나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고, 또 오래 지속될 전망이다.■

 

<참고문헌>

 

강계만, 김성훈. 2021. <매일경제>. “'러시아 급소' 노리는 美…우크라이나와 밀착.” 9월 2일.

김민규. 2022. “우크라 대통령 폭탄발언 “안전보장 없으면 ‘핵무장’ 검토”.” <아시아투데이> 2월 20일.

박지영, 김진욱. 2021. “러시아, 흑해 진입 영국 구축함 향해 경고사격.” <한국일보> 6월 23일.

<세계일보>. 2017. “트럼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판매 첫 승인.” 12월 21일.

유철종. 2021. “우크라, '러 병합' 크림 반환위한 국제회의 '크림 플랫폼' 개최.” <연합뉴스> 8월 23일.

이양구. 2022. “NATO는 핑계? 前우크라이나 대사가 말하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진짜 이유’.” 3월 25일.

이의진. 2022. “러 매체, '우크라이나 핵무기 추진' 잇단 보도.” <연합뉴스> 3월 6일.

전경웅. 2015. “우크라이나의 반격? NATO와 군사훈련.” <뉴데일리> 4월 1일.

. 2022. “John Mearsheimer on Russia-Ukraine War & Who is responsible?” 3월 5일.

“List of NATO exercises.” Wikipedia.

. 2021. “미,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제공.” 12월 13일.

 


 

[1] 민스크협정은 도네츠코와 루한스크에 대한 특별 지위 승인 및 돈바스 지역 내 불법 무장단체의 무장해제를 골자로 한다.

[2] 물론 러시아의 초기 구상은 분명 민스크협정의 이행이 가장 선호되는 시나리오였다.

[3] 이양구. 2022. “NATO는 핑계? 前우크라이나 대사가 말하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진짜 이유’.”   3월 25일.

[4] 2015년 우크라이나군은 나토군의 피어리스 가디언(Fearless Guardian) 훈련, 시 브리즈(Sea Breeze) 훈련, 래피드 트라이던트(Rapid Trident) 훈련에 병력을 보내서 육, 해, 공군 모두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전경웅. 2015. “우크라이나의 반격? NATO와 군사훈련.” <뉴데일리> 4월 1일.

[5] 래피드 트라이던트 2015, 시 브리즈 2015, 래피드 트라이던트 2017, 클리어 스카이 2018, 래피드 트라이던트 2021, 시 브리즈 2021 등이 우크라이나가 호스트국이 되어 우크라이나 영토 및 영해 내에서 진행된 나토 훈련이다.

[6] 비살상용 무기에 한정해서 지원하였던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총기와 탄약 등 살상용 무기의 수출을 처음으로 승인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0월에 우크라이나에 30기의 재블린 대전차유도미사일체계와 180기의 재블린 미사일을 제공했다. <세계일보>. 2017. “트럼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판매 첫 승인.” 12월 21일; 강계만, 김성훈. 2021. <매일경제>. “'러시아 급소' 노리는 美…우크라이나와 밀착.” 9월 2일.

[7] . 2021. “미,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제공,” 12월 13일.

[8] 강계만, 김성훈. 2021. <매일경제>. “'러시아 급소' 노리는 美…우크라이나와 밀착.” 9월 2일.

[9] . 2022. “John Mearsheimer on Russia-Ukraine War & Who is responsible?” 3월 5일.

[10] 젤렌스키 대통령은 크림 반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 회의를 정기적으로 계속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키이우에 크림 반환 문제와 크림 플랫폼 회의 관련 업무를 관장할 대표 사무소도 열었다. 유철종. 2021. “우크라, '러 병합' 크림 반환위한 국제회의 '크림 플랫폼' 개최.” <연합뉴스> 8월 23일.

[11] 이 외에도 나토 훈련의 일환으로 9월 25일 두 대의 미국 폭격기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대한 가상 공격 훈련을 진행했다. “List of NATO exercises.” Wikipedia.

[12] 박지영, 김진욱. 2021. “러시아, 흑해 진입 영국 구축함 향해 경고사격.” <한국일보> 6월 23일.

[13] 김민규. 2022. “우크라 대통령 폭탄발언 “안전보장 없으면 ‘핵무장’ 검토”.” <아시아투데이> 2월 20일.

[14] 이의진. 2022. “러 매체, '우크라이나 핵무기 추진' 잇단 보도.” <연합뉴스> 3월 6일.

 


 

저자: 강윤희_국민대학교 러시아·유라시아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외교학 학사와 석사를, 영국 글라스고우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에서 러시아지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러시아와 세계정치 외에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최근 논문으로는 아르메니아 문제와 유럽 강대국 외교: 1877-78 러시아-투르크 전쟁과 베를린 회의를 중심으로,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의 평화적 해결 실패, 러시아 공공외교의 제도적 정비, 성과와 한계 등이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러시아와 CIS국가의 외교, 국제관계사, 시민운동 등이다.

 


 

담당 및 편집: 이승연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5) | slee@eai.or.kr
 

6대 프로젝트

국제정세와 전략

세부사업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경쟁과 한국의 전략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