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대선 이후 등장할 차기정부의 외교안보과제들과 한국의 대응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을 초청하여 신년대담을 진행했습니다. 하영선 이사장은 신 정부가 맞이할 미중경쟁, 북핵문제, 한일관계, 코로나 이후 신문명 질서 재건축 문제의 내용과 한국의 대응방향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대담의 핵심내용을 담은 요약문은 EAI 홈페이지를 통해 PDF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2022년 한국은 대선을 통해 국정 운영 방향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미•중 간 대립과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고,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핵•미사일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악의 한일 관계에 대한 해법이 요원한 가운데, 코로나 이후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가치와 규범 질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산적한 차기 행정부 외교•안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은 작년 한 해 “2022 신정부 외교정책” 연구 과제를 진행해 그 결과를 단행본으로 발간하였고, 이어 1월 10일 하영선 EAI 이사장을 초대하여 올 한해 한국 외교의 주요 과제와 대응 방향에 대한 신년 대담했다.

 

Q: 2022년 미•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A: 경제, 기술, 규범, 군사의 4대 무대를 복합적으로 전망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첫째, 코로나 이후 경제회복 문제가 올해 최대과제가 될 것이며, 둘째, 경제를 포함한 모든 무대에서 핵심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 무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가치 규범 무대에서는 세계질서 주도권을 위한 민주주의 논쟁이 계속되고, 군사 무대에서는 양국의 직접적 군사 대결로 확대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지역적 갈등은 진행될 것이다.

 

경제 무대

미•중의 전략적 경쟁에서 2022년은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통계를 보면 2021년 명목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이 지구 전체적으로는 95조 달러이며, 그중에 미국이 23조, 중국이 17조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세계 경제 관련 연구소들이 2030년을 전후로 중국이 서서히 미국을 앞설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향후 30년의 세계 경제 질서는 코로나 이후 경제회복의 성패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Joe Biden)는 국내 경제 재건축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를 위한 지구적 그물망을 구축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노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다. 미국이 기존의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과 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을 넘어서서 새로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구축에 힘을 기울이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편, 미국 경제 규모의 70퍼센트를 넘어선 중국도 국내 및 국제적 노력으로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경제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경제 무대의 양극화까지 치닫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속에서 미•중의 2022년 경제 경쟁은 향후 30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결전의 원년이 될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한국은 미•중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제 무대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적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동시에 부작용을 조심하면서 중국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기술 무대

21세기 미•중 관계의 경제 무대를 비롯한 모든 무대에 가장 핵심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첨단 기술 분야이기 때문에, 미•중의 기술 경쟁은 2022년에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5G, 양자 컴퓨터, 뇌과학, 생명공학과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제적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내적으로는 국내 기술 역량 회복을 강화하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는 빠른 속도로 첨단 기술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 또는 확대하기 위해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탈동조화(decoupling)와 지구 공급망의 구축을 위한 국제협력의 노력을 2022년에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상호의존성도 상대적으로 높아서, 현실적으로 일방적 또는 이분법적 탈동조화나 지구 공급망의 구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기술-생산’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기술-생산-소비’의 더욱 완결성이 높은 생태계를 위한 국제협력을 추진하도록 공동 노력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중 첨단 기술협력을 미국 중심의 기술협력 무대에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규범 무대

미•중 경쟁은 경제, 기술에 이어, 가치와 규범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세계질서의 주기적 변화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계질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주도국가는 새로운 도전국가의 부상 국면에 접어들면 바로 군사 대결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주도권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을 겪게 된다. 미•중의 규범 논쟁도 전형적으로 이러한 국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정당성의 핵심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지난 12월에 권위주의에 대한 방어, 부패와의 투쟁, 인권 존중을 주제로 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중국을 제외한 110개국과 함께 영상으로 개최했다, 한편 중국은 같은 시기에 국제 포럼을 개최하고, 〈중국적 민주〉(中国的民主)라는 백서를 발간하면서, 민주는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공통 가치이며 중국 공산당도 창당 이래 견지하는 중요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미국의 부자 민주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인민민주주의라고 반론했다. 미•중의 민주주의 규범 논쟁은 2022년 말에 미국 주최로 다시 열릴 비대면 민주주의 정상회의 때까지 더욱 가열화될 것이다. 이러한 규범 무대에서 한국은 바이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 혹은 민주주의 10개국(D10) 회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21세기 한국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반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대중국 규범 외교에 관해서는 일관성이 있게 최대한 다자적 활동을 모색하여 현실적 어려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군사 무대

2022년의 미•중 군사 무대를 전망하기 위해서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중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경쟁을 강조한 다음에, 추가로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상식적인 보호 난간”(commonsense guardrails)이 있는 길에서 경쟁이 벌어져야 하며, 한 걸음 더 나가서는 도로 주행 규칙을 마련한 속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중 관계를 경쟁 관계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대단히 미국적 시각이라고 비판하고, 보다 복합적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연말 미•중 관계를 “상호존중”, “평화공존”,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의 3원칙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 군사비 기준으로 미국의 7천8백억 달러에 비해 1/3에 해당하는 2천5백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중국은 무엇보다도 쌍방의 핵심 이익을 상호 존중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특히 대만, 신장, 티벳, 홍콩 문제를 국내 안보 문제로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이익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미•중 간의 직접적 군사적 대결이나 충돌이 없는 평화 공존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적 이익이므로 유사시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지킬 것을 미국에게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 원칙을 뒤엎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대만 문제를 비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는 굉장히 복잡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핵확산 문제 등에 관해서는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Q: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A: 북한이 이중 잣대 문제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한 한반도 종전선언에서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북한은 부분 비핵화를 넘어선 완전 비핵화의 결단을 하지 않고 있고, 미국은 완전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는 핵 동결을 요구하는 한 북한의 비핵화 문제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북한은 2022년에도 핵 능력 강화와 미사일 개발을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건설과 경제발전의 동시 추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첨단 무기 개발과 함께 핵무기의 정치 군사적 효용이 빠르게 체감하고 있어, 북한은 21세기의 생존번영을 위해서는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에도 신년사를 따로 하지 않고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2022년 북한의 나갈 방향을 밝혔다. 그러나, 이 연설은 국내 분야만 공개하고 남북관계와 대외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해 연설 중에 그의 속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1월의 제8차 당대회 연설, 9월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그리고 10월의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을 기초로 해서 2022년의 남북관계, 북미 관계, 북한 비핵화를 전망해 보겠다.

 

남북관계

김정은 위원장은 8차 당대회 보고에서 남북관계에 대해서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가 중요하다. 둘째, “이중적인 태도” 및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을 철회해야 한다. 셋째, 앞선 두 조건을 만족하면, 한반도에는 또 한 번의 봄이 올 수 있다. 그리고, 9월 말 시정연설에서 한국이 근본 문제라고 제시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서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태도, 적대시 관정과 정책들부터 철회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제2원칙인 이중적 잣대와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핵심 선결과제로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지평에서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공격적이고, 한미 군사훈련이나 군사력 증강을 방어적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이중 잣대이고 적대시 정책이지만, 한국 및 미국의 지평에서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체제 보장을 위한 최소 억제라고 하고, 한미 군사훈련이나 군사력 증강을 공격적으로 하는 것은 북한의 이중 잣대이고 적대시 정책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 불신 체제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종전선언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우선 남북한 지평의 차이를 먼저 상호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평 공유를 위한 실천 방안의 모색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미 관계

8차 당대회 보고서는 대외 관계에 대해서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존엄 사수, 국위 제고, 국익 수호를 외교의 제일 사명으로 하고 자주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고, 둘째, 혁명의 최대 주적인 미국 제압에 초점을 맞추고 반제 자주 역량의 연대를 확립하며, 셋째, 새로운 북미 관계의 열쇠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에 있고, 강 대 강, 선 대 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한다는 것이다. 9월 시정연설에서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 군사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므로, 미국의 대북한 동향, 미국의 국내정세 전망, 급변하는 국제 역량 분석을 기초로 대미 전략을 위한 전술적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2022년의 북미 관계도 지나친 기대를 하기 어렵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와 뒤에 이은 스톡홀름 실무 협상의 좌절이 명확하게 보여 준 것은 양측의 셈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측이 새로운 셈법으로 만나지 않는 한, 실무 협상이 진전된다 해도 또 한 번의 정상회담이 열리기는 어렵다. 바이든 정부가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나온 공식적인 입장은 “실용적이고 조율 가능한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이다. 그러나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율의 최대치는 완전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핵 동결이다. 그러나, 북한의 병진 노선은 현재까지 완전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제시하고 있는 조율의 한계는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셈법으로, 제재 완화와 단계적 동시 행동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부분 비핵화다. 미국의 ‘진정성 있는 동결’ 요구와 북한의 ‘부분 비핵화’는 그 접점을 찾기 어렵다.

 

북한 비핵화

지난해 10월의 국방발전전람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불안한 현 정세 아래에서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공업 제2차 5개년 계획(2021-2025)에 따라서 “전쟁 억제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고 국가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 전술적 수단의 개발 생산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작년 1월 연설에서도 핵 무력 건설은 역사에 다시 없을 기적이며 후대에 남길 민족사적 공적”이라고 자부했다. 따라서, 올해에도 북한은 핵 능력 강화와 미사일 개발을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노력은 머지않아 2대 난관은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첫째, 병진 노선을 통해 생존권과 발전권을 상호보완적으로 추구해 나간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제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제발전 계획을 추진하는 한, 현실적으로 계획 달성은 불가능하다. 둘째, 핵은 장기적으로 보면 체제 생존의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 되지 못한다. 올해 초에 발표 예정인 미국의 핵 태세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NPR)나 국가안보 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Report: NSSR)에서는 “핵 억제”(Nuclear Deterrence)대신,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를 강조하고, “전 영역 작전”(All-Domain Operations)이나 “공동전투계획”(Joint Warfighting Plan)을 새롭게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변화에 따라, 중국도 “전역작전”(全域作战)이나 “지능화전”(智能化戰)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물론 미•중이 복합 억제력을 추구한다고 해서 핵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미래 군사 무대에서는 핵무기를 넘어선 첨단 무기체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억제력이 부상하고 있으므로, 핵무기의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효용성은 빠르게 체감(遞減)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군사 무대의 새로운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21세기의 생존번영을 위한 새로운 셈법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Q: 한일 관계가 어렵다. 앞으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A: 한일 양국은 한국의 대선 이후 한국의 주도로 현안을 풀어야 한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백년대계의 신구상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미•중의 전략적 경쟁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개별과 지역 이익을 위한 협력을 검토하고, 중기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은 양국의 대등한 종합국력 시대를 대비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21세기 아태 신문명 재건축 과정에서 공생을 위한 공동 주도의 고민이 필요하다.

 

백년대계

한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 한일 양국은 불가피하게 난관에 빠진 위안부와 강제 동원의 2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새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합의를 존중하고 후속 조치를 하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게 더 이상 금전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신구상으로 일단 돌파구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양국이 일국 중심의 닫힌 근대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서, 21세기의 신문명 재건축의 숙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백년대계의 신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단기적으로 미•중의 전략적 경쟁 속에 재건축되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질서에서 양국의 노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중기적 한일 관계의 종합국력이 대등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대의 보다 바람직한 만남을 미리 준비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21세기 신문명 질서의 건축 과정에서 공멸이 아닌 공생을 위한 양국의 선도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과 한일 관계

미•중의 전략적 경쟁은 아시아 태평양 질서의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신흥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인도-태평양 질서를 새롭게 구상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질서 구상의 중심적 역할을 맡은 캠벨(Kurt Campbell)은 미국의 정책 방향을 “지구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global, balanced approach)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접근은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BBB)의 성공을 위한 작동 체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국내 합의를 얻을 수 있는 균형 차원에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오커스(Australia, United Kingdom, United States: AUKUS)와 쿼드(Australia, India, Japan, United States: Quad)를 구축하되, 오커스가 군사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쿼드는 아세안 등을 고려하여 대결적(against) 성격보다는 협력적(for) 요소가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이러한 작동 체제의 중요한 구성 요소를 이루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과 협력하여 쿼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미•중과 남북한 관계의 전략적 악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한일의 대등한 종합국력

한국과 일본은 2030년을 전후해서 대등한 종합국력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최근 영국의 경영 및 경제연구소(Center for Business and Economic Research)는 명목 GDP의 장기 전망을 하고 있다. 이 자료를 기초로 해서 1인당 명목 국민 소득을 계산해 보면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2030년을 전후해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비의 경우에는 한국이 GDP의 2.6퍼센트, 일본이 1퍼센트를 쓰고 있어서, 한국의 군사비는 2020년대 중반에는 일본을 넘어서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일국 중심의 닫힌 민족주의를 졸업하고 명실상부한 상호존중과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21세기 아태 신문명 질서 재건축

한일 관계는 현재와 같이 한국과 일본이 배타적 근대 민족주의 시각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한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일국 중심주의의 배타적 정체성을 넘어서서 개별국가와 지역, 그리고 지구적 복합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신문명의 선진적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은 상호 국내적 노력과 함께, 미국과 중국의 지역 경쟁을 갈등이 아니라 공생으로 가도록 선도하고, 동시에 아태 질서의 중견국으로 다른 주인공들을 함께 품고 나가려는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Q: EAI “2022 신정부 외교정책”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4대 외교 목표로 제시한 “코로나 이후 공생을 위한 선도 외교”는 구체적으로 어떤 제언을 하는가?

A: 코로나의 지구적 유행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신문명 재건축 무대에서 한국이 공동 주역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주인공, 무대, 연기의 복합화를 지향하는 공생 외교를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신문명 질서의 재건축

EAI가 새 정부의 4대 과제 중의 하나로 코로나 이후 공생을 위한 선도 외교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계, 언론, 학계에서 커다란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022년은 공생을 위한 선도 외교가 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 제고가 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의 지구적 유행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전 국민이 모두 마스크를 하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총칼을 들지 않았지만, 사실 전쟁하는 모습이다. 세계 질서사를 되돌아보면 전후에 항상 새로운 질서가 나타났던 것처럼, 코로나 이후에도 21세기 신문명 질서가 빠르게 등장할 것이다.

근대적 국력 지표인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명목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 군사비 지출 기준으로도 세계 10위에 올라와 있다. 한국은 근대이행기 새로운 문명 질서의 변환을 제대로 읽지 못해 국제정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코로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할 신문명 질서의 모습을 제대로 읽어내고 얼마나 창조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주인공의 복합화

세 가지 핵심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 주인공의 복합화다. 19세기 근대화 이행기에는 일국 중심의 닫힌 민족주의가 중요한 표준이었다.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는 열린 민족주의, 혹은 지구적 민족주의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첫째, 대미중 외교, 대북 외교, 대일 외교와 함께 중견국으로서 아시아 태평양의 다른 주인공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코로나 이후 질서에서 본격화될 21세기 재세계화 논의와 실천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보통신 혁명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 공간을 선용하는 논의와 제도화에 적극 공동 참여해야 한다. 넷째. 코로나는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지나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를 자성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지평을 선도적으로 열어야 한다.

 

무대의 복합화

둘째, 무대의 복합화다. 근대적인 경제, 군사 무대와 함께 생태, 문화, 기술, 공치(共治) 무대의 중요성은 급부상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생태 무대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박쥐의 서식지가 북상한 것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의 간접적인 이유라는 최근 연구는 대단히 흥미롭다. 더 이상 경제•군사 무대뿐만 아니라 생태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서는 코로나 이후 신문명 질서에서 주역을 맡기는 불가능하다. 최근 BTS나 “기생충”의 화려한 성공은 문화 무대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정 문화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미국과 중국이 제시하는 가치•규범 모델을 넘어서서, 더 많은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의 이야기, 노래, 춤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보통신 기술 혁명은 4대 중심 무대를 새롭게 재건축하게 만드는 기층 무대로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이 무대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 AI 같은 첨단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해결해 나갈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대의 주인공 모두가 참여해서 4대 중심 무대와 기층 무대를 복합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공치 상층 무대의 필요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동서양의 중심에 있는 선진 중견국 한국은 이러한 21세기 신문명 무대의 재건축 과정에서 설계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공동 참여해야 한다.

 

연기의 복합화

마지막으로 연기의 복합화다. 강대국 중심의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 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의 원칙에 따르면서, 전쟁과 빈곤 같은 갈등의 극대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협력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겪게 될 미래는 그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논의가 필요하다. EAI 연구팀에서 제시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 재조직화와 공동진화에 기반을 둔 공생의 세계 정치였다. 이러한 담론이 21세기 신문명 질서를 놓고 충돌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새로운 복합 연기의 표준으로서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년의 한국이 대미중 외교의 복합화, 북한 비핵화와 북한 문제의 21세기적 해결, 한일 외교의 백년대계 신구상, 코로나 이후 질서의 새로운 문명 표준이 될 공생 외교의 선도적 추진이라는 4대 숙제를 성공적으로 하기 시작하면, BTS가 21세기 신문명의 첨병으로서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것처럼, 한국은 21세기 신문명의 새로운 매력 국가로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미국 프린스턴 대학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회 회장,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한국 측 공동위원장,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회의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EAI 이사장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서 및 편저에는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 <한국외교사 바로 보기: 전통과 근대>,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사행의 국제정치: 16-19세기 조천·연행록 분석>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하영선 칼럼”을 7년 동안 연재했다.

 


 

담당 및 편집: 김양규_EAI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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