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식 교수는 러시아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지난 3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병합 조약 비준안에 서명함으로써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이공식적으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크림공화국 내 친러 무장세력의 공화국 정부청사•의회건물•공항 점거에 이어 러시아 군의 신속한 크림반도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거진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뤄진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에 대한 전력공급을 절반 가까이 줄였고,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과 미국은 미리 경고한 대로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에 들어갔으며, 주요 7개국(Group of Seven: G7) 정상들은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만나 주요 8개국(Group of Eight: G8) 정상회의를 비롯한 주요 국제회의체에서 당분간 러시아를 배제하기로 결의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가 북한 비핵화 문제 및 한국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떠한 배경에서 촉발되었고 이것이 동아시아 전략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3월 21일 신범식 교수(서울대)를 초빙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교수는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의 전략적 계산방식을 설명하고, 이번 사태가 동아시아 전략환경에 미칠 파급효과를 분석한 뒤, 한국에게 주어진 과제를 정리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전략적 의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탈냉전기 들어 수세적으로 밀리기만 했던 러시아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사건”

 

이번 우크라이나 크림사태를 러시아의 국내정치적 요소가 작동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에 비해 푸틴의 국 내 지지기반이 다소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부적 불안정 요인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 어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주요 서방 국가들이 푸틴의 공세적 행보에 대해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경고하고 나선 상황에서 크림병합은 지나치게 많은 경제적 비용 지불을 감수하는 선택이었다.

 

이번 사태는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러시아 내 축적된 피해의식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전모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 우선, 냉전 종식 이후 국제사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미국이 러시아와 관계 개선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 지 않았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 시기 급격히 틀어진 미러관계를 복원하려는 관계재설정(reset) 노력이 오 바마(Barack Obama) 정부 1기에 시작되었지만, 정작 러시아가 희망 한 국제사회 내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 및 역할 회복요구에 대해 미국은 끝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것이 푸틴 3기와 오바마 2기 들어 양국 정상간 감정 적 대립과 맞물렸다. G8 정상회담,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정상회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 체(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담 등에서 푸틴과 오바마는 서로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미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 기밀문건을 폭로한 스노든(Edward Snowden)의 망명을 러시아가 받아 주자 미국은 러시아가 예민해 하는 동유럽 미사일방어체제(missile defense: MD) 구축을 재추진하며 맞서는 등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동유럽과 발트해 3국을 상실했는데, 이후에도 서방세계는 멈추지 않고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EU 및 나토를 동원해 계속해서 동쪽으로 확장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까지 이른 것이다. 즉,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탈냉전기 들어 계속해서 수세적으로 밀리기만 했던 러시아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핵심이익지역에 해당된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동유럽국가들과 러시아 사이 의 전통적 완충지대이자, 지경학(geo-economic) 차원에서도 유럽으로 향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가 모두 지나가는 매우 중요한 지역일 뿐 아니라, 역사•문화•인종적으로 러시아에 매우 가까운 형제국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를 상실한 다는 것은 서방국가들과 군사적인 차원에서 직접 경계를 맞대게 됨을 의미하고, 유럽국가들과 보다 용이하게 접촉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Adolf Hitler)의 러시아 침공 등의 역사가 보여주듯,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안보를 지켜온 것이 넓은 영토가 선사하는 군사적 차원의 깊은 종심(縱深)의 문제였음을 기억할 때 서방세력에 우크라이나가 편입되는 것이 러시아에게 어떤 안보불안을 초래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어떤 학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급소’라고 주장하 기도 한다.

 

크림반도는 군사안보전략 차원에서 러시아에게 사활적 이익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크림반도는 제정 러시아 시기 부터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부동항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남부전선에서 러시아의 주력 해군력인 흑해함대를 운 영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다. 이처럼 중요한 군사적 거점을 상실한다는 것은 러시아의 남부벨트에 대한 포괄적 영향 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발생하는 전략적 공백은 역사적으로 중동 혹은 유럽 강대국들의 침입으로 이어지곤 했다. 따라서 크림반도의 상실은 러시아의 서부와 남부에서 안보취약성이 동시에 증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사활적 이익이 걸려있는 지역이다.

 
푸틴의 중장기 전략기조

 

“러시아는 단순히 자국의 강대국화를 추진한다기보다 국제정치 질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국가전략 차원에서 이제까지 푸틴 대통령이 추진해온 정책들을 살펴보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단순히 ‘수세적 대 응’의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집권시기를 아우르는 푸틴의 전반적인 정책기조는 소련의 붕괴 이후 무너진 러시아의 국가질서를 회복하고,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러시아 사회는 규범의 혼란, 극단적 이념의 충돌, 지방정부의 독립성 증대에 따른 중앙정부의 약화, 탈법적 수단을 동원해 비대 해지는 재벌(Олигархи, 올리가르히)의 정부 내 과도한 영향력 확대 등 ‘잃어버린 10년’으로 요약되는 극도의 혼란 상태 에 있었다. 이를 마감하고 국가질서 및 정상성을 회복한 지도자가 푸틴이었다. 민주주의보다 안정을 우선시하여 러시아 강대국화의 초석을 마련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는 70퍼센트 밑으로 내려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압도적 이었다.

 

푸틴 1기 대외정책은 국제사회 내 무너진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졌다. 유럽과 관계를 회복할 때 에도 국력차원에서 러시아가 약화된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러시아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사활적인 국익을 정의하고 보호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유라시아 지역의 구소련 국가들과도 양자관계, 소지역주의, 독립국가연합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CIS) 틀 등을 활용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지킬 수 있는 다층적 수단을 확보했다. 이 시기 미국과 관계개선도 시도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대미전략 차원에서 긴밀하게 협력 하여 국제사회 내 균형자(balancing power)로서 일정한 지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푸틴 2기에 이르러서는 1기의 시도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 핵심 국익이 걸려있는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유라시아 지역 내 미국의 군사•외교적 영향력을 축소 및 격퇴하는데 성공했 다. 천연가스를 내세운 에너지 외교로 유럽-러시아 관계 또한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푸틴 3기 들어 나타난 러시아 대외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감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작년 예고 없는 전군 동원 훈련과 군 준비태세 점검, 극동 및 동유럽 지역 러시아 군의 전략무기체계 강화, 중동사태에서 러시아의 외교력 과시, 북한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동북아 문제에서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목소리 표출 등이 이를 방증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푸틴 3기 들어 나타난 러시아의 향상된 자신감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이제 러시아가 국 제사회 내 다극적 질서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최근 진행되는 국제질서 및 규범 논쟁에서 새로운 균형자 역할을 하는 적극적 행보를 취할 것이라고 공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권의 원칙, 주민자결권,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등 최근 국제법적 원칙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다양한 논쟁에 러시아가 뛰어든 셈이다. 사실 과거 2008년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는 유럽연합이 코소보의 자치 의결권을 존중해 독립을 인정해 주었지만, 동일한 과정 을 거쳐 진행된 이번 크림사태에서 유럽연합은 정반대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 대해 러시아는 주권의 원칙과 국제주의적 개입 사이에서 명확한 국제법적 원칙이 수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 서방의이익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려는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나타난 러시아 외교정책이 단순히 자국의 강대국화를 추진한다기보다 국제정치 질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동아시아 전략환경에 미치는 파급효과

 

“미-러, 유럽-러 관계가 악화되면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유연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 줄어들어”

 

러시아 외교가 이제까지 보여준 흐름을 살펴보면, 미국 및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보다 유연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푸틴 3기 들어 러시아는 축적된 자신감을 바탕으로 반드시 중국과 일치하지 않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주변 동맹국들은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도모해 북한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동아시아 전략 차 원에서 북-중-러 북방삼각 대 한-미-일 남방삼각의 대립구도를 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 나 사태로 러시아가 다시 미국 및 유럽과 대립각을 세우며 중국과 밀착할 수 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이는 직간 접적으로 동아시아 전략환경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남길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이제까지 공식적인 차원에서 러시아를 적국으로 상정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러시아를 다시 적국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미국이 해당 지역에 더 많은 전략자산을 투사 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태 재균형(rebalancing) 정책 추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전략적 자유재량의 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미중 주요 2개국(Group of Two: G2)시대라고 하지만 실제 미-중-러 전략적 삼각관계 차원에서 국제정치 양상을 살펴보면, 유럽과 유라시아에 서는 미러관계가, 동아시아에서는 미중관계가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여 지역마다 다른 동학이 작동함을 알 수 있 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연한 플레이어가 아닌 중국에 경도된 행태를 보일 경우, 중국은 대미관계의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중국이 얻어내려고 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는 셈이 된다.

 

일본은 아베(安倍晋三) 정부 들어 동북아에서 러시아 카드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있었는데 이것이 모두 어려 워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아베는 수상이 되고 나서 푸틴과 5차례의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 물론 양국간 영토분쟁 문제도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 및 에너지 협력 등과 같은 다양한 러일협력을 통해 동북아에서 러시아를 대중국 견제 카드로 활용하고자 하는 계산이 있었다. 이러한 구상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모두 어그러 진 셈이다.

 

북한에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매우 심각한 우려를 안겨주었다.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1994년 부다페스트 합의를 통해 핵을 포기하고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번에 러시아에 제대로 맞서지도 못하고 영토 일부를 상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은 궁극적으로 국가안보를 담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본다. 더욱이 작년 말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핵우산을 제공해주기로 했는데, 이것이 실제 크림공화국 의 러시아 병합 과정에 어떠한 억지(deterrence)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은 더욱 부정적인 메시지를 북한에게 던 지고 있다. 결국은 핵무기 개발과 같은 자구책을 통해서만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북한 정권 내에서 더욱 확 고해질 것이기 때문에 향후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과제

 

“다양한 종류의 삼자협의 채널을 구축하여 중첩적 네트워크를 건설함으로써 북-중-러 북방삼각 대 한-미-일 남방삼각 대립구도의 경직성 극복”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은 한-러-일, 한-중-러, 남-북-러 등 다양한 삼각협력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수립되는 중첩적 네트워크가 북방삼각 대 남방삼각이 대립하는 경직된 동북아 지역 구도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한일관계가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한일관계가 경직되면 한국이 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 조합 구상이 상당히 제한 받게 된다. 한일관계 경직성을 풀어내는 것에서부터 동북아 지역 대립구도 완화 노력을 시작해 야 한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The 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으로부터 중견국 외교 연구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는 국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동영상 인터뷰 형식의 스마트 Q&A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현안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원고는 EAI 아시아안보연구센터 김양규 연구원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전문가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스마트 Q&A를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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