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드 아가왈(Vinod Aggarwal) 교수는 현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정치학과 교수, 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및 버클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연구소(Berkeley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Study Center: BASC)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아가왈 교수는 스탠포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5월 말 선단양(沈丹陽) 중국 상무부 대변인이 중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가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6월 미중정상회담을 통해 시진핑(习近平) 주석이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에게 TPP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를 요청함에 따라 지역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네트워크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동안 중국은 TPP를 미국의 “아시아 회귀”(return to Asia) 전략의 핵심, 곧 대중국 견제용 경제동맹체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을 중심으로 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한 중국이 TPP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 표명을 한 것을 두고 미중 신형대국관계(new pattern of relationship between the great powers)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보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동아시아연구원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의 비노드 아가왈(Vinod Aggarwal) 교수를 초빙하여 동아시아지역 FTA 네트워크 향방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미중관계와 동아시아 FTA 네트워크의 향방

 

“TPP가 대중국 봉쇄정책의 일환이라는 주장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 : TPP는 미국 주도 하에 시작된 다자 FTA 아니고, FTA는 견제 정책의 수단이 될 수 없어”

“중국은 중단기적으로 TPP에 가입하기 어려울 것 : RCEP이 동아시아 FTA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고 TPP는 보다 높은 수준의 FTA 모델로 남을 것”

“동아시아지역 내 지나치게 많은 FTA 제도들은 궁극적으로 효율성을 감소시킬 것”

 

TPP를 대중국 견제(balancing) 정책의 수단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째, TPP는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 등 소위 태평양 4개국(Pacific Four: P4)간 다자 FTA에서 시작된 것으로 미국 주도로 출범한 체제가 아니다. TPP는 위생 및 검역(sanitary and phytosanitary), 정부조달(government procurement),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 등을 포함하는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규범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으로서도 그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둘째, FTA 네트워크는 동맹과 성격이 전혀 다른 경제제도로 봉쇄나 포위 또는 견제와 같은 안보 개념과 무관하다. 경제-안보 연계(economy-security nexus)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FTA가 대중국 포위정책이나 견제정책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미국이 자동차와 같은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캐나다, 멕시코,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동맹국들의 TPP 가입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경제네트워크와 안보동맹은 다른 차원의 논리가 작동한다.

 

중단기적으로 중국이 TPP에 가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가입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 스스로 TPP 표준을 준수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정부조달의 문제에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에 가입할 때 약속한 조치들조차 이행하고 있지 않다. 단기간 내 중국이 TPP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의 FTA 네트워크는 RCEP을 중심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고, TPP는 지역 내 보다 높은 수준의 무역네트워크로 유지될 것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 무역네트워크는 RCEP과 TPP가 병존하면서 별도의 무역 표준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개 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 내 점증하는 여러 형태의 제도들은 궁극적으로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연선택과 같은 진화론적 가정을 토대로, 다양한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제도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제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분석이다. 조직의 관성이 작동함으로 인해 한 번 형성된 제도는 잘 사라지지 않는다. 일례로 “BIS 비율” 등으로 친숙한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의 경우, 1차 대전 후 독일의 전쟁 배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이지만 배상 문제가 마무리 되고 난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구의 역할을 끊임없이 재정의하며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RCEP이 TPP보다 낮은 수준의 자유화를 규범으로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TPP에 흡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러한 제도적 관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역 내 다양한 FTA 네트워크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복수의 규칙이 공존하는 복잡한 ‘요식체계’(bureaucracy)를 야기하여 행위자들 사이의 거래비용을 증대시키고 궁극적으로 체제 비효율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아시아 패러독스와 유럽 모델의 함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증대가 평화로 이어진다는 명제는 신화 : 아시아 패러독스는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

“유럽 모델은 소련이라는 압도적 안보위협의 존재로 인해 가능, 현재 동아시아에 적용하기는 어려워”

“한국, 중국, 일본이 정치안보 이슈와 경제 이슈를 분리(de-linkage)하지 못하면 세계 FTA 규범 설정 경쟁에서 뒤쳐지게 될 것”

 

국가들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고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증대된다고 해서 이들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경제영역에서 폭발적인 발전을 이룩해 나가고 있지만 양국 사이에는 정치•안보•문화적인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공존한다. 즉, 아시아 국가들 간 관계가 경제적인 차원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적 이슈 영역에서는 갈등과 충돌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를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럽 모델이 성공한 것은 소련이라는 압도적 안보위협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유럽통합은 소련과 공산주의 팽창이라는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적 토대 위에 진행된 것으로 경제-안보 연계가 제대로 작동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는 관세무역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제24조가 금지하고 있는 특정 영역에서의 무역 자유화 조치라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추진된 바 있다. 이는 안보적인 고려에서 유럽의 통합이 필요했던 미국이 전략적 판단 하에 유럽에게 예외적인 조치를 허용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냉전시기 소련과 같이 지역 내 국가들이 공유하는 압도적인 안보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동아시아에서 유럽 모델과 같은 식의 경제-안보 연계가 작동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중국•일본이 무역이슈를 정치안보 이슈와 지나치게 연계시켜 정치안보의 논리로 무역협력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 이들 국가가 직면하게 될 불이익은 자명하다. 동아시아지역 무역네트워크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 다른 지역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사이의 FTA 논의는 계속해서 진전될 것이고, 이는 FTA 네트워크의 새로운 규범과 표준이 재설정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지역 국가들이 소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안보-경제 이슈의 분리를 이뤄내지 못하면 동아시아지역 국가들은 세계 무역질서 발전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규범을 제정하는 위치(rule setter)가 아닌 따라가는(rule follower) 후발주자의 지위를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것이다.

 

한국의 전략

 

“중견국이 경제네트워크 차원에서 중요한 변화를 주도한 사례 많아”

“중견국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창출이 핵심적, 그러나 인정(credit) 받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결과 중심의 실리적인 접근법으로 국익을 도모해야”

 

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와 같은 베네룩스 3국이 유럽통합 과정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나, 최근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가 주도한 TPP가 아태지역에서 새로운 무역네트워크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경제네트워크 차원에서는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이 핵심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가 많다. 이론적으로도 국제정치 질서를 강대국 중심으로만 이해하는 현실주의의 한계를 넘어 신자유주의나 구성주의의 연구들은 중견국이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물리력으로 강제(coerce)할 수 없는 중견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력(intellectual force)에 기반한 대안적 아이디어 창출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중견국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추동 세력은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중견국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입안자로 인정받는 데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아이디어로 인해 창출되는 체제 변화의 결과 궁극적으로 자국이 얻게 될 장기적인 국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는 국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동영상 인터뷰 형식의 스마트 Q&A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현안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원고는 EAI 아시아안보연구센터 김양규 연구원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전문가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스마트 Q&A를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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