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은 일본이 미일동맹 강화, 동지국 연대, 지구 남반부(Global South)와의 관계 강화를 외교전략의 3대 축으로 설정하여 미국 리더십의 상대적 쇠퇴에 대비하는 한편 중국의 질서 변경 시도를 견제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또한 한국은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계기로 동지국의 반열에 올랐으며, 일본은 한일관계를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건축하는 기제로 삼고자 한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한일 양국이 미중 간 경제 분단을 회피하려는 흐름이 유지되도록 노력하여 재세계화를 유도하고, 정상 간 신뢰를 넘어선 한일관계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기능적 협력과 역사문제 협력의 병행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을 제언합니다.

1. 들어가며

 

2023년 한국 외교가 거둔 최대 성과 중 하나는 한일관계 개선일 것이다. 지난 10년 간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겪으며 좀처럼 경색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한일관계는 3월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관련 해법으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면서 완연한 해빙 무드를 맞이하였다. 양국 정상은 사상 유례없이 7회의 만남을 이어갔고, 정부 간 교류도 급격히 늘어났다. 민간 교류 역시 관광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이전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였다. 양국 정부가 ‘신뢰의 위기’에 빠져 사사건건 대립하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이다.

 

이러한 관계 개선의 결실은 8월 한미일 3국 정상회담과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나타났다. 향후 한일 양국은 미국을 매개로 해마다 최소 1회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외교, 국방, 상무(산업), 재무, 국가안보실 장관급 회의를 3국을 순회하며 개최하며, 3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접근을 조정하는 차관보급 대화체를 가동할 계획이다. 협력 의제 역시 기왕의 북핵-미사일 대응을 넘어서 역내 안보, 경제 번영과 복원력, 규칙기반 국제질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 여러 분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2024년도 한일 양국의 만남은 상당 부분 미국을 낀 한미일 3자틀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정책 현안 역시 역사 문제와 같은 한일 양자 간 고유의 문제가 아닌 지역적, 지구적 수준의 쟁점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난 1월 6일 한국과 일본은 워싱턴에서 개최된 차관보급 연례 3자 인도-태평양 대화에서 지역 수준의 쟁점을 논의하였다.

 

2023년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자협력의 신시대(new era)를 선언한 해였다면 2024년은 실질적 협력과 구체적 성과가 이어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과 책임은 오히려 삼각의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가 지게 될 것이다. 즉, 한미일의 신시대는 한일 신시대를 요청한다. 양국이 한편으로 역사 문제와 같은 고유의 양자관계 해법 마련에 노력하면서 한일관계를 한반도, 지역, 지구적 쟁점을 다루는 전략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국과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 중국 · 베트남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인도 · 러시아 · 멕시코 ·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등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지만 한일관계에는 어떤 수식어도 없다. 2024년을 한-일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원년(元年)으로 만들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2. 일본의 국제질서 인식: 역사적 전환점

 

2023년 기시다(岸田) 정부는 공식 문서, 수상과 외무상의 연설 등을 통해 국제질서의 구조적 흐름에 대한 인식과 자국의 전략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별히 흥미로운 문건은 1월 13일 존스홉킨스 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의 기시다 연설이다(岸田総理大臣演說 2023a). 그는 일본 외교가 구조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도전을 국제사회가 “역사적 전환점”에 놓여 있다는 데에서 찾고 있다. 이후 모든 공식 문건에 등장하고 있는 역사적 전환점은 세력균형의 거대한 변화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를 말한다. 비근한 예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의 상대적 쇠퇴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 국제질서, 즉 세계화와 상호의존의 심화를 추구하는 국제질서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을 보증하지 못함을 명백히 보여준 증거라는 것이다. 이로써 “탈냉전기 세계는 완전히 종식”되었고, 국제사회는 “국가 간 격렬한 경쟁이 펼쳐지며 협조와 분단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시대에 진입”하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발언은 미국이 더 이상 지구적 리더십을 행사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표출한 것이다. 이미 일본이 인도-태평양 개념을 도입하여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이란 전략 공간을 상상한 것은 이런 인식의 일단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아베(安倍) 수상은 팽창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과 동맹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부상하는 인도를 끌어안고 호주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친 바 있다. 안으로 군사력 증강, 밖으로는 미일동맹과 FOIP 쌍두마차를 이끌고자 한 것이다.

 

기시다 수상은 한걸음 더 나아가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위해 GDP 2% 수준의 군사비를 마련하는 것이 외교력 강화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언급한 후 동지국(like-minded country)과의 결속 강화, 그리고 “지구 남반부(Global South)”와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였다. 미국 청중 앞에서 미국 혼자서는 지구 질서 재건축이란 역사적 전환이 불가능하므로 일본과 협력해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 일본은 동지국과 지구 남반부와의 협력, 특히 미래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인도와 아세안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기시다 정부는 당면한 안보 및 경제 현안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로 가치와 정체성을 공유한 동지국과의 결속과 연대를 강조하고 그 중심으로 G7을 지목하였다. 일본에게 G7은 미일동맹과 동조화란 측면에서 용이한 대상이기도 하고 또 5월 G7 의장국으로서 히로시마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이점이 있기도 했다. 기시다 수상은 유럽과 아시아 간 안보적 연계성을 강조하며,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일본, 미국, 유럽이 힘을 합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G7을 역내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를 제어하는 주요 기제로 삼고자 했다(岸田総理大臣記者會見 2023).

 

한편, 3월 20일 기시다 수상은 인도를 방문하여 FOIP 개정판인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을 위한 새로운 플랜》을 공표함과 동시에 거행한 연설 “인도-태평양의 미래: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을 위한 새로운 플랜, 필수불가결한 파트너인 인도와 함께”에서 세력균형의 거대한 변화를 상징하는 인도의 부상을 강조하면서, 지구 남반부의 성장을 다시 한번 언급하였다(岸田総理大臣演說 2023b). 그는 현재와 미래의 국제질서가 미중 전략경쟁이나 신냉전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피력하였다. “일극, 이극[양극], 다극 등...단일 혹은 복수의 대국에 의한 극(極)”이란 단어가 국제질서의 적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다양화”란 개념을 사용하여 국제사회는 “지구 남반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의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등한 파트너십”을 추구하고 “지구 거버넌스의 책임 분담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분히 지구 남반부 리더십을 장악하고자 하는 인도를 의식한 발언이지만 일본 내 정책 서클에서 대두되는 분위기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난하는 성명에 찬동하는 국가가 세계 인구의 33%를 차지하고 민주주의 정상회의 선언에 서명한 국가가 73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리고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이런 추세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미국과 서방 위주 외교 노선을 재고해야 한다는 인식 — 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실 일본이 지구 남반부 외교의 관문 혹은 시금석으로 생각하는 대상은 아세안이다. 기시다 수상의 표현에 따르면 아세안은 지구 남반부와의 관계 강화에서 일본에게 “가장 가깝고 중요한 동료들”이다. 아세안 지역은 세계 경제의 성장센터이며 일본의 해양 운송로뿐 아니라 FOIP의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역이다. 중국은 모든 아세안 국가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아세안 전체 수출의 16%, 수입의 24%를 점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중국에 대한 아세안의 과도한 의존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중 대립에 말려들지 않도록 하는 미묘한 외교전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일본은 교류 50주년을 맞아 경제협력 비전을 제시하고 지난 12월 17일 일-아세안 우호협력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아세안과 경제협력의 “심화와 확대”, 전략적 파트너십의 구축을 통한 “미래의 공창(共創: 공동 창조)”을 선언하였다(岸田総理大臣演說 2023c).

 

일본의 동지국 연대, 지구 남반구와의 관계 강화가 중국 견제의 수단으로서 고려되는 것만은 아니다. 2022년판 《국가안전보장전략》이나 2023년판 《자유와 개방의 인도-태평양 새로운 계획》에 드러나 있듯 일본의 전략적 목표는 국제질서가 반드시 자유주의 규범과 규칙에 기초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자유와 법의 지배, 주권과 영토적 통일성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무력의 불행사 등이 준수되는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자국의 체제와 이념에 맞지 않더라도 질서가 규정하는 경쟁의 기본 틀과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 부상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새로운 국제 규범, 규칙, 질서를 조성해 가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 반대한다는 뜻이다. 기시다 수상은 중국이 야기하는 도전 요인에 대해 자국의 종합국력과 동맹국 · 동지국과의 연합에 의해 대응해야 한다고 단언하면서도 중국과 함께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고 인류 공통의 과제에 협력하는 “건설적이고 안정적 관계” 구축을 지향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岸田総理大臣演說 2023a).

 

3. 일본이 보는 캠프 데이비드

 

작년 상반기 연설과 공식 문건에서 드러난 일본의 전략 구도에서 한국은 사실상 부재했다. 일본은 한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을 만큼의 동지국 지위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한미일 협력을 동지국 간 소다자 협력의 주요 사례로 꼽고 있으나 일본은 이를 경원시해 왔다. 악화된 한일관계 속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협력을 주저한 까닭이다. 물론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여러 관계 개선 노력의 결과로 한국 관련 기술은 다소 변화하였다. 2022년 1월 외무대신 국회 외교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국가 간 관계의 기본...한국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촉구한다”라는 기술로부터 2023년 연설에서는 “한국은 국제사회에 있어서 여러 과제에 대응하여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한 우호협력관계의 기반 위에서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회복, 더욱 발전시킬 필요...한국정부와 긴밀하게 의사소통하고 있다”고 기술하여 진전된 반응을 보였다(林外務大臣演説 2023).

 

2023년 상반기 상황이 급변하여, 한미일 협력이 급부상했다. 기본적으로 한미일 협력에 추진 동력을 제공한 주역은 미국이다. 2010년대 들면서 미국은 중국을 다루는 지역 전략이란 틀에서 한미일 협력을 정의했으며, 한미일 협력을 지역 아키텍처의 주요 부속품으로 인식했다. 특히 미국의 지역개념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교체되면서 지역전략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성격을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의 전략적 가치를 가중하였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과 한국의 책임과 역할을 격상하여 자국의 리더십을 견지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곧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한일 양국에 가하는 압력의 정도가 증가함을 의미했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2월 공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듯 부채살 동맹 네크워크에서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 간의 협력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명시적으로 촉구하였고, 인태전략의 10대 행동계획(action plan) 중 하나로 한미일 삼각협력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나아가 동맹국과 동지국을 총동원하는 “통합억제” 체제를 구축하고자 바이든 정부는 도쿄와 서울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였다. 이에 부응하는 정치적 결단은 한국 정부가 먼저 내렸다. 윤석열 정부는 최우선 외교 과제로 한미동맹의 강화를 설정하고 그 일환으로 한미일 협력과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하였다. 2023년 3월 제3자 변제안이란 해법을 제시한 이래 한일관계 개선이 진전되어 한미일 협력 강화의 여건이 마련되었다.

 

일본이 한미일 협력을 전면 추진한다는 것은 곧 한국을 동지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음을 뜻한다. 동시에 이는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건축하는 기제로 삼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기시다 정부는 역사적 전환점에서의 일본 외교전략 비전으로서 미국과의 동맹, 한미일(그리고 G7)을 중심으로 하는 동지국 협력, 그리고 지구 남반부와의 협력 등 3대축을 제시하였고 여기에 한국을 포함한 것이다.

 

4. 미중 전략경쟁 속 한일 협력

 

모두에 언급하였듯이 2024년 한일관계의 많은 부분이 한미일 관계 틀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구체화하는 정책 과제가 한국의 대일정책의 주요 대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캠프 데이비드란 작품의 감독과 주연은 미국, 공동주연은 일본이며 한국은 조연이란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이 수많은 삼자 회동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두 공동주연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다.

 

먼저, 한일 간 안보 협력은 이미 상당 부분 복원되었다. 일본과는 한반도 차원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공동 대처에 이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하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메커니즘을 추진하며, 북한 인권 개선 및 사이버 불법행위 대처에도 공조를 이어 나갈 것이다.

 

안보 분야의 최대 쟁점은 한미일의 전략목표와 관련된 것이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시야에 둔 억제체제를 강화하고자 한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 도전에 공동대응, 예컨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불법적인 해상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위”을 명기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하는 등 중국을 겨냥한 안보협력을 명시하였다. 여기서 쟁점은 미국이 자국의 대중 전략 목표와 한미일 협력을 동조화하려는 경우이다. 이는 중국의 군사적 현상 변경 시도를 억제하기 위한 동맹국 간 군사 협력 강화이지만, 여타 영역으로의 파급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기술 혁신에 따라 육해공, 우주, 사이버, 인지(認知) 영역에 이르는 전 영역에서 전쟁 기술은 압도적으로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강한 군사안보적 함의를 갖는 기술 혹은 민군겸용기술에 대한 대중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특히 기술의 제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나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은 두 동맹국에게 기술과 투자 협력뿐만 아니라 수출 및 투자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력적 강압을 시도하는 경우, 혹은 신장 위구르에서 현저한 인권 탄압을 감행하는 경우,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 네트워크를 강요할 수 있다. 이렇듯 한미일 협력이 구체적인 정책 쟁점으로 제기되는 경우 국내적 지지는 어떠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실시한 한국민의 동아시아인식조사에서 한미동맹의 범위 및 역할 확대와 관련된 여론을 참고해 보면, 한미일 협력에 여론의 지지 양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2023년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동맹이 북핵 위협 대응을 넘어 지역 및 지구문제 해결에 역할을 하는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해 81.8%란 압도적 다수가 지지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대만 해협에서 군사충돌이 생겨 개입을 요청 받을 때, 첨단 기술 영역에서 중국을 강력히 견제하는 정책에 동참을 요구 받을 때,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는 공동노선에 참여를 요청 받을 때, 국민들의 찬성과 반대는 엇비슷하게 나뉘었다(손열, 김양규, 박한수 2023).

 

그림 1. 동맹과 한국의 역할 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한미동맹의 경우가 이러할진대 일본이 포함된 한미일 협력이 북핵 대응을 넘어서서 지구적, 포괄적, 전략적 협력으로 확대되는 경우, 한국 국민이 강고한 지지를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핵심 과제는 대중국 정책 조정이다. 한미일이 중국 견제를 중심으로 하는 배타적인 안보체제 구축으로 비추어지는 경우 북중러 간 연대가 강화될 것이다. 사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은 군사안보, 경제, 첨단기술, 지구적 · 초국가적 과제 등 폭넓은 영역에서 정책 협력을 제시하고 있는 동시에 국제질서의 새로운 비전 즉, 보편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증진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일 협력은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동맹 혹은 아시아의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를 지향한다기 보다는 규칙기반 질서를 지키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모범을 창출하는 소다자 협력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전재성 2023). 이런 견지에서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실 대만 유사시 대응, 경제 안보 차원에서의 공급망 복원력 확보, 기술 안보 등 사안에서 한일 양국의 입장은 수렴 여지가 크다. 양국은 대만과 중국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충돌의 와중에 휘말릴 안보적 취약성을 공유하고 있고, 핵심 기술의 대중 통제를 둘러싼 미국의 강압적 태도, 그리고 대중 및 대미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강압 등에 대한 상호 대응 체계 구축 노력과 함께 미국의 과도한 통제에 대해 더불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전략적 노력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정상회담 이후 전략적 조정기를 모색하고 있으며 미중 대립에 따른 경제적 분단을 회피하려는 유럽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미중 경제관계의 완전한 디커플링보다는 디-리스킹(de-risking) 혹은 위험 축소와 다변화(diversification)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미국이 벗어나지 않도록 한일 양국은 미국이 과잉안보화를 자제하고 첨단 기술 분야에서 스스로 표방한 “마당은 작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원칙을 준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국가안보와 관련 깊은 민군겸용기술의 범위, 산업보조금 기준, 국가안보 예외규정 등 정립, 분쟁 해결 절차 수립 등 구체적인 협력 의제의 논의가 필요하다.

 

한편, 한일 양국은 중국이 안보화를 명분으로 — 미국의 자국 견제조치 공세에 대항하여 자체 역량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 보호주의 장벽을 설정하고 핵심 광물 분야의 관리무역(수출 통제)을 강화하는 경향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경제 세계화”를 주장하며 미국의 대중정책을 소재로 “경제, 무역관계의 정치화, 무기화, 안보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그 이면에 중국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불공정 관행이 엄존해 있다. 한일 양국은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 해소를 위한 공동 노력과 함께 국제 규범과 규칙 제정을 통한 재세계화의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5. 양자관계 개선 노력

 

캠프 데이비드를 이끈 한일 관계 개선은 진행형이지만 여전히 상호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관계 개선의 이면에는 윤 대통령의 전향적 자세와 이에 따른 양국 정상 간 개인적 신뢰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일본측은 윤 대통령이 3월 제3자 변제안을 강력히 지지한 점, 5월 G7 정상회담에서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법의 지배 등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의 연대 강조, 8월 광복절 기념사에서 한일관계를 “가해자 vs. 피해자” 구도가 아닌 “국제사회에서 자유를 수호하는 파트너”로 규정한 점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의 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동지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기시다 수상은 10월 정기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윤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관계를 지렛대로 하여 폭넓은 연계를 심화해 왔다”고 말하여 개인적 관계의 역할을 확인해 주었다.

 

이는 역으로 관계 개선의 취약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각 지지도가 매우 낮은 기시다 정권이 퇴진하는 경우, 혹은 윤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경우, 한일관계는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여론은 윤 정부가 전향적 조치를 취했으니 일본측이 화답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일본측이 역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 집권 자민당은 공식 사과 담화 이후 “더 이상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골드 스탠다드를 세웠다. 이는 2015년 전후 7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아베 수상이 국제 여론을 의식한 공식 사과 담화를 발표하는 한편 전후세대가 인구의 80%를 상회하는 현실에서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미래세대에게 더 이상 과거의 사과 책임을 부과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계승하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사과는 없다”는 자민당 정부의 태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강제동원 해법 과정에서 보았듯이 “한국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일본의 태도 역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동원 소송의 피고 기업은 한국 정부가 요청해 온 정부 산하단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혹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설립한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에 후원을 하지 않고 있고 한국 기업의 자발적 참여 역시 진전이 없다. 이에 따라 피해자지원재단은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를 막는 변제의 주체로서 승소한 피해자(원고)에 배상금에 상당하는 액수를 지불할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승소한 피해자 15인 중 11인이 변제안을 수락하여 배상금 상당액을 수령하여 약 25억원이 소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12월 21일 승소한 11인의 배상을 포함하여 현재 계류 중인 소송이 약 60건에 이르므로 판결이 진행될수록 재단의 재원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그 동안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역사 현안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 되었다.

 

2024년 한국의 대일정책은 한편으로 안보 · 경제면의 기능적 협력을 확대해 가면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가는 한편, 역사 현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양국은 기능적 협력을 확대하고 심화하여 역사인식의 화해를 향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역사문제 협력과 기능적 협력을 병행해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제를 안고 있다. ■

 

참고 문헌

 

손열. 2023. “미중 전략경쟁 속의 한일관계, 2012-2023: 역사갈등, 외압, 전략적 동조화.” 『일본연구논총』 58: 125-147.

 

손열, 김양규, 박한수. 2023. “2023 한미동맹 국민인식 분석: 포괄적 동맹에 대한 기대와 우려.” EAI 이슈브리핑. http://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118&board=kor_issuebriefing (검색일: 2024. 1. 10.)

 

전재성. 2023. “한미일 협력 현황과 향후 과제.”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2023년 후기 학술회의 (2023. 11. 2.).

 

岸田総理大臣演說. 2023a. “ジョンズ・ホプキンス大学高等国際関係大学院における岸田総理スピーチ”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statement/2023/0113speech.html (검색일: 2024. 1. 10.)

 

岸田総理大臣演說. 2023b. “岸田総理大臣のインド世界問題評議会(ICWA)における総理政策スピーチ”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statement/2023/0320speech.html (검색일: 2024. 1. 10.)

 

岸田総理大臣演說. 2023c. “「信頼」に基づく「共創」により目指す「平和と繁栄」”(令和5年12月), https://www.mofa.go.jp/mofaj/files/100596239.pdf (검색일: 2024. 1. 10.)

 

岸田総理大臣記者會見. 2023. “G7広島サミット等についての会見.”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statement/2023/0518bura.html (검색일: 2024. 1. 10.)

 

林外務大臣演説. 2023. “第211回国会における林外務大臣の外交演説.” https://www.mofa.go.jp/mofaj/fp/pp/page3_003597.html (검색일: 2024. 1. 10.)

 


 

손 열_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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