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은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바이든 정부가 한정된 국가역량으로 중국 위협에 대응하는 동시에 유럽 및 중동의 여러 전장을 관리하고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진단합니다. 또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 간 선명성 경쟁, 유권자를 의식한 국내 정책 중시 등으로 인해 외교 정책의 적극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저자는 한국이 대외 전략과 국익을 명확히 정의함으로써 차기 정부에 대한 협상력을 키우고, 기후변화 등 초국가 위협의 시급성을 인식하여 국제 정세가 지정학 경쟁 일변도로 전개되지 않도록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 4년차 바이든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

 

2024년 바이든 정부가 추구할 외교정책의 큰 방향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안보보좌관이 2023년 10월 24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The Sources of American Power: A Foreign Policy for a Changed World”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Sullivan 2023). 바이든 정부는 지구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미국의 3기 외교정책을 정비하는 소명을 제시하고 있다. 자유주의 규칙기반 질서를 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미국 외교정책의 존립근거라고 할 때 2차 세계대전 직후의 1기 리더십, 탈냉전기의 2기, 그리고 이제 탈냉전기가 종식되고 역사의 변곡점에서 3기의 리더십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정학 경쟁과 초국가위협을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 요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지정학 경쟁은 강대국 간 리더십 경쟁과 비강대국의 편(안)들기 전략을 합친 것이고, 초국가위협은 22세기가 도래하기 전에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협이다. 기후변화, 보건위기, 핵전쟁, 신기술관리 실패 등 4대 초국가위협 중 하나라도 현실화되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초국가위협을 지정학 경쟁 차원에서만 다룬다면 지정학 경쟁을 할 수 있는 터전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바이든 정부도 초국가위협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지만, 다른 강대국보다 현명하게 주권의 덫(sovereignty trap)을 벗어날 것인가, 중요한 문제를 시급한 문제보다 더 위중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바이든 정부는 한 국가가 지구적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있다. 옳은 인식이다. 초국가위협은 물론, 지정학 경쟁에서도 동맹국과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 더 나아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과도 협력해야만 온전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로 세계를 가치진영화하는 시각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때, 4년차를 맞이하는 바이든 정부의 인식은 좀 더 넓은 지평을 가지게 된 모습이다. 날로 증가하는 지구적 공공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동맹, 파트너 국가들은 물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 그리고 경쟁 상대국인 중국, 러시아와 어떠한 협력을 이끌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국제정치는 반복의 역사라는 이론가들의 인식이 강하고, 탈냉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설계할 때 과거가 중요한 준거점이 되기도 하지만 미래의 국제정치는 경험하지 못한 현상들로 채워질 확률이 높다. 미국이 추구하는 지정학 경쟁과 이를 위한 국력 강화정책, 동맹 현대화 등의 노력은 지속되는 노력들이지만 초국가위협과 더불어 지구화 이후의 공급망 재편, 상호의존과 지정학 경쟁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 과거에 비해 강력해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존재 등은 새로운 정책 환경이다. 2024년 바이든 정부는 지난 3년 간 추진해 온 외교정책의 큰 틀과 세부 정책을 지속해 나가면서 미국 리더십의 기초를 다지려 하겠지만 새로운 도전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미국의 리더십은 물론,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2. 바이든 딜레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과 더불어 새해를 맞은 바이든 정부는 전쟁 수행 및 종식, 이후의 전후 처리의 과제는 물론, 이를 통해 향후 국제질서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두 전쟁은 향후 국제질서를 결정할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고, 가자지구 전쟁은 재편되는 중동 지역질서의 토대의 가능성을 묻는 전쟁이다. 두 전쟁 모두 강대국 간 직접 군사 충돌은 아니고 각 지역에 한정된 전쟁이지만 그 여파는 강대국 지정학 경쟁과 세계적 차원에서 막대하다고 본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20세기 냉전에서 미국과 소련이 직접 전투를 벌인 적은 없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냉전을 긴 평화(long peace), 혹은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고도 불러왔다. 그러나 냉전은 여러 지역에서 소규모의 많은 열전(hot war)들을 통해 진행되었고 많은 국가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며 대리전의 전선에 설 수밖에 없었다. 각 지역, 혹은 국가들 간에 내재된 지역적이고 본질적인 분쟁들이 미소 간 냉전적 대립과 연결될 때 갈등은 증폭되고 충돌은 대규모 전면전이 된 것이다. 한반도를 시작으로 베트남, 아프리카, 중미,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많은 열전들이 벌어졌고 이를 통해 미소 양국은 서로의 힘을 확인하고 대리전을 통해 세력균형과 영향권의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간의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과 중국 등 강대국들이 탈냉전 종식 이후 서로의 힘과 의지를 확인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개별 전쟁의 승패를 떠나 강대국들이 보이고 있는 전략적 목표와 정책 의지, 국내정치와 경제의 강건함 혹은 취약성,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공약의 견고성 등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열전들은 지구적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둘째, 바이든 정부가 과거 미국 정부들처럼 막대한 정책자원을 가지고 지구적 리더십 3기를 설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매우 달라져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나 냉전 종식 직후처럼 막대한 경제력과 확고한 군사력, 동맹국들의 강한 지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무엇보다 경쟁국들이 약화된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최근 아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프레드릭 켐프(Frederick Kempe) 회장은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하여 바이든 정부의 딜레마를 표현한 바 있다. 즉, 2차 세계대전 직후 혹은 냉전 직후와는 달리 미국이 세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조건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세계 GDP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주요 적대국들은 사실상 폐허가 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유럽조차도 힘을 잃고 있는 상태였고, 최근 부상하는 글로벌 사우스는 지금과 같은 정치적 힘을 갖고 있지 않았고, 지구적 차원의 산업화도 미국에게 유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조건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미국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수행하면서 막대한 지원을 해 오고 있지만 향후 미국의 국력이 이를 지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은 군사, 경제, 인도적 지원을 합해 우크라이나에 1,0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2023년 10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대만 지원을 위해 하원에 1,060억 달러에 달하는 안보예산을 제출했지만 우크라이나 지원분은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다.

 

비단 경제력뿐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진행 중인 전쟁들은 미국의 국방 기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방위산업이 무기 생산이라는 기초부문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도 전쟁을 통해 더 명확해지고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국방 예산 부족과 주요 국방부 획득 프로그램의 부실한 관리로 인해 미국은 주요 무기의 재고 문제, 전투 준비라는 전력 문제 등에서 한계를 보인다. 광범위한 제조업 기반이 공동화되면서 무기 생산 능력이 약화되었고, 특히 방위산업체들은 중국에서 시작된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전자 부품에서 갈륨 등 광물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들은 필수 하위 부품과 소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비 지원을 통해 현실화되는 문제점들은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밀유도 탄약 재고는 매우 적어서 미국이 태평양 분쟁에 휘말릴 경우 미군은 3~10일 이내에 탄약이 바닥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 원조를 받으며 생존을 위해 부족한 무기 비축량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고, 이스라엘도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국내 제조 능력에 대해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대대적인 확장 계획이 부실하고 필요한 예산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이를 토대로 국제안보질서의 재구축 틀을 마련하면서 지정학적 경쟁국과 국제사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것인지의 과제가 있다. 바이든 정부로서는 주변국의 주권을 명백히 무시한 러시아의 침공과 민간인을 포함한 희생을 불러온 하마스의 테러 공격행위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규칙기반 안보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원하는 최종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1991년 국경 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고 전쟁 피해 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불가입과 러시아에 적대적인 정권 변화, 현재 점령한 4개 지역 영토 인정 등을 원하고 있다. 작년 6월의 우크라이나 공세가 사실상 실패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언제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지 피로감과 회의론에 부딪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가 지속 가능할지 불명확한 상황에서 출구전략 없는 지속적인 전투는 미국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역시 실존적 안보위협에 대한 확고한 대처는 물론, 하마스의 완전 축출과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과 헤즈볼라가 주둔하는 레바논 지역에 대한 공격 등 확전 및 장기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향후 가자 지구의 거버넌스 문제, 더 나아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를 토대로 한 중동 데탕트 과제들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가자지구 전쟁의 미래를 놓고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 지원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동맹정책에서 적대국에 대한 공동 대처만큼 동맹 상대국에 대한 제지(restraint)를 중시하였고, 때로는 강압적 방법도 동원했다. 새로운 정책 환경 속에서 미국이 전략파트너 국가들에 대해 효과적이고 무리 없는 제지의 방법을 추구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미국은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투의 새로운 모멘텀을 찾아 러시아의 장기전 전략에 대비하고 유리한 조건 속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단기적 전세의 불리함 속에 서둘러 전쟁을 마무리하면 동맹과 전략 파트너 국가들에 대해 안보공약의 허약함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자국이 장기화되는 국제 분쟁에 지속 가능한 지원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경쟁국들이 갖게 되는 상황을 스스로 경계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단기적인 전쟁을 마감하고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두 국가 해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한 후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공존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아 나서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네타냐후 정권의 국내정치 사정을 헤아려가며 이스라엘과 관계 설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셋째, 미국의 국제질서 정립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는 중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대중 전략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4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대답은 중국과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경쟁이 군사적 충돌로 발전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과 다변화를 추구한다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전면적인 무역관계 및 투자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이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취득한 첨단기술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강압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첨단기술의 좁은 영역에서는 디커플링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적 충돌 방지 및 초국가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의 노력을 보여왔다. 작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했고, 특히 인공지능 기반 핵무기 경쟁의 규칙 설정 노력 등 미래지향적 노력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문제는 미중관계와 아시아의 안보에 핵심적인 열전지역의 관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1월 13일에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는 향후 양안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긴장 고조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물론 대만의 총통 후보들이 대만의 급격한 독립선언이나 중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표방할 가능성은 적고, 바이든 정부 역시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기존의 대만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 시도에 대한 명확한 억제가 중요하다. 이는 중국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명확히 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미국의 명확한 공약, 그리고 대만의 독립선언에 대한 반대 정책을 재보장(reassurance)하는 것도 포함한다. 현상유지를 위한 균형 있는 전략을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이러한 위기관리 및 대중 보장 정책이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의 유약함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및 가자지구 전쟁 역시 미중관계에 주는 함의는 크다. 미국이 지원하는 경제적 예산 규모나 무기체계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전쟁에서 중복이 존재하고, 이는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대만 사태와 관련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미국의 최대 불안정성이 미중관계이고, 여전히 대만 사태가 미국의 핵심 관심사라고 할 때, 유럽과 중동의 전쟁들은 중국에 대한 정책 집중도를 약화시키고, 유사시 가능한 무기와 전력에서 준비태세를 약화시킨다는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바이든 정부는 2024년에 두 개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면서 미래 안보질서에 긍정적 지표가 되는 전쟁 종식 및 전후 처리를 해야 하고,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에 대해 명확한 안보공약의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안보 평판을 유지하고, 경쟁국들에게도 미국의 군사력 및 동맹유지 의지에 대한 신호를 보내야 하는 과제에 처해 있다. 동시에 세계적 차원의 분쟁들을 고루 관리하면서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미국의 지구적 개입이 약화되는 새로운 정세 속에서 여러 지역의 고질적 분쟁이 전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이 최대의 경쟁 상대인 중국을 의식하면서도 여러 전장을 관리하고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유지할 수 있는 국력과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는가의 어려운 딜레마에 처해있는 것이다.

 

3. 트럼프 리스크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은 현재로서 높다고 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외교정책을 추구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내년도의 문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가 되어 바이든 정부와 외교정책 경쟁을 벌일 경우 올해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우선 미국의 정치양극화가 보다 근본적인 미국의 정치경제 양극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데에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정치경제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 역시 중산층의 부활과 제조업 활성화가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이라고 논의할 만큼 국내정치경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외교정책에 너무 힘을 쏟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동안 대략 75% 정도의 에너지가 외교정책에 사용되었다고 설명한 바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통령들이 외교정책을 위해 사용한 노력과 그 성과는 국내 유권자들에게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교정책의 성과나 진행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할 수 없는 외교정책 특유의 사정이 있을뿐더러 그 이득 역시 장기적인 구조적 상황에 걸쳐 있기 때문에 단기적 선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의 해에는 현직 대통령의 외교정책에서 적극성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될 수 있다. 1980년 카터 대통령이나 1992년 부시 대통령의 상황도 유사했는데 외교 정책에서 성과를 거두어도 국내 대통령 선거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도 다른 국가들처럼 국내정치 이슈, 특히 경제적 차원에서 인플레이션이나 고용률, 경제성장률 등이 유권자들에게는 중요한 요인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거시경제지표는 미국 경제가 잘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지표들과 유권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 간의 괴리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로 설명되어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이 2023년 8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등록 유권자의 4분의 1 미만이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응답했고, 미시간 소비자 심리 지수는 2009년 대침체가 한창일 때 보고된 수준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며,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여론조사에서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응답자의 비율은 2016년과 현재 사이에 약 절반으로 줄었다는 결과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는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불평등,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인한 높은 물가 수준, 저렴한 주택의 광범위한 부족, 인공지능이 양질의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를 포함하여 미래 경제 전망에 대한 믿음 상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의 문제를 바이든 정부가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하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 실정이라는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줄어들 수 있는 리스크는 존재한다.

 

둘째,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외교정책 공약과 경쟁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선명성 경쟁, 혹은 미국 우선주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우선정책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나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은 중국을 명확한 적국으로 인식하고 중국과의 관계 단절 및 강력한 억제를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한 반감은 물론 미국 원유 증산, 전기자동차 반대 전략 등을 추구할 것이고, 이는 기후위기라는 초국가위협에 대한 역행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을 더 위대하게”라는 공약은 미국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유권자들의 동향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유권자들도 외교정책에 더 민감해진다는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학교 여론조사센터(National Opinion Research Center: NORC) 공공문제연구센터가 작년 1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명 중 약 4명은 내년에 정부가 해결해야 할 외교 정책을 5대 주요 과제 중에 포함시키는 결과를 보였다(Weissert and Sanders 2024). 이는 작년에 실시된 여론조사보다 약 2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해외 개입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1년 전의 5%에 비해 20%가 이러한 의견을 표명했다. 공화당 지지자의 약 46%가 외교 정책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 이는 작년의 23%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민주당 지지자의 34%는 외교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1년 전의 16%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 역시 “국내정치적으로 옳은” 외교정책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 대한 선명성 경쟁, 대만에 대한 강한 지지 발언,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대한 소극적 태도,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양면성 등의 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셋째,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 대통령의 레임덕은 비단 국내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당선 시 추구할 대내, 대외정책의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을 경험한 많은 국가들은 현직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집중하면서도 차기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올해 선거에서 많은 국가들은 바이든 정부와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나 공화당과의 소통, 이들과의 관계 설정에도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와 같은 해징(hedging) 전략을 추구하는 많은 국가들을 상대로 외교정책의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대외적 어려움에도 처할 것이다.

 

4. 한국의 과제

 

바이든 정부가 처한 외교 정책의 다양한 상황과 관련하여 한국의 대미 정책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세계질서가 급변하면서 미국도 지구적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한미관계나 한미동맹도 그 속에서 내용상의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규칙기반 질서는 근본적인 도전에 휘말려 있고, 미국 혼자 이에 대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바라고 있다.

 

한국은 이제 신흥 선진국의 국력을 갖춘 국가로서 과거와 달리 보다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대미 관계를 추구할 수 있다. 미국이 탈냉전 30년 동안 건설하고자 했던 세계질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보다 개선되고 진화된 세계 질서의 미래를 위해 독자적인 비전을 갖고, 미국과 협력하여 나아갈 수 있다. 미국의 대중 전략과 글로벌 사우스 전략, 신흥기술 전략 및 초국가 위협 대처 전략 등 많은 부문에서 한국의 국익과 가치를 투여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한국 나름대로의 고민이 없이 한미동맹 강화의 큰 틀만을 유지하는 것은 양국 관계 모두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 각 주요 부문 간 한국의 국익을 장기적 차원에서 명확하게 정의하고 한미동맹을 질서동맹으로 발전시키며 미국과 보완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강대국의 지정학 경쟁의 향배도 중요하지만 초국가위협은 한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많은 국가들은 미중 지정학 경쟁보다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가위협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시급한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한국은 미중 경쟁 관계의 핵심 지역에 놓여 있기 때문에 초국가위협에 대한 시급성의 상대적 감도가 다른 국가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주권의 덫에 빠져 지정학 경쟁의 틀 속에서 초국가위협을 바라본다면 이는 인류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은 강대국 경쟁 일변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모든 강대국들이 인류 전체의 운명을 위해 주요 부문에서 추구해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올 한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면서 한국에게도 트럼프 리스크는 크게 다가올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에 보였던 동맹에 대한 강한 압박과 자국 이익 우선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시 한국에게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변화된 국제정세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과거와 같은 정책을 추진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과 우리의 국익을 명확히 할 때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이 보다 합리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했던 거래적(transactional) 외교 정책의 양태를 예상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하는 노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공화당 내 트럼프의 입지가 과거보다는 약해졌기 때문에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을 넘어 공화당 전체와 전략적 이익 공유의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체계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헤리티지 재단의 정책 공약의 경우 미국 이익 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변화하는 공화당의 정책에 대한 검토와 대응을 동시에 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Sullivan, Jake. 2023. “The Sources of American Power: A Foreign Policy for a Changed World.” Foreign Affairs. October 24.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sources-american-power-biden-jake-sullivan (검색일: 2024. 1. 9.)

 

Weissert, Will, and Linley Sanders. 2024. “More Americans think foreign policy should be a top US priority for 2024, an AP-NORC poll finds.” AP News. January 2. https://apnews.com/article/2024-top-issues-poll-foreign-policy-israel-d89db59deb07f53382cc9292b49f4d1c (검색일: 2024. 1. 9.)

 


 

전재성_동아시아연구원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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