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김남규 고려대 교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데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하는 부패 문제는 정치적 기제를 통해서 척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지원과 협력이 민주주의 지원 노력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한국의 역할로서 지원대상국 시민사회와의 협력, 독립적인 반부패 기관 설립 등을 제안합니다.

I. 서론

 

최근 반부패(anti-corruption)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뜨겁다. 2021년 유엔 총회는 최초로 반부패특별회의를 개최하면서 부패 예방과 척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촉구하였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반부패가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고 전세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핵심적 이슈라고 간주하여 반부패를 권위주의에 대한 대응 및 대내외 인권 신장과 함께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 중 하나로 설정하였다. 그 결과 2021년 제 1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부패 척결은 핵심 아젠다 중 하나로 논의되었고, 미국의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는 반부패 태스크 포스(Anti-Corruption Task Force)를 세워 부패방지에 나섰다. 한국 정부도 2023년도 3월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태지역 회의를 개최하면서 “부패 대응에 있어서의 도전과 성과”를 주제로 잡았다.

 

반부패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진 배경에는 부패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세계적인 공감대와 부패를 방지하고 처벌하려는 강력한 국제규범이 존재한다. 부패는 국제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 부패는 인적 재능과 자원의 낭비를 야기하고 국내적 및 국제적 경제 거래의 비용을 증가시켜 생산적 활동을 위축시킨다. 이로 인해 경제의 비효율성은 증대되고, 경제성장은 저해된다. 또한 부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피해를 안겨주어 경제적 불평등도 증가시킨다. 부패가 만연할 경우 보건이나 교육과 같이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 서비스를 위한 공공 투자의 질과 양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부패의 부정적 영향이 경제적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의 거버넌스 질을 타락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매표 행위와 같은 부패 행위는 민주적 절차를 왜곡시키고, 뇌물은 공정한 법집행을 방해하고 사법정의를 훼손한다. 만연한 부패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의 기존 시스템과 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여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결국 부패는 국제사회가 강조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데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부패가 더욱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부패가 인권유린을 일삼는 권위주의 정권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제일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적 국가들을 대상으로 부패를 무기화(weaponize)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독재자와 통치엘리트들은 부정부패를 통해 국가 자원을 사유화하고, 민간 영역을 약탈하여 자신들의 부를 증진시키고,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반대세력과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자원을 확보한다. 더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전략적으로 부패를 활용하여 대상 국가의 영향력 있는 개인을 포섭하거나 은밀한 로비활동을 통해 다른 국가들의 정책결정과정이나 선거과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반부패는 더 이상 국내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여러 국가들이 함께 협력하고 공조해서 해결해야 할 국제적 이슈로 간주되고 있다. 수많은 국제기구들은 반부패를 핵심 아젠다로 설정하여 부패 예방과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살펴보고, 반부패와 민주주의 지원의 관계를 논의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의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지원 및 협력 현황을 살펴본다.

 

II.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노력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노력은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했고 영향력 있는 국제적 노력은 유엔반부패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against Corruption: UNCAC)의 체결로서 유엔반부패협약은 선언적 의미뿐만 아니라 법적 효력을 지닌 국제조약이다. 해당 협약은 선진국과 후진국,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반부패 규범이며, 다루고 있는 내용도 아주 광범위하다. 반면, 1997년에 체결된 "OECD 국제상거래에 있어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협약(OECD Convention on Combatting Bribery of Foreign Public Officials in International Business Transactions: 이하 OECD 뇌물방지협약)"은 국제상거래에서의 뇌물방지를 목표로 하여 이를 범죄로 규정하는 최초의 국제적 합의이다. 뇌물방지협약은 OECD가 제정하는 규범들과는 달리 국제협약으로서 가입국들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외에도 유럽연합(European Union),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과 같은 지역 수준의 기구들도 반부패를 위한 국제협약을 채택하였다. 이 외에도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유엔의 다른 개발관련 국제기구들은 뇌물수수 증거가 드러날 경우 해당 국가에 대한 대출을 축소하거나 뇌물을 동원해 계약을 따내는 회사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민간 주도의 반부패를 위한 국제 노력도 반부패 규범 형성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특히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초국가적인 반부패 시민단체로서 부패문제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높이고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부패방지를 위한 노력에 앞장서 왔다. 이후 수많은 비정부단체와 경제단체들도 반부패를 기치로 내걸고 행동강령과 원칙을 확산시켰다. 가령 채굴 산업 투명성 이니셔티브(Extractive Industries Transparency Initiative: EITI)는 천연자원 소득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정부, 기업, 시민사회단체, 투자자 및 국제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EITI는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지만, 참여국은 채굴 사업을 통해 얻는 수익에 대한 정보를 완전 공개해야 한다. 해당 수익은 채굴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 제공한 금액과 비교되는 점검 절차를 받게 된다. 이를 통해 불법적 뒷거래, 불공정한 수익 배분 문제, 환경오염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반부패 노력에서 시민사회 참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반부패를 위한 시민사회와 회원국 정부로 구성된 국제 민관 협의체들도 출범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열린정부 파트너십(Open Government Partnership: OGP)이 있다. 열린정부 파트너십은 부패 척결과 함께 정부 투명성 제고, 시민참여 활성화를 표방하는 국제적 다자협력체로 2011년 설립된 이래 75개국 정부, 104개 지방정부, 수천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III.반부패의 핵심 논리

 

대부분의 반부패 노력은 투명성과 책무성(accountability) 증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투명성에 대한 강조는 부패 현상이 제도적 불투명성과 제한된 정보제공에서 비롯된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정책결정과정과 행정절차가 불투명할수록 정부와 시민 간의 정보비대칭성은 높아져 내부 정보를 활용하여 부패 행위에 참여할 기회는 많아지고, 부패 탐지와 처벌의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투명성 증대는 공직자들이 보유한 정보 독점을 깨뜨려 부패를 위한 기회와 자원을 줄이는 동시에 부패를 감시할 유인이 있는 행위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더 적은 비용으로 제공하여 부패행위를 적발하고 처벌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공공행정의 투명성과 시민들의 정보 접근권을 증진하기 위한 정보공개법 도입, 행정정보의 공개 확대, 시민감사관 제도의 도입, 민원처리 온라인 시스템, 전자입찰제, 재정 투명성, 정치자금 회계 처리의 투명성 등의 제도적 개혁이 중요한 반부패정책으로 강조되었다.

 

그러나 투명성 강화 자체만으로는 부패와 관련된 행동 규범을 바꾸는데 부족하다. 부패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부패행위에 가담한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기제가 부재할 수 있고, 부패에 대한 처벌을 집행하는데 집합행동문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명성은 강력한 책무성 기제와 연결될 때만 부패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강력한 책무성은 단순히 부패에 대한 감시를 높이고, 부패 행위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시민들이 부패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반부패를 위한 집합행동(collective actions)을 이루어 낼 수 있을 때, 그리고 시민들의 반부패에 대한 요구를 실현 가능한 개혁으로 바꿔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할 때만이 책무성 기제는 작동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책무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효과적인 책무성을 위해서는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공공정책의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국가 운영의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부패를 막기 위한 시스템으로 국가청렴시스템 개념을 발전시킨 것도 이러한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국가청렴시스템은 성공적인 부패방지를 위해 정부, 시민사회, 여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여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시스템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법률집행기관, 반부패기관, 정당, 시민사회, 언론, 기업 모두가 반부패를 위한 공동의 노력에 참여하여 투명성과 책무성을 강화할 때만이 성공적인 반부패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정 부문 중심에 집중하여 반부패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주체들이 상호협력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반부패에 대한 노력을 행하는 것을 요구한다. 공공부문에서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의 반부패 노력에도 적극적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다.

 

IV. 반부패와 민주주의 지원

 

앞에서의 논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주장했듯이 결국 반부패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현상이고 부패는 기술관료적(technocratic) 기제가 아닌 정치적 기제를 통해서 척결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부패에 관한 최근 연구들은 성공적인 반부패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공행정부문에서의 제도적 개혁을 넘어서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 및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패가 만연한 국가의 경우 지도자와 엘리트들이 반부패를 달성하고자 하는 유인과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존 부패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이므로 이들이 굳이 부패를 척결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 엘리트들의 교체 없이는 성공적인 부패 척결이 불가능하다. 정보공개법, 전자정부, 시민감사관제도와 같이 국제기구들이 권장하는 반부패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독립적인 부패방지기구 설치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권력자에 의해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부패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존 엘리트들이 근대화의 상징으로 부패 척결에 지속적 관심을 갖게 만들거나, 또는 새롭게 교체된 엘리트들이 반부패 개혁을 통해 권력의 정통성과 같은 정치적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반부패 경험은 후자의 경우로 민주화는 개혁 정부로 하여금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시민사회와 협력하면서 반부패를 위한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시민들의 반부패 요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이러한 요구에 정부의 반응성도 커지면서 반부패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반부패의 성공은 부패 방지와 처벌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했다고 실현되지는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의 두 가지 책무성인, 경쟁적 선거를 통해 부패한 정부와 정치인을 응징할 수 있는 수직적 책무성(vertical accountability)뿐만 아니라 권력 기관 간의 상호 간의 견제 및 통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수평적 책무성(horizontal accountability)과 법치(rule of law)의 수립이 요구된다. 부패행위에 대한 처벌을 담당할 사법부의 독립성이 높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운영될수록, 의회가 행정부에 대한 감시 및 감독을 잘 수행할수록, 국가 감사기관에 의한 내부통제가 강할수록 다른 권력 기관 간의 담합 가능성을 낮추고 권력자에 대한 견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부패 스캔들이 터질 때 반부패를 위한 강력한 정치적 연합은 이상과 같은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어 왔다.

 

따라서 성공적인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지원은 결국 민주주의 지원(democracy assistance)과 연계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주의 지원 공여국들은 선거과정에 대한 행정적 지원, 독립적인 선거관리위원회 설립, 사법개혁과 법의 지배 강화 등 제도적 개혁에 초점을 두었지만 최근에는 소위 '민주주의 세력'을 직접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 시민단체 지원을 통한 시민사회 역량 강화, 독립적 미디어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수원국의 민주주의 강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결국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지원과 협력은 민주주의 지원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V. 결론: 한국의 반부패를 위한 지원과 민주주의 지원

 

지금까지의 논의는 한국 정부의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지원 전략에 중요함 함의를 제공한다. 한국정부도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국제사회와의 반부패 공조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우선 한국정부는 앞에서 언급한 OECD 뇌물방지협약과 UN반부패협약을 비준하였고, 해당 협약들에 맞춰 관련 국내법을 제정 및 정비하여 협약을 성실히 이행해왔다. 특히 한국의 독립적인 반부패 총괄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G20 반부패 회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의 반부패・투명성 실무협의단, OECD 청렴실무협의회(Senior Public Integrity Officials)와 청렴포럼, 국제반부패회의(International Anti-Corruption Conference: IACC)와 같은 국제적 반부패 논의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한국의 반부패 노력 및 성과를 국제사회에 홍보하였고, 국제사회 반부패 제도 구축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게다가 국민권익위원회는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과 반부패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거나 개별 국가와의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코소보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이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요 부패 예방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태지역 회의 이후에는 개발도상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반부패 전략수립, 부패예방 및 부패수사 등 전반적인 반부패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및 국가별 맞춤형 반부패 정책 연수를 운영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반부패 제도 구축에 대한 지원은 매우 중요한 기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옹호와 확산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의 반부패 지원 정책에 대한 재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반부패를 위한 지원 범위와 목표를 반부패 제도적 역량 강화보다 더 넓혀 민주주의 지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 지원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 및 국제협력 프로젝트에서 민주주의 거버넌스 지원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요구된다. 한국정부는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민주주의 원조라는 명목 하에 국제원조를 지원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거버넌스와 관련된 분야에서의 지원은 여러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전체 공적개발원조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낮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원은 공공행정과 선거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성공적인 반부패를 위한 민주적 거버넌스 향상을 위해서는 기존의 중점분야를 넘어서 시민사회 역량과 리더십 강화 및 투명성과 책무성 증진을 위한 제도적 강화에 좀 더 많은 초점을 두고 반부패 및 민주주의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협력대상국의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협력대상국 정부와의 교류만으로는 반부패 규범과 제도의 확립은 요원한 길이다. 특히 부패는 지역공동체의 정치제도, 법, 경제, 문화가 반영된 사회의 결과물이므로 해당 지역 행위자들의 실무 지식(working knowledge)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지의 반부패를 위한 시민단체, 기업이나 노조 단체, 미디어 관계자 등 반부패와 관련된 여러 민간 행위자들과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협력대상국의 정부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정치제도의 개선과 시민사회 역량을 요구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라면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반부패에 기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공적개발원조는 정부 간 계약을 통하고 있어 이 방안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부패 활동을 하는 정부간 또는 비정부 국제기구를 통해 협력대상국의 시민사회 역량을 강화하고 반부패 노력을 지원해 줄 수 있겠다. 반부패 문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국제적 활동에 있어 국제기구 및 여타 선도적 공여국들과의 협력은 우리의 전문성을 육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부패 지원을 위한 역할분담을 시도할 수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기존처럼 반부패를 위한 제도 및 기술적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에 집중하고, 별개의 비당파적인 독립 기관을 설립해 민주주의 강화와 관련된 반부패 지원을 맡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독립 기관은 기존의 정부 중심의 지원사업과는 달리 시민사회의 다양한 행위주체와의 민관협력 파트너십을 통해 반부패 원조 전략을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지원하는 민주주의 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이나 영국 의회가 외교부 재정 지원으로 운영하는 웨스트민스터민주주의재단(Westminster Foundation for Democracy)와 같은 해외 민주주의 지원 재단 설립도 모색해볼만하다. 민주주의 지원 사업을 보다 자유롭게 민관 협력의 형태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을 위한 안정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적극적 노력을 통한 관련법 제정이 요구된다. 이미 2023년 3월 하태경의원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기관 명칭을 한국민주주의재단으로 변경하고, 사업 내용에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사업”을 추가하기 위해 “한국민주주의재단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해당 법안이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중요한 법안임에는 틀림없지만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특히 민주주의 지원 재단을 위한 기금 설립이 요구된다. 기금은 “국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자금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하여 법률로써 설치”하는 것으로 비슷한 성격인 특별회계와 달리 세입⋅세출 예산에 의하지 않고 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금은 재단 운용 주체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사업 수행 도중에 계획의 일부를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닌다. 따라서 민주주의 지원 재단 설립 기금을 위한 법률의 모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안정적 재원을 조달할지, 별도의 재원 마련이 가능한지, 재단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할지, 운용 및 관리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지, 지원대상은 누구인지 등에 대한 국회의 적극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

 


 

김남규_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담당 및 편집: 오준철_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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