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강우창 고려대 교수는 현재 전세계 민주주의가 권위주의 확산으로 인한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발전 경험이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저자는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회 차원의 관심 제고를 위해 ‘민주주의 코커스’와 같은 초당적 모임 설립을 제안합니다.

I. 서론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국내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Bartels et al. 2023). 국제적으로는 권위주의의 확산과 함께,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가 2023년 발간한 민주주의 보고서(Democracy Report)는 2022년 세계의 민주주의 수준이 1986년 수준으로 퇴보했다고 평가했으며,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우 더욱 급격하게 퇴보해서 1978년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언론의 자유가 후퇴한 국가가 35개국, 정부의 검열이 강화된 국가가 47개국, 정부의 시민사회 탄압이 심해진 곳이 37개국, 그리고 선거의 품질이 악화된 곳이 30개국에 달한다. 민주주의 국가내에서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Graham and Svolik 2020; Grumbach 2023; Svolik et al. 2023). 민주주의 후퇴는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증대, 소셜 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의 확산, 민주주의적 제도와 규범의 약화에 따른 정치적 과정의 권위주의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Levitsky and Ziblatt 2019; Orhan 2022).

 

한국 민주주의도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정치적 양극화와 강한 당파성을 지닌 유권자들의 등장, 그리고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권혁용 2023; Shin 2020). 그러나 국제적인 기준에 비춰볼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의 민주주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32개국이며 그 중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준은 세계 28위로 일본, 대만과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취약한 신생 민주주의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3월 한국이 미국,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잠비아와 함께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나, 2024년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관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다. 그러나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한국의 노력이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동아시아연구원은 ‘민주주의 확립과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두 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가졌다.

 

II. Milestone 1: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해외 기관들의 지원 사례

 

2022년 11월 진행된 1차 간담회에서는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 미국민주주의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NDI),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 ANFREL)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각 기관의 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1.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

 

미국 NED는 1983년 독립적인 비영리재단으로 설립되었다. NED는 매년 의회의 지출 승인을 받고 국무부를 통해 지급받은 예산을 활용하여 10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2000건 이상의 보조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회와 백악관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에 NED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지만, 할당된 예산을 실제 집행하는 것은 NED 이사회의 독자적인 권한이다. NED는 전 세계적으로 자유롭게 공정한 선거가 치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과 절차를 강화하고, 자유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수 있도록 법치를 확립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NED는 비정부기구로서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노력을 보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NED는 정부간 관계가 부재하거나, 미국 정부가 개입하기에 복잡한 상황에서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NED의 규모가 작고 비관료주의적인 조직 특성상 급격한 정치적 변동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NED의 독립성은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받는 것을 꺼려하는 단체들과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NED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노력으로 출범했으며, 이는 NED의 활동이 정치적 스펙트럼에 상관없이 미국 의회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기반이 되고 있다. NED는 이른바 핵심 수혜자(core grantee)로 불리는 미국민주주의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NDI), 국제공화주의연구소(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IRI), 연대센터(Solidarity Center), 국제기업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Private Enterprise: CIPE) 등 네 기구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 노동계와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대변한다. 각 기구는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NDI와 IRI는 다양성,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CIPE는 자유시장과 경제개혁을, 그리고 Solidarity Center는 노동조합의 독립성을 증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NED는 각 기구에 동일한 비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이들 기구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NED는 조직 구성에서 초당파성을 내재할 수 있으며, 미국 의회와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NED가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균형 있게 수용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또한 NED는 보조금 지급을 비롯한 모든 사업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미국의회뿐만 아니라, 국무부 그리고 독립적인 기구에 의한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

 

2. 미국민주주의연구소

 

NDI는 1983년 설립된 이래 15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50여개 이상의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NDI는 NED를 포함하여 미국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미국 국무부(US Department of State) 및 여타 국제개발단체 등 160개 이상의 기관과 단체 및 민주주의 증진을 추구하는 NDI의 미션을 지지하는 개인들이 제공하는 후원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NDI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정치적 중립성과 함께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 활동하지는 않으며, 미국의 국내 선거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 NDI는 국제 사회에서 정당, 시민사회, 정부기구 등의 역량 강화, 거버넌스 향상,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시민의 참여 증진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지 파트너에게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조언을 제공하고, 각국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방식으로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3. 아시아 자유선거 네트워크(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 ANFREL)

 

ANFREL은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1997년 설립되었다. ANFREL 역시 비정치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국제기구이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비전에 공감하는 아시아 지역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이다. 2023년 현재 18개국 28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ANFREL의 주요 활동은 선거관찰(Election Observation), 시민사회의 역량강화(Capacity Building), 캠페인과 옹호 활동(Campaign & Advocacy) 등 세 축으로 구성된다. 선거관찰은 독립적인 개인이나 단체가 전반적인 선거과정이 각국의 법규정과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치러지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활동을 뜻한다. ANFREL은 1998년 캄보디아 총선에서 처음으로 선거관찰 업무를 수행한 이래, 아시아 전역에서 65회 이상의 선거관찰 업무를 수행해 왔다. ANFREL은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언론 그리고 여타 관계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정기적인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으며, 아시아 선거 자료 센터(Asian Electoral Resource Center)를 구축하기도 했다. 캠페인과 옹호 활동은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선거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선거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이해당사자와 시민사회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들을 포함한다. ANFREL은 NDI 및 NED와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이러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각 기관의 활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NDI 및 ANFREL 관계자들은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한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했다. 첫째,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활동은 그 자체로서 추진하기 보다는 국가안보전략이나 개발의제 등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설정하는데 있어 기본 원칙으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발전 사례는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한국이 제공하고 있는 개발원조 프로그램들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수행하는 것은 민주적 가치에 대한 한국정부와 한국국민들의 이해를 제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노력은 단순히 정부 대 정부의 관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 시민사회, 미디어 등 사회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 세계 민주주의 지원은 정파적인 이익을 떠나 초당파적인 협력이 가능한 분야이다. 미국에서도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민주당과 공화당이 국내 문제에 대해서 협력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세계 민주주의 지원과 관련해서는 협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국회도 초당파적인 노력을 통해 아시아 주변의 다른 입법 기관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나아가 미국 민주주의 재단과 같이 정치적 독립성을 지닌 초당파적인 민간 재단을 만들고 후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III. Milestone 2: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논의

 

2023년 5월 진행된 2차 간담회에서는 1차 간담회의 논의를 토대로 국내 전문가들이 민주주의 확립과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국내 전문가로는 국회의원, 학계 전문가, 선거관리위원회, 세계선거기관협의회 및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서는 한국 국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현재 의회외교포럼, 의회친선협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회 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 활동의 범위나 내용이 국제 사회가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역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논의되었다.

 

첫째, 미국의 NED, 대만민주주의재단(Taiwan Democracy for Foundation: TFD), 그리고 영국의 웨스트민스터민주주의 재단(Westminster Foundation for Democracy)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국회가 정치적 독립성을 가진 민간 재단을 만들고, 이를 후원 감독함으로써, 세계 민주주의 지원에 직접 기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미국 NED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활동은 한국 국회내에서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한국 내에서는 점증하는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부정선거 논란 등으로 인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여론 역시 국내 민주주의의 상황에 많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국에 민주주의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정부예산을 활용하여 지원하는 것은 당장은 쉽지 않으며,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이 현재 한국이 진행하고 있는 세계 민주주의 지원 사업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률을 보완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2010년 개발원조 공여국 협의체인 OECD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했다. 이후 개발원조에 있어 종합적인 전략의 부재, 사업간 분절화 및 사후관리 부실 등에 대한 비판을 해소하기 위한 전부 개정안이 2020년 국회에서 통과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지원 활동이 공적개발원조 및 국제협력 프로젝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작다. 원조의 조건으로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민주적 가치를 이식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개발원조가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 동안 민주주의와 관련된 개발원조는 제도정비와 관련된 지식공유와 연수사업 등에 초점을 맞춰왔다. 특히 선거과정에 대한 지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개도국의 선거관리기관에 한국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개도국의 선거관리 제도 개선을 지원하는 사업이 주를 이뤄왔다. 현재 한국내에서 국제사회의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활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미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고려가 반영된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련법규의 정비를 통해 이러한 사업들을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입법화를 통해 현행 대외원조의 틀 안에서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과 관련된 사업들에 대한 예산 할당이 원활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활동의 규모를 법률로 규정하여 재원 확보의 안정성과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셋째, 이러한 입법화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확립과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 관심있는 의원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한국의 민주화 경험이 세계 민주주의 증진에 대해 갖는 함의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제고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국내 이슈를 중심으로 치러지는 만큼 민주주의 증진과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가 의원들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관심이 있는 의원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체계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선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세계 민주주의 증진과 관련한 워크샵과 세미나를 개최하고, 해당 이슈에 대한 전문가 강연을 통해 세계민주주의 지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와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관심 있는 의원들이 모여 논의를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회의원뿐 아니라, 전문가, 시민단체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여론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활동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IV. 결론

 

최근 민주화의 성공 사례로서 한국이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2024년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관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국회 또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세계 민주주의 증진과 같은 국제적 이슈에 대한 우리 국회 차원의 인식은 초보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점증하는 정치적 양극화와 부정선거 논란 등 국내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한국이 세계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공감대가 여론이나 국회 내에서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우선 국회내에서 세계 민주주의 지원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를 전달하고, 한국의 민주화 경험을 공유하고, 나아가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한국이 기여해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국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칭)민주주의 코커스’와 같은 초당적 모임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근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극에 달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에서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양당 의원들이 정파적 차이를 뛰어 넘는 초당적 모임을 만들어 대처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결성된 이후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 의원 60여명이 모여 코로나 팬데믹 대처, 사회기반시설 구축, 의료보험제도 개혁, 이민자 문제 다양한 이슈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모임(Problem Solvers Caucus)이 좋은 예다. 세계 민주주의 지원이 초당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이슈인 만큼, 민주주의 코커스는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이 한데 모여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세계 민주주의 지원 이니셔티브가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법을 정비하고, 필요할 경우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진행하고 있는 개발원조 사업은 경제 개발이나 사회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주의 지원을 포함한 정치 분야의 원조 사업은 그 규모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분절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지원대상 국가의 민주주의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국제 지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조달이 중요하다. 재원조달여부는 단순히 보급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니셔티브의 실행 가능성과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 지원이 충분치 않거나 일관되지 않을 경우, 프로젝트의 지속성이 약화되고 결국에는 이니셔티브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어떤 구조와 방식으로 세계 민주주의를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NED와 같이 국회나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나 재단을 만들어 민간이 운영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국회사무처 등에 세계 민주주의 지원센터와 같은 기구를 두어 활동의 범위를 좁게 설정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자신의 경험을 민주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공유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국회는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확고한 지지자로 자리잡을 수 있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2024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국회가 세계 민주주의 확립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준비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이다. ■

 

참고 문헌

 

권혁용. 2023.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 한국정치학회보 57, 1: 33-58.

 

김태균. 2022. “한국 민주주의 지원 경험의 글로벌 서사로서의 함의”. EAI 이슈브리핑: 1-14.

 

Bartels, Larry M., et al. 2023. “The Forum: Global Challenges to Democracy? Perspectives on Democratic Backsliding.”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25, 2.

 

Graham, Matthew H. and Milan W. Svolik. 2020. “Democracy in America? Partisanship, Polarization, and the Robustness of Support for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4, 2: 392–409.

 

Grumbach, Jacob M. 2023. “Laboratories of Democratic Backsliding.”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7, 3: 967–84.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9. How Democracies Die. Crown.

 

Orhan, Yunus Emre. 2022. “The Relationship between Affective Polarization and Democratic Backsliding: Comparative Evidence.” Democratization 29, 4: 714–735.

 

Shin, Gi-Wook. 2020. “South Korea’s Democratic Decay.” Journal of Democracy 31, 3: 100–114.

 

Svolik, Milan W., Elena Avramovska, Johanna Lutz, and Filip Milaèiæ. 2023. “In Europe, Democracy Erodes from the Right.” Journal of Democracy 34, 1: 5–20.

 

V-Dem Institute. 2023. Democracy Report 2023.

 


 

강우창_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담당 및 편집: 오준철_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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