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최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이 단순한 무기거래 차원을 넘어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답신’이라고 분석합니다. 저자는 그간 러시아가 한러관계 관리 및 국제사회 규범 준수를 위해 북한과 거리두기를 해왔으나, 한국이 한미일 삼자협력을 강화하고 반러·반중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러시아도 정책 방향을 변경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아시아 세력균형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를 통한 위기 관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정상회담 후의 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서 혹은 합의문 발표가 없었기 때문에 그 구체적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상회담 방식과 소요 시간, 그리고 정상회담 이후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정 등을 고려해 보면 이번 김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2019년의 방문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관계가 한층 더 밀착될 것이라는 것은 재고의 여지없이 분명하다.

 

 

먼저 정상회담 장소가 러시아 극동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다는 점은 향후 북러관계가 우주 분야의 협력을 향해 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이 우주개발, 특히 우주군사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다. 그간 북한은 우주개발 선진국과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우주개발을 추진하였기에 자체 기술만으로 인공위성 개발 등 우주 프로그램 실현에 한계를 보여 왔다(장철운 2023). 그러나 이제 러시아가 북한의 우주개발에 협력한다면, 북한은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어 빠른 시간 안에 우주프로그램을 현실화시킬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북한의 로켓 기술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이는 바, 북한이 야기하는 안보 위협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한편 김정은은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도 면담을 가졌고 샤포쉬니코프 소형구축함(Marshal Shaposhnikov Frigate)에 탑승하여 칼리브르(Kalibr) 미사일 시스템과 우란(Uran) 대함정 미사일 시스템 등을 시찰하였다(TASS 2023a). 이것은 “북한과 군사, 기술 협력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언급과 맥을 같이하는 행보이다(BBC 2023). 즉 북러는 공개적으로 양국 간 군사기술 협력을 도모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 외에 북한 대표단은 러시아 측과 농업, 교통 인프라, 서비스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보도된다. 후속조치로 북러 정부간 위원회는 11월 평양에서 만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TASS 2023b). 북러 정부간 협의가 단순히 서면 상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상과 같이 표면에 드러난 것만을 가지고 평가를 하더라도, 북한과 러시아는 그간 한국정부가 공들여왔던 외교정책 방향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한국정부는 러시아와의 양자관계 발전을 통해 러시아와 북한이 밀착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또한 북핵 개발이 동아시아에 가져올 안보 위협을 강조하면서 러시아를 북핵 문제 해결에 활용하고자 했다. 실제 러시아는 6자 회담에도 참여했고, 북한의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시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었다. 그러나 향후의 북러 관계는 이러한 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단계로 들어섰다.

 

 

북러의 밀착을 가져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국제정세 변동에 있다. 사실 그 이전만 해도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일반적인 추측과 달리 그리 긴밀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양국 간의 국경이 거의 봉쇄되어 최소한의 무역, 인적교류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2019년 김정은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시에도 드러났지만, 러시아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쉽게 제공해주지 않았다. 2020년에 5만 톤의 밀을 인도주의적 지원 형태로 북한에 제공한 것이 거의 유일했다(TASS 2023c).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북한에 대한 입장을 급선회했는가? 일반적인 설명은 러시아가 전쟁 장기화로 인해 부족해진 군수문자를 북한으로부터 제공받기 위해 북한의 여러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혹자는 러시아가 임시방편으로 북한을 끌어들였기에, 전쟁종식 후 무기 수요가 급감하면 북한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혹은 표면에 드러나는 것처럼 거창한 군사기술 지원은 실제 안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북한으로부터의 무기 공급이 주된 이유였다면, 러시아는 이렇게 요란하게 보스토치니에서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도 조용히 무기 거래를 추진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러시아가 이란제 드론을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지만,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이번 정상회담과 같은 거창한 외교적 행사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무기거래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 혹은 신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북러 양자 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넓은 지도판에 놓고 본다면, 북러 정상회담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난다.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은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렸던 한미일 정상회담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즉 북러 정상회담은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답신이다. 러시아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고 이것이 (준)군사동맹으로 발전한다면, 러시아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우주 및 군사개발을 돕고 북러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그간 한-러 관계 및 핵비확산과 같은 국제규범을 존중해서 북한과 거리두기를 했었으나, 이제 한미일, 특히 한국이 반러 (그리고 반중) 연대에 적극 참여한다면 러시아도 생각을 달리하겠다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내오는 것이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위 신냉전 구도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북중러 삼자회담이 아니었다고 우리가 안도할 상황은 아니다.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러시아와 중국은 긴밀히 사전협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8월부터 서울과 평양에서는 러시아 대사관과 중국 대사관이 함께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는 회동을 계속 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놓고 영향력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내심 불편하게 여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여유롭게 중러 간 경쟁을 논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일 삼각협력이 강화되는 마당에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더불어 자국들 간의 관계를 공고히 하여 한미일에 대항하는 세력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북러 관계 측면에서뿐 아니라 동아시아 세력균형에서도 심각한 변화를 야기하는 사건이라 평할 수 있다. 세간의 우려대로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거래 가능성 및 군사협력 가능성이 크게 증가되었을 뿐 아니라,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삼각관계가 가시적으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발발의 구조적 원인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협상 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의 삼국동맹의 대결에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매우 위험한 세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혜로운 외교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

 

 

참고문헌

 

장철운. 2023. “북한의 우주개발: 이상과 현실의 괴리.” Global NK Zoom & Connect. 5월 22일. https://eai.or.kr/new/ko/etc/search_view.asp?intSeq=21927&board=kor_issuebriefing

 

BBC News 코리아. 2023. “4년만에 만난 김정은-푸틴, 러시아 ‘북 위성 개발 돕겠다’.’” 9월 13일.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03j28nkl1no

 

TASS. 2023a. “Kim Jong Un, Shoigu Discuss Military Cooperation, International Affairs.” 9월 17일.https://tass.com/world/1675931

 

TASS. 2023b. “Russia’s Delegation Discusses Agriculture, Transport Issues with Kim Jong Un.” September 17.https://tass.com/world/1676069

 

TASS. 2023c. “Russia Ready to Offer Food Assistance to North Korea –Russian Ambassador.” September 18.https://tass.com/politics/1676147

 


 

강윤희_국민대학교 유라시아학과 교수.

 


 

담당 및 편집:박지수,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jspark@eai.or.kr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