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은 워싱턴 선언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강화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들로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한 근원적인 해법이 마련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정상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울러, 북한이 더 이상 비핵화 대화에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3축체계 강화 및 신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한미 안보협력 노력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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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선언과 확장억제력 실행력 강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4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워싱턴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북한 핵능력 고도화에 따른 한국 국민의 불안감이 다소 진정되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상대의 선의에 기댄 평화는 가짜라며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고 한국의 독자 핵개발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워싱턴선언은 윤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과 입장을 반영한 확장억제력의 실행력 강화로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북한 비핵화 노력이 실패했다는 것과 북한이 당분간 비핵화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차관보급 ‘핵협의그룹(NCG)’을 설치하고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확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북핵 고도화에 상응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이뤘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과 공동으로 행사하는 가운데 핵협의그룹을 신설함으로써 1953년 10월 1일에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워싱턴선언을 통해서 한국의 독자 핵개발 의지를 누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유지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억지할 수 있는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이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공포의 균형을 넘어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한 근원적인 해법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고 ‘전쟁억제력’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미는 ‘확장억제력’으로 북한의 핵사용을 억지하겠다는 공포의 균형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한국은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웠고,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워싱턴선언’을 “극악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집약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위험천만한 핵전쟁책동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며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조선중앙통신> 2023/4/30).

 

확장억제력과 전쟁억제력 사이의 공포의 균형

 

워싱턴선언으로 공포의 균형을 이룬 한반도 정세가 소강국면에 진입했지만 언제 어떤 돌발변수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강 대 강 대응 원칙을 세워놓은 북한은 한미의 움직임에 따라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줄곧 ‘쌀은 곧 사회주의’라고 했다. 쌀독만 채워놓으면 북미 장기전을 견뎌낼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북한은 농번기를 맞아 당의 전략방침에 따라 식량 증산에 주력하며 도발을 자제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핵에 의한 전쟁억제력’ 확대와 한미가 주장하는 ‘확장억제력 실행력 강화를 통한 공포의 균형’이 평행선을 그릴 경우 북미 정면대결과 남북관계 단절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미, 남북 사이에 대화와 접촉이 단절된 가운데 북한의 의도된 도발이든 우발적 사건이든 돌발사태가 일어날 경우 확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조율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내세우고 북한이 호응하길 기다렸지만, 북한은 미국이 적대관계 해소 등 ‘근본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고 핵무력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뿐 대화를 복원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우크라이나전쟁이 수렁에 빠져 한반도 문제가 미국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도 사실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도 서먹해졌다. 지난해 남북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가 한 건도 없을 정도로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2020년 6월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고, 지금은 군통신선과 남북통신연락선도 두절됐다. 김여정 부부장이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조선중앙통신> 2022/8/18)라고 말할 정도로 남북관계는 멀어졌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지구가 조선을 축으로 도는 새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로동신문> 2022/12/21)고 하면서 ‘북한 중심주의’에 따른 자력갱생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의 세계정세가 ‘신냉전 체계로 전환되고 다극화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이에 맞게 국력을 키워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로동신문> 2023/1/1).

 

‘담대한 구상’과 북핵해법의 모색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한 것은 단순화해서 말하면 북한의 핵보유 의지가 국제사회의 핵보유 저지 노력보다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북핵해결을 위해 나올 수 있는 해법은 거의 다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우선 순위와 교환수순에 따라 해법이 달라질뿐이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관계정상화와 같은 ‘근본문제’를 뒤로하고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유인으로 한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접근은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평화체제와 관련한 협상을 뒤로 미루고 ‘동결 대 보상’ 방식인 ‘안보-경제 교환’으로 북한 비핵화를 추동하려는 북핵해법은 북한의 핵개발 고도화로 실패했다.

 

북한의 핵위협은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이며 대외정책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근원이다.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 부상한 것은 지정학을 유리하게 활용하고 편승했기 때문일 것이다. 냉전구조의 지정학에서는 미국이 선도하고 북한이 채찍질했으며, 탈냉전의 지정학에서는 중국과의 노동분업을 심화하여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우리의 발전을 촉진했던 요소들이 신지정학의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북한 핵능력이 고도화함에 따라 한국의 정책적 자율성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 질서 재편이라는 대전환의 시기에 미국과 ‘글로벌 협력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규칙기반질서(Rules-Based Order: RBO)와 인도-태평양 중시에 편승하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을 통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복원하고, 워싱턴선언을 통해서 한미동맹을 강화함으로써 ‘가치외교’에 기반한 한미일 협력관계는 돈독해진 반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공급망의 재편 등으로 조정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문제와 관련한 유엔안보리 논의과정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명백한 적’이라고 하면서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하고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독자 핵개발,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등과 관련한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해법으로 ‘담대한 구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 협상에 복귀한다면”(외교부 2022) 비핵화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안보-경제 교환 접근법’에 대해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의 복사판으로 인식하고 곧바로 거부했다(<조선중앙통신> 2022/8/18).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Deterrence), 제재와 압박을 통해서 핵개발을 단념시키며(Dissuasion), 외교·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추진하는(Diplomacy) 총체적 접근을 통해 북한 스스로 비핵화 협상에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통일부 2023, 8).

 

북한은 ‘유핵 공존’을 고집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비핵 평화 번영’을 추구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경제지원을 유인으로 한 비핵화를 다시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북한이 ‘근본문제’라고 생각하는 체제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들(한미연합군사연습문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북미관계정상화 등)을 포함하여 비핵-평화 교환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북한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담대한 구상의 추진을 위한 관건은 핵을 가진 북한과 미국이 어떻게 관계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관계정상화를 추진해 왔다. 미국이 핵을 가진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할 경우 핵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미국이 북한 핵을 인정할 경우 비핵화정책의 실패를 자인하고 핵확산을 막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게 된다. 그래서 비핵화를 목표로 한 북미관계정상화 수순(sequence)을 마련하고 북한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일본도 북일국교정상화에 부정적이지 않아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를 매개로 한 북핵해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이 더 이상 비핵화 대화에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3축체계(Kill Chain, KAMD, KMPR) 강화와 북한 핵무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신무기체계(극초음속 미사일, 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레이저 무기, AI 기술을 적용한 무기 등) 개발을 위한 한미협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로동신문>. 2022. “위대한 김정은 조선은 끝없이 승승장구할 것이다-공화국의 력사에 특기할 2022년의 빛나는 승리에 대하여: 제1편 우리 국가의 70여년 발전행로에서 분수령을 이룬 해.” 12월 21일.

 

________. 2023. “당 중앙위 제8기 6차 전원회의.” 1월 1일.

 

외교부. 2022. “담대한 구상.” 11월 21일.

 

<조선중앙통신>. 2022.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 8월 18일.

 

____________. 2023. “위험천만한 핵전쟁행각의 진상을 해부한다.” 4월 30일.

 

통일부. 2023. 『비핵 평화 번영의 한반도: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8.

 

※ 본 논평은 “Tasks for North Korea Policy After the Washington Declaration”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고유환_통일연구원 원장.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명예교수.

 

 


 

담당 및 편집: 박지수,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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