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북한이 희망하는 대로 신냉전 질서가 고착화 되지 않더라도 북중러의 연대 강화로 인해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한미동맹의 상대적 역량이 축소되며,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증대될 것이기에 한국은 전략적으로 큰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대북정책이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기억하고, 변화하는 대외 안보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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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한반도는 지금까지도 냉전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 이제 신냉전 구도가 도래하고 있는가? 북한은 최근 국제관계에서 신냉전 질서가 도래하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21년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 가르기식 대외정책으로 인해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되면서 한층 복잡다단해진 것이 현 국제정세 변화의 주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2022년 12월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제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인식은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달라진 국제정세를 반영한다. 그는 변화된 세계질서가 한반도 안보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며 이는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높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가 다극체제로 전환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권력구조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북한은 변화된 국제질서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외교 분야에서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과 국내정치, 변화하는 글로벌 세력균형을 연구하고 전략적인 대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전술적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 북한은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을 적극 지원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옹호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 원인이 미국과 서방의 패권 전략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신냉전 질서가 고착화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 질서는 한국에 더 큰 도전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에서 양극체제나 다극체제로의 세력 균형 전환을 고려했을 때, 변화하는 역내 안보 환경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특히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신냉전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반복되는 갈등은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한국에 복잡하고 어려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북 접근 방식은 미국 주도의 단극 체계를 기반으로 한 탈냉전 지역 안보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북한이 1990년대 초 냉전기 후원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을 잃고 고립되어 있던 동안, 한국은 우호적인 안보 환경을 활용하여 강력하고 단호한 대북정책을 추구해왔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난 이래 모든 한국 정부는 북한을 포용하든 압박하든 북한이 체제 성격을 바꾸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노태우 정부 시절의 북방정책은 한반도에 남아있던 냉전 질서를 붕괴시키고 분단된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특히 1994년 김일성의 사망 이후 북한 체제의 붕괴와 남한 주도 하에서의 통일을 기대하며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포용했고 남한 주도로 체제 개혁을 이루어 내려고 하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또한 굳건한 한미동맹에 기반한 강경하고 단호한 대북정책을 추구하며 북한이 국제규범을 수용하고 기존의 행동 방침을 바꾸도록 강제하려고 하였다. 반면, 북한의 지도자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글로벌 냉전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에서의 세력 균형이 북한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왔다. 김일성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변화 과정에서 북한의 안보 환경을 재평가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불리한 안보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 이후로 북한은 6번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스스로를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안보 협력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강화하는 등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규칙 중심의 국제질서를 강력히 지지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통해 자유와 평화, 번영을 앞당기는 등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신냉전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미중간 우호적, 협력적 외교 관계의 조성이 한국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예상하는 대로 국제관계에 냉전 질서가 다시 도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신냉전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해 단합된 대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불법이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2017년까지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과는 상반되는 행보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강력한 제재가 오히려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미 시행 중인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지금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군사 도발과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으며,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한미동맹과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러한 분열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 실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는 신냉전 긴장이 고조되면서 더 이상 북한 문제를 탈냉전의 틀 내에서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 주변 지역 질서가 다시 미국·일본·한국 대 중국·러시아·북한의 냉전 구도에 놓이게 된다면 북한은 더 이상 고립국가가 아니게 된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강하게 의존하면서 그들에게 지지를 받는 국가가 될 것이다. 물론,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을 예전처럼 인식하지도 않고, 북한 또한 두 국가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후원국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북한 문제를 지속적이고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의 전략적 이점을 위해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가장 난처하게 하는 것은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킬 영향력 및 효과적인 레버리지가 없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은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하는 것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북한의 행동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냉전 상황이 심화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또한 자연히 커질 것이다. 국제정세가 결코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는 신냉전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본 논평은 "Pyongyang in Search of a New Cold War Strategy"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황지환_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1년간 방문학자를 역임했으며 조지워싱턴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서 남북한 관계를 가르쳤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한국 정부에서 여러 자문직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Between China and South Korea,” “The North Korea Problem from South Korea’s Perspective,” “The Paradox of South Korea’s Unification Diplomacy”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박정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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