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미국의 패권적 질서 해체를 목표로 중국,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것에 대해 러시아 역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러시아 공식 대외정책 담론에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신냉전 개념의 사용과 그 현실화에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어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냉전의 패배자였던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양극적 국제질서의 형성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전하며, 북중러의 인식 차이는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현격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결절점(結節點)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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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

 

최근 수년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러 계기를 통해 ‘신냉전’과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언급하며 자신과 북한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 국내외 관찰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이 같은 북한의 국제정세 인식은 미국 중심의 일극적 국제질서의 이완과 해체에 대한 그들의 강한 기대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북한이 국제질서의 성격을 신냉전으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G2’라는 개념의 보편적인 유통의 계기가 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이다. 동 사안을 통해 미중 간 국력의 경향적 저하·상승의 흐름이 축적돼 기존 국제질서의 경로의존성에 대한 강한 의문과 팽팽한 긴장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이 소위 미중 전략경쟁을 본격화하면서 북한의 이 같은 인식은 한층 강화됐다. 실제로 통상 부문에서 시작돼 정치·안보·가치·규범 등 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양국 간 경쟁은 전 세계적 범위에서 소위 진영화의 경향성을 빠르게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신냉전 수사의 근저에는 냉전기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적대적 진영(bloc) 간 경쟁과 대립의 장기 지속에 대한 상황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함께, 북한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전후로 국제질서의 다극화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들이 미국과 중국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강력한 ‘힘(영향력)의 중심’ 이외에 또 다른 중심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 사실 탈냉전기 동안 소위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은 제국주의 시대의 낡고 정당하지 않은 개념으로 인식됐고, 국제무대에서 그 사용이 사실상 금기시됐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최근 엠마 애시포드(Emma Ashford)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어쩌면 본질적으로 미국의 전 세계적 범위의 영향력 우위와 경쟁 세력권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듯, 오늘날 세계는 중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국경 주변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세력권을 재구성하고 미국과 힘의 한계를 놓고 경쟁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즉, 북한이 최근 국제질서의 다극화에 대한 언술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경향성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북한이 신냉전과 국제질서의 다극화로 대변되는 작금의 과도기적 국제질서를 중요한 전략적 기회의 공간으로 파악·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 관계에 있어 ‘전략 전술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이들 국가와 미국의 패권적 일극 질서의 해체라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위해 전술적으로 여러 국제·지역 현안에서 공동의 보조를 맞춰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양은 그동안 미국과 서방세계의 강권과 전횡, 패권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이런 점에서 신냉전과 다극화는 미국 중심의 패권적 일극 질서의 이완과 해체의 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북한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현재의 과도기적 국제질서는 북한이 군사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오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광범위한 ‘회색지대’를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환경 요소이다. 실제로 평양은 현재 두 국가를 통해 자국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저지·완화하고, 낙후한 재래식 무기체계를 현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려 한다. 또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재개·확대함으로써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대북 제재체제를 형해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신냉전과 다극화에 대한 러시아와 북한 간 인식의 차이

 

러시아가 북한의 현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의 세세한 부분들을 공식적으로 논평한 바 없어 그들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서는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가 표명하고 추구해온 일련의 대외노선을 통해 그 대강과 유곽을 유추해본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소위 ‘이중전환’(dual transition)을 통해 서방세계의 동등한 일원이 되고자 했고, 이 때문에 1990년대 전반기 동안 철저한 친서방 대외노선을 표방·추진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낙관적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큰 실망과 좌절로 바뀌었다. 모스크바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와 그 국민들을 패전국과 그 구성원으로 취급한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이 같은 인식론적 전환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적 국제질서의 강화, NATO의 동유럽과 발트 국가로의 지속적인 동진·팽창, NATO의 코소보 공습, 서방식 해법에 따른 경제개혁의 실패와 경제 파탄 등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가 자국의 국가이익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자국의 이해를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인 다극 질서의 형성을 희구해왔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국제사회 내에서 소위 반미·반패권 연대의 구축을 지속하여 추구해왔다. ‘제한 없는’(no-limit) 협력으로 대변되는 중국과의 전략적 연대와 제휴의 심화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가 북한과 큰 틀에서 국제질서의 현황과 대안에 대한 인식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양국의 국제질서 인식에 있어서 나타나는 미묘한 질적 차이를 구별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북한은 신냉전과 다극화를 엄밀한 개념적 구분 없이 하나의 연동된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는 두 개념의 질적 차이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푸틴과 외교당국의 공식 대외정책 담론으로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단지 “정의롭고 민주적인 다극적 국제질서”의 필요성과 구축 의지만이 일관성 있게 언급될 뿐이다. 이는 러시아가 신냉전 개념의 사용과 그 현실화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먼저, 신냉전은 냉전의 패배자로서 러시아에 오랜 심리적 트라우마를 재소환한다는 점에서도 선호되지 않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신냉전 개념이 다분히 양대 진영화와 그 위계성을 전제하고 있고, 러시아가 이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적·일극적 국제질서의 붕괴를 바라지만, 그것의 대체물로 양극적 국제질서의 형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신냉전이 반드시 냉전의 똑같은 반복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적대적 진영의 존재, 그리고 ‘진영 간 대립’과 ‘진영 내 결속’으로 대변되는 냉전의 문법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인식을 상당 부분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주도하는 양대 진영 또는 양극의 형성, 그리고 그 구조가 규율하는 위계질서의 수용은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실제로 러시아는 현재 미국과 중국에 비해 제한된 역량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는 그들의 이해를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다극 질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북한과 러시아는 중단기적 관점에서 미국 중심의 패권적·일극적 국제질서의 해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지지와 연대의 보폭을 넓혀 나갈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양국 간 국제질서의 미묘한 인식의 차이는 큰 의미를 갖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현격하게 축소되는 상황이 가시화된다면, 그때부터 이 같은 차이가 대안 국제질서의 새로운 상과 관련하여 북한과 러시아 사이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북한과 중국 사이에서 중요한 결절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 본 논평은 "Russia's Stance on the North Korean Narrative of a New Cold War"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장세호_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외교부 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유라시아학회 부회장, (사)유라시아21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및 겸임교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러시아 국내정치, 대외관계, 한러관계이다.

 


 

담당 및 편집: 박정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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