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박재적 한국외대 교수는 인도-태평양 공간을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 아프리카와 남태평양을 포괄하는 전방위적 경합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동맹국과의 안보네트워크 강화를 추구하는 미국과 역내 다자주의로 이에 대응하는 중국이 대치하는 가운데, 아세안 국가들은 소다자 협력으로 역내 영향력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견됩니다. 저자는 한국이 미국 주도 네트워크에서 안보협력 및 포괄안보에 기여하여 위상을 강화하고, 아세안 및 역내 중견국을 아우르는 소다자 연합으로 미중 대립을 넘어서는 대안적 질서를 형성할 것을 제언합니다.

1. 2022년 인도-태평양: 공간의 구체화와 가시화

 

2019년 6월 프랑스를 시작으로 2022년 12월 한국까지 10여 개 국가 또는 국가집단이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전략 문서를 발간하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1월 인태 전략의 추진을 표명한 이래 6년도 안 되어서 인태가 아시아 · 태평양(이하 아태)을 대체하는 용어로 빠르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인태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2019년에 국방부, 국무부 명의로, 2022년 2월에는 백악관 명의로 인태 전략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외에도 미국과 함께 4개국 안보협력 연합인 ‘쿼드(Quad)’를 구성하는 일본, 호주, 인도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국가가 인태 공간 개념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인태 공간의 지리적 범위는 아직도 논쟁적인데, 2022년을 거치면서 인태를 남아시아를 넘어 인도양 서쪽 끝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공간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커졌다. 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동부에 이르는 해상에 제국주의 시절 확보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가 ‘인태 국가’를 자임하면서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태평양과 인도양에 적극적으로 자국 함정을 전개하고, 쿼드 국가 모두 또는 일부가 주관하여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실시하는 다자 군사훈련에 빈번하게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의로 정의되는 인태 공간은 역내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경합이 중국과 ‘서구(West)’를 포함하는 미국 주도 네트워크와의 경합으로 변화하는 것을 함의한다.

 

2022년 인태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의 한반도, 대만 해협, 남중국해에 더해 남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중국과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쟁이 가시적으로 분출되었다는 것이다. 남태평양에서는 2020년~2021년 최악으로 치달았던 중국과 호주의 관계가 2022년에도 복원되지 않은 가운데, 남태평양 도서국을 대상으로 공세적 인프라 투자를 이어 오던 중국이 솔로몬 제도와 2022년 4월 군사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에 맞서 호주와 일본은 남태평양 국가에 대한 원조와 안보협력을 한층 강화하였다. 미국도 2022년 9월 ‘미국-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워싱턴에서 개최하였고, 14개 태평양 도서국 중 6개국에만 있는 대사관 수를 9개국까지 늘린다는 계획에 따라 2022년 12월에 파푸아뉴기니에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2022년 6월에는 호주, 미국, 일본, 뉴질랜드, 영국이 태평양 도서국들과 ‘블루 퍼시픽 파트너스(Blue Pacific Partners)’를 발족시켰다.

 

인도양에서의 전략적 경쟁도 뚜렷이 가시화되었다. 중국은 동아프리카 지역 ‘평화유지군(PKO)’ 참여를 명분으로 2017년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건설하였다.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건설한 국가가 중국만은 아니지만, 중국은 PKO 참여를 명분으로 인도양 해역에서 해군력 투사를 증강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도양 지역에 또 다른 군사기지 건설을 고려 중이다. 2022년 5월 스리랑카의 국가 부도로 남아시아 지역 심해 항구를 개발하는 중국의 인프라 투자가 수혜국을 ‘빚의 덫’에 빠트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중국은 인프라 투자를 통해 99년 간 운영권을 확보한 스리랑카 함반토타항에 ‘위안왕 5호’를 2022년 8월에 일주일 간 정박시켰다. 중국은 위안왕 5호가 과학탐사선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 등은 ‘이중 간첩선’이라고 의심한다. 위안왕 5호는 2022년 12월에 남중국해로부터 인도양으로 다시 넘어 들어왔다. 중국의 해군력 투사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는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는데, 2022년 9월에는 자체 건조한 항공모함인 ‘INS 비크란트’를 취역시켰다. 이런 와중에 내륙에서는 2022년 12월 중국과 인도의 국경 지역에서 양국 군인의 난투극이 재발하였다.

 

2. 2023년 인도-태평양 전망: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아세안, 중국의 주도권 경합

 

1)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연계성’ 강화

 

인태가 공간 개념을 뛰어넘는 지역 개념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동아시아, 호주 등 남태평양, 인도 등 남아시아,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을 공통으로 엮어내는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태동했던 아태 공간도 동아시아 국가와 캐나다, 칠레 등 비아시아 국가가 혼재함에도 지역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인태가 지역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태 공간 담론을 이끌어온 쿼드 국가, 영국, 프랑스 등은 2023년에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를 축으로 국가 간 연계성을 강화하고, 인태 공간을 관통하는 안보협력의 메커니즘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첫째, 쿼드 국가 중심으로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과 해양상황인지 능력 구비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이다. 쿼드는 이미 2022년 5월에 개최된 제3차 정상회의에서 ‘해양상황인식을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PMDA)’을 발족시키기로 합의하였는데,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인태 지역의 해양안보에 관심이 큰바, IPMDA가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기술패권 연대를 강조할 것이다. 쿼드와 쿼드를 확장하는 다양한 쿼드 플러스가 기술패권 경쟁과 직 · 간접으로 관련된 사이버 안보, 첨단기술, 인프라 투자, 해양안보, 공급망 다각화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2021년에 체결된 ‘호주, 영국, 미국 삼자안보협력(오커스, AUKUS)’의 주된 목적이 첨단기술 공동 개발 및 민감정보 공유인바, 2023년에 쿼드(플러스)와 오커스의 연계가 시도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 호주, 영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술력을 결집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데이터 표본 규모를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셋째, 지난 3년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중단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던 역내 군사훈련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어, 2023년에는 양자 훈련의 다자화, 훈련 규모의 대규모화가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22년에 개최된 코모도연합해상훈련, 피치 블랙, 슈퍼 가루다 쉴드, 퍼시픽 뱅가드, 노블 레이븐 22 등이 그러한 특징을 보였다.

 

넷째,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먼저 거푸집을 짓듯이, 쿼드 국가, 프랑스, 영국이 2023년에 미국 주도 네트워크와 나토(NATO)와의 연계를 위한 기초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쿼드 국가는 해양안보, 재난 구호, 사이버 안보, 보건안보, 기후변화, 테러 방지, 공급망, 첨단기술 등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의 쿼드 플러스를 추진하면서, 역내 국가 간 연계성을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쿼드의 외연 확장을 인태 지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와 유럽의 나토가 연결되는 고리로 활용하고자 한다. 2022년 5월에 개최된 제3차 쿼드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유럽의 인태 지역에 대한 관여를 환영한다고 명시하였다. 나토는 2022년 6월에 개최된 정상회의에 이른바 ‘아태 4개국(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AP4)’을 초청하였고, 중국 견제를 명시하는 ‘2022 전략 개념’을 채택하였다. 영국은 2022년 2월 화상으로 개최된 호주와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인태 지역 안보를 위해 2천 500만 파운드(약 38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3년에 나토의 주요 회원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쿼드 국가 전부 또는 일부가 주도하는 ‘쿼드 – × + 알파’ 형식의 군사훈련에 합류하는 빈도와 규모가 늘어날 것이다.

 

2) 아세안의 ‘중심성’ 확보 노력

 

쿼드 국가, 영국, 프랑스가 주도하는 인태 공간 연계성 강화는 결국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강화로 귀결된다. 따라서 아세안은 동남아가 인태 공간에서 변두리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결합하는 인태 지도 한복판에 동남아가 위치한다. 그러한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국가는 미국의 인태 전략 추진으로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역내 다자협력 논의는 아세안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아세안이 확장된 다자협의체인 아세안+1,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결성되어 있고, ‘아세안 지역포럼(AEASN Regional Forum, ARF)’,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 등 안보협의체에서 아세안은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 아세안은 미국이 인태 전략의 하나로 다양한 소다자 안보 협력체를 추동하고 그 확대와 연계를 추구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미국 주도 소다자 안보 협력체가 아세안을 제치고 역내 다자협력의 주요한 기제로 부상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아세안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쿼드 국가, 영국, 프랑스는 아세안 중심성을 존중하겠다고 공약하고 있지만, 외교적 수사일 공산이 크다. 따라서, 아세안의 입장에서 미 · 중에 더해 유럽 국가가 주요 행위자로 부상하는 인태 공간은 아세안 중심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아세안의 우려는 2021년 미얀마 군사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사 정권에 대한 아세안 내부의 이견으로 아세안의 단결이 더욱 악화했기에 배가되었다. 태국이 2022년 12월 22일에 개최한 미얀마 사태에 관한 비공식 협의에 아세안 10개국 중 단지 5개국만 참석하였다. 미국이 인태 전략의 하나로 남중국해에서 펼치고 있는 ‘항행의 자유 작전(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 FONOP)’에 관해서도 아세안 내 이견은 심각하다. 아세안 국가 중 중국과 (잠재적) 영토 분쟁 중인 국가는 미국이 주도하는 FONOP을 환영한다. 반면에 싱가포르 소재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가 수행한 2022년 동남아 인식조사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 국가를 택해야 하면 중국을 택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81.8%인 라오스, 81.5%인 캄보디아는 미국 주도 FONOP을 반대하고 있다.

 

2023년에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하게 되는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내 이견을 조정해 나가면서, 아세안이 2019년에 공포한 ‘인태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도출해 내지 못하면 인태 지역에서 아세안 중심성은 심각하게 도전 받을 것이다. AOIP는 연계성, 경제협력, 비전통안보 등에 중점을 두고 아세안이 인태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 실행 방안은 무엇보다 아세안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 협력 촉진일 것이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술루 해와 셀레베스 해에서 해적 퇴치를 위해 체결한 삼국 공동 해양 순찰 협정이 인도네시아 주도로 2022년에 갱신되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가 2023년에 아세안 지도국으로서 위상을 발휘하여 아세안 국가가 중심이 되는 다양한 소다자 안보협력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세안이 유럽과 2022년 12월에 첫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으로 역내 국가 및 국가집단과의 아세안+1 포맷을 활용하여 ‘아세안 중심성’을 확보해 나갈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3) 중국의 대응

 

중국은 인태 공간 개념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인태는 미국이 자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가공한 공간으로 그러한 공간의 부상 자체가 냉전의 유산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인태 공간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소다자 협의를 ‘편협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이 포함되는 아태에 비해 미국이 배제되는 동아시아 지역 개념을 선호했던 중국은 일대일로 추진과 함께 ‘범-아시아(pan-Asia)’,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 지역 개념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다자주의, 유엔, ‘지구촌(global)’을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2년 4월 보아오(Boao) 포럼에서 ‘글로벌 안보구상(The 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을 제안하면서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하고, 일방주의와 패거리 정치에 반대한다고 미국을 비난하였다.

 

2023년에 중국은 다자주의를 더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1, 아세안+3, EAS 틀을 강조하면서,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BRICS)’를 확장하려 할 것이다. 미국이 동맹 및 소다자 안보협력의 중층적 연계로 구성된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로 중국을 에워싸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처럼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여전히 비동맹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에 더해, 역사적 이슈와 영토 분쟁 등으로 소다자 안보협력을 같이 추진할 ‘동류(like-minded)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 북한과의 안보협력을 증진하면서, 중국처럼 식민 통치를 경험하고 발전도상국에 있는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와의 연대를 늘려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이 자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기제로 다양한 기능 영역에서 역내 국가에 대한 기여를 강화하는 것에 대응하여, 중국도 그러한 기여를 늘려갈 것이다. 일례로,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과 해양상황인지 능력 배양을 위한 중국의 공여는 아직 성능이 낮은 소형 정찰선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쿼드 국가, 프랑스, 영국 등이 인태 지역에서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과 해양상황인지 능력 배양에 집중함에 따라, 중국도 공여의 양과 질을 높여 나갈 것이다. 대규모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추고 있고 퇴역 함정도 다수 보유한 중국이 언제부터 공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그러면, 해양안보 영역에서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와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다. 또한,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 복원이 시급한 역내 국가들을 파고들기 위해 ‘빚의 덫’ 논란을 중국식 ‘고품질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로 무마하면서 공격적인 자본 투자를 강화할 것이다.

 

3. 한국 인태 전략의 과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2월에 인태 전략 보고서에서 인태 공간을 아프리카 동부 지역까지 확장하여 설정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인태 지역에서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경쟁이 중국과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영국, 프랑스를 포함하는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일원임을 함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은 인태 공간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라기보다는 중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네트워크와의 사이에서 한국의 적절한 ‘위치 선정(positioning)’을 고민해야 하는 전략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이 2023년 인태 환경에서 직면하게 될 부담 요인은 일본이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2022년 1월에 호주와 ‘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RAA)’을 체결하였고, 2023년에는 영국, 프랑스와 RAA를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동 협정으로 호주, 영국, 프랑스가 대규모 군대를 일본이나 동북아 해상에 파견하여 일본과 군사훈련을 수행하기가 쉬워졌다.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일본의 위상이 강화되어 일본이 동북아 축으로 기능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쿼드의 경우처럼 일본이 역내 소다자 안보협력 결성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소)다자 안보협력에서도 우리의 입지가 일본에 밀리게 된다.

 

따라서, 한국은 인태 지역 미국 주도 네트워크 내에서 위상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일본과의 안보 관계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 강화의 관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이슈, 영토 문제 등으로 2023년에 일본과 급작스럽게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어렵다면, 호주, 인도, 동남아 주요 국가와의 안보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이 장기간 정체된다면, 한 · 미 · 호주 안보협력 관계를 대안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인태 전략 보고서가 한 · 미 · 호 안보협력을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둘째, 한국의 인태 전략 보고서가 역내 포괄적 안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는데, 2023년에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은 지금까지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법의 지배, 항행과 항공의 자유 등에 원론적 지지를 표명했지만, 역내 민감한 안보 이슈에는 거리를 두어 왔다. 쿼드 국가뿐만 아니라 다수의 역내 국가도 한국이 한반도를 벗어난 역내 안보 이슈에 국력에 걸맞지 않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이제는 이러한 비난을 불식시키고 한국의 안보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국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다양한 포괄안보 영역 중에서 먼저 역내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과 해양상황인지 능력 구비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쿼드 국가,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가 인태 지역 거점 국가의 해양능력 배양과 해양상황인지 능력 배양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역내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별적 기여를 지속하면서, 이들 국가와의 협력 및 조율도 늘려 나갈 필요가 있다.

 

한편,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의 연계성 강화로 인해 아세안이 아세안 중심성 훼손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아세안의 국내적 상황과 아세안 단결성을 고려하는 인태 전략을 펼쳐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인태 전략 보고서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이 민주주의 확산, 법치주의 확립, 인권 증진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긍정적 이미지가 훼손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동남아 국가가 권위주의 정부 체제인바, 그들은 쿼드 국가, 프랑스, 영국이 양질의 거버넌스, 투명성,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그들의 아세안 정책에 투영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국제사회에서 세력 규합을 위해 민주주의 및 인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국의 인태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아세안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바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에서 민주주의 및 인권의 기준을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은 보편적 원칙 · 규범을 확립하는 데는 역내 중견국으로서 참여해야 하지만, 이를 주도하거나 다른 국가보다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의 인태 전략은 한국이 역내 중견국 중심의 소다자 연합을 촉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인태 지역에서 심화하고 있는 미국 중심 안보네트워크와 중국의 경합 환경에서 미중에 비해 약소국인 중견국이 단독으로 역내 안보 질서 구축 및 유지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러나, 대안적인 지역 질서 형성을 위한 ‘중견국 연합’을 형성한다면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역내 중견국의 소다자 연합이 미국과 중국 간 역학관계에 전면적인 변화를 초래할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의 세력을 운영 · 유지하는 데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 권력(positional power)’은 보유하고 있다.

 

인태 지역 주요 중진국인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결성하는 소다자 연합이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에서 위상을 확보해 가면서 자율성도 확보해 간다면 미국 주도 안보네트워크가 지나치게 미중 대립의 도구로 작동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메콩 강 협력, 해적 퇴치, 해양정보 공유 등을 위해 아세안에서 태동하고 있는 자생적인 (소)다자 협력과 연계된다면, 미중 전략적 경합에서 좀 더 자유로운 다자안보 협력을 구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일례로 한국은 인태 전략의 일환으로 호주, 인도네시아와의 양자 협력관계를 증진하고 한국 · 인도네시아 · 호주(Korea, Indonesia, Australia, KIA) 삼자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부상 및 아세안 지도국으로서의 위상과 상위 중견국인 호주와 한국의 경제 · 군사력을 고려하면 동 소다자 협의체가 역내에서 주요한 안보 · 경제 협의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저자: 박재적_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전공분야는 인태 지역 미국 주도 안보 네트워크, 지역안보질서, 소다자 안보 협력, 미국-호주 동맹, 호주 안보 정책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The US-led Security Network in the Indo-Pacific in International Order Transition” (2023), “South Korea’s Investment for the U.S.-South Korea Alliance and Its Implications for Sino-South Korea Relations” (2022)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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