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과 김양규 EAI 수석연구원은 규범 경쟁의 양상으로 진행되는 미중 안보 경쟁의 맥락에서, 한국의 인태 안보전략이 규범 제시 및 규칙을 기반으로 한 분쟁해결을 통해 전략적 안정성 확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한반도의 정세 안정을 위한 방책은 북핵 및 주변 해역에서의 군사적 충돌 문제를 인태지역 차원에서 재설정하고, 역내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긴장 완화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저자는 미중 전략경쟁 과열 및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한미일의 전략적 협력, 제3세력의 새로운 대안 모색, 동맹 네트워크 사이의 다층적 · 분업적 협력 체제 구축 등을 제시합니다.

Ⅰ. 목표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경제와 기술, 가치, 규범의 영역을 넘어 군사 안보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고, 통상전력 군비경쟁을 넘어 핵무기 경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의 규칙기반 안보질서의 근간을 위협했고, 권위주의 세력 대 민주 세력이라는 진영논리를 작동시켜 미중 전략 경쟁의 경직성을 높였다. 북한을 포함하여 인화점에 위치한 국가들에게는 더욱 모험적인 안보정책에 대한 허용기준을 낮추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경쟁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미중의 경쟁적인 질서가 충돌하는 지점, 특히 대만, 북한, 남 · 동중국해 등의 지정학적 인화점(flashpoint)에서의 위기와 긴장은 점차 심화될 것이다. 한국의 안보 환경도 비단 군사안보뿐 아니라 경제안보, 식량안보, 자원안보, 기술안보, 수송로 부분들을 포괄하게 되었고, 동북아를 넘어 동남아, 인도양, 중동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공간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필요에 직면했다.

 

미국은 지난 10월 12일 발표된 국가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 밝히고 있듯 “통합억지(integrated deterrence)”를 중심으로 안보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통합억지 전략은 핵 자산, 재래식 전력, 합동전투준비태세, 국토방위, 경제, 외교 등 가용한 모든 수단(all instruments of national power)을 동원하여 “다영역(multidomain)” 및 “여러 지역의 안보위기(numerous geographic areas of responsibility)”에 대처하고,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의 역량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강조한다. 지구적 차원에서 유럽-대서양(Euro-Atlantic) 전략과 인태전략을 세우고 연결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안보적 도전을 지구적 차원에서 동시에 대처하려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글로벌 안보 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으로 맞선다. GSI의 핵심 원칙은 “공동, 포괄, 협력, 지속가능 안보(common, comprehensive, cooperative and sustainable security)”인데, 중국은 세계 각국의 안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일방이 자국의 절대 안보를 추구해서는 안 되며, 공동안보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전반적인 대외정책에서 진정한 다자주의와 규칙기반 질서, 중국적 특색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강조해 왔고, 이러한 경향은 중국도 국제질서에 대한 국제사회 전반의 방향에 유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세부 입장으로 들어가 보면 중국의 입장을 강조하는 내용이 더 명확해지는데, 주권과 영토보전, 대내정치문제 간섭 금지, 자국의 발전경로 선택의 자유, 유엔헌장 원칙 존중, 냉전식 사고방식 탈피, 일방주의 반대, 모든 국가의 타당한 안보우려 인정, 자국 안보를 위한 타국 안보 위협 반대, 이중기준 반대, 악의적이고 일방적 제재 반대 등을 내세우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한 존중을 공동안보의 이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력 차원에서 미중 사이 현격한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한, 단중기적으로 회색지대 혹은 인태지역 인화점에서의 위기가 미중 간 직접 무력 충돌(warfare)로 비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진행 중인 미중 간 안보 경쟁은 국제법 경쟁 혹은 규범 경쟁(lawfare 혹은 normfare)의 모습을 보인다. 미중 모두 국제법 준수, 항행의 자유, 주권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비전통 안보위협 및 세계적 문제 공동해결(예. 테러리즘, 기후변화, 사이버안보, 생태안보) 등의 규범과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범 내용을 구체적인 이슈 영역에서 어떻게 설정하고 이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인태안보전략의 핵심 목표는 현재 미중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수준에 중국의 군사력이 근접하게 되어 미중 간 직접 군사 충돌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이전에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중 간 안보타협 및 공생의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인태지역 안보 규범을 제시하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당사국들, 특히 미중 간 분쟁해결의 평화적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대외정책의 행동원리도 이 규범에 입각하여 설정해야 한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은 (1) 핵의 보통무기화(conventionalization) 반대, (2) 강제력과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3) 전략적 안정성, 위기 시 전략 소통, 합의된 절차에 의한 기초한 분쟁 해결, (4) 평화, 공동번영, 인권 준수, 항행의 자유 등 미중 양국이 공유하는 인류 보편 가치에 입각한 분쟁 해결 (5)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경쟁을 지양하고 중견국들의 이익이 반영되는 다자주의 메커니즘의 실현 등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한국 안보이익의 우선순위에 따라 구체적 문제에 적용하여 다음과 같은 인태전략을 제시한다.

 

Ⅱ. 한국의 인태 안보전략

 

1. 한반도의 안정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한반도의 안정과 북한의 비핵화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북핵 문제를 한반도 차원이 아닌 인태지역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로 재설정하고, 남북 간 대화는 물론, 미중 간 협력을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축으로 한 미중 간 협력은 인태지역의 협력안보 증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지 30년이 되어 가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커지고,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핵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현대전에서 작전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겠다고 언급하고 핵무기 사용을 법제화했다. 미국 본토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취약해지면 북미 간, 그리고 한미,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중의 협력뿐 아니라 한미일 협력에도 크게 의존한다.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포함시킬 경우 미국과 한일 양국 간의 안보분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7개 후방기지를 기반으로 한국의 급변사태에 대한 간접 지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일본에 대한 핵공격 위협을 가할 때 주일미군의 한국 전개는 위협받을 수 있고 한국은 고립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긴밀한 안보협력 및 급변사태에 대한 상시적 논의와 협력이 중요하다.

 

중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협력도 중요하다. 미중 갈등 속에서 협력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한국의 인태전략, 혹은 한미동맹 강화를 들어 한반도 비핵화 및 대북 제제레짐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하려면 한반도 비핵화의 보편적 규범적 성격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평화레짐 구축의 양면적 노력에도 힘을 써야 한다. 한미가 공동으로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고 중국도 이를 인정하게 되면 중국이 명시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에서 이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과 향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대북 군사억제 및 경제제재의 국면을 넘어 대북 관여 및 북한의 발전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기적인 복합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들의 현상유지 경향을 극복하고 주변 당사국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제사회의 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2. 역내 군사 충돌 방지 및 위기관리를 위한 협력: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문제

 

한국은 직접 분쟁 당사국이 아니지만 남중국해, 양안 관계의 안정성, 동중국해 등에 중요한 이익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곡물의 해외 수입의존도도 77%에 달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는 우리 수출물동량의 30%, 수입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이다. 따라서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의 충돌이 고조되어 해상 수송로가 불안정하게 될 경우 한국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남중국해 해상 수송로의 안전보장을 대부분 미국과의 동맹 체제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남중국해 해양영토 분쟁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개입은 어렵다. 그러나 해양영토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국제법 준수, 무력 분쟁 방지, 분쟁으로 인한 수송로 악화 방지 등의 원칙을 수호해야 한다. 남중국해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발신하는 것이 한국 인태지역 전략의 핵심이다. 동시에 동남아 국가 등 지역 국가들과의 다층적 협력 강화를 병행하여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 미중 간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또는 지정학적 갈등 국면에는 가능한 한 일정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분쟁에 직접 연루되는 것은 회피하는 전략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지경학 차원에서는 이 지역에서 전개되는 양자 또는 다자 협력 공간을 통해 미국, 중국 모두와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규범을 둘러싼 미중 간의 대립 이슈에서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중국을 직접 겨냥하거나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자제하면서 아세안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차원에서 국제규범의 준수에 동조하는 선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대만문제는 미중 사이에서 오래된 갈등 요인이고 최근에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중 양국의 소통 및 조정,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 그리고 대만 총통 선거 등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면서 변화될 여지가 큰 만큼 한국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되 원론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강제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서 평화적, 합의에 의한 통일을 강조하는 입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와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만 해협에서의 긴장 고조가 우발적 충돌로 이어지고 한반도로 확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위기 예방과 관리를 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대만에서 우발 사태가 일본과 호주 안보이익에 직접적으로 가하는 도전을 염두에 두고 서태평양 지역 안보를 위한 다자 전략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고려해야한다.

 

3. 미중 군비경쟁의 과열 방지 및 핵 충돌 가능성 제거

 

미중 간 안보갈등은 소위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에서 비롯된 갈등, 재래식전력(conventional capability) 경쟁, 그리고 핵무기 부문의 점증하는 경쟁으로 나뉜다. 중국은 그동안 “최소억지(minimum deterrence)”와 핵선제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펴왔으나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핵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핵탄두 증산, 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일로 필드 건설 및 수백 개의 새로운 사일로 건설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핵능력이 증대되면 재래식 전력 사용으로 한정되는 통상적인 무력 분쟁 상황에도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위협에 취약해 지게 된다. 미중 핵 능력 균형에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여 미국의 본토가 중국의 핵 공격에 더욱 취약해진 이후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에서 중국이 공세적인 현상변경정책을 추구하게 되면 미국의 동맹국들은 안보분리(decoupling) 현상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첫째, 미중 핵 경쟁 속에서 한미 양국은 물론, 한미일 3국 간의 전략적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러 간 핵군축, 향후 미중 간의 핵군축,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협상과 세력균형(balancing)의 양 전략 모두가 필요하므로 한국과 유사한 안보이익을 공유하는 인태 지역 국가들과 다양한 전략 대화를 통해 창의적인 대응 마련이 중요하다.

 

둘째, 미중 전략 경쟁은 초강대국들 간 권력정치의 양상을 띠고 있으므로 한국은 제3세력의 입장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잡해지고 있는 국제정치의 변화 양상 속에서 미중 양국 중 어느 한 국가가 전략 경쟁에서 승리해도 국제질서에 필요한 공공재를 일국 차원에서 전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중 간 경쟁이 패권경쟁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면 향후 인태 지역의 여러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집단적 리더십이 더 중요할 것이다. 단순히 미중 전략 경쟁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지역과 지구 안보 질서를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은 미국, 일본, 호주 등과 협력과 대화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아시아 동맹 구조의 근본적 변화 과정에서 다층적 안보 협력의 이상적 형태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안보는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미국을 축으로 한 안보협력 역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바퀴살(hub and spoke) 동맹체제가 다층적 안보협력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들 간 위계가 형성되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동맹체제가 위계적 동맹체제가 아닌 분업적 동맹체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등 중요 분쟁 지역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며 여러 국가들 간 이해관계와 위협 인식이 재조정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 이에 기초한 바람직한 안보 질서를 위한 분업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 저자: 전재성_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등이 있다.

 

■ 저자: 김양규_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수석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강사를 겸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불어교육·외교학 학사와 외교학 석사학위를,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컬럼비아대학교 살츠만전쟁평화연구소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강압외교, 핵전략, 세력전이, 미중관계, 북핵문제, 그리고 국제정치 및 안보이론이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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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프로젝트

국제정세와 전략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한국의 글로벌 인도-태평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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