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은 인도-태평양을 다층의 영역과 전략이 중첩된 ‘글로벌 지역’으로 정의하고, 한국이 추구해야 할 비전으로 “보편 가치에 기초한 공생과 번영의 인도-태평양”을 제시합니다. 한국은 그간 한반도와 동북아에 머물렀던 외교 구상에서 탈피하여, 세계 경제 및 안보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한 인태 지역에서 보다 넓은 차원의 가치 및 국익을 실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자는 한국이 보다 나은 세계화로 지구적 도전에 적극 대응하고 군사충돌을 예방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역내 행위자와 협력을 지속하는 한편 경제, 기술, 환경, 안보 등 복합적 차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제언합니다.

Ⅰ. 세계질서의 대변환

 

세계 질서는 대변환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간 전략 경쟁은 무역과 첨단기술 분야로부터 가치와 규범 분야로 전이되어 상호 불신을 심화시켰다. 첨예화된 갈등은 군사 안보 분야로 확장되며 경쟁적 질서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서간 진영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는 동시에 다자주의적 합의와 국제법 준수, 주권 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 기존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지정학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첨단기술 경쟁의 안보화, 경제적 상호의존의 무기화, 공급망 축소 재편과 경제 블록화 등으로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대혼란의 이면에는 세계경제질서의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지구 전체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지만 시장경쟁의 과잉으로 인해 국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정치적 분열을 초래하며 포퓰리즘과 경제민족주의를 불러왔다. 그 결과 각국은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경도되었고, 지난 10여 년간 교역의 축소, 노동력 이동의 제한, 지구 공급망 축소 재편 등 세계화의 후퇴 즉,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목도하였다.

 

탈세계화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초래한 보건위기와 기후위기, 식량 및 에너지 위기, 그리고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의 위험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초국가적 도전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국제협력과 지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주요국들은 내향적, 자국우선주의적, 민족주의적 행태를 견지하고 있어 문제 해결을 향한 집합적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방적 통상국가이며 강대국 경쟁의 단층선에 위치한 한국은 탈세계화와 강대국간 전략 경쟁, 인류 공통의 초국가적 위협이란 지구적 수준의 도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한국은 현정부 5년을 넘어서 향후 한 세대를 내다보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범정부(whole-of-government) 차원에서 대외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세계화의 역진을 저지하고 강대국 간 경쟁이 무력 충돌로 이르지 않도록, 공멸적 경쟁을 넘어 공생을 이끌어 내는 새롭고 유연한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수립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Ⅱ. 글로벌 지역 전략 모색

 

이상과 같은 지구적 수준의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세계 주요국들은 지역적 수준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과거 이들의 지역 전략이 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내 행위자들의 집합적 노력을 모으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는 지역 거버넌스를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글로벌 지역(global region)”이란 공간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글로벌 지역은 지역 공간과 지구 공간을 상호연결(interface)하여 지역 공간의 지구적 성격을 강조한다. [1] 이는 지구적 수준에서 다루는 쟁점, 과제, 전략이 지역적 영역에 투사되어 다층적이고 또한 기능적으로 다면적인 영역이 중첩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지역 개념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과 유럽-대서양(Euro-Atlantic) 지역 전략을 연결하여 자국의 지구적 이익을 수호하고자 하며, 중국도 글로벌 안보 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과 글로벌 발전 구상(Global Development Initiative)의 틀 속에서 일대일로 및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도 지구적 견지에서 공유할 수 있는 이익과 목표를 정의한 후 지역 공간을 구획하고 설계하는 글로벌 지역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제 한국은 GDP 기준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고 군사비 지출 기준 세계 6위의 군사 대국이며,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모범 발전국가이자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국제적 위상의 상승에 따라 높아진 국제사회의 기대와 수요에 전향적이고 선제적으로 조응하여 확장된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국제적 역할을 재조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Ⅲ. 왜 인도-태평양인가?

 

한국이 지구적 쟁점을 다루고 국익을 지키고자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건축하는 중심 무대는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이다. 인태 지역은 지구적 격변과 궤를 같이 하는 지리적 영역인 동시에 한국의 확장된 국익을 실현하는 전략 공간이다. 그간 한국의 지역 개념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란 협소한 지리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탈냉전기에 들면서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동북아시아를 전략공간으로 설정하였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시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 등에서 보듯이 정부는 주로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협력을 활용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주변 4강을 포함한 전략 공간을 획정하고 이들과 협력 체제를 조성하여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한국의 대외 경제적 기회와 안보적 연계가 현격히 확대되고 지역협력 기구들에 대한 관여도 증대되면서, 한국 정부는 보다 확장된 지역 공간에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자원을 투입하여 국익을 신장하고 가치를 수호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10년간 세계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은 인도-태평양이다. 태평양 지역과 인도양 지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지리적 영역으로서 전세계 GDP의 63%, 무역의 46%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운송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운송로를 품고 있다. 한-중-일 삼국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내 무역과 공급망은 이제 동남아 전 지역, 호주, 인도 등 남아시아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인태를 단위로 한 재화와 자본의 이동이 활발해 지면서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파키스탄 등을 중심으로 노동력 이동 역시 확대되어 경제적 상호보완성이 신장되고 경제 통합의 확산과 심화를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 중점을 두어 온 한국의 지역전략이 인태로 확장된다는 것은 현재적 추세에 조응하는 차원을 넘어서 향후 30년 세계경제성장의 견인차로 꼽히는 인도와 동남아 지역과 파트너십을 확대, 심화하는 미래지향적 선택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안보적으로도 인태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세계경제의 최중요 해상교통로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국들의 해양 진출이 경합하면서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는 지역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만 해협의 긴장, 남중국해 분쟁, 민군 겸용 첨단 기술 분야 경쟁, 민주주의 위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미국, 일본, 인도, 호주, 아세안 국가뿐만 아니라 역외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주요국들도 인태를 단위로 독자적인 지역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한국 역시 경제안보를 포함한 포괄 안보의 견지에서 체계적인 인태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Ⅳ. 한국의 글로벌 인태 전략의 핵심목표

 

한국의 인태 전략 채택이 곧 기존의 지역 개념을 인태로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주요 대국들은 글로벌 지역 개념을 통해 복수의 지리적 공간을 구획하고 연결하는 지역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도 아세안이란 지역협력체를 근간으로 해서 인태 단위의 구상(outlook)을 제시하는 등 중층적 지역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인태 지역을 고정된 지리적 영역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지리적 영역이 중첩되는 ‘글로벌 지역’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글로벌 인태전략(Global Indo-Pacific Strategy)은 기존의 동북아나 동아시아 공간을 포함하여 기능적 분야와 쟁점 영역에 따라 다양하게 구획되는 다중(multiplicity)의 공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글로벌 인태 전략은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수행하는 규칙 기반 인태 질서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세계화의 역진을 저지하고 보다 나은 세계화로서 재세계화(reglobalization)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탈세계화는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사실 세계화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의 발전과 지구 공급망의 확대를 수반하며 지난 40년간 세계경제성장을 견인해왔다. 1980년부터 2020년 사이 세계무역은 약 10배 증가하였고 대외직접투자액은 17배, 노동력이동은 3배 증가를 기록하였다. GDP 기준 지난 10년간 상품 무역과 노동력 이동의 상대적 축소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의 통합과 디지털 무역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비국가 행위자 지구 공공 네트워크는 여전히 정치적 순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은 지구적 성격을 띠고 있어 개별 국가가 아닌 지구촌 전체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인태 전략의 목표는 재세계화 즉, 시대적 대세로서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을 이어가는 동시에 국내외적으로 포용적(inclusive)인 경제-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고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resilience) 측면을 보강하기 위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규칙과 규범을 세우는 일이다.

 

두 번째 목표는 초국경적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여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기후 변화, 코로나 팬데믹 등 보건 위기,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은 근대 문명의 결함을 노정하는 중대한 위협이다. 어떤 국가도 독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와 비국가행위자는 지구적 수준에서 제도 설계를 통해 집합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기술하였듯이 현재의 탈세계화 추세는 이런 노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탈근대 공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초국적 도전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규범 제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미-중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세 번째 목표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군사력을 동원한 충돌로 귀결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양국이 규칙에 기반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인태 안보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인태 지역은 대만 해협,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한반도 등 지정학적 인화점(flashpoint)이 자리하고 있다. 역내 구성원들은 미중 간 직접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전에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역안보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사활적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자유주의 패권적 권위를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 역시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자국중심적이고 강권적인 외교로 미래 패권으로서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단독으로 미래 질서를 주도하기 어렵다면 한국 등 역내 중견국들이 연대하고 협력하여 공생을 향한 인태 지역 안보 규범, 대외정책 행동원리와 규칙을 마련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Ⅴ. 인태 지역 운영 체계: 비전과 원칙

 

한국의 글로벌 인태 전략은 개별 의제 설정과 실행보다는 지역 질서를 건축, 재건축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지역 질서를 구성하는 법, 규칙, 제도, 규범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운영체계(operating system)란 개념을 사용하여, 인태 지역 운영체계의 기본 요소(가치와 원칙)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인태 운영체계는 무엇보다 규칙 기반 질서 수립을 강조한다. 역내 행위자들은 역사적 경험으로 형성해온 비공식적 규범, 아세안(ASEAN) 등에 의해 발전되어 온 원칙, 유엔, GATT-WTO, IMF 등 국제기구를 통해 이루어진 국제법과 국제조약 등 규칙의 틀 속에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 경제적 경쟁, 제휴, 협력은 공정한 국제 규칙과 규범에 기반하여야 하며, 비공식적이고 불공정한 무역 거래나 경제관계의 무기화를 통한 경제 강압은 배격해야 한다. 또한, 강제력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다자주의적 합의와 국제법, 규범에 기초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그리고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

 

한국의 인태 운영체계는 “보편 가치에 기초한 공생과 번영의 인도-태평양”이란 비전을 가진다. 첫째, 인태 운영체계는 인권, 법치, 다자주의, 자유무역 등 보편적이고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초한다.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여 민주주의 국제협력과 민주적 의사결정체계를 구현하는 거버넌스를 실현한다. 개별 국가의 주권적 선택을 존중하고, 체제, 발전모델, 자기결정권에 대한 상호 존중을 이루어낸다.

 

둘째, 인태 운영체계는 인간과 집단, 국가들의 평화적 공생을 지향한다. 생존경쟁과 자연도태 원리를 넘어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다. 미중 간 군사적 갈등을 완화하고 공진화(co-evolution)를 통해 공생(symbiosis)에 이를 수 있는 안보질서, 공생의 경제-기술 생태계를 모색해야 한다.

 

셋째, 인태운영체계는 지역 내 국가들의 공동번영을 추구한다. 다양한 경제 체제 간 상호보완성을 향상하고, 상호의존성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며, 한국의 경험과 자산을 활용하여 역내국들에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는 호혜적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을 이끌어가는 네트워크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러한 비전을 추구하는 인태 운영 체계는 아래 6대 원칙에 따라 운영될 수 있다. 첫째, 인태 운영 체계의 핵심 원칙은 연결성(connectivity)이다. 무역, 공급망, 서비스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인프라 투자를 통해 지역 통합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특별히 RCEP, CPTPP, IPEF와 같은 다자제도틀의 활용이 긴요하다. 또한 안보 네트워크, 특히 대테러, 자연재해, 초국적 위협에 대응하는 다자 협력 네트워크의 확대도 중요하다.

 

둘째는 개방성(openness) 원칙이다. 인태 지역을 경쟁과 협력의 조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설계하려면 개방성의 확보가 중요하다. 역내 국가 간 과도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개방성의 원칙이 유지될 경우 상호보완성과 상호의존성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해진다. 반도체나 배터리 등 첨단 기술의 과잉 안보화와 블록화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개방성의 유지를 통한 기술 및 경제협력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포용성(inclusiveness) 원칙이다. 한국의 인태 전략은 특정국을 견제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지역내 원칙과 규범을 존중하는 한 어떤 국가도 공통의 위협에 대항하는 안보 협력에 참여할 수 있다. 연결성과 개방성의 연장선에서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인태 지역 기술 및 경제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도 경제적 과실이 사회 전체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도록 세계화가 민주적으로 관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넷째, 회복탄력성(resilience) 원칙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나 자연 재해, 전쟁, 미중 전략 경쟁 등을 겪으면서 자국 경제의 안정성과 공급망의 회복탄력성 확보가 사활적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인태 지역은 공급망 교란의 재발 방지와 조기 경보 등 국가 간 협력과 조화 노력을 통해,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회복탄력적인 재세계화로 나가야 한다. 인태 지역 도서 국가들에 대한 양자 및 다자 협력의 경우 회복탄력성 원칙에 따라 인프라 지원과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수행해야 한다.

 

다섯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원칙이다. 이는 인태 지역 기후변화 혹은 생태적 한계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인구 변화, 자원 소비, 경제성장 등을 둘러싼 의사결정과정에서 주요 원칙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태 지역 개발협력의 경우 지속가능성 원칙에 기반한 인프라 투자, 특히 녹색 ODA에 중점을 두어 수행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수용성(adaptability)의 원칙이다. 인태 운영체계는 역내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선호를 표출하고 의사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 일종의 오픈 소스(open source)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따라서 고정된 아키텍처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적응하고 진화하는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인태 질서는 여전히 형성 중(in the making)에 있으므로 한국의 인태 전략은 인태 운영체계의 설계와 운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공유된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는 데 두어야 한다.

 

[그림 1] 한국의 인태전략 목표, 비전, 원칙

 

Ⅵ. 행동 계획(action plan)

 

한국은 이와 같은 운영 원칙에 따라 무역, 투자, 금융, 첨단기술, 에너지, 생태환경, 문화 등 이슈영역을 횡단하여 연결하는 동시에 양자, 소다자, 지역기구, 비국가행위자 등 다층적 연결망을 통해 인태 지역의 복합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행동계획은 아래와 같다.

 

1. 미국 주도 복합 지역네트워크에 적극 참여

 

공생과 번영을 위한 인도-태평양 질서 건축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가 핵심적이다. 군사 분야를 넘어 전략적 경제 · 기술 파트너십, 기후변화와 보건 안보 등 지구적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 등 확대된 한미동맹을 핵심축으로 하여 한미일 협력과 쿼드 플러스 등 소다자(minilateral)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소다자 네트워크의 핵심 참가자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2.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지속 및 확대

 

인태 공간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중요성이 증대하면서 강대국 경쟁과 대립이 고조되어 한국의 인태 전략이 의도치 않게 강대국 대립에 휘말릴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고 예민하게 전개해야 한다. 양국 간 체제, 가치, 이념의 차이에 대한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기능적 협력 중심의 관계 구축, 그리고 공통의 초국적 도전에 대한 회복력 향상을 위해 상호 협력해 가야 한다.

 

3. 아세안 및 인도와의 동반자관계 강화

 

인태 전략의 중점은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데 두고 있다. 한국은 세계경제성장의 동력인 이 지역에 대해 무역, 투자, 기술, 환경, 해양 안보 등 분야에서 다면적 관여를 확대해 가야 한다. 인태 협력에서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을 확인하고,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와 양자 및 다자적 협력을 통해 인태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보건과 우주, 사이버 안보, 방위산업 등으로 협력의 면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4. 재세계화를 향한 다자경제네트워크 추진

 

RCEP과 CPTPP 등 기존 무역협정의 확대 및 업그레이드, 이들 간 상호 정합성과 상호보완성 향상, WTO의 기능 회복 등을 통해 보호주의와 일방주의의 부활을 제어하는 한편, 포용적인 세계화를 향한 다자주의 국제경제질서를 복원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공급망 불안을 해소하고 공급망의 과도한 안보화를 방지하기 위해 IPEF를 포함한 다자적 노력으로 회복탄력적인 세계화를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우려 및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역내 유사입장국(동류국)들과의 협력을 양자, 소다자, 지역 차원에서 추진하고, 이를 지역-글로벌 연계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5. 부문별 복합 기술협력 네트워크 구축 및 선진국-개도국 사이 교량 역할 수행

 

경쟁과 배제, 배타적 선택의 논리가 압도적인 기술지정학 시대에 한국은 인태지역에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기술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여한다. 반도체 공급망은 물론 AI, 5G, 사이버, 양자컴퓨터, 청정 에너지, 디지털무역 플랫폼,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부문에서 기존에 진행되어온 양자, 소다자, 다자협력들을 활용하되, 중견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여 선진국과 개도국 협력의 교량역할을 수행한다.

 

6. 개발협력 및 인프라협력에서 적극적 기여

 

한국은 인태지역에 존재하는 인프라 격차를 축소하고 지역 생태계의 공생과 공영에 기여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을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아세안 연결성 강화를 위한 개발 지원,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SDGs 달성을 위한 녹색 ODA 공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내 지역 공동체와 포용적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7. 생태-기술-경제 연계를 고려한 환경 이니셔티브 추구

 

한국은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인류 공동 이익의 영역인 생태 환경 협력 분야에서의 대화 및 협력 단절의 길에 접어들지 않도록 상호이익이 되는 지점을 찾는데 집중한다. 특히, 다자 협력을 통한 기후문제 해결은 경제-기술적 혁신의 기회임에 주목하여 재생에너지 활용, 그린 수소 파트너십, 녹색 해운 네트워크,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개발, 탄소시장 등의 분야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국익을 연계한 정책을 추진한다.

 

8. 공생가치 및 규칙에 기반한 무력충돌방지 및 위기관리

 

미중 전략경쟁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대만, 북한, 남·동중국해 등의 지정학적 인화점(flashpoint)에서의 위기와 긴장이 단기적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기에 양국 간 경쟁이 군사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강제력과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금지, 다자규범에 기초한 분쟁 해결, 항행의 자유 및 비확산 등 인류 보편가치에 입각한 분쟁 해결과 같이 공생가치에 기반한 규칙에 따라 미중이 경쟁하도록 한국의 원칙을 표명하고 이에 기반한 외교를 펼친다.

 

9.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다층적 지역 안보협력 네트워크 추진

 

미중경쟁이 초강대국 간 권력정치의 양상을 띠는 가운데 한국은 기존의 지역 내 바퀴살(hub and spoke) 미국 동맹체제가 위계적 안보협력체제로 전환되어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등 중요 분쟁 지역에 대한 국가들 간 이해관계와 위협 인식을 식별하고, 이에 기초하여 바람직한 안보질서 형성에 기여하는 다층적 안보협력의 분업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1] 지역 공간의 지구적 성격을 강조하는 지적 흐름은 Peter Katzenstein, A World of Regions: Asia and Europe in the American Imperium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5); Mary Farrell, Bjorn Hettne, and Luk Van Langenhove (eds), Global Politics of Regionalism (London: Pluto 2005); Fredrik Soderbaum, Rethinking Regionalism (Baisingstoke: Palgrave 2016); and Maria Lagutina, "The Global Region: A Concept for Understanding Regional Processes in Global Era," The Journal of Cross-regional Dialogue (2020 Special Issue).

 


 

■ 저자: 손 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중앙대학교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언더우드국제학부장,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 국제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도쿄대학 특임초빙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채플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방문학자를 거쳤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2019)과 현대일본학회장(2012)을 지냈다. Fullbright, MacArthur, Japan Foundation, 와세다대 고등연구원 시니어 펠로우를 지내고, 외교부, 국립외교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시대 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공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이다. 최근 저서로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2021, 공편), 『2022 신정부 외교정책제언』(2021, 공편), 『BTS의 글로벌 매력 이야기』(2021, 공편),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2021, 공편),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3, 6 (2019),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박한수, 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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