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의 재선 성공이 유럽주의의 입지를 굳힌 사건이라고 총평합니다. 특별히 러시아의 군사 위협과 미국 동맹의 불확실성, 코로나 위기로 거세진 중국의 위협으로 인해 마크롱이 첫 번째 임기 초반부터 주장했던 “유럽 주권(European sovereignty)”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첨언합니다. 저자는 마크롱의 향후 외교 정책이 작년 독일에서 출범한 사민-자민-녹색당 연립정부와 협력하여 ‘독불 엔진’을 유럽 통합의 추진력으로 삼고, 세계 무대에서 유럽의 목소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세워질 거라 전망합니다. 아울러, 마크롱 2기로 “하나의 유럽”을 슬로건 삼아 온 유럽연합이 지금까지 통합이 부진했던 재정이나 안보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길 기대합니다.

I. 마크롱의 재선과 프랑스 ‘정치 혁명’

 

2017년 선거를 재현하듯 전개된 2022년의 프랑스 대선은 데자뷔의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1차 투표에서 중도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과 극우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 결선으로 진출한 점도 똑같았고, 커다란 표차로 승리를 거둔 마크롱의 당선도 반복되었다. 언론에서 강조했듯 마크롱은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이후 재선에 성공한 유일한 제5공화국 ‘집권’ 대통령으로 정치사에 등재될 것이다. 1988년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이나 2002년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는 모두 동거 정부, 즉 대통령이지만 정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선 되었다(Faye 2022). 매 선거에서 집권세력을 몰아내는 프랑스 특유 “꺼져주의(Dégagisme)”[1] 의 혜택을 봤다는 뜻이다.

 

[표 1] 2017년과 2022년 대선 결과(Ministère de l’Intérieur 2022) (%)

정당

후보

2017년 1차

2017년 결선

2022년 1차

2022년 결선

LREM 중도

마크롱

24.01

66.1

27.85

58.55

RN 극우

르펜

21.30

33.9

23.15

41.45

공화당

(중도우)

피용

20.01

 

 

 

페크레스

 

 

4.78

 

FI 극좌

멜랑숑

19.58

 

21.95

 

PS 중도좌

아몽

6.36

 

 

 

이달고

 

 

1.74

 

극우

제무르

 

 

7.07

 

 

데자뷔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우선 결선에서 1969년 대선 이후 가장 낮은 참여를 기록했다. 그만큼 많은 유권자가 정치에 대한 불만과 무관심을 표명한 셈이다. 또 결선에서 르펜의 지지율이 5년 전 34% 수준에서 4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2년 아버지 장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이 결선 투표에 처음 진출했을 때 18%에 불과했던 지지율이 20년 동안 2배 이상 급속하게 오른 것이다. 게다가 극우의 또 다른 후보 에리크 제무르(Eric Zemmour)나 극좌의 장뤼크 멜랑숑(Jean-Luc Mélanchon) 등 극단세력 후보의 표를 합치면 1차 투표 58%에 달할 정도로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에 달했다.

 

반면 프랑스 정치의 전통적 집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당과 공화당은 심각하게 몰락했다. 2017년 좌파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Benoî̂t Hamon)은 6% 정도의 마이너 후보로 전락했었는데, 2022년에는 우파 공화당 후보 발레리 페크레스(Valérie Pécresse)조차 5%로 전통 정당의 분해를 증명했다.

 

5년 전 마크롱이 시작한 프랑스 정치의 21세기 혁명은 완성되는 듯하다. 좌우로 나뉘었던 기존 중도 정치 세력을 마크롱의 ‘전진하는 공화국(LREM, La République En Marche)’이 통합하고 극우의 르펜과 극좌 멜랑숑의 3각 구도로 재편을 완성한 모습이다. 중도가 아직 정국을 주도해 나가는 판세지만 장기적으로 극단의 압력이 좌우에서 샌드위치처럼 가해지는 매우 위험한 형국이다.

 

II. 마크롱 2기와 유럽통합의 전망

 

프랑스에서 마크롱의 재선은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정치에 안도감을 선사했다. 이번 4월 3일 헝가리에서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4선에 성공했었고 ‘민족의 유럽’을 부르짖으며 프랑스에서 르펜의 승리를 기원했다. 마크롱도 유권자들에게 이번 대선 결선은 ‘유럽연합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EU 안의 유럽주의와 민족주의의 대결이 프랑스 대선을 통해 이뤄진 셈이다(Chastand et Iwaniuk 2022). 4월 24일 마크롱의 재선과 슬로베니아 총선에서 중도파 연합의 승리는 유럽연합 정치에서 유럽주의의 미래를 확보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마크롱은 첫 번째 임기 동안 유럽통합을 향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당선되자마자 2017년 9월 소르본 대학 연설에서 민주적 통합 유럽이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Macron 2017). “유럽 주권(European sovereignty)”의 개념은 이 연설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고 처음에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으나 점차 모습을 갖춰가는 중이다.

 

당시 마크롱은 유럽 주권의 영역으로 6개 분야를 제시했다. ▼국방이나 테러리즘, 시민의 일상 등 모든 분야에서 안보 주권 ▼이민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주권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향해 협력을 강화하는 주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주권 ▼디지털 산업에서의 주권 ▼통화와 금융 분야에서 주권 등이다. 달리 말해 안보, 이민, 근린 대외관계, 생태, 디지털, 통화·금융 등 주요 분야에서 유럽을 하나로 묶겠다는 야심을 표명한 셈이다.

 

재선에 성공하여 두 번째 임기에 돌입하는 마크롱은 유럽연합의 실질적 리더로 활약할 예정이다. 영국이 빠진 EU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쌍두마차 역할이 더 중요해졌고 군사와 외교에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프랑스의 전통까지 더해지면 마크롱은 과거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처럼 유럽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 12월 독일에 등장한 사민-자민-녹색당 연합정부보다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를 보이는 마크롱이라면 유럽을 견인하는 힘을 더 강하게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마크롱은 이미 2019년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선거 이후 새 집행위원회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회원국 정부를 대표하는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의 강한 발언권을 확보했으며 독일의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을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The Economist 2019). 이후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코로나 위기 회복 프로그램(Next Generation EU)을 유럽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은 물론, 이를 위해 EU 채권을 발행한다는 원칙을 도출해냈다. 유럽이 재정 연방주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받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마크롱 2기는 유럽통합이 상당한 진전을 이룩할 기회를 제공한다. 작년 독일에서 연립정부가 새롭게 출범한 데 이어 올해 프랑스도 향후 5년의 대통령이 결정됨으로써 유럽은 ‘독불 엔진’의 안정성을 확보한 듯 보인다. 5년 전 마크롱 당선 후 정상 외교의 첫 대상은 독일 메르켈 총리였다. 이번에도 마크롱은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총리를 제일 먼저 만날 것이다. 소르본 연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프랑스와 독일 양국이 완벽하게 통합을 이뤄 유럽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눈에 띈다. 독불 리더십의 모멘텀이 유럽통합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한창 진행 중인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에 던져진 충격적 도전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유럽은 전쟁의 충격만큼이나 급속하고 본격적인 사고의 변화를 경험했다. 21세기 세계 질서에서 유럽의 자리는 어디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III. 세계 질서와 “유럽 주권”

 

러시아의 급격한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의 지정학적 사고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 쓰나미였다. 유럽, 특히 독일은 1970년대 이후 교역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을 동독 뿐 아니라 탈냉전기 러시아나 중국에도 적용했다. 독일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로부터 가스 파이프라인을 추진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의 무자비한 침공은 독일이나 유럽에서 사고의 전환(Zeitenwende)을 가져왔다(The Economist 2022b). 독일은 자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2%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에도 나섰다. 이런 움직임은 제2차 대전 이후 계속된 독일 정책이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서막일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프랑스는 미국으로부터 두 차례 외교적으로 소외당하는 씁쓸한 경험을 했다. 2021년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도널드 트럼프 시기의 미국-유럽 긴장은 완화되었고 유럽은 다시 긴밀한 동맹 관계가 복원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했고 유럽은 결과만 통보받았다. 또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 호주가 형성한 오커스(AUKUS) 군사 동맹에서도 배제당하는 충격을 경험하게 되었다. 프랑스 국방장관이 동맹국들의 ‘배신’이라고 강력하게 표현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미국과의 동맹은 중요하지만 무작정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을 프랑스에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Kauffmann 2022).

 

러시아의 직접적 군사 위협과 미국 동맹의 불확실성은 유럽에 독자적인 외교·안보 능력과 노선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크롱이 소르본에서 던졌던 ‘유럽 주권’의 개념이 국제 정세로 조금씩 부상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2020년대 코로나 위기는 중국에 대한 유럽의 경각심을 한 단계 높여놓았다. 2019년 유럽은 이미 중국을 ‘체계적 경쟁세력(systemic rival)’으로 규정한 바 있다(European Commission 2019). 코로나 위기를 맞아 유럽은 마스크 등의 공급 사슬로 대중국 의존을 확인했고,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중국 백신 외교의 무모함을 겪었다. 2021년 중국이 EU 회원국인 리투아니아와 외교 분쟁을 다루는 방식도 충격적이었다. 대만/타이베이 대표부 명칭을 둘러싼 외교적 차이가 마치 초강대국이 군소 국가를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중국의 리투아니아 협박에 공동 대항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나 미국에 이어 중국도 유럽의 독자적 길을 모색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유럽 주권은 아직 하나의 슬로건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민족국가에 적용되는 주권을 유럽에 사용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하여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연합 안에는 헝가리의 오르반 정부처럼 여전히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는 세력도 존재하며, 반대로 유럽의 독립적 길보다 미국과 밀접한 동맹이 더 필요하다고 여기는 폴란드나 발트 3국 등의 대서양주의도 여전히 강하다(The Economist 2022a).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이 5년 동안 추구할 외교 정책의 방향은 ▼ 독일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양국 통합을 유럽의 모델로 제시하고, ▼지금까지 통합이 부진했던 유럽의 재정이나 안보 통합에 드라이브를 걸며, ▼러시아, 미국, 중국 등 세계 정치의 중량급들이 경쟁하는 무대에 유럽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닦겠다는 것이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슬로건이 단순한 꿈에 지날지, 70년 넘게 축적해 온 역사 경험이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

 

참고문헌

 

Chastand, Jean-Baptiste et Jakub Iwaniuk. 2022. “De Budapest à Varsovie, le silence et l’embarras des gouvernements populistes d’Europe centrale.” Le Monde le 24 avril.

European Commission. 2019. EU-China. A Strategic Outlook. Strasbourg: High Representative of the Union for Foreign Affairs and Security Policy.

Faye, Olivier. 2022. “Emmanuel Macron : une réélection sans état de grâce.” Le Monde le 24 avril.

Kauffmann, Sylvie. 2022. “« Macron l’européen ? Cinq ans plus tard, ses partenaires de l’UE sont plus conscients du chemin accompli que ses concitoyens ».” Le Monde le 20 avril.

Macron, Emmanuel. 2017. “President Macron gives speech on new initiative for Europe.” https://www.elysee.fr/en/emmanuel-macron/2017/09/26/president-macron-gives-speech-on-new-initiative-for-europe (검색일: 2022.4.26.)

Ministère de l’Intérieur. “Elections – Les résultats.” https://www.interieur.gouv.fr/Elections/Les-resultats (검색일: 2022.4.26.)

The Economist. 2019. “Ursula von der Leyen’s bumpy start.” Oct 17th.

The Economist. 2022a. “Crisis in Ukraine: How Russia has revived NATO.” Feb 12th.

The Economist. 2022b. “The reticent Mr Scholz: Why Olaf Scholz hesitates to send Ukraine heavy weapons.” Apr 23rd.

 


 

[1] “Dégage!”는 “꺼져!”라고 번역할 수 있는 저속한 표현이다. 기존 집권세력에 대한 환멸과 거부감이 매번 정권교체로 나타나는 정치 현상을 꺼져주의(Dégagisme)라고 부른다.

 


 

저자: 조홍식_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랑스 파리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유럽지역연구, 정체성의 정치 등이다. 대표 저서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 《하나의 유럽: 유럽연합의 역사와 정책》, 《유럽통합과 ‘민족’의 미래》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4) ) | jhjun@eai.or.kr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