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와 대선캠프, 정치권, 미디어, 인플루엔서를 예상 독자로 하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네 번째 보고서로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역대 대통령을 돌아보면서 ‘왜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이 별다른 업적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해답으로 시대와 국민 인식의 변화를 읽는 통찰력을 제시합니다. 최근 들어 의회 정치 경력 없이 갑작스럽게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평과 함께, 민주화 이전부터 계속된 국민 억제책을 답습하여 대통령 편의대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하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민주화 이래 한국이 국제화와 지식 정보화를 겪으며 대내외적으로 완전히 개방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전처럼 국민을 속이기가 힘들어졌으며 좀 더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대통령이 필요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이 글은 지난 8월, EAI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실시한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에서의 기조발언을 정리한 것입니다.

 

I. 서론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UN을 비롯한 각지로부터 선진국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비판으로 가득하다. 안타깝게도 한국 국민들로부터 “○○○ 같은 대통령이 한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의 목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어떻게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1987년 이전의 대통령과 민주화 경험 이후의 대통령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얼마나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는가. 그로 인해 우리는 차기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며 지식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차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성공조건은 무엇인가.

 

II. 실패한 대통령으로부터 배우다: “시대 변화와 국민 인식 변화를 읽어야 한다”

 

건국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던 때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시절부터 대한민국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정부 수립에 앞장섰다. 특별히 한국전쟁을 견뎌내고 한미동맹을 맺어 경제를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국가 발전의 기초를 닦은 것은 역사적 업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3선 개헌(1953년)을 자행하며 권력을 추구하다 스스로 몰락을 자초해 버렸다. 주목할 만한 업적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물을 설치한 셈이다. 4.19 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은 아쉽게도 한국 정치사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 후에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큰 공을 세웠으나 70년대 초 유신체제를 만들고 인권을 유린하는 억압정책을 펼치는 등 결국에는 본인의 삶마저도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또한 이승만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업적을 이루었으나 성공적인 대통령이라 평가하긴 어렵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대통령의 역할을 최소한 수행했을 뿐, 그들 또한 끝이 좋지 못했다. ‘국민 대통령’이라 칭송받던 김영삼 대통령은 IMF 구제 금융 사태를 초래하여 한국의 정치 사회 구조를 묘하게 망가뜨려 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사태를 짧은 기간 내 수습했다는 성공담을 수반하는 지도자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준비된 대통령이었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여론이 찬반으로 나뉜다. IMF 사태 수습은 대통령의 능력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의 전폭적 구제책과 우연히 형성된 중국 시장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본인을 몰아간 대통령으로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에서 ‘기적을 이룬 리더’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참에 대통령에 도전하였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올해 유력 정당 대선 후보들처럼 의회에서 정치 경력을 쌓아온 대통령 후보를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후보가 되어 대통령직에 앉았던 사례들을 보고 있다.

 

역대 대통령을 돌아보면서 던진 수많은 질문 중에는 ‘왜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이 별다른 업적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는지’와 같은 질문이 있다. 이에 답하기 위해선 1987년 이전의 대통령과 민주화 경험 이후 대통령 사이에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87년 이후 대통령들은 이전과 달라진 경제 상황과 사회 구조, 국민 의식과 행태를 인지하지 못한 채 국정 운영에 나섰다. 그리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왜 한국이 IMF 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IMF 사태를 초래한 경위는 이러하다. 그는 과거 군사 정권 시절 누렸던 경제성장률을 이룰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과거의 논리 속에 갇혀 지냈다. 경제성장률을 높게 유지하는 방책으로 재벌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재벌에 적용했던 규제를 풀어주었다. 금융도 투자도 재벌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자, 자연스레 과잉 부채와 과잉 투자, 과잉 시설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이하였다.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일반 국민의 인식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실패한다는 결론을 낳았다.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겪게 된다. 한나라당이 여전히 재벌과 기득권층을 옹호했던 반면, 민주당은 서민적 면모를 드러내며 표심을 샀으며 결국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또한 재벌을 움직이지 않고서 경제를 끌고 갈 수 없다는 단편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신자유주의와 함께 일반 국민의 기대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서민 대통령’을 뽑았는데도 서민의 사정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나라 살림살이를 지켜보며, 국민들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새로이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치자 국민들은 또다시 정부에 지지를 철회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출마 선언 때부터 후보 지명 연설 때까지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당선 이후에는 창조경제를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잡았고 결국엔 재벌을 찾아가 그들이 직접 창조경제 연구센터 등을 만들게 했다. 이 또한 본질적으로 자신이 대통령이 당선된 시대의 상황을 제대로 고민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국정 운영에 나섰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확고한 국가 경영관이 없는 상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시대와 국민 의식 변화를 읽지 못하는 대통령의 실패 사례의 뿌리는 민주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70년대 상황이 60년대 상황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논리로 국정을 운영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는데 나에게 어떻게 저항을 하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국민의 인식 변화를 힘으로 제어하려 했다. 국민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고 언론을 비롯한 사법부, 권력기관 통제가 지속하면서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대통령 편의대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하니 불행이 싹트기 시작한 셈이다. 대통령은 권력기관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시대와 국민 의식의 변화를 읽는 본연의 업무에 더 충실해야만 했다.

 

III. 숲을 보고 큰 그림을 그려라

 

민주화 이래 한국은 대외적으로 완전히 개방되었다. 국제사회와의 소통 또한 일상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대통령이 지녀야 할 기본 소양 또한 몇 가지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 외교안보, 과학기술, 교육과 국민 다양성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전문성을 갖추고 중요한 개념을 숙지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경험한 코로나 19 사태는 대통령에게 시대적 통찰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전에는 ‘외부로부터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것’만이 안보의 분야에 속했으나 지금은 바이러스 하나도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대응해야 할 정도로 안보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어떻게 ‘내적 안보’를 이룰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대통령이 필요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자영업자를 위기로 몰아넣은 현재의 경제적 난관은 과거 수차례 겪은 금융위기 때와 다른 처방전을 요구한다.

 

지식 정보화 트렌드 또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의 지식수준은 높아졌고 정보 접근권 또한 매우 개선되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이전처럼 국민을 속이기 힘들어졌다. 공정이나 정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엽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한 적절치 못한 전략이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바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는 통찰과 전문성이다. 모든 걸 다 알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국내외 정세를 막론하고 숲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

 


 

저자: 김종인_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관철시킨 장본인. 이 조항은 ‘김종인 조항’이라 불리며 우리 헌법 가운데 특정인의 이름으로 별칭을 갖는 유일한 조항이기도 하다.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 당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수천만 평을 매각토록 하여 부동산 가격을 단번에 안정시키며 ‘소방수’로 불렸다. 경제 참모의 영역을 뛰어넘어 한소-한중수교와 외교 사안까지 해결하며 ‘만능 수석’이라 불리기도 했다. 재정·조세 분야 전문가로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새천년민주당,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역임하여 ‘여의도의 포레스트 검프’라 불린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를 연달아 맡아 위기에 빠진 정당을 일으켜 세우며 매번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닥터 K’, ‘경제 할배’라는 찬사를 받았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여러 정부에서 총리 후보 등으로 거론돼 ‘지상紙上 발령 최다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다. 1940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대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교수 재직 중 부가가치세 실시 문제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후 근로자재형저축, 사회의료보험 도입 등에 기여했다. 일제강점기 민족 변호사이자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기틀을 만든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한국 정치사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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