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은 2022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와 대선캠프, 정치권, 미디어, 인플루엔서를 예상 독자로 하는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세 번째 보고서로 장훈 중앙대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선거민주주의로 압착될수록 당파적 선거 정치가 과열된다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로 인해 정작 주목해야 할 경제, 사회 이슈가 부차적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전환적(transformative) 리더십’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환적 리더십의 등장 배경으로 기성 정당들의 카르텔 체제 심화와, ‘미국 주도, 중국 참여’라는 세계화 흐름의 퇴조, 디지털 초연결성과 SNS 사용과 정치적 부족주의 강화라는 삼중의 시대상을 제시합니다. 특별히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가 기성 정치에 순응해온 인물이 아닌 그에 역행하며 도전을 해온 인물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리더를 뽑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입니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퇴조 속에 민주주의는 점차 선거민주주의로 위축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흐름이다. 2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현대 민주주의는 그간 자유, 평등, 인권, 환경 등의 다양한 사상들을 흡수하며 비교 불가한 호소력을 널리 발휘해왔다. 민주주의의 승전보가 울려 퍼진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지만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민주주의는 아시아와 유럽, 남미에서 줄곧 후퇴해왔다.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과 양상은 실로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흐름은 자유와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포괄하던 민주주의가 어느새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는 경쟁으로서의 선거민주주의로 압축, 위축되고 있는 점이다. 대통령이나 의원이라는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서의 선거라는 메커니즘만 앙상하게 존중받을 뿐, 그밖에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장치들은 미국을 비롯한 브라질, 헝가리, 폴란드, 스페인 등 세계 곳곳에서 후퇴하고 있다. 권력분립은 흔들리고 법치주의는 끝없이 추락 중이다.

 

선거민주주의로의 위축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내년 봄 우리는 방대한 권력을 가진 대표자(대통령)를 새로 선출하는 선거를 맞게 된다. 민주주의가 선거민주주의로 압착될수록 선거 경쟁은 사활적이고 과열되기 마련이다.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이른바 부족전쟁으로서의 선거정치가 과열될수록 근본적인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체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전략과 심화하는 경제 사회 양극화에 대한 정책들은 부차적으로 밀려나고 당파적 사투가 무대를 주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필자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전환적(transformative) 리더십의 등장이 요구되는 선거라는 관점에서 그려보고자 한다.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일하게 전 시민이 참여해서 뽑는 리더이다. 또한 입법부와 사법부로부터의 견제를 넘어서는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직위다. 때문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전환적 리더십을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제의 역사를 되돌아보거나 200여 년의 대통령제 역사를 가진 미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기성의 낡은 질서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전환적 리더십은 매우 드물었다. 200여 년의 미국 역사에서 기존의 정치 경제체제의 구조를 임기 동안에 대대적으로 갈아엎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이는 링컨, 루스벨트 등 극히 소수의 인물들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기념관이 있는 대통령은 단 4명에 불과한데, 이는 순서대로 초대 대통령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이다.)

 

내년 3월 대선은 후보들의 능력이나 성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구조적으로 전환적 리더십이 등장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그 까닭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대적 전환의 구조적 요건으로서 기존 질서의 와해이다. 둘째는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핵심전략 산업의 보여주듯 미국 주도, 중국 참여의 세계화 흐름의 변화이다. 셋째는 전환적 리더십의 충분조건으로서 리더들의 반(反) 기성체제적 성격이다.

 

먼저 구조적 요건으로서 기존 질서의 와해부터 살펴보자. 1987년 민주화, 1990년대 후반의 세계화, 2000년대 이후의 정보화가 우리 삶을 지탱해온 핵심적 질서의 기둥들이라면 이러한 기둥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동시다발적으로 주춧돌이 흔들리면서 와해되고 있다. 구질서의 와해는 당연히 새로운 질서를 향한 모색과 탐험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1987 민주화 체제의 와해에 관해서는 수많은 분석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 핵심을 기성 정당들의 카르텔체제 심화와 그에 따른 정치적 대표의 무기력화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많은 정당들이 명멸해왔지만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은 기성 정당들의 독과점이 강력하게 유지되어왔다는 점이다.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당명을 수차례 바꿔왔지만 그 뿌리는 1987년 민주화 출범 당시의 제1, 2, 3당이다. (당시의 제1당과 3당의 결합이 국민의힘의 뿌리이다.)

 

이들은 신규 진입이 지극히 어렵도록 설계된 정당법과, 정치 신인과 청년, 무소속 후보들에게 지극히 불리한 선거법, 정치자금법을 방어막 삼고 자신들만의 독과점 체제, 카르텔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에 도전하는 신생 정당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져 가거나 양대 정당에 흡수되어왔다.

 

카르텔 정당 체제의 존속은 당연히 일반 시민들과 정당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는 대표의 실패로 이어졌다. 양대 정당은 새로운 인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생각과 사상을 대표하지 않는다. 기존 문법에 부응하고 충성하는 인물과 생각만이 제도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다. 그 결과, 기성 제도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불만이 나타났다.

 

기성질서 와해를 설명하는 두 번째 관점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되던 미국 주도, 중국 참여의 세계화 흐름의 퇴조이다. 김영삼 정부의 주도로 시작된 한국 경제의 세계화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한 성장을 이끌어 냈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통상국가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되어왔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미국 주도의 세계화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핵심전략 산업의 디커플링은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떠받치던’ 개방된 체제로서의 20세기 세계화의 논리와 주체, 양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우호적인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지구적 공급망을 재편하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중국은 이러한 재편 작업에 맞서거나 혹은 대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생산, 무역, 금융, 디지털 연계망이 구축되고 있는 중이며, 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가리킨다. 그때, 현명한 선택은 한국의 글로벌 기업 뿐만 아니라 그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민간 행위자들, 그리고 정치 리더십의 인식과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셋째, 2000년대 김대중 정부 중반부터 본격화된 정보화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동력이었고 한국인을 24시간 디지털 네트워크에 연결된 삶으로 밀어 넣었다. 정보화 또한 요즘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트위터로 대표되는 24시간 연결된 소셜미디어는 경제 양극화를 증폭시키는 정치 양극화를 초래했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삶이 늘 누군가와, 혹은 전 세계의 정보에 연결되는 공간으로 축소된 것은 정보화의 밝은 결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초연결성은 정치적 부족주의의 등장을 불러왔다. 에코 챔버, 필터 버블이라는 개념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개인들은 점차 자신과 생각과 취향,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을 끊고 자신들의 정치적 부족, 안온한 집단 내에서 말하고 듣고 쓴다.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 등에서 잇따라 확인하였듯이, 정치적 부족주의에 따른 정치 양극화는 민주주의에 큰 도전 과제이다. 한국 사회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축복으로만 여겨졌던 디지털 초연결성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권력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코로나라는 글로벌 보건위기에 대한 대응하느라 디지털 모니터링(국가에 따라서 디지털 감시라고도 불림)은 일상이 되었고 이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의 급격한 위축과 국가권력의 급격한 팽창을 불러오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힘겨운 과제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의 구조적 전환은 곧 구 질서를 퇴출하고 새로운 (무)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실험과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갈림길은 당연히 전환적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 상황이 대전환을 요구할 때 정치 리더십이 늘 그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리더십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기성의 권력체제와 질서에 깊이 연관된 인물보다는 그에 반기를 들어온 인물만이 구조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 즉 대전환기라는 구조 속에서 전환을 이뤄내는 리더는 기성 정치질서에 깊이 연관된(affiliated) 인물보다는 기성 정치질서에 반기를 드는(oppose) 인물이라는 것이다.

 

내년 대선에 나서는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는 공통적으로 기성 정치질서에 순응해온 인물이라기보다는 그에 역행하며 도전을 해온 인물이다. 두 후보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없으며 정당들이 장기간에 걸쳐 키워낸 리더가 아니다. 또한 두 후보 모두 자신의 소속 정당의 주류의 정책이념이나 인적 네트워크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두 후보는 모두 사실상 주요 정당이 대통령 후보로서 아웃 소싱한 대선 후보들에 가깝다.

 

달리 말하자면, 두 후보는 모두 대전환을 시도할 배경과 캐릭터를 갖추었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두 후보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허약함, 구 질서의 붕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로 모아진다. 주요 후보들의 구 질서 붕괴에 대한 인식이 결국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민들은 이번 대선이 앞서 논의한 삼중의 전환기에 부합한 리더를 뽑는 선거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

 


 

저자: 장훈_ 중앙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전공분야는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외교 등이며, 48대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에는 미국 민주주의 재단 레이건-파셀 펠로우로 활동한바 있다. 저서들 가운데 <20년의 실험>과 <세계화 2막>(공편저)은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중앙일보에 "장훈 칼럼" 매월 연재하고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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