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 이슈브리핑은 지난 11월 13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을 복기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제와 문용일 서울시립대 교수,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교수),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이승주 중앙대 교수, 전재성 서울대 교수의 토론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비록 양국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킬 만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였으나, 향후 앞날을 전망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정상회담 전후 발표된 양국 정부 기관들의 주요 문건을 분석하여 양국이 미중관계를 보는 기본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고, 주요 쟁점에 대한 접근 방법의 차이, 그리고 한국에 주는 함의를 제시합니다.

 


 

미·중 관계가 좀처럼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악화하는 속에서 지난 11월 15일에 개최된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은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3시간 이상 진행된 회담은 공동성명 없이 양국의 요약문만 남겼다. 국내외 매스컴은 양국이 긴장 관계를 극적으로 완화시킬 만한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양국 관계가 대립과 충돌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상식적 가드레일’설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인 미중관계의 앞날을 전망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피상적 수준을 넘어서서 보다 심층적 수준의 분석이 필요하다. 이 글은 정상회담 전후 발표된 양국 정부 기관들의 주요 문건을 바탕으로 회담의 국내외적 배경, 미중관계 성격에 대한 양국의 기본 인식 차이, 주요 쟁점에 대한 접근방법, 한국에 주는 함의를 분석한다.

 

I. 미중 정상회담의 배경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의 미중 정상회담이 2021년 11월 16일(미국시간 15일 저녁)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지난 3월 알래스카 미·중 전략대화에서 표면적으로는 격론이 오갔지만, 내면적으로는 양국 간 협력, 경쟁, 갈등의 여러 가능성을 떠보는 탐색전이었다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미·중 관계에 대한 양국의 시각 차이를 분명히 확인해주는 자리였다.

 

먼저 두 강대국 정상이 회담에 임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미국은 그동안 국제질서를 이끌어왔던 주도국가로서의 위상과 역량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추세를 반전시키고 2050년에도 여전히 주도국가로 남기 위한 전략을 추진해왔다. 미국은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국이 미국 주도 질서의 기존 규범을 저해하고 다양한 압박 수단으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 미·중 관계를 철저하게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전략은 국내 역량을 개선하고 확보하는 한편,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을 기술, 규범, 경제, 군사 무대에서 치열하게 전개하되, 지나친 경쟁이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가능하면 도로 규칙 제정을 실현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은 신시대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을 겨냥하고 있는 2035년까지는 미·중 관계를 미국이 얘기하는 경쟁의 틀로 규정짓고 접근하기보다는 상호존중, 평화 공존, 공동번영협력의 추구라는 ‘신형 대국 관계’의 틀 속에서 바라보고 접근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특히, 미중 관계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이 가능하고 필요한 현안 이슈들을 논의하고, 나아가서 미중 간 협력이 절실한 지구 차원의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대만 문제와 같은 중국의 핵심이익 문제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단기적으로 회담에 임하는 두 정상의 최우선 관심사는 국내 현안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국내 역량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코로나 사태, 경제침체, 중산층 약화, 인종 문제, 국내정치적 양극화의 난관 속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던 인프라법이 11월 6일 어렵사리 통과되었다.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기반을 다진 성과이고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새로 출범한 행정부의 핵심 법안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수개월 동안 통과되지 못했다는 점은 물류대란, 인플레이션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역량 강화와 함께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국제역량 강화를 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의 최대 현안 과제는 연임 환경을 탄탄히 해서, 내년 하반기에 열릴 예정인 제20차 당대회를 무사히 마무리하는 것이다. 2022년 20차 당대회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여부가 확정될 회의이며, 따라서 중국 정부는 20차 당대회 이전까지는 다른 어떠한 현안보다도 당대회의 무사 개최에 집중할 것이다. 11월 11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 회의에서는 1945년 마오쩌둥의 첫 역사결의, 1981년 덩샤오핑의 두 번째 역사결의 이후 40년 만에 세 번째 역사결의가 채택되었다.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신시대를 열 것이며, 2035년까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현대화를 달성하고, 2050년까지 종합국력과 국제영향력에서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러한 역사결의는 정상회담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의 장기적 시야를 잘 보여주고 있다.

 

II. 경쟁(Competition) vs 복합(Complexity): 미중의 시각 차이

 

이번 회담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양국이 미중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미국은 미중 관계를 철저하게 경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이번 미중 정상회담 역시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보다는 향후 미중의 전략적 경쟁이 두 강대국 사이의 충돌(conflict)로 확대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가드레일’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였다.[1]미국 정부는 회담 이후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혼자서 중국의 향후 전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으며 동맹국, 전략파트너,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전방위 경쟁을 추구하겠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미국은 향후 미중 전략경쟁이 불가피함을 전제로 양국의 소통을 통해 전략적 위기의 안정성을 높이고 상대방에 대한 오독 가능성을 줄이며 이를 통해 위기관리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현 국면에서 미중 관계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변화에 대한 단기적 기대가 없음을 재확인하면서, 다만 양국이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도로 규칙(rules of the road)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2] 특히‘의도된 충돌보다 더 나쁜 것은 의도하지 않은 충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중관계의 경쟁 구조를 기정사실로 하려는 미국의 시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미중정상회담 직전에 나온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hina Institutes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Relations: 이하 CICIR)의 보고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3] 2019년부터 2년에 걸쳐 진행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와의 공동세미나 이후 나온 이 보고서는 중국 씽크탱크의 속성상 사실상 중국 정부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미중관계의 경쟁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시각은 협력적 측면 역시 존재하는 미중관계를 오도하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하면서, 설사 미중관계에서 경쟁 양상이 나타나고 있더라도, 미중관계의 경쟁 구조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양국관계의 논리적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첫째, ‘경쟁’이라는 표현 자체가 편향된 시각의 반영인 동시에 미중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둘째, 양국 관계를 경쟁으로 규정하면 대립과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셋째, 미중관계는 이미 양국만의 관계이기보다는 지구 차원의 중요성이 있는 관계이고, 넷째, 미중관계를 경쟁으로만 규정짓는 것은 중국을 봉쇄하고 억압하려는 미국의 패권적 의도를 합리화하고 감추려는 기만행위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주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미중관계는 미국이 바라보듯이 제로섬 또는 승자독식의 관계가 아니라 중국이 바라보듯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윈-윈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해당 보고서는 미중관계의 복합(complexity)을 강조하면서 미중관계에 대한 ‘새로운 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중국이 바라보는 미중관계의 새로운 틀은 무엇인가?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중관계가 상호존중, 공동번영협력, 그리고 평화 공존이라는 세 가지의 원칙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4] 양국 관계를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CICIR 보고서가 강조했던 원칙이다. 이는 또한 중국이 2012년부터 얘기해 온 신형 대국 관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상호존중의 원칙과 관련하여, 시진핑 주석은 미중 양국이 상대의 사회 체제와 발전경로,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서로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만, 홍콩, 신장, 티베트 등의 문제를 중국의 핵심 이익에 해당하는 내부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거부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번째 원칙은 평화 공존이다. 미국이 바라보는 미중관계가 경쟁에 기반하면서도 충돌로는 이어지지 않는 상호공존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중국은 최소한 대결, 충돌을 막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얘기하는 상호공존은 평화 공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 번째 원칙은 공동번영 협력이다. 서로의 이익이 이미 밀접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의 논리에 기반한 대립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미중 양국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호혜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III. 미중관계 주요 쟁점에 대한 접근 차이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경쟁을 바라보는 미중의 시각 차이는 미중관계의 주요 쟁점들의 해결 방법에 대한 차이로 연결된다. 먼저, 미국은 미중관계의 다양한 이슈들을 크게 네 유형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다.[5] 첫 번째 유형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해결이 가능한 사안들로서 기후변화, 코로나19 같은 보건 협력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양국이 논의해 왔으나 해결하지 못한 당면과제들로서, 이란 핵 문제, 북핵 문제를 들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미중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정치·군사적 현안들이다. 대만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중 경쟁이 충돌로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소통을 통해 오독과 오해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유형은 협력이 가능한 경제적 문제들로서, 에너지 문제 등을 포함한다.

 

반면, 중국은 향후 네 개의 우선순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6] 첫째는 초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중 양국이 협력할 필요가 있고, 둘째는 전방위에 걸친 교류 협력을 통해 미중관계가 보다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야 하고, 셋째, 미중관계의 탈선을 방지하기 위해 민감한 현안들과 양국의 차이를 건설적으로 관리해야 하며, 넷째, 세계평화, 세계 발전, 안전하고 공정하며 공평한 국제질서의 수호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국은 미중관계의 다양한 이슈 중에 3개의 기선(basic lines)을 분명히 하자고 제안한다.[7] 첫 번째 기선은 열전의 금지(no hot war)이다. 인도·태평양 전략, AUKUS, 쿼드 등 안보 문제에 대한 기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열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핵심이익의 문제는 간섭하지 말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이번 회담에서도 논의된 대만 문제가 바로 중국의 핵심이익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AUKUS나 쿼드에 대해서,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반중 전선의 형성으로 발전하지 않기 위해 중국과의 연락 및 대화 체계를 갖춰서 상호 행동에 대한 오해와 오판을 피하자고 언급하고 있다.

 

두 번째 기선은 냉전의 금지(no cold war)이다. 이념 및 가치문제에 대한 기선이다. 특히, 미중 경쟁을 두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독재국가’와 민주국가 진영의 대결로 틀을 짜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은 미중 간 적대감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줄서기 또는 편짜기를 촉진할 뿐이며, 이는 새로운 냉전의 도래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중 양국이 유엔을 축으로 하는 다자주의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기선은 탈동조화의 방지(no decoupling)이다. 이는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필요성 및 실현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인 동시에 중국이 가지고 있는 경계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미중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이미 완전한 탈동조화가 어려울 정도로 심화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배타적인 공급망을 만들려는 계획을 멈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IV. 한국에 주는 함의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은 애초부터 회담의 목적이 합의 및 가시적 성과의 도출이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이 충돌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위기관리 매뉴얼 작성 논의의 시작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의 소득으로서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 바이든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대만 문제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 중국은 지난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에 이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대만 문제는 중국이 양보할 여지가 없는 핵심이익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동시에 ‘미국에 의존해 대만의 독립을 획책한다’라고 대만 당국을 향해 직접 비난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일부 인사들이 대만을 이용하여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며 다소 조심스럽게 표현하면서,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할 가능성은 낮추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편, 미국은 중국이 상호존중 원칙 및 내정불간섭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장, 홍콩 문제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함께 보호해야 할 보편적 권리와 가치의 문제이자 가치 규범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동시에 하나의 중국 원칙이 양안 관계에 대한 미국의 기본적 외교 전략이자 원칙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비평화적인 수단으로 대만 문제의 현상 변화를 시도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고, 대만에 대한 지원도 일관되게 유지하겠다는 것도 강조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경제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이나,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해야 하는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대만 유사시 한국의 개입과 관련한 국내적 논의는 더욱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의 경우, 미중 양국이 협력해야 할 당면과제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었으나 구체적 협력방안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의 과제다. 그런데 중국은 기후변화나 보건 협력 등 지구 차원의 도전과제나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미중협력은 기본적으로 양국에 호혜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지구 차원의 도전과제에 대한 중국의 협력은 미국에 관한 호의 차원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당연한 책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소위 협력의 범주(bucket)에 속하는 과제에 중국이 협력하였다고 해서, 정치 군사 현안 등 다른 범주에 있는 양자 현안에서 중국에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중국이 미중관계의 다른 이슈 영역에서 일정한 보상이 있어야지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뜻이라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일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미래 전략에 주는 함의도 크다. CICIR 보고서에서 중국은 쿼드나 오커스를 언급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다자적 억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전략적 판단 착오를 막기 위한 미중 간 통보와 대화 메커니즘을 활성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쿼드나 오커스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적극적 반대의 논조가 상대적으로 약화하고 미중 협력 요구로 방향이 어느 정도 완화된 모습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한국은 쿼드와 보다 다양한 협력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도 미중 간 협력 메커니즘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조심스럽게 검토하면서, 총체적으로 한국의 국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 같은 신형대국관계와 한국과 같은 신형주변국 관계에서 보여주는 대응의 내용과 수위가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미중 간 경제 탈동조화의 실현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하였는데, 이는 중국이 미중 간 탈동조화, 나아가 경쟁을 전제로 한 주변국 줄 세우기를 강하게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경제적 측면에서 미중 간 탈동조화의 문제,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문제는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도 당장 강하게 추진하기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특히, 최근 물류대란과 인플레이션 문제가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를 크게 흔든 상황이고, 그 이면에 공급망 불안 사태가 자리하고 있어서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조심스러운 문제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전략은 단기적 차원의 공급 부족 문제와 중장기적 차원의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회복 과정에서 발생한 단기적 공급 부족 문제는 점차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전략은 구조적 취약성의 완화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정상회담 전후 지나 러만도 상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통상 대표의 움직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러만도 장관은 한국, 대만,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에 주요 정보의 공유를 요청하는 강공책과 함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문제의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EU,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과의 협력 토대를 마련하였다. 한편, 타이 통상 대표는 미중 정상회담 직후 한국, 일본, 인도를 순방하면서 중국에 대응하는 경제 프레임워크의 추진을 분명하게 시사하였다.

 

대외경제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CPTPP에 참여하지 않아 인도 태평양지역에서 경제 개입의 직접 수단을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RCEP에 인도가 불참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대한 간접적 견제 수단도 마땅하지 않다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프레임워크는 미국이 인도 태평양전략의 경제적 대안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타이 대표가 특히 일본을 방문 중 일본 경제산업성 하기우다 고이치 장관과 ‘미일 무역 파트너십’ 출범에 합의하고, 한국 및 일본과 새로운 노동 규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은 미국이 추진하려는 경제 프레임워크가 새로운 표준 설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가 TPP를 이미 과거의 규칙과 규범으로 평가 절하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및 파트너들과 미국의 가치와 이익을 포괄하는 새로운 표준의 형성을 시도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경제 프레임워크는 미국이 지역 차원의 다자 협력을 추구하려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협력의 조건과 방식에 대하여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

 


 

[1] Whitehouse, “Background Press Call by Senior Administration Officials on President Biden’s Virtual Meeting with President Xi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November 14, 2021.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peeches-remarks/2021/11/15/background-press-call-by-senior-administration-officials-on-president-bidens-virtual-meeting-with-president-xi-of-the-peoples-republic-of-china/)

[2] Whitehouse, “Readout of President Biden’s Virtual Meeting with President Xi Jinp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November 16, 2021.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1/11/16/readout-of-president-bidens-virtual-meeting-with-president-xi-jinping-of-the-peoples-republic-of-china/

[3] CICIR, “CICIR Report: Mutual Respect, Equality, Mutual Benefit and Peaceful Coexistence – Exploring a New Framework amid Complexity for China-US Relations,” November 14, 2021. http://www.cicir.ac.cn/NEW/en-us/opinion.html?id=fe12030f-3cdd-4547-ae0e-d2301f191b8b

[4] 중국 외교부, “President Xi Jinping Had a Virtual Meeting with US President Joe Biden,” November 16,2021. https://www.fmprc.gov.cn/mfa_eng/zxxx_662805/t1919223.shtml

[5] Brookings Institute. “Readout from the Biden-Xi virtual meeting: Discussion with National Security Advisor Jake Sullivan,” Novemer 16, 2021. https://www.brookings.edu/events/readout-from-the-biden-xi-virtual-meeting-discussion-with-national-security-advisor-jake-sullivan/

[6] 중국 외교부. 위의 글.

[7] CICIR. 위의 글.

 


 

■ 저자:하영선_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미국 프린스턴 대학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회 회장,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한국 측 공동위원장,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회의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EAI 이사장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서 및 편저에는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 <한국외교사 바로 보기: 전통과 근대>,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사행의 국제정치: 16-19세기 조천•연행록 분석>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하영선 칼럼”을 7년동안 연재했다.

■ 저자:문용일_서울시립대 조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은 후,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로는 “Cause Lawyering and Movement Tactics: Disability Rights Movements in South Korea and Japan”, “장애인권리협약의 성안과 프레임경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규범외교”, “남아공의 비핵화 이행과 검증”, “불가리아의 정치적 양극화와 불가리아 헌법재판소의 정치화” 등이 있으며, <새로운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의 미래> 등의 저서에 공저자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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