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겪었지만 다양한 이행기 정의 정책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습니다. 한반도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는 이슈 영역의 포괄성으로 인해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김헌준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경험을 개괄하고 이 경험이 다른 국가에 줄 수 있는 함의와 한계를 모색합니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시도된 이행기 정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니기 때문에 한국 이행기 정의의 국제적 함의를 모색할 때 한국 사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발견하고 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I. 서론

 

이행기 정의는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다(Teitel 2000). 20세기 한국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겪었다. 억울한 민간인 희생은 민주화 이후 수면 위로 불거졌고, 김대중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공식적으로 논의됐다. 다양한 이행기 정의 정책이 사용됐고 이를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사에 대한 대립과 반목, 이념 갈등도 불러왔다. 한국의 경험은 다른 국가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이행기 정의는 처벌, 진상규명, 명예 회복, 배상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이 원칙은 유엔에서 2004년 채택됐으나(United Nations 2004) 개별 국가에 대한 보편적 적용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한 국가의 경험을 포괄적이고 자세히 정리하는 작업은 이행기 정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하다. 미국, 영국, 독일, 체코, 한국의 민간 기구나 정부, 학계에서 이 작업이 진행됐다(Bickford 2007; CEVRO 2021; Dancy et al. 2014).

 

영어인 “transitional justice”는 과도기 정의, 전환기 정의 혹은 이행기 정의로 옮겨졌다(조정현 2014; 이병재 2015; 김헌준 2017). 이행(移行)이란 ‘다른 상태로 옮아가거나 변해감’을, 전환(轉換)이란 ‘다른 방향이나 다른 상태로 바꿈’, 과도(過渡)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새로운 상태로 옮아가거나 바뀌어 감’을 의미하는 유의어이다. 하지만 “transitional justice”가 민주주의로 이행과 연계된 단어이고 한국에서 “transition”을 이행으로 번역한 전통을 따라 이행기 정의로 지칭한다. 개념은 생소하나 이것이 지칭하는 현상은 한국에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는 과거청산, 책임자 처벌, 희생자 명예 회복, 진상조사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이행기 정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추념사에서 대통령은 4.3의 해결에 있어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을 강조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마땅히 위로·사과·보상을 해야”하지만 폭동 세력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4.3사건을 보는 두 관점은 다르지만 『조선일보』도 억울한 희생에 대해 국가가 “마땅히” 위로, 사과, 더 나아가 “보상”까지 해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둘의 공통분모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가 대응하는 것이 “마땅”하고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4.3 희생자에 대한 마땅한 “위로·사과·보상”을 언급한 것은 한국 사회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 사례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모델로 제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글은 한국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경험을 개괄하고 이 경험이 다른 국가에 줄 수 있는 함의와 한계를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I. 한국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근대 한국은 일제 식민지(1910-1945), 해방과 미소(美蘇) 군정기(1945-1948), 한국전쟁(1950-1953), 이승만 독재정권(1948-1960),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1960-1961), 5.16 군사 쿠데타와 박정희 독재정권(1961-1979), 박정희 암살과 서울의 봄(1979-1980), 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노태우의 권위주의 정권(1980-1988), 1987년 6월 항쟁과 제도적 민주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대량학살, 고문, 강제 실종, 의문사, 법적·초법적 살인 등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권위주의 세력이 명맥을 유지해 당분간 제대로 된 과거사 처리가 어려웠으나, 제한적이나마 문민정부부터 시작된 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 노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어려움을 겪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 중 세 번째 우선순위 과제로 선정하며 적극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인권침해는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했으므로 사건마다 가해자(일제, 독재정권, 권위주의 정권, 민주정권)도 다르고 사건 규모도 다르다. 사건의 성격(진압과정 중 침해, 전쟁 중 침해, 유력 인사 인권침해, 폭압적 정책 집행과정 중 침해 등)과 피해 규모도 제각각이다. 1,000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사건으로 3.1운동, 간도참변, 간토대지진 학살,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국민 보도연맹, 형무소 수감자 학살, 노근리 사건, 부역자 학살, 미군 폭격, 북한군과 동조자에 의한 학살, 북한 지역 내 민간인 학살 등 포함), 숙군, 국민방위군 시간, 거창 양민학살 등이 있다. 100명을 기준으로 삼아도 대구 10월 사건, 4·19혁명, 형제복지원,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이 있다.

 

이외에도 민간이 희생이 100명에 이르진 않으나, 중요한 사건도 많다. 제암리 학살, 일본군 성노예제, 강제동원, 대구 2.28사건,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부마항쟁, 학원 녹화사업,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사북 항쟁, 실미도사건, 김대중 납치, 장준하, 최종길 의문사와 군 의문사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적대 국가가 민간인을 공격한 1983년 소련 대한항공 007기 피격사건과 1985년 북한 공작원 대한항공 858기 폭파도 있다. 민주화 이후 대규모 민간인 희생은 줄었으나, 고문, 간첩 조작 등 인권침해는 끊이지 않았다.

 

유가족은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은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고 이들마저도 억압했다. 1960년 조직된 6.25패 학살 양민유족회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반인륜적인 탄압이 그 예이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과거사 처리 작업이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 시기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와 대통령 직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됐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같은 시기 경찰청과 국방부, 국가정보원이 자체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과 거사 조사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고, 여순사건 관련 위원회가 조직 중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및 김일성 가문의 세습이란 기형적 체제를 유지한 북한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학살, 살인, 고문, 강제 실종, 강제수용 및 노역 등이 발생했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대기근 이후엔 탈북 난민, 강제 송환, 탈북 여성과 아동에 대한 2차 가해도 있었다. 강제 납북자, 억류 포로 문제도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민간인 희생의 대표 사례만도 종교인 탄압, 갑산파 처형, 창평 수용소 학살,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 심화조 사건, 송림 제철소 학살, 회령 수용소 학살 등이 있다. 북한에서 이행기 정의가 등장한 것은 탈북민이 실상을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특히 2013년 조직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이행기 정의가 언급되며, 국내외에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문제가 논의됐다(Teitel and Baek 2013; 이규창 외 2016). 이듬해에는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 등 북한을 감시하고 인권침해를 기록하며 체제 전환을 대비하려는 준비가 시민사회에서 시작됐다.

 

이처럼 한반도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시기적으로 백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지리적으로 한국, 북한, 일본, 만주, 공해상을 포괄한다. 가해 주체도 일제, 한국 독재·권위주의·민주주의 정권, 북한, 소련, 미국 등 다양하다. 따라서 포괄적인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 모델과 그 함의를 찾기는 쉽지 않다.

 

III. 한국 이행기 정의의 국제적 함의

 

한반도의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는 이슈 영역의 포괄성으로 인해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이행기 정의 모델로서 한국 사례는 다음과 같은 국제적 함의를 지닌다.

 

1. 이행기 정의의 긍정적 효과: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제도와 문화 정착

이행기 정의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제도와 문화를 형성하고 정착시켰다. 한국은 여느 국가보다 각종 (진실/배상/조사) 위원회, 형사 및 민사재판, 배상/보상 제도를 활용해 과거 인권침해를 해소하려 시도했다. 정부의 사과, 교과서·공식문서의 수정, 재심을 통한 희생자 명예 회복과 배상, 희생자 유해 발굴과 추모, 기념재단 설립,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 국가추념일 지정 등 노력이 있었다(김헌준 2017). 이는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했고, 국민의 인권 의식을 높였다. 각종 위원회의 권고로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나 기념 재단은 인권을 보호하고 과거 인권침해가 더는 왜곡·폄훼되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

 

물론 국내 이행기 정의의 효과에 대한 자체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희생자와 활동가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고 미진하기 때문이다. 제주 4.3의 경우, 배상, 트라우마 치유, 광주 5.18의 경우에는 진상조사와 보고서 발간, 한국전쟁 중 민간인 희생의 경우 기념재단과 연구소의 설립이 남은 과제이다. 이런 냉철한 평가와 성찰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행기 정의의 성취는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전파될 필요가 있다.

 

2. 지속되는 논란의 긍정적 영향: 이행기 정의의 상호 상승작용

한국 이행기 정의의 주체는 비록 이념, 정치 성향, 지역, 연령, 성별로 극심하게 나뉘어 보이나 결국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인권침해와 이행기 정의는 정부 성격과 무관하게 공동체의 주요 관심사였다. 과거사에 대한 공방이 유난히 거친 것도 국민의 관심을 증명한다. 과거 인권침해는 원만하게 대승적 합의를 이루거나 논란 없이 넘어간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여순사건 관련 법 논란, 위안부 및 강제 동원 관련 재판 논란이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4.3 지원 규모 축소, 위안부 졸속 합의가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의문사위, 4.3 위원회, 진화위, 식민지 관련 위원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나오거나 관련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논란이 있었다.

 

향후 진보가 집권하면 유사 논의가 계속될 것이고 보수 집권 때는 북한 인권, 납북자, 특수임무 수행자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 시기 이행기 정의를 추진하면서 생긴 경험은 정부 성격과 무관하게 다른 사건의 희생자에게 전파돼 기대 수준을 높이는 양상을 보였다. 제주 4.3, 진화위의 경험은 광주 5.18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소련 대한항공 피격사건이나 북한 조사 기관에도 전수됐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북한 인권 조사는 아동의 해외 입양 실태를 조사로 이어졌다. 즉, 진상규명, 배/보상, 재판, 명예 회복의 경험은 공동체 안에서 사안의 성격, 지역, 가해자, 규모와 무관하게 상호 전달돼 상승작용을 보였다.

 

3.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이행기 정의

한국 이행기 정의는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거사 관련 법의 개정과 재개정, 진화위 설치 15년 후의 진화기 2기 설립, 지방자치단체, 국회, 국방부, 진실위원회에서 계속되는 제주 4.3과 광주 5.18 조사, 의문사위에서 분화된 군의문사위, 친일 조사 이후 재산 조사 등 모든 과정은 이행기 정의가 ‘단번에 최종적(once-and-for-all)’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제주 4.3의 경우도 공식 조사가 종결돼 정부 보고서가 확정된 2003년 이후에도 제주4.3평화재단의 조사, 진상규명 과정에 대한 기록, 교육계 및 종교계 피해에 집중한 조사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행기 정의 과정이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공고화되는 양상이다.

 

물론 많은 시도가 장기간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피로감도 증가하고, 집권당의 성격에 따라 지원 규모 축소나 위원회나 사업 폐지라는 역풍도 맞는다. 이 경우 사회적 논란이 생기고, 반대 세력은 적극적으로 지난 정부의 노력을 되돌리려 법적·정치적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과 공방, 실패와 좌초, 반대와 새로운 시도의 모든 과정이 인권과 이행기 정의의 발전 과정이고,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제주 4.3, 광주 5.18,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모두 학살이란 1차 가해뿐만 아니라 독재·권위주의 정권의 유족 탄압, 군경과 정보기관에 의한 진상규명 방해 공작 등 2차 가해까지 기념하고 전수하고 있다.

 

IV. 한국 이행기 정의 경험의 한계

 

한국을 이행기 정의의 모델로 논의하는 것에는 한계도 있다. 이는 모두 한국 사례에 특수성에 기인한다.

 

1. 분단 체제와 외국의 역할

한국의 특수성이자 가장 큰 한계는 분단 체제이다. 분단은 두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북한의 인권침해는 계속 진행 중이고 아직 제대로 된 이행기 정의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인권기록센터, 전환기정의워킹그룹, 통일연구원이 조사하고 대비하고 있으나 실제 논의는 북한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변화가 있고 난 뒤에나 가능하다. 둘째, 분단 체제는 제주 4.3, 여순 사건, 광주 5.18에 대한 이념 공격과 분열을 일으키며 한국에서의 온전한 진상규명도 방해한다.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기념은 분단 체제가 해소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는 견해도 있다.

 

다른 한계는 인권침해가 일본, 미국, 소련 등 외부 세력에 의해 발생했거나 묵인하에 이뤄진 경우이다.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논의와 정책은 쉽게 현재의 외교 갈등의 사안이 된다. 최근 위안부나 강제 징용 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의 강경 대응이 초래한 외교 문제는 잘 알려져 있다. 제주 4.3도 미(美)군정기에 시작됐으므로 미국 책임론과 사과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미국이 대응할지는 미지수이다. 광주 5.18도 미국 기밀문서 중 일부가 공개된 이후 미국의 신군부 묵인 등을 이유로 책임론이 제기됐다. 물론 독일과 나미비아, 프랑스와 알제리 논란에서 보듯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 과거 인권침해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 식민지배, 미소 군정, 전쟁의 국제적 지원이라는 삼중 구조로 둘러싸인 쉽게 전파될 수 없는 우리의 특수성이다.

 

2. 요원한 화해

이행기 정의의 궁극적 목적은 이 조치의 정당성과 필요성, 효과와 기대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 사회 통합과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논란이 많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논란만 있고 화해에 근접하지 못하면 다른 국가가 굳이 이 길을 가야 할 명분이 없다. 물론 한국에서 광주 5.18이나 제주 4.3을 둘러싸고 최근 의미 있는 화해 시도가 있었다. 최근 야당이 보인 광주에 대한 사과나 묘역 참배, 노태우 대통령 아들의 참배, 군경 가해자 5.18 위원회 증언과 이들의 개별 사죄와 화해 등은 불완전하나마 중요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에서도 피해자인 유족회와 가해자인 경우회의 화해와 합동 위령, 국방부 차관과 경찰청장의 사과, 여야의 합동 참배 등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화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행기 정의의 지원 규모와 대상 등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있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극명히 다른 입장, 여순사건이나 광주 5.18 관련 법에 대한 공격을 보면 과연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 묻을 수밖에 없다. 한국 사례의 국제적 함의를 논할 때 국내적 합의를 이룬 부분과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 그리고 영구적으로 합의가 힘든 부분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남아공과 다른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행기 정의 제도의 실행과 실질적 화해 사이에 좁히기 힘든 거리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한국에서 화해가 얼마나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에 국제적 함의 도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V. 결론

 

한국, 더 넓게는 한반도에서 시도된 이행기 정의는 보편성과 함께 특수성을 지닌다. 인권침해 자체가 여느 정치공동체에나 있고, 인류가 공통으로 경험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두 차례 세계대전, 냉전의 경험은 이를 악화시켰다. 제주 4.3 사건만 해도 그리스 내전, 대만 2.28 사건, 인도네시아 1965년 학살 등과 유사성이 있다. 인권침해가 보편적인 만큼 이를 해소하려는 이행기 정의 노력도 보편성을 보인다. 최근 미국의 인종 문제(털사 인종학살), 캐나다/호주의 원주민 문제, 독일과 나미비아 화해 시도, 독일의 지속되는 나치 청산 노력과 국제적 화해 시도(최근 메르켈의 아우슈비츠 방문) 등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 이행기 정의의 명백한 특수성도 있다. 최근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내 사법부의 결정이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 민감한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한 예이다. 남북 분단 체제도 특수한 요소이다. 모든 국가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이념 대립, 지속된 갈등으로 과거 인권침해 문제는 민감한 문제이나 유독 한국의 경우 이례적으로 정쟁의 불쏘시개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 있던 현충원 파묘 논란, 민주화운동 유공자 예우법 제정 논란, 여순사건 특별법 통과와 반대, 역사왜곡처벌법을 둘러싼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 이행기 정의의 국제적 함의를 모색할 때 한국 사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발견하고 이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보편 이미지에 매몰돼 우리가 특수라고 생각하는 것의 보편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한국은 남아공, 대만, 아르헨티나 등 다른 나라의 이행기 정의 경험뿐만 아니라 국제형사법의 발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등 국제법적 흐름에도 영향을 받아 이를 자체적으로 수용해 발전시켰다. 역으로 한국의 이행기 정의 경험은 그 발전과 성취뿐만 아니라 논란과 갈등까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국제적 흐름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행기 정의 정책을 고려하는 국가들에게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언이 가능하다.

 

첫째는 식민청산 관련 이행기 정의에 관련된 제언이다. 한국은 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배상했다. 일본과는 청구권 협정을 했으나 최근 사법부의 독립적 판결과 시민사회의 지속적 문제 제기로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다.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에게 이는 과거 인권침해를 다루는 것이 현재 외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권 의식과 민주주의의 발전과 이행기 정의는 반드시 효율적 외교정책과 같이 가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상충된다. 다만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식민지 문제만이 아니라 여성 인권이라는 국제인권 규범의 발전과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국제법의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가는 큰 흐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기적인 국가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 외교적 해법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는 한국전쟁 시기 및 권위주의 시기 인권침해 관련된 이행기 정의의 경우다. 한국은 해방 전후, 한국전쟁기, 독재와 권위주의 시기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중앙과 지방, 민간과 정부 등 다양한 진실위원회의 중복 설치를 통해 인권침해를 밝히려고 노력해왔다. 이는 물론 국가재정 낭비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반대자들에 의해 ‘위원회 공화국’이란 오명도 얻었다. 다양한 진상조사와 위원회 운영은, 중앙의 지휘 없이 개별적 진상조사가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긴 안목에서 보면 이 모든 과정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 피해자 구제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렴된 모습이 보였다. 따라서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들은 중앙과 지방, 민간과 정부, 어떤 차원에서든 진상규명을 지속하고 그 기록을 남겨 향후 진실위원회, 재판, 배상과 보상의 근거로 남길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 작업은 향후 적절한 시점에 군경, 검경, 정보기관 등 주요 권력기관의 개혁에 정당성을 제공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헌준. 2017. “전환기정의 규범의 확산과 그 효과: 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연구』 26권 1호, 101-26.

이규창, 김헌준, 도경옥, 백범석. 『북한인권 책임규명 방안과 과제: 로마규정 관할 범죄에 대한 형사소추문제를 중심으로』. 서울: 통일연구원.

이병재. 2015.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인권.” 『국제정치논총』 55권 3호, 85-121.

조정현. 2014. “과도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한반도 통일.” 『서울국제법연구』 21권 1호, 25-42.

United Nations. 2004. “Report of the Secretary-General on the Rule of Law and Transitional Justice in Conflict and Post-Conflict Societies.” UN Doc. S/2004/616.

Teitel, Ruti G. 2000. Transitional Justic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Teitel, Ruti G. and Bum-Seok Baek. 2013. Transitional Justice in Unified Korea. New York: Palgrave Macmillan.

Dancy, Geoff, Francesca Lessa, Bridget Marchesi, Leigh A. Payne, Gabriel Pereira, and Kathryn Sikkink. 2014. “The Transitional Justice Research Collaborative Dataset.” www.transitionaljusticedata.com (검색일: 2020.9.19.).

Bickford, Louis. 2007. “Unofficial Truth Project.” Human Rights Quarterly 29 (4): 994-1035.

CEVRO. 2021. “Memory of Nations: Democratic Transition Guide,” http://www.cevro.cz/en/241492-guide (검색일: 2021.8.27.).

 


 

저자: 김헌준_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부교수 및 선임연구원, 미국 세인트올라프대학교 (St. Olaf College) 방문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관련 연구로는 The Massacres at Mt. Halla: Sixty Years of Truth-Seeking in South Korea, Transitional Justice in the Asia Pacific, “The Prospect of Human Rights in US-China Relations: A Constructive Understanding,”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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