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민주화 과정과 민주주의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관한 지식과 경험 공유를 통해 선진국과 개도국 그룹 간의 가교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김태균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의 주요 콘텐츠, 한국 민주주의 경험의 공유 방식과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맞서야 하는 과제와 대응 전략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에 중요한 방향타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며, 동아시아 평화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한국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민주주의 원조를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I. 국제사회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치

 

한국은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선진공여국 클럽의 일원이 되었으며, 2021년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개도국 리스트에서 제외되고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되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가 개선되는 이유로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낸 산업화를 기반으로 2021년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는 등 성공적 경제성장 때문으로 설명되고 있다. 반면, 경제발전과 함께 한국이 걸어온 민주화 및 정치발전의 역사와 경험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한 상태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이 이룬 경제적 기적 못지않게 민주화 기적에도 주목한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민주화 과정과 민주주의 제도의 안착에 대한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여 자국의 민주화와 제도개선에 도움을 받고자 하고 있다.

 

한국은 다양한 측면에서 개도국과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그룹 간의 가교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우선, 한국은 대부분의 글로벌 남반구(Global South) 개도국과 유사하게 식민지 경험과 독립 및 국가건설의 과정을 겪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1948년 제1공화국이 탄생을 통한 국가건설과 함께 바로 분단체제가 시작되었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역사적 경험은 개도국의 경험과 겹치는 측면이 크다. 둘째, 한국은 1950년부터 3년에 걸쳐 한국전쟁이라는 전쟁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어 분쟁 내지 내전의 경험이 있거나 현재 겪고 있는 개도국과 평화구축과 분쟁 후 개발과정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은 1961년과 1979년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와 군부독재, 그리고 1987년 민주화와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정변과 민주주의 위기,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군부독재와 정부 부패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한국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한 스토리텔링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한 분단체제와 한반도 평화구축의 지속적 노력으로 이어져 온 한국의 역사적 경로는 이념적 분쟁상태에 있는 국가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렇듯 한국이 근현대사에서 압축적으로 경험한 식민주의와 독립, 전쟁과 복구,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분단과 평화구축으로 구성되는 정치발전의 서사는 글로벌 남반구의 파트너 국가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경험이자 지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 중에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에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회는 선진국과 개도국 그룹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한국에게 주문하고 있으며, 개도국들도 정치체제 개혁을 견인할 수 있는 노하우를 한국으로부터 배우려고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발전 및 민주주의 경험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작성하는 일과 한국 정치발전 및 민주주의 경험을 개도국 지원에 투영해 온 스토리텔링의 작성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한국 내부의 정치사적인 서사로서 제3의 파트너 개도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후자는 한국이 공여국의 위치에서 개도국이라는 수원 주체를 파트너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경험의 공유는 경제 및 사회개발 중심의 해외원조에서 핵심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및 다른 방식의 국제협력 프로젝트에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경험 공유가 한국 ODA의 핵심 의제가 되지 못한 이유는 한국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의 콘텐츠 중 민주화, 평화, 인권 등의 정치적 의제가 경제개발/사회개발 관련 섹터와 의제에 비해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른바 ‘민주주의 원조(democracy aid)’라는 개념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민감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공여국이 원조 제공 전에 원조 조건(aid conditionality)으로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공여국의 민주주의 가치를 이식하는 정치적 개입으로 민주주의 원조가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실제로 미국 등 강대국이 권위주의 개도국의 민주화를 목적으로 민주주의 원조를 일방적으로 지원했던 역사의 불편한 진실이 상당수 존재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정의와 정치제도화는 수원국의 현지 조건을 토대로 문화적 산물로 자생하는 정치과정이지 해외에서 수입되어 이식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 원조 경험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원조정책에서 경제/사회개발에 비해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민주주의 원조 자체의 정치적 민감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 국제개발협력 관계기관과 학계로부터 체계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개도국 정부의 거버넌스 기능 강화를 지원하고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등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가치 함양과 제도 개선을 위한 개발협력 사업을 진행해 온 것도 사실이다. 아직 민주주의 원조를 위한 통합된 체계를 운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개발협력 기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개도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개선하는데 기여해 왔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경험의 스토리텔링을 위한 하나의 서사로서 현 단계에서의 민주주의 원조의 콘텐츠와 수원국과의 공유 방식, 그리고 한계와 차후 개선점을 정리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가질 것이다.

 

II. 한국 민주주의 원조의 주요 콘텐츠와 이행기관

 

민주주의 원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동맹국과 우방국의 정치제도를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려는 해외원조 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민주주의 원조에 관한 다양한 개념적 분석과 구성요소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는 아래 [표 1]과 같이 민주주의 원조의 내용을 선거과정, 국가기관 및 제도, 그리고 시민사회 영역으로 구분하는 접근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법은 공여국이 수원국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정치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에 집중하기보다 수원국의 민주적 제도 구축이나 재건 및 공고화와 관련된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이다. 한국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 그리고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을 짧은 기간 내에 경험하면서 이러한 제도정비와 관련된 지식공유와 연수사업 등 개발협력 콘텐츠에 강점을 보여 왔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한국이 기여한 민주주의 원조 범주에 해당하는 콘텐츠는 대부분 도구적인 제도정비와 개선, 그리고 이를 유지∙관리할 수 있는 역량강화에 집중해 왔다. 즉, 민주주의 관련 제도 지원은 공공행정과 선거제도 개선 등으로 개발협력 프로젝트가 기획되었고,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수원국 시민사회단체 지원을 통해 시민사회단체(CSOs)의 애드보커시 역할과 서비스 전달 기능 강화 등을 도모하였다. 2015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가 선포되면서 민주주의 원조(법치, 제도구축, 평화, 책무성 등)의 내용과 SDG16 간의 연계성을 토대로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의 경우 SDG 16 핵심가치 중심의 다층위적 협력 강화를 도모하고 SDG16 프로그래밍 전략 및 이행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표 1> 민주주의 원조 템플레이트 [1]

섹터

섹터 목표

원조방식

한국 원조기관

선거과정

ㆍ자유공정선거
ㆍ정당정치시스템

ㆍ선거지원 원조
ㆍ정당정치 구축 지원 등

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A-WEB)

국가기관

ㆍ민주적 헌법 및 법치
ㆍ독립적 사법부 제도
ㆍ대표성 있는 입법부 제도
ㆍ책임 있는 중앙/지방정부 제도
ㆍ민주적 군사 제도

ㆍ헌법제도 구축 지원
ㆍ헌법치 지원 원조
ㆍ헌사법부 제도 지원
ㆍ헌지방정부 개발 지원
ㆍ헌시민사회-군사 관계 지원

ㆍKOICA
ㆍ한국행정연구원
ㆍ사법연수원
ㆍ지자체 등

시민사회

ㆍ애드보커시 NGOs 강화
ㆍ시민정치교육 강화
ㆍ언론/미디어 독립성 강화
ㆍ노조의 독립성 강화

ㆍNGOs 지원
ㆍ시민교육 지원
ㆍ미디어 강화 지원
ㆍ노조 구축 지원

ㆍKOICA
ㆍKCOC
ㆍ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ㆍ노사발전재단 등

 

한국에서는 아직 민주주의 원조라는 이름으로 ODA의 섹터 내지 영역이 논의된 바가 없다. 또한 아직까지 한국에서 기획되는 민주주의 원조 방식의 프로젝트는 통일된 개념과 체계적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기관별로 민주주의 관련 원조사업의 예산 규모부터 사업 콘텐츠 선정이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다분히 분절적인 성격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분절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를 이행하는 방식과 공여주체를 [표 1]에서와 같이 세 섹터별로 정리할 수 있다.

 

선거과정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핵심 주체가 되어 개도국의 선거관리기관에게 한국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여 개도국 선거관리의 역량향상을 도모하고 전환기 민주국가의 민주주의 정착과 발전 및 선거관리제도 개선을 지원하는 사업이 주요 콘텐츠로 활용되었다. 2006년 KOICA의 위탁으로 개도국 선거관계자 대상의 연수사업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도국 지원사업이 시작되었으며, 2013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ODA 예산으로 편성되어 선거연수원에서 초청연수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2014년에는 세계선거기관협의회(Association of World Election Bodies: A-WEB)가 인천광역시에 설립되면서 선거연수원의 초청연수사업을 A-WEB이 보조사업자로 실시했다가 2016년부터는 A-WEB이 연수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초청연수사업의 주요 내용은 개도국의 선거관리 현황 발표와 주요 현안을 공유하고, 선거관리 모범사례 공유 및 국제기구 등 전문가 초청으로 사례분석을 실시하며, 자국 상황에 적합한 선거관리 개선방안(action plan)을 작성하는 프로세스로 진행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A-WEB과 초청연수사업으로 사용한 예산의 현황을 아래 [표 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19년 이후 예산 규모가 2018년에 비해 절반 이상 축소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 원조의 지속가능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표 2> 개도국 선거관리 역량강화 연수지원사업 예산 추이

연도

예산액
(백만원)

2014

250

2015

734

2016

837

2017

628

2018

933

2019

360

2020

360

2021

444

 

둘째, 국가기관 영역의 경우는 개도국 정부의 공공행정 분야와 사법부 제도에 대한 ODA 지원으로 한국의 사례를 요약할 수 있다. 공공행정 분야의 한국 민주주의 원조는 주로 KOICA에 의해 기획되고 이행되어 왔다. KOICA는 대외무상원조의 중점 섹터 중 하나로 공공행정을 2010년부터 전략화해 왔으나, 2021년부터는 기존의 공공행정을 ‘평화·거버넌스’ 분야로 개편되어 중기 전략의 세부전략목표를 수립하였다. 현재 평화·거버넌스 분야 중기 전략의 세부전략목표는 (1) 무력충돌 예방 및 평화로운 삶의 기반 조성(평화), (2) 참여적이고 포용적인 민주주의 확대(거버넌스), (3)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법·치안 제도 구축(거버넌스), (4) 책임 있고 효율적인 행정제도 구축(거버넌스)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공공행정 분야가 공무원 교육훈련 제도 개선, 전자정부를 통한 행정시스템 현대화, 조세행정 현대화 등 행정제도 구축에 중점적으로 사업을 기획했다면, 2021년부터는 민주주의 확대와 평화 등으로 민주주의 원조의 범주를 확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행정 체제의 책무성 향상을 위해서 지방행정역량 강화를 통한 지역주민의 행정서비스 접근성 제고, 감사역량 강화를 통한 부패 방지 및 투명성 향상, 그리고 공정한 선거제도 및 투표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무성 강화 등을 주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법·제도의 포용성 향상을 위해서 사법 부문의 인적·제도적 역량 강화로 법치주의 증진, 여성 및 취약계층의 인권보호, 평화 증진 및 안전한 사회 구현을 위한 치안역량 강화, 그리고 시민권·사회권 보장을 핵심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KOICA의 평화·거버넌스 분야의 주요 프로그램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공공행정 제도개선의 노하우와 SDG16 핵심가치와 이행 프로그래밍 전략 및 인권기반 접근법(human rights-based approach)의 단계적 도입을 토대로 콘텐츠와 이행방식을 기획하고 있다.

 

<그림 1> KOICA의 평화·거버넌스 분야 연도별 지원규모(2016-2019, 단위: 백만원) [2]

 

KOICA의 평화·거버넌스 분야에 대한 4개년(2016-2019) 전체 지원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대하는 추세임을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연도별 지원액을 보면 2016년도 총 996억 원, 2017년도 1,017억 원, 2018년 1,237억 원, 2019년 1,274억 원 규모로 지원되었고, 각 연도별 총지원액과 비교해 볼 때, 평화·거버넌스 분야 지원액은 2016년의 경우 전체 대비 15.6%, 2017년도 16.0%, 2018년도 18.1%, 2019년도 16.9%로서 평균 16.7%의 비중으로 지원되어 왔다. 평화·거버넌스 분야에 대한 지원 비중이 15~18%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지원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협력국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사업 수요가 발생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개인의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보장을 위해 평화·거버넌스 부문이 갖는 중요성 또한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KOICA가 공공행정 섹터에 투입한 예산이 총예산 대비 약 23~24%를 차지했다는 기록과 비교해보면 현재의 예산규모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KOICA가 2021년부터 수립 및 운영 예정인 ‘평화·거버넌스’ 분야 중기 전략 내 설정한 하위목표([그림 2])에 따라 지난 4개년(2016년~2019년) 간 지원된 평화·거버넌스 분야 총 지원액 대비 각 세부 전략별 비중을 살펴보면, 참여적이고 포용적인 민주주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법·치안 제도, 책임 있고 효율적인 행정제도로 각각 대표되는 입법, 사법, 행정 부문에 대한 ‘거버넌스’ 목표에 총 81%로 압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평화 부문에는 19% 수준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버넌스 세부 목표 간의 지원 비중을 살펴보면, ‘행정(책임 있고 효율적인 행정제도)’ 부문에 62% 순으로 가장 많이 지원되고 있으며 그다음으로 ‘사법(안전하고 정의로운 사법·치안 제도)’에 19%, ‘입법(참여적이고 포용적인 민주주의’ 부문에 5% 순으로 지원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KOICA가 추진해 온 민주주의 원조 관련 콘텐츠 중 행정제도 개선과 공공행정을 위한 역량강화 및 초청연수 프로그램이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제도개선과 공공행정 부문이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원조의 내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림 2> 평화·거버넌스 분야 전략 하위목표별 지원규모(단위: 백만원) [3]

 

KOICA 이외에도 사법연수원, 한국행정연구원, 지방자치단체 등이 개도국의 국가기관과 정부제도, 공공행정을 지원하는 국내 지원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대부분 기관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토대로 개도국 공무원 초청연수사업을 실시하여 역량강화와 전문지식 공유를 기여해 오고 있다. 사법연수원의 경우, 사법연수원 국제사법협력센터를 중심으로 사법 개도국 대상 외국 법관연수 및 ODA 사업을 통해 개도국과의 사법교류·협력을 강화하여 수원국의 사법제도 개선과 사법부의 독립 및 사회통합에 기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20년에는 네팔과 우즈베키스탄 사법연수원 초청연수와 온라인 세미나를 추진한 바 있다. 한국행정연구원도 사법연수원과 유사하게 개도국 공무원 초청연수사업과 국내외 기관과의 공동연구 및 컨설팅 사업을 주로 시행하고 있지만 KOICA에 비하면 예산 규모가 현격히 작다는 문제가 있다. 지자체는 소규모 예산으로 개도국의 지방정부와 친선교류 차원에서 진행해 온 국제협력 사업이 점차 확장되면서 2021년 7월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지자체의 ODA 지원 증액이 결정되어 차후 지자체의 공공행정 분야에서 활동이 확대될 예상이다.

 

셋째, 시민사회 영역은 한국의 민주화 시기에 미제레오(Misereor), 아시아재단, 독일 EZE 등 해외기관으로부터 받은 혜택을 토대로 한국의 CSOs도 개도국의 시민사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선, KOICA가 시민사회협력사업으로 CSOs에 지원하는 예산이 있는데, 개발 콘텐츠는 개도국의 빈곤감소와 복지증진을 위해 시민사회, 아카데미 파트너, 사회적 경제조직 등 민간파트너와 협력하여 파트너 국가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도모하는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연대별 예산 추이를 보면, 2017년 267억 원, 2018년 271억 원, 2019년 294억 원, 2020년 376억 원으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한편, KOICA의 공공행정 분야 지원을 OECD DAC CRS 코드를 기준으로 보면 공공정책 및 행정관리가 41.86%, 공공행정이 29.12%로 전체의 약 71%를 차지하고 민주적 거버넌스의 주요 요소인 선거(0.18%), 부패방지기구 및 기관(0.37%), 시민단체 강화(0.44%), 인권(0.23%), 성평등(2.37%) 등으로 공공행정을 제외하면 민주적 거버넌스, 특히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위한 예산은 대단히 작은 규모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 개발협력 CSOs의 대표적인 협의체로서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도 시민사회 영역에서 민주주의 원조 분야에 기여하는 중요한 관련기관 중의 하나이다. KCOC에 따르면, 한국 개발협력 CSOs가 개도국 파트너 현지 CSOs와 협력하는 현황 2019년 기준 27개 단체가 31개국에서 111개 사업으로 개도국 현지 CSOs와 협력을 하였으며, 사업비 규모는 자체자금 68억 원(97.3%)과 정부재원 약 1.8억 원(2.7%)으로 정부의 지원이 대단히 미미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는 국제 시민사회 상호 증진에 기여하는 대표적인 민주주의 기념 기관으로 위상 강화, 한국 민주화운동 기여한 해외인사 발굴과 관련 기념사업 추진, 민주주의 공공외교를 통해 청년 참여와 국제협력 증진 제고를 조직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션에 비하여 사업 콘텐츠를 추진할 수 있는 예산은 대단히 작은 규모에 머물고 있다.

 

노조 및 노사관계 제도화를 위한 지원의 경우,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이 국제교류협력지원 사업으로 2011년부터 노사관계, 노동정책 및 노동환경개선 정책 등의 노하우를 가지고 개도국 개발협력사업을 진행해 왔다. 국제교류협력사업에는 해외투자기업 지원으로 해외진출 및 진출 예정인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고용노동 관련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외국인 취업교육 및 지원과 관련 ILO와 같은 국제기구와의 협력사업도 추진해 왔지만, 노사발전재단도 연평균 8억 원 정도의 예산이 국제교류협력지원 사업에 책정되어 있어 저예산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이 현재 제공하고 있는 민주주의 원조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개발협력 콘텐츠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민주주의 원조 템플레이트([표 1]) 구성 섹터인 선거과정, 국가기관/제도, 시민사회에 모두 해당된다고 평가할 수 있고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의 핵심 콘텐츠는 주로 제도개선과 정책개발 등의 지식공유 및 연수사업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동반된다. 첫째,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각 섹터에 적절히 논의되어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의 경험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구성할 서사적 요소의 보완이 필요하다. 둘째, 각 원조 주체 기관마다 콘텐츠의 기획과 이행을 공동 개발하거나 통합적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절적으로 선거과정, 국가기관/제도, 시민사회 간의 유기적 연계 또는 시너지 효과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한국 민주주의 원조 관련 기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소규모의 예산 문제는 차후 민주주의 원조 경험에 대한 서사 프로젝트의 필요조건으로 정부와 시민사회의 재정 지원 동원 이슈가 부각될 것이다.

 

III. 한국 민주주의 경험의 공유 방식

 

한국 개발협력 기관들이 제공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관련 콘텐츠에 대한 분석과 함께 콘텐츠를 파트너 국가에게 전달하는 공유 방식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편의상 민주주의 원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이행하는 KOICA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관련 사업이 개도국과 공유하는 방식을 아래 [그림 2]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그림 3> KOICA의 평화·거버넌스 분야 사업유형별 지원규모(단위: 백만원) [4]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개년 간 KOICA에 의해 지원된 평화·거버넌스 분야의 사업유형별 지원규모를 보면 프로젝트 방식(45.4%), 연수생 초청사업(16.8%), 봉사단(17.8%), 개발 컨설팅(10.5%), 민관협력사업(4.0%), 국제기구 협력사업(3.1%), 소규모 무상원조(2.1%), 인도적 지원(0.3%) 순으로 지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평화·거버넌스 부문 사업의 경우 프로젝트 유형으로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개발 컨설팅, 소규모 무상원조, 프로젝트 유형을 합친 국별 협력사업이 전체 대비 약 60%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수원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법제도 및 시스템 수립·제도개선 등과 같은 사업 발굴이 가장 일반적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파트너 정부가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제도개선의 기회를 공식적으로 한국의 무상원조 국별 협력사업으로 요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과거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애드보커시 역할에 관한 지식이 미리 공유되어 수원국 정부가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 중 특정 내용을 한국 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경우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연수생 초청사업 등의 공무원 역량강화의 경우, 민주적 거버넌스와 인권 및 젠더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선거제도, 국가기관/공공행정, 시민사회에 관한 전문성을 배양하는 등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간접적으로 민주주의 원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시민사회와의 협력사업인 민관협력사업이 4.0%에 머무르는 저조한 민주주의 원조 지원방식에 대하여 국내 CSOs의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2019년 정부와 시민사회 간에 “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이 체결되어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여국과 개도국의 국제개발협력 정책 수립과 시행과정에서 국민들의 참여가 보장되고 민주적인 사회를 조성하는데 기여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하여 개도국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정부는 시민사회의 민관협력 예산 지원을 증액할 계획이다. 앞으로 2019년 파트너십 기본정책에 의거하여 확장될 수 있는 한국 시민사회의 민주화 및 평화운동 경험에 관한 지식공유사업 등 시민사회만의 스토리텔링 구현을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국별 협력사업 방식과 시민사회를 통한 지원방식 이외에 국제기구와의 협력사업과 인도적 지원 등 KOICA가 민주주의 원조 지원을 위하여 제3의 파트너와 협력하는 지원방식이 있다. 그러나 국제기구와 협력사업은 전체 KOICA 평화·거버넌스 사업 예산의 3.1%, 그리고 인도적 지원도 0.3%에 그치는 대단히 저조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국제기구 협력사업의 경우, 유엔기구 및 다자개발은행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의 역사적 경험을 다른 개도국과 공유하도록 권유하고 있으며, 한국과 개발협력 지식공유 프로그램(knowledge sharing programme: KSP)을 개발하여 개도국 파트너 기관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수원국 파트너와에게의 직접 지원하지 않고 국제기구를 통해 전달되는 멀티바이(multi-bi) 방식을 선진공여국들이 선호하여 예산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언택방식의 원조조달이 강조되고 있어서 앞으로 국제기구와의 협력사업과 인도적 사업이 강조될 전망이기 때문에 다자원조와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경험과 노하우는 적극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KOICA 평화·거버넌스 사업의 특성상 다양한 활동주체(multi-stakeholder)의 사업 참여가 요구되는 만큼 앞으로 사업유형 또한 보다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전달 방식과 유상원조와의 연계에 대한 접근도 모색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시스템과 제도개선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서는 기술협력과 지식공유 중심의 무상원조보다는 미디어센터 또는 방송국 시스템과 같은 인프라 서비스 제공을 위한 유상원조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이 유상원조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적 노력을 강구하거나 개념적 논의도 시작되지 못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IV. 한계와 대응전략: 한국 민주주의 원조를 위한 과제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개도국과 공유함으로써 개도국의 민주화 지원과 건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도록 도와주는 대외원조의 콘텐츠와 전달 방식을 정비하는 노력이 공여국인 한국과 파트너인 수원국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제공한다. 앞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에 관한 스토리텔링 작업이 보다 체계적이고 건설적으로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현재의 한계와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첫째, 민관학 협력을 통한 한국 민주주의 경험 공유를 위한 국내 제도 정비와 지식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아직 한국 개발협력 관련 기관에서는 민주주의 원조에 관한 개념부터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민주주의보다는 평화, 인권, 젠더, 난민, 시민사회, 거버넌스 등등의 유사하지만 통일되지 않은 개념과 영역이 개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의도적으로 무리하게 통합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상호 간에 다양한 민주주의 원조 관련 프로젝트의 정보를 공유하고 중복될 수 있는 부분을 피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느슨한 형태의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정부-시민사회의 민관협력 파트너십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원조 경험의 내러티브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학계의 연구와 정리도 지식 네트워크 플랫폼에 연계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민주주의 지식 네트워크에 다양한 이해관계자(multi-stakeholder)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이 조성된다면 한국 민주주의 경험을 접근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학습효과가 창출될 것이다.

 

둘째, 범정부 차원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지원하는 원조 전략 모색이 필요하다. 개도국에게 원조 조건으로 비쳐질 수 있는 한국형 민주주의 원조 모델을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수원국들이 처해 있는 역사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자유, 인권, 소수집단 권익보호, 법치 등을 구현하는 민주적 거버넌스가 정착되도록 지원체계를 개선하는 방향에 노력들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거버넌스의 정착은 수원국들이 자주 당면하는 내외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복원력을 향상시켜 보다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원조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제도개선과 공공행정에 강점을 보여 온 한국의 개발원조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이를 토대로 효과적인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 등의 개발협력의 보편적인 언어와 연결시키며, 한국 민주주의 원조의 콘텐츠와 모듈을 더욱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원조의 정치적 민감성을 통제하고 수원국의 수요가 무엇인가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서 사업 발굴과 민주주의 원조 전략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의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를 지속 가능하게 체계화하기 위하여 관련 법률의 입법을 통해 명시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미 한국은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통해 국제사회의 민주적 거버넌스 발전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더욱 체계적이고, 통합적이며, 효과적인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입법의 노력은 개도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복원력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며, 현재 국내에서 분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 주체들이 개별적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데 비해 재원 규모를 법규 틀 안에서 제도적으로 증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 원조에 관한 입법활동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고려가 반영된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며, 수원국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원조 사업에 참여하는 국내 단체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과 교육 등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민주주의 역량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민주주의 원조 관련 입법과정으로 현행 법률인「국제개발협력기본법」제1항에 ‘민주주의 증진’을 추가하고, 하위 법령인 ‘국제개발협력기본계획’ 또는 ‘국제개발협력종합시행계획’에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명시하는 방식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 지원 관련 기금이나 재단을 설립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민주주의 지원 사업을 특화하여 진행할 수 있다.

 

넷째, 법률로 제정된 민주주의 지원 관련 법률 이외에, 민주주의 원조를 다양한 기관이 모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민주주의 기금 조성을 모색할 수 있다. 앞서 논의했듯이, KOICA를 제외한 다른 민주주의 원조 관련 기관들은 대단히 영세한 수준의 예산을 가지고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개발협력 사업을 지원하는 재원이 정부예산의 증액과 동시에 정부예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재원을 민간기금으로 조성해서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동시에 모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직 한국에는 한국의 민주화 경험을 개도국과 공유하고 개도국의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재단이 존재하지 않으며 최근 2021년 5월에 ‘아세안인권기금법’이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지만 특정 지역에 국한된 기금과 재단을 넘어선 범개도국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협력대상국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현지 시민사회의 관여를 강화할 수 있는 채널을 확대해야 한다. 수원국 정부가 한국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민주주의 관련 제도개선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현지 시민사회가 민주적 거버넌스의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개선에 관여할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확장하는 데 한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수원국의 시민사회단체는 부패방지, 언론의 자유, 인권옹호 등의 민주적 거버넌스 영역에서 다양한 이슈를 정부보다 직접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고 한국 정부에게 민주적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지원 요청을 하거나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해 시민사회 간의 협력도 가능하다.

 

여섯째,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전달하는 주체와 방식이 다양하고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와 관련된 통계자료가 체계적으로 연동되어 있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기관 간의 통계자료의 통일이 시급하며 자료와 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앞서 언급한 지식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통계자료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한국 민주주의 원조 경험을 하나의 서사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조기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전문성과 경험을 지식공유사업(KSP)으로 제도화하여 앞으로 계속 축적해 나가는 토대 마련이 중요할 것이다. KSP를 통해 개도국이 원하는 방식의 민주주의 제도 개선과 인권기반 접근, 젠더 문제 대응 등 개발 컨설팅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 중인 기재부와 한국개발원(KDI)의 KSP 사업은 한국의 경제발전경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 사회발전에 대한 경험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따라서 KOICA가 운영하는 개발 컨설팅 사업인 개발경험교류파트너십(Development Experience Exchange Partnership Programme, DEEP)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여덟째, 다양한 행위주체가 한국 민주주의 경험을 공유하는 개발협력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 확장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 연대를 통한 민주주의 지식공유뿐 아니라 국회 참여를 통한 의회제도 개선 지원, 민간기업 참여를 통한 기금 마련 및 개도국의 민간기업 육성 등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아홉째,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개도국과 공유하고 협력하는 것이 한국의 특수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와 연동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유엔의 SDG16 핵심가치 중심으로 다층 위적 협력 강화을 모색하고, SDG16 이행 프로그래밍 전략 및 이행에 집중하는 것과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프로젝트가 동일한 맥락에 있다고 강조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한 인권기반 접근, 환경 사회 인권 영향평가, 책무성(accountability)의 원칙 등이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기획과 실행에 배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국제기구와의 다자협력방식(멀티바이 또는 신탁기금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원조 경험이 갖는 글로벌 서사로서의 함의가 거시적 수준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에 중요한 방향타를 제시해야 한다. 작금의 동아시아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의 현실주의적 국익 중심의 정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북핵문제, 영토문제, 과거사 문제 등으로 평화와 민주적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자국의 국익 보호로 쉽게 상쇄된다. 한국은 민주적 거버넌스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동아시아의 북유럽’의 역할을 도모할 때가 되었으며, 동아시아 평화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한국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민주주의 원조를 소프트파워의 자산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

 


 

[1] Thomas Carothers, Aiding Democracy Abroad: The Learning Curve (Washington, D.C.: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1999), p, 88.

[2] KOICA 무상원조통계 자료(2016-2019)

[3] KOICA 무상원조통계 자료(2016-2019)

[4] KOICA 무상원조통계 자료(2016-2019)

 


 

저자: 김태균_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미국 존스홉킨스 고등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박사학위 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개발학, 평화학, 국제정치사회학,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The Korean State and Social Policy: How South Korea Lifted Itself from Poverty and Dictatorship to Affluence and Democrac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대항적 공존: 글로벌 책무성의 아시아적 재생산》(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한국비판국제개발론: 국제개발의 발전적 성찰》(박영사, 2019)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윤하은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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