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6월 영국 콘월(Cornwall)에서 한국, 인도, 호주, 남아공을 포함한 ‘확대 G7 정상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후 공개된 정상회의 공동성명문은 참여 민주국가의 전통적인 다자주의 규칙기반 시스템 내에서 민주적 가치를 더욱 강력히 옹호하려는 의지를 내비쳤고, 더 나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숙종 성균관대학교 교수ㆍ EAI 시니어펠로우는 미중 체제 경쟁 속 민주주의의 위치와 민주국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자는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라는 체제경쟁은 자칫 다자주의를 블록화할 수 있으며, 미중 양국을 필요로 하는 많은 민주국가에 비현실적인 선택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민주주의 가치를 체제 경쟁을 초월하여 보편주의적 가치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지속해서 보호해야 하며, 민주적 가치와 옹호를 위한 후발 민주국가들 사이에 독자적인 역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한국, 인도, 호주, 남아공을 포함한 확대 G7 정상회의가 지난 6월 11일에서 13일까지 영국 콘월(Cornwall)에서 열린 바 있다. 보리스 존슨 (Boris Johnson) 영국 총리는 작년부터 한국, 인도, 호주와 같은 민주주의 3개국을 추가로 초청해 이른바 ‘D10’ 정상회의를 열겠다고 천명해왔다. 이번 G7 확대정상회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유세 당시부터 말해왔던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 구상을 지원하는 첫 버전이다. 민주적 가치와 규범이 지구적 문제에 대처하는 공동행동의 기반이 되며, 기존 다자주의 국제질서의 안정을 돕는다는 생각은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 민주주의 국가 간에 다시 강력하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그 이면에는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그리고 이와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민주주의가 일국의 정치체제를 넘어 국제질서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서구의 시각은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다자주의에 관한 미중 인식격차, 미중 전략경쟁, 그 속에서 민주주의의 위치가 혼란스럽게 논의되고 있어 이들의 관계를 정리해 볼 필요가 생겼다. 그래야만,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이 미국 및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자유, 인권, 반부패 등의 이슈에서 협력하면서도 중국과의 긴장 관계를 피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1. G7 확대정상회의와 워싱턴발 민주주의 연합 논의

 

G7 확대정상회의 공동성명문은 공유하는 지구적 행동 어젠다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코로나19 종식 및 경제회복과 더불어, 미래 성장 확보, 지구보호, 파트너십 강화, 가치의 이슈들도 다루고 있다.[1]변화하는 세상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 법치, 인권존중과 같은 ‘우리의 가치’의 힘을 사용한다는 원칙론적 천명은 이후 어젠다 곳곳에서 다시 녹여지고 있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들어가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에코시스템의 경우, ’인간의 자유와 혁신, 신뢰를 지원하는 개방적이고 호환적이며 안전한 인터넷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이 민주적 가치, 개방적 경쟁시장,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위한 세이프가드 등을 반영하도록 국제적 규범과 표준을 만드는 데 서로 조율할 것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나 네트워크 접속 제한을 반대하고, 또한 편견을 조장하는 알고리즘 의사결정의 형태를 어떻게 규제할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파트너들이 OECD 후원하에 9월에 열리는 ’미래기술포럼(Future Tech Forum)’에서 개방사회를 지지하면서 국제적 도전을 논의할 계획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신기술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 개방적이나 안보 관련 부분에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유럽의 그간 노력과도 맞닿아 있다.[2]

 

공동선언문은 G7이 표방하는 국제질서를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국제질서(open and resilient international order)‘라고 표현하면서, 이번에 합의된 어젠다를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G20이나 유엔과 같은 기존의 ’다자주의 규칙기반 시스템(multilateral rules-based sys-tem)‘ 안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국제법과 유엔과 같은 전통적인 다자주의 규칙기반 시스템 내에서 민주적 가치를 더욱 강력히 옹호하는 연합을 ’별도로‘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민주연합에 대한 논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둔 올 초부터 급속하게 활성화되었다. Jones와 Twardowski(2021)는 국제 시스템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영향력이 지켜지려면 서구를 넘어서 여타 민주주의 국가들과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자주의 질서 테두리 안에서 민주주의 국가 간의 조정과 협력을 진전시키려는 전략을 ’민주적 다자주의(democratic multilateralism)’라고 부르면서 러시아와 중국에 의한 기존 질서의 성격을 약화 내지는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3]

 

국제기구나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국제질서에 도전으로 보는 시각은 다른 글들에서 더 잘 설명되었다. 예를 들어, Hart와 Johnson(2019)은 중국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다자적 행동을 중국의 이익에 맞추어 형성하기, 국제법 레짐 교란하기, 국제적 규범 전환하기, 국제기구를 포획하기,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기, 중국 중심의 국제협력 플랫폼 구축하기 여섯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4] Nadege(2020)는 중국이 지난 십여 년 경제력에 걸맞게 국제적 위상이 신장하지 못한 것은 말하고 귀담아 들어질 화언권(话语权)이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국제질서의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나 지적 정형화를 꾀하는 ‘담론권(discourse power)’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음을 주장한다.[5] 특히 외부세계의 열린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활용해 중국 스토리를 유포하거나 여론을 조작하는 활동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6]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기존 국제질서에 위협이 되는 중국에 맞서 무역, 기술, 공급사슬망, 인권, 부패 등의 문제에 있어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다양한 조합의 연합(democratic coalition)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Foreign Affairs 잡지를 통해 지난 1월 두 편의 글로 출간되기도 했다.[7]주목할 것은 과거에는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여겨졌던 통상, 기술, 공급사슬망 등과 같은 기술적, 기능적 분야의 문제도 자유와 인권과 같은 가치영역의 문제와 결합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범주로 들여와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가 워싱턴과 유럽 일각에서 대두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지정학적 경쟁 차원으로 보느냐 아니면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보느냐는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이 먼저 꺼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구상을 수용해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자로 보고 그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다듬었다. 이에 따라 군사경쟁만이 아니라 통상 특히 기술 분야 경쟁에 안보개념이 접목되면서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적 탈동조화 논리가 실현 가능성 여부를 차치하고 확산하였다. 이때만 해도 민주주의가 미국 외교정책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러시아나 중국과의 경쟁이 전제주의냐 민주주의냐 라는 이데올로기적 체제경쟁의 틀 안으로 새롭게 짜이기 시작했다.

 

취임 이후 거의 반년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Brands(2021)는 이러한 시각의 ‘바이든 독트린’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민주주의 세계의 세 가지 도전은 첫째, 자유주의 원칙에 토대를 둔 국제 시스템을 러시아나 중국이 자신들의 체제를 위해 바꾸려 하거나(러시아의 사이버 교란이나 가짜뉴스 확산, 중국의 시장지배력을 활용한 강압외교 등); 둘째,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에 처해 권위주의 체제가 마치 민주주의 체제보다 낫게 대처하는 듯이 보이게 하거나; 셋째, 미국을 비롯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 퇴행이라고 말한다.[8] 이러한 시각은 모범적 민주국가 대 불량한 비민주국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를 국내와 국제관계 안팎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자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민주적 국제질서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전략은 전제주의 라이벌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 공동체의 응집력과 복원력을 강화시키는 것이고, 민주주의 체제가 초국적 문제들을 더 잘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국내적으로는 소외된 노동계급과 중산층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모범적 민주국가 대 불량한 비민주국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를 국내와 국제관계 안팎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자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민주적 국제질서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31일 피츠버그 연설에서도 미중 간의 경쟁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가 국민들에게 전제주의보다 더 나은 혜택을 주느냐라는 체제의 성과로 말한 바 있다. [9] 같은 맥락에서 초국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민주주의 연합이 더 나은 능력을 보여 줄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질서 확립의 열쇠는 다른 민주국가 간의 파트너십에 있다고 보고, 아주 구체적인 이슈별로 특정 국가들과 협력을 기울여 가고 있다.[10]

 

지정학적 영향력 확장을 위한 전략경쟁에 이데올로기적 체제경쟁 층위가 들어서는 것은 지난 15년간 퇴조해온 세계 민주주의 복원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파트너십 요청을 받고 있는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는 분명히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적 가치와 규범은 개별국가 내 개인의 자유, 인권, 법의 지배를 위해 그 자체 매우 중요하며 동시에 그러한 가치와 규범은 다자주의 질서에서 개별국가들의 주권 존중과 상호 협력에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라는 체제경쟁은 현실성, 당위성, 효과성에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나누어져 있던 과거 냉전체제와는 달리 주요 권위주의 국가들 특히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과 아시아 경제는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이 중국 배제로는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둘째,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 옹호가 자칫 지정학적 영향력 경쟁의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면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원하려는 정부나 시민사회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즉, 민주연합론의 당위성이 충분해야만 국익이란 계산을 넘어 가치연합 자체로서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셋째, 체제경쟁론은 초국가적 과제에 대처하기 위한 미중 간 국제협력을 분열시킬 수 있다. Pepinsky와 Weiss(2021)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이데올로기적 경쟁자로 여기는 것은 중국 체제의 매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고, 아시아 및 여타 지역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과의 협력을 위축시키고 전제주의 국가들 간의 연합을 자극할 실용적이기 못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11] 기후변화와 재정위기 등 초국적 도전과 위기가 있을 때 영향력이 큰 중국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서 유럽연합은 2019년 발간된 EU Strategic Outlook on China 2019에서 중국을 기후변화나 WTO 같은 글로벌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과 협상의 파트너(cooperation and negotiation partner)’로, 기술 리더십과 시장접근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제적 경쟁자(economic competitor)’로, 향후 국가체제와 관련한 문제에서는 거버넌스의 대안적 모델을 도모하는 ‘체제적 경쟁자(sys-temic rival)’로 다차원적으로 규정하면서 균형 잡힌 대중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유럽 규범 침해에 대처하면서도 협력과 협상의 파트너로 중국을 대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이 신장의 인권침해로 중국 관리들을 제재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은 유럽의 인권활동가들을 제재하여 논란이 되어 왔는데, 유럽의회는 유럽연합과 중국 간의 포괄적투자협정(EU-China 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 비준을 동결하는 성명서를 지난 5월 30일 찬성 599표, 반대 30표, 기권 58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가결하기도 했다.[12] 즉, 인권옹호와 경제협력이 별개로 진행되기 어려운 이슈들이 나오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대중관여 전략을 처음부터 통합시킨다면 어느 한 가지의 실현이 불가능해질 것이기에 사안별로 사후적으로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중국식 다자주의 질서와 체제경쟁 논의에 중국의 대응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먼저다(America First)’라는 기치 아래 중국과 통상 및 기술 마찰을 빚어 왔었다. 2020년에 미국이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이 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란 표현을 써가면서 중국에 책임을 돌렸고, 중국에 우호적이라며 세계보건기구 탈퇴를 유엔과 미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1월 20일, 17개의 첫 행정명령에 파리기후변화협정 복귀와 함께 세계보건기구 탈퇴 절차 중단도 포함했다.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유럽은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체제경쟁을 외교정책에 적극 편입시키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무대 귀환을 중국은 상당한 위기감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체제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를 필두로 개도국들의 발전을 돕는 지원자이자 유엔중심의 다자주의 옹호자임을 부각해 왔다. 시진핑이 2012년 11월 총서기, 이듬해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확산하기 시작한 ‘중국몽(Chinese Dream)’은 중국이 미국과의 수평적 관계를 확립해 초강대국으로서 국제적 지위를 얻고, 국내적으로 중국식 사회주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 중국의 세계적 영향력 확장이 국제 다자주의 질서와 조화롭다는 논리는 ‘인류운명공동체’라는 공동체관으로 설파해 왔다. 사회주의 정체성과 글로벌 거버넌스에 영향력 강화란 동시적 진행을 우려하는 미국의 시각에 대해서는 미국은 주권 평등과 내정간섭불가침을 어기고, 자국의 이익과 이념을 우선시하는 일방주의자이자 협박자(bully)로 규탄해 왔다. 중국이 책임 있는 다자주의자라는 언설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대조하기 위해 강화되어 왔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시진핑은 “다자주의가 인류의 전진을 비추게 하자”는 제목의 온라인 연설에서, 각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독특성을 존중하고,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버리고 평화 공존, 상호 호혜, 윈윈(win-win) 협력의 길로 나아가자고 다시 한 번 강조한 바 있다.[13] Yang Jiechi(2021)도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구실로 내정 간섭을 하거나 어느 국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데올로기적 편가르기는 다자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전염병, 경제위기,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하는 초국적 문제에 대응은 호혜성과 협력을 요구하며, 중국은 유엔 중심 국제체제 다자주의의 챔피언이라고 강조한다.[14]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시진핑은 오직 중국식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공산당의 리더십 강화를 주문한다. 중국은 호전적이거나 패권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으며, 평화와 조화를 위한 인류공동체 건설을 계속 옹호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와 인민들과 함께 “평화, 발전, 공정, 정의,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인류가 공유하는 가치를 옹호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5]

 

결국, 서방세계가 말하는 다자주의는 개인의 자유, 인권, 법치 등이 국내에서도 지켜지는 바탕 위에 국제협력을 보는 것이라면, 중국이 말하는 다자주의는 각국이 독자적 정치체제를 지키면서 호혜적 협력을 꾀하는 것이다. 중국은 민주주의나 자유를 공유되는 가치로 말하고 있으나 개인 수준의 가치라기보다 공동체나 국가 수준의 가치에 머문다. 최근 수년간 소수민족과 홍콩문제에 있어 보여준 인권탄압은 정치지도자들의 언설과 큰 괴리를 드러내 온 것이 사실이다. 유엔 인권 관련 감독관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나 휴먼라이트워치와 같은 비정부단체들은 신장 위그르 거주지역과 티베트에서 종교, 표현, 결사의 자유란 기본권은 물론 이들 소수민족의 보건권 침해, 구금 및 고문, 문화적 박해 등의 반인륜범죄를 고발하고 있다.[16] 위그르인에 대한 인권탄압은 특히 심각해 유럽연합, 영국, 미국, 캐나다는 지난 3월 이 문제로 5인의 중국 관리들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17]

 

중국이 존중한다는 국제법과 유엔체제는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써 보호해 왔다. 유엔 총회에서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으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와 자유 30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 선언은 세계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 이정표로서 70년대 이후 많이 늘어난 국제인권법들의 토대가 되어 왔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각국의 주권을 중시하지만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을 시 인도주의적 관여(humanitarian intervention)를 해왔다. 한편, 중국은 개인의 인권 관련 민주주의 가치의 보편성과 인도주의적 관여를 부정해 왔다. Yan Xuetong은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선거정치나 개인의 표현 측면에서 정의한다면 중국은 이를 사회적 안전과 경제발전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차이를 미국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기술적 우위를 저지하거나, 홍콩, 대만, 티벳, 신장의 분리주의를 부추길 수 있는 인권문제에 있어 반중 연합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배타적 다자주의이며, 중국은 이를 정치적 안정과 국가부흥에 최대 장애물로 간주해 향후 미중 긴장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18] Wang Jisi는 종래 미국은 중국공산당 지배 내부질서를, 중국은 미국주도의 국제질서를 상호 존중해 왔는데 미국이 최근 중국공산당을 약화시키려 하고 중국은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서구의 가치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쳐지게 되면서 갈등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관찰한다. 중국공산당은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고 분열시키려는 것을 워싱턴의 새로운 합의라고 인식하면서 중국공산당의 권력과 통제를 강화하고 미국의 간섭에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19]미중 양국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옹호하려면 민주주의를 선거민주주의로 제한하지 않은 채, 중국도 인류의 공유가치로 인정하는 개인의 자유와 안녕의 존중에 합의하고, 굿 거버넌스를 위한 건강한 체제경쟁으로 나아가는 길이 바람직해 보인다.

 

3. 다자질서 내로 체제경쟁을 순화시키기 위한 민주국가들의 역할

 

미중경쟁이 군사, 기술 및 통상에 이어 체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즈음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은 신중한 관여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20]민주적 가치와 규범이 체제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작동하는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매김을 해 다자질서가 블록화되는 길을 막아야 한다. 신중한 관여에는 세 가지의 접근방식이 가능해 보인다. 첫째는 인권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민주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시아의 정부나 시민사회도 중국의 인권탄압을 내정불간섭이란 구실로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경제적, 정치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시민사회가 정부보다는 인권이란 보편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시각에서 행동하기 용이하다. 아시아 민주국가들의 정부들도 한계는 있겠으나 유엔 인권시스템의 틀 내에서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술이나 통상, 보건 등의 기능적 분야에서의 협력은 그것이 미국과의 협력이든 중국과의 협력이든 상호배타적일 필요는 없으며, 공정하고 타당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 파트너십을 맺어가는 방식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 점에서 유럽이 공정한 규칙과 지침을 마련해 미중경쟁에 대응해 나아가는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유엔과 현행 기능적 분야의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에서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란 체제경쟁이 미국 주도와 중국 주도 영향권으로 블록을 형성해 분리되지 않도록 이중관여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염병, 기후변화, 기술 대전환과 같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가능할 것이며, 미중 양국과 모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민주주의 나라들이 외교적 자율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체제경쟁에 대해 유럽과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공정한 심판자로서 다자주의 질서를 지켜가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심판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민주주의를 계속 아끼고 보호해야 함은 물론 민주적 가치와 옹호를 위한 후발 민주국가들 사이에 독자적인 역내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

 

 


[2] 이숙종,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의 진출에 대한 유럽의 실용주의적 대응,” 동아시아연구원, 2020년 2월.
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13931&board=kor_issuebriefing&keyword_option=board_content&keyword=%EC%9D%B4%EC%88%99%EC%A2%85&more=

[3] Bruce Jones and Adam Twardowski, “Bolstering democracies in a changing international order: The case for democratic multilateralism,” Brookings Institutions, January 25, 2021.
https://www.brookings.edu/research/bolstering-democracies-in-a-changing-international-order-the-case-for-democratic-multilateralism/

[4] Melanie Hart and Blaine Johnson, “Mapping China’s Global Governance Ambitions,”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February 2019,

[5] Nadege Rolland, “China’s Vision for a New World Order,” The National Bureau of Asia Research Special Report 83, January 2020,
https://www.nbr.org/wp-content/uploads/pdfs/publications/sr83_chinasvision_jan2020.pdf

[6] Digital Forensic Lab, “Chinese Discourse Power: China’s Use of Information Manipulation in Regional and Global Competition,” Atlantic Council, December 2020.
https://www.atlanticcouncil.org/wp-content/uploads/2020/12/China-Discouse-Power-FINAL.pdf

[7] Kurt M. Campbell and Rush Doshi, “How American Can Shore Up Asian Order: A Strategy Restoring Balance and Legitimacy,” Foreign Affairs January 12, 2021, How America Can Shore Up Asian Order | Foreign Affairs; Frances Z. Brown, Thomas Carothers, and Alex Pascal, “America Needs a Democracy Summit More than Ever,” Foreign Affairs, January 15, 2021.

[9] “Remarks by the President Biden on the American Jobs Plan,” Carpenters Pittsburgh Training Center,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peeches-remarks/2021/03/31/remarks-by-president-biden-on-the-american-jobs-plan/

[10] 예를 들어, 반도체와 5G/6G 기술은 한국과, 기술과 통상정책의 연계는 EU와, 인터넷의 지구적 차원의 개방문제는 일본과, 사이버공격과 정보왜곡은 NATO와 협력한다는 것이다.

[11] Thomas Pepinsky and Jessica Chen Weiss, “The Clash of Sys-tems?: Washington Should Avoid Ideological Competition With Beijing,” Foreign Affairs, June 11, 2021.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21-06-11/clash-sys-tems

[12] European Commission, EU Strategic Outlook on China 2019; China Briefing, “European Parliament Votes to Freeze the EU-China 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 May 27, 2021.
https://www.china-briefing.com/news/european-parliament-votes-to-freeze-the-eu-china-comprehensive-agreement-on-investment/

[13] XinhuaNet, “Special Address by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at the World Economic Forum Virtual Event of the Davos Agenda,” January 15, 2021.
http://www.xinhuanet.com/english/2021-01/25/c_139696610.htm

[14] Yang Jiechi, “Firmly Uphold and Practice Multilateralism and Build a Community with a Shared Future for Mankind,” February 21, 2021,
https://www.fmprc.gov.cn/mfa_eng/zxxx_662805/t1855530.shtml

[15] “Full text of Xi Jinping's speech on the CCP's 100th anniversary,“
https://asia.nikkei.com/Politics/Full-text-of-Xi-Jinping-s-speech-on-the-CCP-s-100th-anniversary.

[16] Amnesty International, “China 2020,”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56487162;Human Rights Watch,
“China: Crimes Against Humanity in Xinjiang,“ April 19, 2021.
https://www.hrw.org/news/2021/04/19/china-crimes-against-humanity-xinjiang

[17] BBC, “Uighurs: Western countries sanction China over rights abuses,” March 22, 2021.
https://www.amnesty.org/en/countries/asia-and-the-pacific/china/report-china/

[18] Yan Xuetong, “Becoming Strong: The New Chinese Foreign Policy,” Foreign Affairs July/August 2021.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21-06-22/becoming-strong

[19] Wang Jisi, “The Plot Against China?: How Beijing Sees the New Washington Consensus,” Foreign Affairs July/August, 2021.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21-06-22/plot-against-china

[20] Sook Jong Lee, “Beyond the US-China Rivalry: Developing a Shared Democratic Vision for the Indo-Pacific,” ADRN Issue Briefing, 2021년 1월 25일,
http://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0341&board=kor_issuebriefing','kor_workingpaper','kor_special','kor_multimedia&keyword_option=board_content&keyword=Sook Jong Lee&more=

 

 


 

  • 저자: 이숙종_EAI 시니어펠로우·이사, 성균관대학교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객원 연구원, 존스홉킨스대학교 교수강사, 현대일본학회 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EAI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최근 편저에는, Transforming Global Governance with Middle Power Diplomacy: South Korea‟s Role in the 21st Century (편), Public Diplomacy and Soft Power in East Asia (공편), 《세계화 제2막: 한국형 세계화와 새 구상》(공편), 《2017 대통령의 성공조건》(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실장
               문의: 02 2277 1683 (ext. 209) I j.baek@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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