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 스페셜 리포트에서 오가사와라 요시유키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는 대만 문제를 논하기 위해 미중공동성명과 중일공동성명 이래 미중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그에 따라 일본이 어떠한 입장을 취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시진핑이 2019년부터 대만에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자 미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습니다. 저자는 점차 심화될 중국의 대일본 압박에도 일본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중국의 군사 행동 억제를 중요 과제로 제시합니다. 일본이 물리적으로 중국의 군사 행동을 억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일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이 언급되었듯이, 일본이 부분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2021년 4월 16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담은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 간단한 문구에 담긴 의미는 매우 크다. 이 문구 자체는 일본 정부가 반복하여 언급해 온 것으로, 각별한 의미는 없다는 평론도 있다. 그러나 미일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행사 위협을 염두에 두고 공동으로 반대한다는 맥락에서의 표명은 획기적이다. 그에 앞선 미•일 2+2, 미•중 알래스카 회담을 감안하면 문맥은 명확하다.

 

대만을 밀어낸 「72년 체제」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을 언급한 것은 ‘52년 만’이라는 점이 강조되지만, 1969년과는 맥락도 국제환경도 전혀 다르다. 그 당시는 냉전 시대였고, 미일 모두 대만의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가졌고, 당시 대만은 장제스(蒋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의 일당지배체제로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고 있었다. 미일교섭에서 오키나와 반환에 따른 미일안보조약의 적용 범위가 논의되어, 그 맥락에서 ‘대만해협’이 언급되었다.

그 후, 1972년에 미중공동성명과 중일공동성명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주장이 대체적으로 인정되어, 대만은 국제사회로부터 배제되었다. 이것이 ‘72년 체제’ 다. 이것은 대만을 국제정치의 한구석으로 밀어 넣는 틀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을 통치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았다. 대만은 그 작은 공간 속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달성하며 연명해 왔다. 민주화 이후의 대만에서는 ‘중국의 일부’라고 하는 의식은 희미해져 ‘대만은 중국과 별개’라고 하는 ‘대만 정체성’이 확산하였다.

한편, 중국은 오랜 세월 ‘대만 통일’을 주장해왔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힘은 부족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국화로 상황이 바뀌면서 대만해협의 현상변경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취임 이래 중국 내셔널리즘을 강조하여, 힘에 의한 대만의 억제와 경제력에 의한 대만의 흡수를 동시에 추진하는 대만 정책을 전개해 왔다. 2016년에 대만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이 발족하자, 중국은 차이 정권이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대만과의 대화의 루트를 폐쇄했다. 시진핑은 2019년 1월에 대만에 대한 중요 연설을 하여, ‘일국양제’에 의한 통일의 수용을 강하게 압박하고, 다음 세대로 미루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중국은 차이잉원 정권이 굴복하지 않는 것에 조바심을 내며,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강화했다.

 

미일의 대(対) 대만 정책 재검토

미국은 이대로 방치하면 대만은 중국으로 통일될 것이라며 위기감을 강화했다. 그리고 「72년 체제」의 재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선명해진 것이 트럼프 정권 말기인 2020년이다. 바이든 정부도 그 움직임을 계승했다.

바이든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언급하며, 미국-대만 관계를 '비공식 관계'라고 규정해 중국의 결정적인 반발을 피하면서 트럼프 정권 이상으로 견실한 대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정권의 ‘일중정책(一中政策)’은 마치 ‘부적’처럼 쓰이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 관계와 대만의 역할 중시는 미국의 초당파적 정책이 되었기 때문에, 이 틀은 「21년 체제」라고 불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을 보면, 1972년부터 1980년대에 걸쳐 대만을 냉대하는 시대가 길게 계속되었다. 일본정부는 대만정부와의 접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중앙성청의 간부급 직원은 신중하게 대만정부 관계자와의 접촉을 자제하는 관행이 있었다. 일본의 국립대학과 대만의 국립대학이 교류협정을 맺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했다(인정받은 것은 1997년). 이러한 극단적인 대만 냉대는 리덩후이(李登輝)가 민주화를 추진한 1990년대부터 서서히 개선됐지만 「72년 체제」는 건재했다. 총통을 퇴임하고 민간인이 된 리덩후이가 방일을 희망하여 2001년에 그것을 인정받았는데 옥신각신한 끝에 겨우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 이후 중국에 대한 경계감의 고조와 표리일체로 일본정부의 대만에 관한 자주규제도 부분적으로 완화되게 되었다. 일본-대만 간에서는 무역이나 투자가 순조롭게 확대되고 있었다. 또, 일본 사회에 대만에의 친근감이 서서히 확대되어, 일본과 대만 쌍방의 여행자가 증가하고, 지방 자치체나 민간단체의 교류가 확대되었다. 그것을 크게 지지한 것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대만으로부터의 물심양면의 지원이었다.

일본 국내에서는 그때까지 대만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대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증가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대만 호감도가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크게 상회했다는 조사 데이터가 주목받게 됐다. 일본과 대만의 민간 교류는 단교 전보다 단교 후가 훨씬 활발해졌다. 그러나 정부의 대만정책은 매우 신중하여 친대만파(親台派)로 인식되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시대에도 변화는 매우 느렸다.

 

순풍을 끌어당긴 대만

대만은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경종을 울려왔지만, 국제 사회의 많은 나라는 중국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의 측면을 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만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통일에 응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그 목소리도 조금씩 다다르게 되었다. 그것이 코로나 위기로 인해 대만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동정이 부쩍 높아진 것이 2020년이었다.

미중대립이 대만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만을 그냥 “혼수상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동안 대만 민주주의의 영위와 노력이 있었기에 대만의 존재가 중시된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2020년의 체코의 상원의장 일행의 대만 방문이었다. 대만에서 보면, 이번 미일 공동성명에서 “이제야 인정받았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대만 외교부는 “진심으로 환영하며 감사한다.”라는 보도 발표에 그쳤지만,대만 언론들은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른 듯하다.

대만에 순풍이 분 것은, 차이잉원 총통의 ‘현상 유지’ 노선을 미일이 이해하게 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천수이볜(陳水扁) 정권 시대에는, 미일 양 정부는 천 총통의 대만 내셔널리즘의 언동을 경계했는데, 차이 총통은 민진당의 당시(党是)인 대만 독립을 봉인하고 중화민국의 외곽선을 유지하고 안에서 ‘대만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현실적이고 교묘한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는 중국의 무력행사를 초래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노선이다. 중국은 분명히 초조해하고 있지만, 중국의 차이 정권 비판은 ‘숨은 대만독립’이라는 비판이며, 중국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법리 독립’은 아니다.

차이 정권은 대미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대만의 국교 수립을 요구하지 않는다"고도 표명했다. 또한, 중국 군용기의 침입에 대해 긴급발진하는 대만 공군부대에 대해 “국방 장관의 허가가 없으면 발포해서는 안 된다”라는 지시를 철저히 하고 있다. 대만은 국제 정세를 읽고 있다. 대만이 인내를 지속하여, “대만 측에서 현상을 변경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미일의 우려가 불필요해졌다.

 

중국의 무력 사용 가능성

시진핑은 덩샤오핑(鄧小平) 이래의 ‘평화적 통일’을 기본방침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평화적 수단’으로는 대만 통일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이 냉정하게 분석하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력에 의한 위협이 심해질 것이고, 어떠한 무력행사(그레이존)의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중국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대만을 병합한다면 막을 방도가 없게 되지만, 그러한 상황은 아니다. 중국의 목적은 적은 희생과 비용으로 대만을 통일하여 중국 공산당의 ‘훌륭함’을 어필하고 일당체제 지속의 정당화로 사용하는 것이다.

대만은 중국의 상륙부대에 반격하는 전력을 온존하는 비대칭 전술을 강화하고 있으므로, 중국에 있어서 대만 침공 작전의 장애물은 매우 높다. 미사일 공격으로 대만을 잿더미로 만들거나, 중국군도 큰 손해를 보는 상륙 작전을 해서 대만 점령하는 것은 공산당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미일을 끌어들이는 대전쟁을 거는 통일이라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대만과 미일이 대비를 하지 않으면 중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만을 굴복시키고 ‘중국의 꿈’의 실현을 선언할 날이 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무력행사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군사행동도 외교의 일부다. 중국이 ‘미일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증을 얻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결과이다.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의 일본에 대한 압력은 머지않아 강해질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위축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일본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재차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이 대만에 무력공격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며, 전쟁을 막는 것, 즉 중국의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것은 일본의 리버럴파•평화주의파에게도 공통된 문제의식이 될 것이다.

중국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억지(抑止)로 연계된다. 중국에 대해 외교로 끈질기게 ‘평화와 안정’을 호소하는 것도 필요하며, 동시에 조용히 안보법제에 의거해 미군 지원을 준비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에 동참하는 나라들의 느슨한 연계를 형성해가는 것이 요구된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국의 ‘쿼드’는 그 중심적인 사례다.

중국과의 이해관계가 각각 달라 연계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중국에 대한 시각이 엄격해지고 있다는 것은 중국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를 검토할 경우 그동안 쌓아온 중국의 국가 이미지나 중국 기업들의 선전 전략이 일거에 무너지는 대가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 느슨한 연계로도 중국은 어려워진다. 이러한 일련의 중국 견제 움직임은 중국과 대화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다는 것을 중국에 거듭 표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중국은 반발해 일본에 여러 가지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중국에도 되돌아간다. 중일관계는 정체되겠지만, 중국의 대만 침공 작전의 대가는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 견제하지 않으면 대만해협의 평화는 유지되지 않는다.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일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노선으로는 오히려 전쟁을 초래할 위험을 높인다.

 

대만해협의 장래

그렇다면 대만해협은 장차 어떠한 상태가 될 것인가? 대만에서는 ‘대만 정체성’이 정착되어, 선거에서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은 이제는 없다. 무력에 의한 위협을 강화하여 기회를 엿보는 중국과, 경계를 강화하며 수면 하에서 대만을 지원하는 미국과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진다. 균형이 유지되면 중국은 군사침공이 불가능하지만, 무너지면 전쟁이라는 위험한 상태가 이어질 것이다.

한편, 결정적인 사태에 이르지 않는 요인도 있다. 대만의 국제적 존재(presence)가 어느 정도 높아지지만 ‘하나의 중국’의 명분(建前)은 미일에서도 유지될 것이다. 긴장 상태는 계속되지만,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전반적으로 보면 대만도 일본도 미국도 높은 수준으로 계속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21년 체제」는 “전쟁에는 이르지 않는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제에서는 미-일-대와 중국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것이 5년, 10년,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된다면 전쟁보다는 훨씬 낫고 일본의 국익에 합치된다. 무엇보다 대만인들의 뜻이 지켜진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지만 (특히 군사 면에서), 그 틀 안에서도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그 중요한 한 걸음이 됐다. 이를 계기로 대만해협에서의 분쟁 예방 논의가 확산하였으면 한다. ■

 

 

1972년에 형성된 대만에 관한 국제적 합의(arrangement)를 가리킨다(와카바야시 마사히로『대만의 정치-중화민국 대만화의 전후사』 (若林正丈 『台湾の政治―中華民国台湾化の戦後史』) 및 가와시마 신•시미즈 우라라•마쓰다 야스히로•양용밍 『일대관계사 1945-2020』 川島真・清水麗・松田康博・楊永明『日台関係史1945-2020』). 당시에는 잠정적인 틀로 보였지만 그 후 50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트위터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해 주신 것을 평가합니다.”라고 일본어로 표명했다. (2021년 4월 20일, https://twitter.com/iingwen/status/1384448517498757128?s=20

 


■ 저자: 오가사와라 요시유키(小笠原欣幸)_도쿄 외국어대학 교수.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도쿄 외국어대학에서 강사와 조교수를 지냈다. 영국 쉐필드 대학과 대만 국립 청치 대학에서 방문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전공분야는 대만 정치, 중-대만 관계, 동아시아 정치, 비교정치이다. 주요 저서로는 Presidential Elections in Taiwan (Koyoshobo), China and its Neighbours (Pentagon Press)에 실린 “China-Taiwan Relations: Taiwanese Identity and 'One China Principle‘“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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