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미정상회담 개최 이후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에 대한 한미 간의 논의와 정책 조율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의 기본 틀에 기초하여 외교적 방법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은 북미간 신뢰구축, 미국의 대북 정책 위상 제고와 구체화, 중국의 적극적 협력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협상의 조건과 회담 재개 가능성을 검토한다.

 


 

2021년 4월 말 바이든 정부 대북 정책 리뷰의 골자가 발표되고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에 대한 한미 간의 논의와 정책 조율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과거 접근법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면서 실용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차근차근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실무차원에서부터 찾아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8년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거둔 성과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 결과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서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의 기본 틀에 기초하여 외교적 방법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현재로서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의 전모를 알 수 없고 향후 발표계획이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기울인 외교적 노력을 보면서 미국과 상대국의 이익을 냉철히 계산하고 공통의 이익을 관철해나가려는 치밀한 접근법을 추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동맹국과 국제사회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북미 양측의 이익을 조율해 나가는 단계적이고 실무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까지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전략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관망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북미 협상이 재개되는 조건은 무엇이며 회담의 재개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북미 협상의 조건과 회담 재개 가능성

 

북한은 작년 7월 10일 김여정 담화를 통해 북미 간 대화재개의 조건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물론 트럼프 시대의 조건이지만 현재까지 다른 명확한 입장표명이 없기 때문에 향후 대화 재개 조건으로 참고할 수 있다. 김여정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전체를 상대해야 하므로 미국 전체와의 신뢰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신뢰 구축의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움직임을 들고 있다.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서 경제 제재 해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제재 해제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신호가 아니면 경제적 실익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안보 대 안보의 교환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을 위해 미국이 어떠한 고민을 하고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회담의 결렬 사태와 연결되어 있다. 스티븐 비건 당시 대북 특별대표는 2019년 1월 31일 스탠포드 대학교 연설에서 하노이 협상에 대한 준비 상황을 논의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에는 비교적 일관된 대화의 채널이 마련되어 있었고,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전체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에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펴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운반수단, 더 나아가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폐기를 추구하지만, 시작은 영변시설이며 점차 모든 플루토늄과 우라늄 시설로 확장될 것을 북측으로부터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북핵의 완전한 폐기 이전에 일정한 시점에서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를 하기로 했고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볼튼의 회고록에서 나타났듯이 비건의 협상안은 하노이 회담 직전 백악관 내에서 철저히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는데 향후 북미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명확하다. 북한은 미국 대통령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대북 특사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북미 간에 중재역할을 자처한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 거둔 상태이다. 북미 회담의 재개 조건을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소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더해, 대북 특사의 권한, 한미 간의 긴밀한 조율에 기초한 한국의 대미 협상력 강화 등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북미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바이든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 전체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의 시그널이 있어야 하고, 협상 실무자가 대통령의 전적인 위임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북핵 폐기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의 기자회견장에서 성 김 대사를 대북 특사로 임명하고 한국의 대표단 앞에서 전적인 권한을 위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트럼프 정부와는 달리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의 행정부는 완전한 체계를 가지고 대북 협상에 임할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행정부, 의회 등의 정책 분열 등은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북미 간에 안보 대 안보의 조건을 충당할 수 있는 미국의 정책이 중요하게 된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한미 간의 조율 상태도 고양되었다고 본다.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책에 대한 동맹국들, 특히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고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의 정책 리뷰를 지지하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북핵 문제 이외에도 동아시아 지역안보, 경제, 기술, 보건 등 한미 파트너십이 강화된 상황에서 한미 관계가 좀 더 긴밀해지고 이 과정에서 대북 정책 조율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을 때 본격적인 대북 협상을 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와 북핵 문제 해결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를 한 적이 없으며 미국으로서는 트럼프 시대에 북한이 한 핵폐기 약속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합의에 근거한 협상을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의 핵 폐기 의지가 확인되기 전까지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당장은 완전한 핵폐기를 향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려는 미국과, 대북 적대시 철회의 증거를 보려는 북한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팽팽할 것이다.

 

북미 양자 간의 신뢰구축이 당장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상당 시간 동안 다양한 신뢰구축을 통해 북미 간 의미 있는 대화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한미 양국이 할 수 있는 노력으로는 우선 양국 간의 긴밀하고 일관된 정책 협의가 필요하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한국 정부의 미국 설득 능력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표명해왔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면서 북한 설득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완벽한 정책 조율을 이룰 때 북한은 한국의 중재 노력을 보다 신뢰하게 된다. 또한 한국의 대북 관계 개선 노력,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향후 한국 정부가 추구할 수 있는 대북 인도 사업이나 남북관계 개선 사업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원칙을 지키면서도 북한과의 신뢰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미국이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대북 정책이 높은 우선 순위와 구체성을 가져야 한다. 현재 바이든 정부의 우선 순위는 코로나 사태 극복과 국내 경제 회복, 특히 중산층의 회복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외교정책에서도 중국, 러시아, 환경, 보건, 이란, 중동 사태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북핵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에 비해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강화할 때 북한도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밝은 미래가 있다고 논하고는 했는데, 계획의 구체성이 없으면 북한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비건 대북 특별대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지원책을 가능하면 상세하게 제시하려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경제 제재 해제의 로드맵은 물론, 이후 북한의 자구책에 대한 미국의 계획이 구체적일 때 북한 체제 보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미중 전략 경쟁과 북핵 문제의 분리 중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중국의 적극적 협력도 중요한 요소이다. 중국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환경, 보건문제와 함께 핵비확산을 중국과의 협력 이슈로 제시한 바 있다. 중국 역시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강대국의 관점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적을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점차 심해지는 가운데 북핵을 둘러싼 미중 간 협력이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비핵화 과정에서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비핵화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 방향을 예상할 수 없게 되면 중국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더욱 경계심을 가지고 북핵 문제에 임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 정상은 남중국해와 대만에서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한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을 움직인다는 인상을 중국이 갖게 되면 북핵 문제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 알 수 없다. 대북 경제제재가 한미 양국의 대북 정책에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중국의 제재 유지 여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한미 양국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미중 전략 경쟁과 북핵 문제를 분리시킬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전재성 -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 웨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국제정치학회장,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표광민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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