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2020년 총선이 부정선거라며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포함한 정부 지도자들을 구금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본 연구에서 배진석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은 “미얀마 시민들은 2020년 총선과 자국의 민주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쿠데타 직전 미얀마 전체 시민들의 여론을 추론하기 위해 동아시아연구원(EAI)이 미얀마 현지 파트너 기관들과 함께 만달레이 지역과 카친 주에서 실시한 총선 후 조사에 주목한다. 비록 전국 조사가 아닌 지역 조사이지만, 두 지역의 인구학적 그리고 정치적 특성이 집권당인 민족주의민족연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비주류 집단의 여론을 골고루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데이터의 유용성을 높였다고 평가한다.

조사 결과, 미얀마 여론은 군부의 부정선거 주장과 대립하고 있었다. 절대다수의 시민들은 2020년 총선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었고, 수지 집권 시에도 미얀마의 민주화가 진전해 왔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군부의 비상사태 선포가 절차적으로도 정당성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내용적으로도 미얀마 여론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NLD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현 상황을 두고, 두 저자는 미얀마식 점진적 민주화가 과연 지속가능한지를 질문한다. 민주화 세력이 군부와 권력을 공유하는 한 언제든지 군부 쿠데타라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에 주어진 선택지 또한 국민투표 성격의 선거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얀마의 민주화가 이번 쿠데타로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끝으로 두 저자는 카친 주 조사 결과에서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인권침해 등의 이유로 효과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응답자의 70%가 동의한 점에 주목하며, 미얀마의 봄이 이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총선 결과가 정당하다는 평가를 한국의 시민사회와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적재적소에 활용해 주길 촉구한다.

 

들어가며: 2020 미얀마 총선 여론조사 실시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Tatmadaw)는 대통령과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연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의 주요 인사들을 구금하면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군부는 2월 8일에 1차적으로 만달레이와 양곤 지역을, 그리고 나머지 지역으로까지 계엄령을 확대했다. 비상사태 선포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대되자 5명 이상 집회도 금지되었다.[1] 군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명분은 “부정선거”였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선거 명부가 조작되었고, 이 문제가 미얀마의 민주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친 군부 정당인 통합연대발전당(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USDP)도 총선 직후 부정선거를 주장한 바 있다. 이어서 군부는 1월 26일에 860만 건의 선거 명부가 불일치한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USDP의 주장에 군부가 힘을 실어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 부정 선거를 뒷받침할 증거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와 국내외 선거감시단은 군부와 USDP의 선거부정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2]  복수의 미얀마 국내 선거감시기구들은 선거가 적법하게 이뤄졌음을 확인했다.[3] 국제 선거감시기구들 역시 같은 입장이다. 비록 일부 선거과정에서 확인된 결함이 있지만, 이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만큼 유의미하지 않고, 대규모 조직적인 선거 조작도 없었다는 것이다.[4] 이번 선거 역시 2008년 헌법체제 하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2015년 선거와 같이 외국 시민권을 가진 배우자나 자녀를 가진 이에게 대통령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수치 여사의 대통령 취임을 근원적으로 차단했고, 2명의 부통령직 중 1인과 내무부/국방/국경 관련 3개 부처에 대한 통제권, 상하원 공히 25%의 의석을 사전에 군부에 할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조직적인 선거 조작을 주장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인 NLD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5] NLD는 상원 의석(Amyothar Hluttaw)의 61.6%(138석/224석), 하원 의석(Pyithu Hluttaw)의 58.6%(258석/44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군부의 몫과 비상상황으로 선거가 치러지지 못한 지역을 제외하고 투표를 실행한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NLD는 상원 선거구의 85.7%(138/161석), 하원 선거구의 81.9%(258석/315석) 지역에서 승리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낮은 투표율이 예측되었으나, 선거관리 당국은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2015년 투표율 69%를 넘어 70%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6]

군부의 부정 선거 주장과 쿠데타, 과연 미얀마 시민들은 과연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군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항의하는 시위 관련 보도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쿠데타의 명분이 된 “선거 부정”에 대한 미얀마 시민들의 여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 없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쿠데타 발발 전, 2020년 총선 직후 만달레이 지역(Mandalay Region)과 카친 주(Kachin State)에서 실시한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미얀마 시민들이 2020년 총선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다.[7] EAI는 미얀마 현지 파트너 기관들과 함께, 층화확률 표집방법으로 선정된 두 지역의 18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사용해 대면 면접 조사를 실시하였다. 만달레이 지역 조사는 12월 12일~27일에, 카친 주의 경우 12월 7일~22일에 실시했으며, 수집된 표본 수는 만달레이 지역 400명, 카친 주 758명이다. 전국 조사가 아닌 지역 조사라는 점에서 미얀마 전체 시민의 의견을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두 지역의 인구학적, 정치적 특성을 고려하면 미얀마 전체 여론을 추론하는 데 유용한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만달레이 지역은 미얀마 정중앙에 위치한 행정구역으로서 인구 및 경제 규모 측면에서 미얀마 핵심 지역 중의 하나이다. 인구는 2014년 기준 3위로서 616만 명이고, 양곤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 시가 위치하고 있다. 지역 내 집권당 NLD의 정치 영향력은 막강하다. 2020년 총선에서 NLD는 하원 의석 36석 중 35석을 차지했다. 나머지 1석만 USDP 몫이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12석 모두 NLD가 승리했다. 인구 구성 측면에서 만달레이 지역은 미얀마의 주요 종족인 버마족(Bamar)과 불교도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NLD의 지지층과 버마족/불교도 등 주류 집단의 여론을 추론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반면 카친 주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얀마 최북단에 위치한 주로서 인구 169만 수준(10위 권)의 주(state)로서 NLD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곳이다. 이번 총선에서 NLD는 하원 18석 중 13석을 차지했다. 4석은 USDP가, 나머지 한 석은 카친주인민당(Kachin State People’s Party: KSPP)이 차지했다. 상원 선거에서는 NLD가 12석 중 10석, USDP 1석, 신민주당(New Democracy Party) 1석이었다. 카친 주는 샨 주(Shan State) 다음으로 야당의 영향력이 센 곳이다. 지난 10여 년 간의 내전과 국내 피난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이슈 때문에, NLD 정부는 카친 주를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다루고 있다. 카친 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종족 구성 및 종교 구성도 다양한 편이다.[8] 이 점에서 카친 주는 NLD 정부에 반대하는 여론 및 소수민족이나 기독교도 등 비주류 집단의 여론을 추론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본 조사 결과, 응답자 중 NLD 후보를 지지한 비율은 상원, 하원, 지방의회 선거별로 양 지역 공히 NLD 지지율이 1위를 기록했지만, 지지 범위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만달레이 지역의 NLD 후보 지지율이 77~78% 수준을 기록한 반면, 카친 주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6~49% 수준에 그침으로써 안티 NLD 층의 여론을 살펴보는데 유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9] 

 

[그림1] 응답자의 NLD 후보 지지율(%)

 

 

모든 유권자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었다” 80~89% 동의

우리의 첫 번째 관심사는 이번 총선의 공정성에 관한 미얀마 시민들의 인식이다. 군부의 주장처럼 미얀마 시민들도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만달레이 지역과 카친 주의 공통 질문인 선거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군부는 선거 직후부터 860만 명에서 1천만 명 가량의 유권자 명부가 실제와 차이가 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그 결과 NLD가 압승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본 조사 결과, 친 NLD 여론이 강한 만달레이 지역은 물론이고, 반 NLD 여론이 상대적으로 강한 카친 지역에서도 “모든 유권자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각각 89.3%와 80.4%가 동의하였다. 또한, “이번 선거는 다당제에 기반한 민주적 선거였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만달레이 응답자의 87.0%(“어느 정도 동의” 82.5%, “전적으로 동의” 4.5%)한다고 밝혔다. 이는 카친 주의 조사 결과에서도 “동의” 비율이 79.5%(“어느 정도 동의” 72.8%, “매우 동의” 6.8%)에 달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그림2] 2020 총선에 대한 인식(동의 비율%)[10]

 

 

지역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만달레이 지역 조사에서 좀 더 포괄적으로 선거의 공정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번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했다(free and fair)”는 진술에 대해서는 86.7%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유효하고 정확했다(valid and correct)”는 진술 역시 88% 정도의 동의를 얻었다. 이 진술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각각 1%~2% 내외에 불과했다.

 

 

[그림 3] 만달레이 지역의 선거 평가(%)

 

 

카친 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는 선거 결과와 과정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 대다수는 선거과정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 (72.7%) 혹은 “만족한다”(10.2%)고 답했다. 77.3%의 응답자는 선거 결과를 대체로 신뢰한다고 밝혔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9.1%에 불과했다. 절대다수(97.4%)는 투표소에서 어떠한 압력도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림 4] 카친 주의 선거 평가(%)

 

 

카친 주에서는 종족 정당인 KSPP와 친군부 정당인 USDP가 다른 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 정당들은 카친 주에서 2, 3위를 기록했다. 응답자 중 NLD 투표자(311명)들은 선거 결과와 과정 모두에 긍정적인 응답이 90%를 넘었다. NLD 투표자들의 긍정적 답변 비율에는 못 미치지만, KSPP 투표자(180명), USDP 투표자(63명)에서도 공히 선거과정에 만족하고,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는 여론이 다수였다. KSPP 투표자 중 선거 과정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88.3%, 선거 결과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62.6%였고, USDP 투표자 중에서는 선거 과정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63.5%, 선거결과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68.3%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안티 NLD 정서가 강한 카친 주에서 야당에 투표한 유권자의 다수도 선거 과정에 대해 신뢰하고 선거 결과를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론이 쿠데타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대적인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군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 

 

 

[그림 5] 카친 지지정당별 선거 평가(%)

 

 

이상의 조사 결과를 통해 우리는 미얀마 군부가 내세운 비상사태 선포의 명분이 미얀마 여론과는 상반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절대다수의 미얀마 시민들은 2020년 총선에 정통성을 인정했다. 미얀마 군부의 주장처럼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만큼 위기상황에 놓여있다는 인식도 이번 조사 결과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군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절차적 차원의 정당성을 갖추고 있지도 못할뿐더러, 내용적으로도 미얀마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NLD 압승 이면의 그림자: “미얀마는 제대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2020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민주주의는 군부 쿠데타로 인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비상사태의 종식과 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해 NLD 정부와 민주화 세력이 풀어야 할 숙제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본 조사가 쿠데타 징후가 없던 시점에 실시한 조사라는 점에서, 특별히 “미얀마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NLD 지지가 강한 만달레이 지역에서는 대다수(85%)가 미얀마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률은 2%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친 주 조사에서는 미얀마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44.3에 불과했고, “모르겠다”라고 답변을 유보한 비율이 41.9%에 달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2.1%에 그친 것은 사실이지만, 만달레이 지역과 달리 소수인종, 비불교도 비중이 큰 카친 주 거주자의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나라의 미래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쿠데타 이전에 2기 민주정부가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림 6] 카친 주의 정부에 대한 기대(동의 %)

 

 

미얀마식 점진적 민주화 모델은 지속가능한가?

카친 주 조사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새 정부에 대한 전망을 물어본 결과, “양질의 공공서비스”나 “일자리 제공”에 대해서는 각각 63.0%, 57.2%가 동의함으로써 경제 및 국가 행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인식이 다수였다. 그러나 “대중이 자유롭게 시위에 참여할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다”라는 진술에 동의하는 비율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나머지 응답자들은 답변을 유보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NLD 정부 1기가 소수인종이나 반대파에 대해 민주적인 대화와 설득, 조정 작업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제약하는 내용이 잔존하고 있는 “2008년 헌법 개정을 NLD 정부가 성공적으로 이룰 것이다”라는 진술에 대해서는 동의비율이 39.3%에 불과하다는 점도 쿠데타 이전 새 정부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암시한다.   

더구나 미얀마의 미래에 낙관적인 응답이 많았던 만달레이 지역 조사에서조차 새롭게 선출된 정부에서 군부의 정치개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8%에 불과했다. 65%의 응답자가 민주적 가치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52%의 응답자가 표현의 자유가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군부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한 응답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이 조사 결과의 함의는 무엇일까? 지난 10여년 간 미얀마 민주화 세력과 군부 세력은 권력을 공유해왔다. 그 결과 미얀마식 민주화 모델은 점진적 민주화 혹은 부분적 민주화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이 모델이 민주화와 정치개혁의 범위를 제약한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민들은 군부와 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을 민주화의 진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NLD는 미얀마 민주화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NLD의 민주화 방안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군부와 권력을 공유한 채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을 추진해오던 전략을 더 이상 낙관적으로만 전망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 대한 기존 연구들과 역사적 경험은 군부의 정치적 퇴장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제시한다. 우선 군부세력을 분할하고 민주화 세력 편에 설 수 있는 군부 내 분파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또한 주요 군부 주요 보직은 순환시키는 한편, 민주화에 저항하는 장교들을 적시에 제거해야 한다.[11]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군부와 권력을 공유하던 지난 10여 년 간, 과연 위와 같은 조치들을 취했는지 의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신생 민주정부가 군부의 버릇을 나쁘게 들인다며 우려를 표현적이 있다.[12] 신생 민주정부는 단기적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군부를 이용해 오기도 했다. 그 이유로 군부에게 경제적, 정치적 자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군부의 권력을 약화시켜 정치영역에서 퇴출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조치들이다. 민주정부가 군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군부는 쿠데타를 도모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가 이번 쿠데타로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13] 미얀마 민주주의 지도자들도 스스로 덫에 걸렸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군부 권력을 회수하려는 시도 자체가 쿠데타를 촉발하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말, 쿠데타를 벌일 수도 있다며 군부가 위협을 가했을 때, NLD 정부가 무력하게 대응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군부 쿠데타가 현실화된 현재 상황에서, “협약에 의한 민주화” (pacted transition)로 명명된 미얀마의 점진적 민주화 모델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질문할 수밖에 없다.

 

군부의 선택지도 많지 않다

미얀마 군부 역시 현재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년 후에 선거 실시를 약속했지만, 군부가 의도한 대로 군부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쿠데타 이후에 치러지는 선거는 대체로 쿠데타의 승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성격을 띤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얀마 시민들은 2020년 총선 결과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선거가 실시된다면, 군부 혹은 군부가 지지하는 정당의 패배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군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가능성은 낮다. 그렇게 된다면 미얀마 민주화는 점점 더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1년 후에 실시하겠다고 한 선거를 미루기도 어렵다. 쿠데타로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려면 정당화 과정이 필요하다. 선거 없이 권력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쿠데타로 집권했으나 이후에 선거를 실시한 군부 체제의 존속기간(중간값)이 대략 88개월(7.3년)인 반면, 쿠데타 이후 선거를 실시하지 않은 군부 체제의 존속기간은 24개월에 불과하다.[14] 군부의 향후 선택을 예측하긴 힘들지만,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에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카친 주 조사 결과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미얀마에서 인권침해 등이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는 미얀마에게 효과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70%의 응답자가 동의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압력을 가하도록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응답자는 9.1%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이번 쿠데타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인권 이슈와 마찬가지로, 군부 쿠데타에 대해 국제사회가 개입해줄 것을 지지하는 미얀마 내부 여론이 다수임을 유추할 수 있다. UN을 비롯해, 미국 바이든 행정부, 그리고 기타 서방 사회의 지도자들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성토하고 있다. 이제 아시아 지역의 지도자들도 미얀마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불과 30년 전 미얀마와 비슷한 처지에서 출발하여 경제성장은 물론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자타 공히 모범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더 적극적인 지원과 연대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1] Al Jazeera and News Agencies. 2021. “Myanmar military ruler defends coup as protests intensify.”https://www.aljazeera.com/news/2021/2/8/myanmar-military-leader-gives-first-address-to-nation-since-coup

[2] Pyae Sone Win. January 29, 2021. “Myanmar election commission rejects military’s fraud claims.” apnews.com.

[3] Domestic Election Observer Organization. 2021. “Joint Statement by Domestic Election Observer Organization.” https://www.pacemyanmar.org/mmobservers-statement-eng/

[4] The Carter Center. 2020. “Election Observation Mission: Myanmar, General Election, November 8, 2020.” https://www.cartercenter.org/resources/pdfs/news/peace_publications/election_reports/myanmar-preliminary-statement-112020.pdf

[5] The Myanmar Times. November 16. 2020 “A Deeper Look into the Myanmar Elections.” https://www.mmtimes.com/news/deeper-look-myanmar-elections.html

[6] The Myanmar Times. November 30. 2020. “Suu Kyi’s Charm and Cult Proven in 2020 Polls.” https://www.mmtimes.com/news/suu-kyis-charm-and-cult-proven-2020-polls.html

[7] EAI는 미얀마 현지 파트너 기관들과 함께 미얀마 시민들의 투표행위와 정치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2020년 총선 후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미얀마 전역을 조사하려던 당초 계획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만달레이 지역과 카친 주 조사로 축소되었다.

[8] 2014년 기준 불교도 64.0%, 기독교 33.8%, 이슬람 1.6%, 힌두교 1.6% 등으로 불교도 외에 기독교도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만달레이 지역의 경우 95.7%가 불교도, 이슬람 3.0%, 기독교 1.1%, 힌두교 0.2% 등으로 구성된 것과 대조적이다(wikipedia.org).

[9] 미얀마의 모든 선거는 단순 다수제(first-past-the-post)를 채택하고 있으며, 상하원과 군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선출위원회(Presidential Electoral College)에서 대통령과 두명의 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10] 양 진술에 대한 워딩은 동일한 반면 척도는 차이가 있었다. 만달레이 지역 조사는 5점 척도(1. 전적으로 동의 2. 약간 동의 3. 중립 4. 약간 동의 안함 5. 전적으로 동의 안함)로 조사되었고, 카친 주 조사에서는 4점 척도(1. 매우 동의 2. 동의 3. 동의 안함 4. 매우 동의 안함)으로 조사되었다. 그림에 표기한 수치는는 1과 2의 합산이며, 나머지 응답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소수에 그쳤고 대부분 중립 응답이나 모름/무응답이었다.  

[11] Biddle, Stephen and Robert Zirkle. 1996. “Technology, Civil-Military Relations, and Warfare in the Developing World.”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19(2): 171-212; Sudduth, Jun Koga. 2017. “Coup Risk, Coup-Proofing and Leader Survival.” Journal of Peace Research. 54(1): 3-15

[12] Huntington, Samuel P. 1991. The Third Wave. Norman, OK: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3] Feaver, Peter. 1999. “Civil-Military Relations.”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2(1): 211-241

[14] Grewal, Sharan and Yasser Kureshi. 2019. “How to Sell a Coup: Election as Coup Legitimation.”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63(4): 1001-1031

 


■ 저자: 배진석_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미국 텍사스대학교(오스틴)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민주화와 신생 민주주의 맥락에서 선거, 정당, 여론 등이다. 동아시아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서 2013년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ADN),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DRN) 창립 당시 실무를 담당한 바 있다.

■ 저자: 정한울_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외교안보센터 부소장, 사무국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선거와 세대정치, 국가정체성과 안보인식, CSR 분야 조사연구 등이다. 주요 논저로는 《20대 남자》, 《보편적 기본소득제에 대한 한국인의 정책선호》, 《한국인의 ‘신안보’ 인식: 변화와 지속성》,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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