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페이퍼

[EAI 워킹페이퍼] 한국인이 보는 사회갈등구조의 변화와 정치·이념 양극화의 실상

  • 2020-11-09
  • 정한울

ISBN  979-11-6617-045-4 95340

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15년(2005-2020) 동안 <한국인의 정체성> 조사를 네 차례 진행하였습니다. 2020년 조사결과의 두 번째 워킹페이퍼 시리즈인 “한국인의 정치세계: 정치적 분화, 민주주의, 정부”의 첫 번째 보고서로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이 집필한 워킹페이퍼를 발간하였습니다. 본 보고서에서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갈등과 사회균열구조(social cleavages)에 대한 인식 변화를 살피고 있습니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사회갈등은 이익기반의 전통적인 갈등요인과 정체성 기반의 갈등 요인 등 다원적인 갈등 구조로 변화해왔고, 실제 한국인들은 계층, 학력, 지역, 세대 등 전통적인 사회갈등 요인들과 환경, 젠더, 이민 및 난민, 성소수자 이슈 등 정체성 기반의 갈등 요인들을 독립적인 차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당•이념갈등 인식은 서로 중첩되면서 동일한 차원으로 인식하는 반면 여타의 사회갈등 요인에 대한 인식과는 분절화되는 최근 경향도 주목할 결과입니다. 실제로 정당태도와 주관적 이념정체성 사이에서는 상호 중첩 현상이 강화되고 있으나, 여타의 사회균열(세대, 계층, 지역) 요인과 정당/이념적 정체성 간의 중첩도는 정체되어 있거나 완화되는 추세입니다. 또한 개별이슈 영역 및 정책적 쟁점에 대해서는 진보 정체성 집단과 보수 정체성 집단, 진보 정당 지지자와 보수 정당 지지자 들의 인식과 태도가 수렴되는 현상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한미동맹, 자유-질서, 성장-공공경제 영역에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공존하는 상충적 태도가 지속적으로 확인됩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정치갈등이 격화되고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은 양 정당 및 진영이 탄핵국면을 거치면서 정책대결 대신 ‘정파적 동원’에 매달린 결과이며, 정치적 경도가 뚜렷한 뉴미디어 부상의 부작용일 수 있다는 필자의 제언은 귀 기울일 대목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 아래는 본 워킹페이퍼의 서론입니다. 전문은 상단의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I. 들어가며

다양한 사회갈등(social conflict)이 공존하는 한 사회의 사회균열구조(social cleavages)는 그 사회의 정치체제(partisan cleavages) 및 이념적 균열구조(ideological cleavages)에 영향을 미친다. 정당 및 정치체제는 자원배분을 둘러싼 사회집단 간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대변(representation of conflict)’하는 역할과 함께,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통해 갈등을 해결(conflict resolution)하고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는 ‘정치적 조정(political coordination)’과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전자가 민주주의의 ‘대표성(representation)’의 수준을 좌우하는 문제라면 후자는 민주주의의 ‘책임성(accountability)’과 연결되는 문제다. 한편 이념은 사회적 집단 간 갈등관계에서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제공하여 정당화하고, 사회집단을 결속시키며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투표선택, 집단행동을 동원하는 기능을 담당한다(van Dijk 1998). 다양한 사회적 갈등균열 구조 중 어떤 균열을 동원하느냐, 어떤 사회적 집단을 대표하느냐(반대로 억압하느냐)가 해당 정치/정당체제 및 이념갈등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곽진영1998; 성경륭 2009; 장훈 2006).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 시대에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압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갈등은 체제혼란과 등치되어 금기시되었던 시기를 거쳤다.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갈등요인들은 억제되었다. 민주화 이후 90년대에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소위 권위주의 시대에 눌려있던 사회적 약자 계층의 반발과 이들의 이익 실현 과정에서 사회갈등은 민주주의가 정상화되는 지표이기도 하고, 불가피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사회갈등은 “(기존의) 비교적 단순한 갈등 구도에서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갈등 구조로 변화”하고 있으며, 정치이념적 갈등과 중첩되며 양극화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계층, 학력, 지역, 세대 등 전통적인 갈등범주에 포함되지 않던 환경, 젠더, 이민 및 난민, 성소수자 이슈 등 새로운 갈등 이슈가 분출하는 양상이다. 전통적인 갈등 내에서의 분화도 심화되고 있다. 계급 갈등도 노동 대 자본의 구도 못지 않게 기업 내부(대기업-중소기업), 노동 내부(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이 심각해지고, 지역갈등도 기존의 영호남 갈등 대신 수도권-지방 간 격차, 국책 사업을 둘러싼 지역 내 갈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다양한 사회 갈등을 대변하고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사회갈등의 대변자이자 동시에 사회적 결속의 매개 역할을 해야 하는 정당정치와 이념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사회 갈등과 균열을 심화시키는 핵심지점이며 갈수록 정치적 양극화 현상과 사회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심각해지고 있다(Abramowitz 2010; 이재열 2011; 이현우 외 2016).

그러나 정치와 이념이 사회갈등 요인과 중첩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문제라기보다 정치와 이념이 사회집단 갈등과 괴리되는 현상이 문제라는 지적도 일관되게 있었다. 나아가 새로운 사회균열을 정당체계가 반영할 때 정치갈등의 안정적인 토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곽진영 1998; 최장집 2002; Bartolini and Mair 1990). 기존의 연구들은 주로 사회균열과 정당/이념적 중첩현상을 투표나 정당 지지에서 주요 “정당 지지자들이 사회균열 구조의 특정 집단에 집중된 정도”를 의미하는 사회적 집중성이나 “한 집단에서의 각 정당에 대한 지지분포가 얼마나 포괄적”인지를 기준으로 분석해왔다. 특히 지역갈등, 세대갈등, 계층적 갈등, 이념적 갈등구조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왔고, 200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부상한 세대 및 이념균열이 지역균열을 대체했는지를 중심으로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곽진영·김은경 2018).

이와 관련하여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져 왔지만 몇 가지 제한점이 있었다고 본다. 첫째, 일부 연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계열적 변화추이보다는 특정 시점의 횡단면 연구에 집중되어 왔다(곽진영·김은경 2018; 이갑윤 2011). 따라서 장기간에 걸친 변동 추이를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 둘째, 대부분의 연구들이 정치균열과의 관계에서 (1) 지역 (2) 세대 (3) 이념 (4) 계층(사회경제적 갈등) 균열에 집중해왔다(강원택 2016; 곽진영·김은경 2018; 이갑윤 2011; 이내영 2011; 윤광일 2018). 이들 논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기존 균열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갈등(혜화역 시위, 20대 남자 현상, 난민 반대 운동 등)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이영라·이숙종 2018). 셋째, 사회집단 간 갈등을 이익충돌임을 전제하는 논의들이 대다수이며, 새로운 사회갈등의 핵심 특징으로 지적되어 온 ‘정체성 기반 사회갈등’에 대한 학문적, 정책적 관심이 부족하고 이에 대한 연구 성과도 부족한 상황이다(정한울·송경재·허석재 2019).   

이에 본 연구는 우선, 기존의 전통적인 균열 구조 외에 한국사회에 부상하기 시작한 새로운 갈등요인들을 분석하는 이론적 틀로서 ‘이익기반 사회갈등’과 ‘정체성 기반 사회갈등’의 구별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러한 틀을 기준으로 한국사회의 장기적인 사회갈등인식 구조의 변동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연구원과 중앙일보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2015년), 동아시아 공존·협력 연구센터(2020년), 한국리서치가 200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주기로 네 차례 진행한 “한국인의 국가정체성 조사” 자료를 활용한다. 

또한 본 연구는 정치이념적 양극화 현상의 순기능만 강조하거나 역기능만 강조하기보다는 정치이념 균열이 갖는 순기능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에 주목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회갈등은 집단적 결속(group unity)을 강화하고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정치적 양극화 현상 역시 시민들의 정치적 각성과 참여를 강화시키는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Wagner-Pacifici and Hall 2012). 사회갈등과 이념적 양극화의 역기능과 함께 순기능에 대해서 아브라모비츠의 연구(2010)와 McCarty(2019)의 연구를 참조할 것.
 그러나 사회갈등이 정치와 이념균열과의 중첩현상이 순기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단 (1) 정당/이념체계의 사회경제적 현실 반영(중첩도 제고)현상이 전제되어야 하며 (2) 반영된 요구와 이익이 실제 쟁점 및 이슈 경쟁으로 전환되어야 엄밀한 의미의 정당/이념의 사회적 기반 확대/연계 강화로 볼 수 있다. 단순히 특정 사회집단의 정치적, 이념적 집중도는 표면적인 중첩현상을 보여줄 뿐 사회적 집단이익 때문이 아닌 당파적 일체감 때문에라도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Abramowitz 2010; McCarty 2019).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의를 전개한다. 우선, 2005년부터 2020년까지의 조사 결과를 통해 한국인의 사회갈등인식 구조의 변화를 분석하고, 한국인들이 전통적인 이익기반 사회갈등과 정체성 기반의 새로운 사회갈등을 실제로 구별하여 인지하고 있는지 경험적으로 살펴본다. 다음으로 실제 정치균열과 이념균열이 사회적 갈등요인과 얼마나 중첩되고 있는지 다차원적으로 검토한다. 셋째, 정치이념적 양극화 현상은 실제로 심화되고 있는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지에 대해 탐색한 결과를 제시할 것이다.

 

■ 저자: 정한울_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 및 리서치 디자이너.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고려대학교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정치행태, 선거정치, 대외안보인식 등이다. 최근 논저에는 <세대투표 연구의 동향과 전망, 그리고 21대 총선> (2020), <한국인의 신안보인식: 변화와 지속성> (2019), <대한민국 민족정체성의 변화: ‘Two Nations-Two States 정체성의 부상>(2017)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서주원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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