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15년(2005-2020) 동안 <한국인의 정체성> 조사를 네 차례 진행하였습니다. 2020년 조사결과의 세 번째 워킹페이퍼 시리즈인 “한국인의 생활세계: 결사체, 다문화, 일과 삶, 소통”의 세 번째 보고서로 힌규섭 서울대 교수와 노선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생이 집필한 워킹페이퍼 "한국인의 미디어 정체성"을 발간하였습니다. 미국 및 한국사회는 모두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 추이가 생활의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사회 정체성화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가 양극화 되어가고 있고 사회 정체성화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해당 매체에 대하여 팩트(fact)나 논조 보다 정체성과 진영논리에 기반하여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으며,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기성언론 주도 시대와 비교하여 1인 매체 시대가 도래한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금번 설문 조사에서는 방송, 신문, 유튜브(YouTube) 채널 등을 포함하여 총 34개 언론매체들에 대한 신뢰도 조사를 특정 매체들을 신뢰하는 사람들과 진보•보수 정당의 평균적인 지지자들 간 추이 비교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동 조사 결과 진보보수 정당 사이에 존재하는 비교적 중립적인 언론 매체들은 9개에 그친 바, 이는 대다수 언론에 대한 평가가 매우 상이하며, 정치권 양극화보다 미디어 매체에 대한 양극화가 더 심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총 34개 매체 중 양극단에 각각 유튜브 매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 바, 이는 매체의 속성 상 양극단에 속한 유권자들에 많이 어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특히 총 15개 유튜브 중 12개 유튜브 매체들이 평균적인 보수정당 지지자들보다 더 우측에 위치하고 있고, 이는 강한 보수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 사이에서 유튜브가 대안적 미디어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아래는 본 워킹페이퍼의 서론입니다. 전문은 상단의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I. 서론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언론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낮아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2020년 발표한 세계 주요 40개국의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 한국은 이 조사에 포함된 2016년부터 5년째 줄곧 최하위를 차지했다. 민주화를 성취한 이후 30여 년이 흘렀으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민주화 이전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지난 2016년 칸타퍼블릭의 조사에서는 언론에 대한 평가가 삼성 등 대기업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언론보다 그 감시 대상인 대기업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언론의 자유는 성취했으나 언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그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한국 언론의 역설적 상황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화 이후 대다수 유권자가 언론을 불신하는 현실이 한국 언론의 ‘역설’이라 할만하다.

이 역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정치적 양극단화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양극단화로 인해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평가가 갈리다 보니 다수의 유권자로부터 신뢰받는 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미국에서도 일반 유권자의 양극단화 정도에 대한 학문적 논쟁이 존재한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양극단화가 심화되어 왔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메카시, 풀, 로젠탈 (McCarty, Poole, and Rosenthal 2006) 등의 연구자들은 의회에서 의원들의 표결 기록 등을 분석하여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 차이가 계속해서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인 바 있다. 반면 일반 유권자들이 얼마나 양극단화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가령 모리스 피오리나(Morris Fiorina 1999) 같은 학자들은 “중도”라고 자신을 칭하는 유권자의 비율이 증가한 점 등을 들어 정치 양극단화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반 유권자는 엘리트들의 양극단화로 인해 유권자들에게 매우 양극단화된 선택지가 주어지기 때문에 양극단화된 것처럼 보일 뿐이라 주장한다. 즉 정치 엘리트들의 양극단화가 일반 유권자의 양극단화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아브라모위츠 외(2008) 등의 학자들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설문이나 몇몇 주요 정책 이슈들에 대한 정당 지지자들 간의 입장 차이가 과거보다 벌어졌다는 점 등을 들어 일반 유권자들의 양극단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유권자들의 양극단화 정도에 대한 학계의 합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논쟁은 이제는 정치적 양극단화가 ‘사회적 정체성’화 되었다는 결론으로 수렴하고 있다. 아옌가, 수드, 릴크스(2012) 등은 정책 선호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차이가 커졌다고 볼 만한 근거가 약한 반면, 감정온도계를 활용한 척도에서는 경쟁 정당에 대한 ‘감정’이 과거보다 크게 나빠졌다는 것을 보인 바 있다. 이것은 정치적 양극단화가 일종의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으로까지 발전하여 더 이상 정책 입장의 차이가 아닌 ‘정체성’에 기반한 갈등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아옌가, 코니쳐, 테딘 교수(2017)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결혼하는 커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1973년에는 약 54%가 동일한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50%의 확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2010년에는 이 비율이 약 74%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치적 양극단화가 일상생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경쟁 정당의 지지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타인종에 대한 적대감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Iyengar, Sood, and Lelkes 2012). 또 이는 정치적 양극단화가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간의 갈등으로 정체성화 하여 더 이상 이성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정치에서도 이러한 감정적 양극단화가 미국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일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다. 가령 지난 2016년 매일경제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유권자 중 보수와 진보 모두 정치 성향이 다른 배우자와 살고 있다고 답한 경우는 15%가 채 되지 않아 한국에서도 정치적 양극단화가 생활의 영역으로 전이되어 사회적 정체성화 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또 모든 사회적 논의에 팽배한 진영 논리도 한국 유권자들의 정치적 양극단화가 사회적 정체성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저자: 한규섭_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Stanford University) 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연구원 인문사회부 부부장, 서울대학교 협력부처장,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엔젤레스 (UCLA)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정치커뮤니케이션이다. 최근 편저에는 “Economic and Cultural Drivers of Support for Immigrants.”  (2019), "빅데이터로 보는 한국 정치 트렌드" (2016, 공저), “The Influence of “Social Viewing” on Televised Debate Viewers’ Political Judgment” 등이 있다.

■ 저자: 노선혜_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 담당 및 편집: 서주원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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