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15년(2005-2020) 동안 <한국인의 정체성> 조사를 네 차례 진행하였습니다. 2020년 조사결과의 두 번째 워킹페이퍼 시리즈인 “한국인의 정치세계: 정치적 분화, 민주주의, 정부”의 두 번째 보고서로 강우창 고려대 교수의 워킹페이퍼를 발간하였습니다. 집필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의 민주주의 만족도는 크게 향상 되었다고 밝힙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정치경쟁을 규정하는 유일한 규칙(the only game in town)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실제 작동하는 방식과 성과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보수정당 지지자 및 보수적 성향의 응답자들 또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만족도가 낮아진다는 선행 연구들의 결과에 비교할 때, 긍정적인 결과입니다. 다만 이번 조사가 COVID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를 바탕으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 정부의 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증가할 때, 보수적인 이념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중심으로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정당 간의 갈등이 심하다고 느끼는 응답자들의 경우,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낮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적 양극화가 일반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 아래는 본 워킹페이퍼의 서론입니다. 전문은 상단의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I. 서론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Almond and Verba 1963; Inglehart 1988).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그 권력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행사하여,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는 제도를 뜻한다. 따라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제한되거나, 국민의 뜻이 정책결정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이는 규범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로 인해, 시민들이 민주주의 작동방식에 대해 신뢰와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안정된 체제로서 지속될 수 없다. 민주주의 제도가 정치 경쟁을 규정하는 게임의 규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선거를 통해 어떤 세력이 집권하건 그 정권과 체제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동의는 민주주의 공고화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여겨지곤 한다(Dalton 1999; Diamond 1999; Linz and Stepan 1996; Shin and Shyu 1997). 민주적 규범과 가치가 자리 잡지 못하고, 민주적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세력이 남아 있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비민주적 집단의 도전을 견제하고 방어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Rose et al. 1998).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 특히 민주주의 지지(democratic support)에 관한 일련의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차원적(multi-dimensional)인 개념이며, 각각의 차원을 구성하는 태도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방향적(multi-directional)이다(홍재우 2006). 예를 들어, 이스턴(Easton 1965; 1975)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구체적 지지(specific support)와 포괄적 지지(diffuse support)로 구분하였다. 구체적 지지란, 특정 정부, 정책, 지도자, 혹은 특정 시점에서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나, 그 지도자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반면 포괄적 지지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와 기본 원칙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구체적 지지와 비교할 때, 포괄적 지지는 특정 정권의 성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보다 지속적이며, 형성되거나 약화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구체적 지지와 포괄적 지지가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 태도에 대한 최근의 경험적 연구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민주주의국가에서 포괄적 지지는 높은 반면, 구체적 지지는 낮게 나타나고 있다(Fuchs et al. 1995; Klingemann 1999).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의 민주주의 태도에 관한 기존 연구에서는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를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가 실제 작동하는 방식이나 개별 정권의 성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만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조영호 외 2013; Park 2011).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단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참여를 저해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정치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선행 연구들은 한국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포괄적 지지와 구체적 지지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민주주의 제도의 문화적 기반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한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 빠른 민주화 이행을 추동하였지만, 이상에 비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민주적 규범 의식과 잔존하는 권위주의적 유산으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증가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 공고화는 지체되고 있다고 진단한다(Park and Shin 2006; Rose and Shin 2001). 이와 유사하게, 참여주의적인 시민문화와 대의제적인 제도 간의 충돌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조영호·김용철 2017)와 합의제적인 문화와 다수제적인 제도 간의 충돌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강신구 2019) 또한 정치제도와 정치문화 간의 부조응이 민주주의에 대한 구체적 지지와 포괄적 지지 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이들 연구는 대체로 민주화 이후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를 분석하거나 혹은 특정 시점의 여론을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장에서는 2005년, 2010년, 2015년, 2020년, 네 차례에 걸쳐 실시된 ‘한국인의 정체성’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0년 이후 한국인의 민주주의 태도를 분석하고자 한다.

 

■ 저자: 강우창_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뉴욕대학교 (New York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예일대학교 동아시아 연구단 박사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치, 선거, 정치행동 등이다. 최근 논저로는 "Envy and Pride: How Economic Inequality Deepens Happiness Inequality in South Korea" (2020, 공저), "The Liberals Should Pray for Rain: Weather, Opportunity Costs of Voting and Electoral Outcomes in South Korea" (2019), "The Corruption Scandal and Voter Realignments in the 19th Presidential Election in South Korea" (2019, 공저)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서주원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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