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중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여러 모로 전례가 없는 외교적 이벤트였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한국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교 이벤트이다. 53개국, 4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행사로 유엔총회를 제외하면 한 나라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로는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한 회의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바쁜 정치인인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이 한국서만 2박3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이 3박4일 체류한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정상회담 기간 전후에 걸친 6일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27차례 양자간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는 역대 한국 대통령 중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지난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이 대통령 본인이 세운 기록(10회)은 물론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ia-Europe Meeting: ASEM)를 개최했을 때 세운 기록(14회)도 경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 성과를 떠나 내용을 보더라도 이번 서울 정상회의는 지난 2010년 워싱턴 정상회의 성과에 더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정상회의의 결과문서인 서울 코뮤니케(Seoul Communiqué)는 핵군축, 핵비확산 및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인류의 공동 목표임을 재확인하면서, 모두를 위한 더 안전한 세계를 구축하고자 전념하는 가운데 핵안보 목표를 공유함을 선언하였다. 또한 국가들이 각국의 국내 및 국제적 의무에 따라 자국 통제하에 있는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물질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에 대한 효과적인 방호를 유지하고 비국가행위자가 핵물질을 취득하거나 이러한 물질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요한 정보 또는 기술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할 근본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핵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원자력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개발하고 이용하는 국가들의 권리를 저해하지 않음을 재확인했다. 구체적으로 커뮤니케는 ▲글로벌 핵안보체제,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의 역할 강화, ▲핵물질 방호와 관리, ▲방사선원의 방호 강화, ▲핵안보와 원자력안전, ▲핵물질 및 방사성 물질의 운송시 보안 강화, ▲핵물질 불법거래의 예방, 탐지, 대응 및 형사소추를 위한 국가역량 개발, ▲핵감식 역량 강화, ▲핵안보 문화 증진, ▲정보보안 등을 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의 직후 의장국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를 설명하였다. 우선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년간 핵무기 3천여 개 고농축우라늄(highly enriched uranium: HEU)을 저농축우라늄(low enriched uranium: LEU)으로 전환했고, 앞으로 핵무기 1만 7천여 개 분 플루토늄(68톤)을 제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러 외에도 8개국이 480킬로그램의 HEU(핵무기 18개 분량) 제거 성과를 거뒀고, 멕시코와 우크라이나는 미러에 HEU 전량을 반납했다. 한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 4개국은 HEU를 고밀도 LEU로 전환하는 공동실험 등 기술협력에 합의했다. 이 외에도 2014년까지 핵물질방호협약(Convention on the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CPPNM) 발효를 위해 현재 55개국인 서명국을 발효기준인 97개국까지 늘리는 한편, IAEA에 대한 지지를 통해 국제규범과 다자협상체제 강화도 합의했다.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먼저 서울 정상회의는 신규 의제로서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간 시너지 효과” 등 추가적인 의제를 성공적으로 다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핵물질 반환, HEU의 LEU전환, 다양한 공동협력사업 추진 등을 논의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금번 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전인 3월 23일에는 핵안보 심포지움이 개최되어 4개 분과로 구성된 심포지엄에 IAEA를 포함한 국제기구 대표 170여명 등 46개국에서 원자력전문가가 참가하여 핵테러 위협과 안보, 국제사회에 직면한 핵위협 해결방안, 핵의 평화적 사용 등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북핵 문제로 인해 핵비확산의 취약지대로 인식되는 한반도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이 이러한 회의를 주최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국가적 위상과 브랜드파워를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규범의 피동적 수혜자에서 능동적 창조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외교통상부는 이번 서울 정상회의가 성공적이려면 무엇보다도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핵안보에 관한 정치적 공약을 실천의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하에, 포괄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조치들을 담는 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서울 정상회의는 2010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이뤄진 참가국들의 약속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음을 보여주었다. 당시 참가국들이 약속한 72개의 약속 중 거의 대부분이 이미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또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의 핵안보를 위한 정치적 선언에서 실천적 이행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 그리고 방사성물질에 대한 방호까지 의제를 확대하여 1차 핵안보정상회의와의 차별성을 성공적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회의의 준비과정과 회의 이후를 내다보면 극복해야 할 한계와 과제도 만만찮다. 우선 준비과정에서 지적된 문제점들 중 대표적인 것은 역시 대국민 홍보와 관련된 문제였다. 핵안보정상회의 의제는 핵테러 방지가 최우선이고, 북핵문제와 한미원자력협력 등 우리와 직접 연관되는 사안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이 왜 이 회의를 주최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다. 핵안보는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념적 공감대 형성이 미흡한 분야이다. 이 때문에 서울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교통상부는 자문위원 전체회의를 개최하는 등 광범위한 조언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부대행사로서 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캐치프레이즈 공모 등 다양한 행사를 실시해 국민들의 인식 제고에 노력했다.

 

향후의 과제 중 핵심은 어떻게 해야 핵안보정상회의가 산발적인 외교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속가능한 비확산 메커니즘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다음 핵안보정상회의는 2014년 네덜란드에서 열리기로 정해져 있지만, 그 이후의 계획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따라서 그 이후까지 내다보고 핵안보정상회의를 어떻게 국제 레짐의 수준으로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대안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지난 두 번의 핵안보정상회의 성과를 이어나갈 후속 포럼으로서 G8 글로벌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GP)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G8 글로벌파트너십은 2002년 G8 정상회의에서 출범이 결정되어 현재는 23개국이 210억 달러를 염출할 정도로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GP는 원래 20년 한정 프로그램으로 출범했지만 2011년 프랑스 도빌 G8 정상회의에서는 GP를 2012년 이후에도 존속시키기로 합의했다. GP는 협력적 위협감축(Cooperative Threat Reduction: CTR)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협력적 방식으로 핵과 기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표적인 체제이다. 한국도 2005년부터 GP에 참여해 2011년까지 550만 달러를 기여했다. GP의 CTR 의제도 결국은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폐기, 확산 방지에 있으므로 핵안보정상회의의 취지와 일맥 상통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 이미 개최한 바 있는 G20 체제 속으로 비확산 어젠다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G20 국가들은 전세계 핵무기의 90퍼센트를 보유하며, 세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의 70퍼센트,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G20은 원래 국제경제와 글로벌 거버넌스에 초점을 맞춘 체제이지만, 핵안보가 중요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문제라는 인식이 G20 회원국들간에 공유될 수 있다면 G20에서 핵안보 문제를 논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핵안보정상회의의 본질적 한계인 구속력 없는 코뮤니케가 명실상부한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핵물질 제거•폐기가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참가국들의 실천 의지가 관건이다. 이번 회의에서 2014년까지 핵물질방호협약(CPPNM)을 발효시키고, 2013년까지 자발적으로 HEU 사용 최소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지만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결국 관건은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이 핵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얼마나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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