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주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로벌/지역 아키텍처와 미중관계

 

2011년 11월 3일 G20(Group of 20) 칸느 정상회의, 11월 12~13일 하와이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 11월 19일 발리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정상회의의 연속이다. 세계 주요국의 정상들이 이렇듯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정상회의들은 참여 국가들의 멤버십도 다르고 저마다의 독자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요 국가들이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및 지역 아키텍처의 형성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이라는 점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글로벌/지역 아키텍처의 형성에는 국제관계의 권력정치적 속성, 제도 및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협력과 갈등, 새로운 질서의 비전을 다른 국가들에게 설파하여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는 지식권력(knowledge power)의 중요성 등 국제정치의 21세기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세 번의 정상회의를 통해 향후 글로벌/지역 아키텍처의 향방을 놓고, 상대의 의도와 능력을 시험하는 3라운드의 탐색전과 샅바싸움을 한 셈이다. 2012년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2011년 말 3차례에 걸쳐 글로벌/지역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정상회의의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한국의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1라운드: G20 정상회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새로운 글로벌 아키텍처의 형성과 관련하여 G2에서 G33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G-x’ 과정에 돌입했다. 그 가운데 G20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로 시작하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정상회의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특히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한 선진국들과 주요 개도국들이 정책 공조의 장으로서 활용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G20은 위기의 관리자로서 위기를 통해 성장했고, 그런 점에서 G20 자체가 위기의 산물이자 수혜자였다. 유로존 위기의 와중에 개최된 칸느 정상회의는 G20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명실상부한 중심임을 재확인할 기회였다. 그러나 칸느 정상회의 직전 그리스 위기 해결을 위한 유럽 국가들의 제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는 그리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발표와 함께 G20은 위기의 관리자가 되기는커녕 위기에 함몰된 인상이다. 칸느 회의는 기업(G20 Business Summit: B20)과 노조(trade union organizations of the G20 countries: L20) 간 사회적 대화, 기후 변화, 조세 피난처에 대한 규제 등 몇몇 쟁점에서 진전을 보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서울 회의에서 채택되었던 개발 이슈에 대한 의미 있는 후속 조치가 별로 취해지지 않은 것은 물론, 금융자본주의의 과도한 확장을 규제하기 위한 금융거래세의 도입, 사회안전망 강화, 개도국의 빈곤 완화를 위한 농산물 가격 안정 등 프랑스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주요 쟁점들이 유로존 위기로 인해 주변화됨에 따라 새로운 어젠다 논의의 장으로 G20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가 그리스와 이태리의 디폴트 가능성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사이 유로존의 위기는 오히려 확산되어 갔다. 결국 독자적 위기 해결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유럽은 칸느 회의 직전인 10월 26일 주요 신흥국들의 지원 가능성을 타진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의 역할이 부각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로존의 위기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한 미국은 이와 같은 중국의 부상을 지켜보아야 했다. 서울 정상회의 이후 경상수지에 수량적 기준의 도입을 주도하는 등 환율정책과 관련 중국을 압박하던 장으로 G20을 활용하던 미국이 불과 몇 개월 뒤 칸느 정상회의에서 유럽 선진국들이 중국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외환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냉철한 반응과 함께 유럽 국가들의 자체적인 위기 해결 능력을 믿는다는 외교적 수사를 내놓았다. 한편, 중국은 이면에서 유로존에 대한 지원과 자국의 정상교역국가 지위 획득을 연계하려는 의도를 내비치는 전략적 대응을 병행하는 기민함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칸느 정상회의는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글로벌 행위자로서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재확인한 장이 되고 만 셈이다.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것은 중국의 부상이 국제관계의 새로운 현실을 반영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총아로 기대를 받던 G20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의도하지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유로존 위기를 G20의 공식 의제로 제시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중국 등 주요 신흥국들과 G20의 틀 밖에서 공식•비공식 협의를 진행하는 데 치중한 프랑스와 독일 등 유로존 국가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고, G20 차원에서 유럽의 위기를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미국에도 부차적 책임이 있다.

 

2라운드: 하와이 APEC 정상회의

 

불과 열흘 뒤 무대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졌다. 칸느 정상회의가 유럽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의 탐색전이었다면, APEC 정상회의는 직접적인 샅바싸움이었다. 그 불을 댕긴 것은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협상 참여 선언이었다. 정상회의 불과 하루 전인 11월 11일 일본 노다 총리가 ‘동북 지방을 대재해에서 재생시키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TPP 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했고, 캐나다와 멕시코도 일본의 뒤를 이었다. 이후 TPP는 정식 의제가 아니었음에도, APEC 정상회의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TPP 참여 선언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TPP 협상은 브루나이, 칠레, 페루,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소규모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국가들과 아무리 높은 수준의 무역 자유화 협상 타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가시적 경제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본의 참가는 TPP가 성사될 경우, 경제적 효과를 일거에 가시화시킬 수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야당인 자민당은 물론 집권 민주당 내부에서도 TPP가 농업, 의료, 금융 분야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일본의 협상 참여가 TPP의 협상 일정을 지연시키고 자유화의 범위도 축소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일본의 참여를 반색한 것은 TPP가 경제적 효과를 넘어선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TPP가 순도 높은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는 경제적 쟁점이지만, 향후 아시아 지역 아키텍처의 밑그림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TPP는 태평양 세력임을 줄곧 표명했던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에 재연결(reconnect)하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바로 여기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고조시킨 지점이다. 일본의 TPP 참여 선언에 대해 위젠화 중국 상무부 차관보는 즉각적으로 “중국은 어떤 나라로부터도 TPP에 초대받지 못했으며, 아시아지역 경제통합은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TPP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을 중심으로 한 자국의 지역 아키텍처 구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이 선호하는 ASEAN+3의 비중이 약 23퍼센트인 데 반해, 일본이 참여 선언하기 전 TPP 9개국의 비중은 약 27퍼센트이다. 그리고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비중이 약 26퍼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세계경제는 미국, 중국, EU를 중심으로 3분된 경제권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TPP 참여는 이러한 세력구상을 흩어 놓기에 충분하다. 일본에 이어 참여를 선언한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포함할 경우, TPP의 경제력 비중은 39퍼센트까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ASEAN+1’ 형태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기초로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여 자국 중심의 지역 아키텍처를 형성하려던 중국의 구상은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3라운드: EAS 발리 정상회의

 

다시 일주일 뒤 무대는 EAS로 이동했다. EAS 참여 국가 간 관계와 행동을 규정하는 ‘호혜적 관계 원칙에 관한 EAS 선언’(Declaration of the East Asia Summit on the Principles for Mutually Beneficial Relations)이 채택되었고, 아세안 연계성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한 ‘아세안 연계성에 관한 EAS 선언(Declaration of the 6th East Asia Summit on ASEAN Connectivity)’이 채택되는 등 외면적으로 EAS는 순항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EAS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식 통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무대가 좁혀진 만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과 수 싸움은 더욱 치열했다. 2010년 참여한 미국은 EAS를 ‘지역 안보 및 정치의 기축제도’(foundational security and political institution for the region)로 만들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EAS를 통한 중국 견제가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의 거듭된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은 EAS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했고, 이는 미얀마와 캄보디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또한 경제 제재 중에 있는 미얀마의 2014년 EAS 정상회의 개최에 동의하는 등 중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전략적 행보를 거듭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인도네시아에 해양산업 협력을 위한 30억 위안 규모의 지원계획을 발표하고, 아세안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중국-아세안 연계성 위원회(China-ASEAN Connectivity Committee)를 설치하는 한편, 미국에 동조한 오스트레일리아 등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는 강온 양면책으로 대응했다.

 

미중 경쟁 구도가 APEC 정상회의에 이어 EAS에서도 반복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하다. 그러나 EAS가 미중의 경쟁과 갈등의 장으로만 활용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역 아키텍처의 플랫폼과 관련, ASEAN+3에 대한 선호를 반복적으로 밝혀 왔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중국이 EAS의 출범에 합의하고,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참여에 동의했으며, 2010년 미국의 참여에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EAS를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장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그 근저에는 중국이 ASEAN+3에 대한 자신의 선호를 배타적으로 고수하지 않고, 다른 대안적 구상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는 데 있다. 향후 동아시아의 지역 아키텍처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선호하는 구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축소되기보다는 다양한 구상을 어떻게 공존 또는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전망과 한국의 대응

 

세 차례의 정상회의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 글로벌 아키텍처의 미래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는 3개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중국의 부상이 G20, 더 나아가 미래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칸느 정상회의를 통해 드러난 것은 중국의 부상이 G20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G20이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데는 G20이 단순히 국제관계의 권력정치적 속성만을 반영한 글로벌 거버넌스가 아닌, 국제관계의 네트워크적 측면과 복합적 성격을 아울러 반영하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볼 때, 유로존의 위기는 G20 차원의 네트워크적 대응을 촉발하기보다는 세계 2위의 경제력과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G20의 미래는 미국 대 중국 또는 기존 선진국 대 신흥 개도국의 권력구도를 넘어서서 글로벌 행위자로서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을 G20의 틀 속에 얼마나 유기적으로 녹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둘째, APEC 정상회의의 최대 쟁점이었던 TPP가 갖는 복합적 성격 또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TPP가 무역 자유화를 넘어선 미국과 일본의 장기적 전략적 포석의 일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TPP를 통해 아태지역 질서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는 역설적으로 무역 자유화의 정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국 미국이 일본의 국내정치적 상황을 감안하여 TPP의 자유화 수준을 조정하는 정도가 향후 미국과 일본이 TPP에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요소를 얼마나 가미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셋째, 무대를 동아시아로 더욱 좁혀 보면, APT와 EAS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더 나아가 EAS와 APEC 또는 TPP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 등이 향후 동아시아 국가들이 당면한 현실적 고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엮어내고 이를 다른 국가들에게 이해시키는 지식권력이 매우 중요하다. 향후 동아시아 지역 아키텍처의 성격과 내용은 지식권력을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국가가 획득할 것인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관전 포인트다.

 

이렇듯 급박하게 전개되는 2012년의 국제정치에서 한국은 어떤 대응책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한국은 G20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향후 한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G20은 출범 당시, 중국, 인도, 브라질, 한국을 위시한 개도국들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수립과 운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나머지들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을 현실화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칸느 정상회의는 중국의 부상은 실현되었으되,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을 자각시켜 주었다. 또한 칸느 정상회의는 G20이 새로운 글로벌 아키텍처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부상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그 위상이 흔들리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2010년 서울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운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 전개이다. 한국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서울 개발 컨센서스’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G20은 개발,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 등 새로운 의제를 논의하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칸느 정상회의에서는 이러한 어젠다들이 부각되지 못했는데, 한국은 이미 형성된 어젠다가 G20 차원에서 계속 논의될 수 있도록 회원국 간 협력을 모색하고, 새로운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G20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되, 현재 글로벌 아키텍처는 G-x 과정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다른 대안에 대해 조심스러운 고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또한 기존의 양자 FTA 중심의 전략을 보완하는 네트워킹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APEC 정상회의와 EAS 정상회의에서 나타났듯이, 향후 글로벌/지역 아키텍처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전략적 고려에 따라 다양한 국가들을 아키텍처에 끌어들이려는 네트워킹 전략이 있다. 한국은 미국, EU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FTA의 중심 국가로서 입지를 성공적으로 확보했다. 이는 분명 한국 FTA 정책의 중요한 성과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양자 FTA 중심의 전략을 지속할 계획을 갖고 있다. 즉, 한미 FTA, 한-EU FTA에 더하여, 한중 FTA와 한일 FTA까지 체결하여 4대 경제권과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로 부상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일본의 TPP 참여 선언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의 FTA 전략은 보다 대규모의 지역 아키텍처 구상에 파묻힐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국은 기존의 양자 FTA 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글로벌/지역 아키텍처와 관련한 보다 다양한 구상에도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2012년 5월까지 한중일 FTA 개시 여부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경제와 안보의 연계(economy-security nexus)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개최된 일련의 정상회의의 어젠다는 분명 경제적 쟁점이었지만, 그 밑바탕에는 전략적 고려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즉, 경기 종목은 경제이지만, 실제 플레이는 안보와 긴밀하게 연계된다는 점에서 매우 전략적이다. 21세기 국제정치 현실이 빠르게 복합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특히, 외교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상호의존을 빠른 속도로 심화시키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와 안보의 연계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를 위해 분절화된 정책결정에서 탈피한 통합적 전략체제의 수립이 꼭 필요하다. ■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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