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G20 서울회의는 어떻게 기억될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드물게도 국제무대에서 집중포화를 맞고 패권국의 위신을 실추한 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회의에 들어가기 전 이미 환율과 거시경제 불균형 문제를 놓고 주요 국가간 난타전이 진행되어왔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서울회의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낮았다. “산이 쥐를 낳았다.”는 르몽드지의 혹평처럼 거창한 프로세스의 초라한 결과를 지적하는 평가가 적지 않지만, IMF 지분조정, Basel III 합의, 개발을 위한 서울 컨센서스의 선포 등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회의는 이러한 성과보다 미국의 쇠퇴가 더욱 인상적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 국제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G20이 국제제도 혹은 글로벌 거버넌스 제도로서 각광을 받았던 시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 초창기이었다. 특히 런던회의에서 재정지출의 확대라는 정책공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국가들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기를 극복한 국가와 회복에 힘겨운 국가간 이익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G20은 하강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이번 서울회의는 이런 갈등국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국제제도로서 G20은 국가간 세력배분구조를 반영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패권국이 존재하고, 핵심국 간의 이익이 상호보완적이며, 국제규범이 패권국의 이익을 반영할 때 국제제도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반면 세력배분구조의 변화가 진행되고, 핵심국간 이익이 충돌하며, 복수의 규범이 서로 경합할 때 국제제도는 힘을 잃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G20은 미국 패권이 쇠퇴하지만 새로운 패권국은 등장하지 않는 과도기에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부상하는 경쟁국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면서, 경상수지의 과도한 적자와 흑자에 대한 수치목표(GDP 대비 흑•적자 4퍼센트)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해소를 촉구했던 미국의 새로운 규범은 집단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이 6천억 달러에 이르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는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국의 책무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어서 그간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중국과 브라질은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주요 국가들도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제안을 비판하였다. 외로운 미국은 각국 경상수지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년 상반기 구체화하기로 합의하여 체면을 살렸지만, 중국에 힘이 실리는 현실을 쓸쓸히 지켜보아야 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국제규범을 내어 놓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을 현실주의 국제정치적 견지에서 고려해 볼 때 애초에 G20 서울회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개최국 한국의 노력이 제도의 명운을 바꿀 수 없었다.

 

다른 한편, G20은 21세기 국제정치의 존재론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다양한 행위자들의 등장과 이슈영역의 연계와 복합화에 의해 네트워크적 제도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제도는 이른바 “G-x 프로세스”(process) 라는 표현처럼 비공식성, 유연성, 탄력성, 임의성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어, 최상위(premier) 포럼의 지위를 갖는 G20,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G7/8,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G2 등을 포괄하는 거버넌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번 G20이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해서 제도로서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주요 행위자들은 G-x 프로세스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갈등을 극복해 나가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G20에서 미국은 항상 옆에 있어준 한국을 제외하면 사면초가의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 전망한다면 미국은 G7과 같은 다른 네트워크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도 장차 보다 다양한 조합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번 서울회의가 국가들 간의 갈등을 봉합한 수준에서 끝났지만 향후 핵심국가들은 G20을 네트워크적 제도와 세력균형적 제도의 복합으로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규범과 규칙을 제정해 나가려 노력할 것이다.

 

둘째, 역사로서 G20 서울회의는 미중간 격돌의 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중간선거 패배의 후유증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경제 회복 여하에 따라 자신의 재선이 좌우될 것이므로 미국경제회복을 위한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미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환태평양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경쟁국의 환율조작 저지, 거시경제 불균형의 시정 등이 그 구체적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 경제 사안들을 하나씩 잘 들여다보면 보다 넓은 견지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말해주듯이 공세적인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한 복합전략이 가동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통해 인도에게 커다란 선물을 베푼 것이나, 한국과의 FTA 비준발효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아세안+3’대신 TPP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가 태평양을 가로 막을 수 있다는 전략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인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네트워크의 확산전략인 것이다. 이에 반해 G20은 환율조작 혐의를 매개로 직접적으로 대 중국 공세를 펼치는 장이었다. 결국 G20 서울회의에 앞선 순방의 중심에 G20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한미 FTA협상은 매듭짓지 못했고, 비록 G20 서울회의 이후 이어진 APEC에서 미국이 공들이고 있는 TPP에 일본이 가입하겠다고 천명하였으나 과연 TPP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G20 서울회의에서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설전을 벌였고 세 모으기 경쟁에 나섰다. 이번 G20은 향후 두 국가 간 관계를 좀 더 대결적인 양상으로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G20 서울회의는 한국외교의 전기轉機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정부가 G20을 하나의 이벤트로 준비해 온 것이 사실이나 그 과정에 수많은 학습효과가 있었다. 의장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 ‘코리아 이니셔티브’와 같은 의제설정과 주요국간 중재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글로벌 안전망 구축 사례처럼 한국이 국제현실을 모르고 ‘오버’한 경우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자산은 경험이다. 외교에 있어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 강대국간 중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꼈을 것이고, 또 미국만 좇아가서는 결코 국익을 확보할 수 없다는 처절한 현실을 목도하였을 것이다. 한반도라는 익숙한 지평을 넘어서 지구적 시각에서 문제를 복합적으로 조망하는 능력을 아쉬워하고, G20이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임을, 따라서 이슈의 복합성을 이해하면서 외교적 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절감하였을 것이다. 또 정부지식만이 아니라 사회의 지적 역량을 모으는 국내 정책네트워크의 필요성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G20은 한국이 복합외교를 가다듬는 귀중한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지식 등 소프트파워와 중재의 네트워크 파워를 갖추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구적 차원에서 문제를 복합적으로 보는 능력, 여러 이슈영역을 상호 연계하는 능력, 다양한 국내행위자를 엮어내는 능력을 활용하는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다. G20의 성취감에서 깨어나 경험을 전략으로 엮어내는 과제가 던져졌다.■

 

 


 

 

손    열 (연세대학교)

조홍식 (숭실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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