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영식 교수는 현재 American University의 국제관계대학원(School of International Service)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전후 한일관계사에 있어 “독도”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두 섬의 영유권을 두고 벌어진 양국 사이의 분쟁만큼 양자관계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어온 문제는 없다. 본고에서는 독도분쟁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초한 적극적인 외교가 아닌 실용적이고 차분한 접근에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독도는 한국 정부의 행정관할 구역체계로 편입되어 한국의 실효적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역사적 증거와 국제법에 의거하여, 자국에서는 다케시마竹島로 일컫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공식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간 영토분쟁은 냉전 기간 동안에는 크게 표출되지 않았다. 양국 모두 동북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협력 증진을 우선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더불어 지역 안보환경에 관한 외적 변수가 사라지면서, 일본은 훨씬 공세적이고 다각적인 방식으로 강하게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탈냉전 초기 이러한 일본의 정책변화에 대응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기 보다는 ‘조용한 외교’ 정책을 추구하였다. 이것은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고, 그 실효적 지배 역시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도발적 영토 정책에 대하여 감정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측의 주장에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양국간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영토 분쟁으로 존재한다는 일본 측의 주장을 강화시켜 줄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탈냉전 초기만해도 21세기에 접어들면 경제적 상호의존과 세계화의 심화,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대한 기억의 쇠퇴로 인해,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양국 간의 분쟁이 점차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은 다음의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1996년부터 1997년 사이에 있었던 한일 어업협정 개정 협상이다. 1965년에 체결되었던 한일 어업협정을 개정하기 위해 협상에 임했던 한일 양국 정부는 독도문제에 대한 자국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결국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1998년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이 한일 신 어업협정 체결에 성공하였지만,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합의문에 명시적으로 다뤄지지 않았고 양국은 독도문제를 둘러싼 분쟁을 지속하였다. 두 번째 사건은 일본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발표이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 현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를 발표하였고, 이로 인해 독도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크게 고조되었다. 당시 한국의 참여정부는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의 공동 성명으로 대일 ‘신 독트린’ 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간에 벌어졌던 첨예한 대결의 여파는 현재 양국 정부의 리더십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한일관계를 ‘성숙한’ 단계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해왔던 이명박 정부가 겪는 어려움은 더욱 크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한일관계의 회복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은 과소평가되었고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참여정부의 반제국주의적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대일 정책 추진으로 인해 경색되었던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몇 가지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남겨두고, 공동의 이익을 먼저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기치 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양국의 공동이익에 대한 실용적인 추구를 강조했다. 즉, 식민 지배 당시의 잘못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반성을 한일관계 개선에 필수적인 선행조건으로 내세우고 이를 고집하던 지난 정부의 입장에서 탈피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필수불가결한 지역 파트너인 일본과의 협력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고, 이는 구체적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당시 총리였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뿐 아니라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총리까지 초청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일 협력의 수준을 격상시키고자 했던 이명박 정부의 노력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2008년 7월, 미국의 지명위원회(U.S. Board on Geographic Names: BGN)가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미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에 해당하는 “UU”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한국의 언론매체들을 통해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조지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과의 직접 접촉을 포함한 다양한 외교채널을 동원하여 위원회 결정의 철회를 요청하였고, 위원회의 결정이 알려진 지 3일 만에 독도 영유권 표기를 한국령으로 회복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미국 지명위원회 사태에 이어 2008년 7월 후쿠다 정권이 일본 중학교 사회교과서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문제에 대한 상세한 언급을 허가함에 따라 한국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더군다나, 이는 독도 문제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자제해 주기를 요청한 한국 정부를 무시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2012년부터 반영되는 이 해설서는 역사상 최초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의 입장을 포함하여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분쟁에 대해 언급하였다.

 

최근 벌어진 미국 지명위원회 사태나 일본 중학교 사회교과서 문제는 ‘실용적 접근’이나 ‘조용한 외교’로는 독도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만 결정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 민주주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여론을 무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독도문제를 단순히 승리와 패배라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독도 영유권을 수호해내야 한다는 “근본적인 방식(fundamental ways)”에서 비롯된 지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가 오히려 대일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든 경우가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5년 공공연한 강경노선을 취함으로 인해 참여정부는 ‘비합리적’이고 ‘대립을 일삼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라는 스스로의 주장에 대한 설득력을 도리어 약화시켰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가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단순한 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고 과거침탈을 정당화 하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라고 비난하면서, “모든 가능한 수단을 활용하여 대처할” 것이며, “향후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상식에 기초한” 한일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역사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이 같은 성명의 내용은 마치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토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국 정부가 시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정부 스스로 당시 사건을 ‘국가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정의 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인류 보편적 가치와 정의를 언급하면서도,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통해 국제법에 따라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이 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적극적인 외교가 낳은 또 다른 역효과의 예는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미지정 지역”으로 바꾼 미국 지명위원회의 결정이다. 지명위원회는 독도문제와 유사한 사례에 해당하는 센카쿠 열도나 남쿠릴 열도를 포함한 다른 58개 사례는 그대로 두면서 유독 독도의 영유권 표기만을 변경하였다. 이 같은 미국 지명위원회의 결정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이미 상당히 지연되어왔던 세계 지명 데이터 베이스를 업데이트하기 위한 “형식적인(technical)” 결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역시 이를 지나치게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기 위해서 ‘일본해’와 ‘동해’를 나란히 병기할 것을 추구하는 외교 캠페인을 벌였고, 국제표준과 관행에 따를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둘째, 미국 지명위원회의 결정이 전략적 고려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도서지역을 두고 일어나고 있는 분쟁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을 보다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은 도서 지역에 관련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영유권 주장에 관하여 어떠한 입장을 내세울 권한이 없으며, 도서지역 근방에서 충돌이 일어날 경우 미군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1990년대 중반 이후 한일 양국은 1982년에 체결된 유엔 해양법 협약에 의거하여 새로운 국제해양체제에 부합하도록 기존의 한일어업협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충돌한 바 있다. 일본의 공세적 영토정책과 이에 대한 한국의 극렬한 반응을 목격했던 미국 정부로서는, 독도가 미군이 연루될 위협이 가장 높은 분쟁지대라고 판단하고, 이 지역에서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다른 동아시아 도서분쟁 지역에 비해 보다 긴급히 요구되는 조치라고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독도 정책에 대한 평가는 각국의 정책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펼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독도에 관한 각국의 주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특정 국가의 독도 정책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해당 국가가 제시하는 논리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정책은 효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이 독도 문제를 공교육과 국내 정치 무대에서 더욱 빈번하게 언급하는 양상은 계속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 정권인 민주당 연합 정부나 보수적인 자민당 모두, 최고 리더십의 정치적 입지를 충분히 세울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 사회 내에 존재하는 민족주의 정서를 무시하거나 포퓰리즘을 철저히 배격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8월 10일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문이다. 담화문에서 간 총리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한국인들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 진 것"이라 인정하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고 밝혔으나, 신중히 가려 쓴 표현으로 식민지배시기 일본이 자행한 잔혹한 행위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언급은 피했다. 또한 일본인 납치문제에 관한 협상력 상실을 우려하여 담화문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을 피했으며,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에 대한 보상문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간 총리의 담화문은 또 한 번의 우호적인 제스처로 받아 들일만 하지만, 일본이 현명하고 진정 어린 태도로 과거사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독도 문제 외에도 러시아 및 중국과 도서 영유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한국과의 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독도 문제 외에 진행되고 있는 다른 분쟁에 관한 일본의 협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독도 정책은 북부지역 네 개의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의 집착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두고 ‘상실’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이 경험한 뿌리깊은 피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쿠릴 열도에 관한 러-일간의 협상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 전에는, 일본이 현재의 독도정책에서 선회하여 새로운 정책을 취하기 어렵다.

 

한일 관계가 독도 문제를 두고 곪을 대로 곪은 현상유지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확실히 누구에게나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해 볼 때, 현상 유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2008년 12월에 하토야마 정부는 2013년 학기부터 시행될 고등학교 지리A와 지리 B 교과과정 지도서를 포함한 새로운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이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양국이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함께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정치적 행보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불안정한 독도문제의 해결은 양국 지도자들이 상호 실용외교를 추진함으로써, 이익에 기초한 양자관계를 신뢰에 기반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본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동아시아연구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6대 프로젝트

한일관계 재건축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