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률 교수는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EAI 중국연구패널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 방중 배경과 의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5월 3일부터 5일 일정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지난 2006년에 이어 4년 4개월 만에 이루어진 5번째 방문이었다. 이번 방중은 외형상으로 볼 때 기존의 북중간 정상외교의 기본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핵실험의 충격으로 잠복기가 길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2000년 이후 재개된 북중 정상간 방문외교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이다. 또한 2003년 2차 북핵위기 이후 북중간에 진행되어온 경제 지원과 6자회담 복귀의 맞교환이라는 이슈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역시 주요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비공식의 비공개 방문에 중국의 개혁 개방의 주요 성공사례지역을 시찰하는 일정까지도 지난 네 차례의 방중과 흡사했다.

 

그럼에도 이번 방중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억측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번 정상회담이 기본적으로 그 정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 방중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중 시점의 한반도의 정치 안보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큰 틀에서 보자면 북중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오랜 공백 끝에 성사된 회담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핵 6자회담이 18개월째 중단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는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직후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북한은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 3대 후계 계승 추진, 화폐개혁 이후의 혼란, 그리고 유엔 제재로 인한 경제난 심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복잡한 환경에서 이루어진 정상회담인 만큼 다양한 현안들이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향후 이어질 파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정작 예의 주시해야 할 시점은 북중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인 지금부터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을 속 시원히 공개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회담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중 양국이 회담결과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날 미세한 움직임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평가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번 정상회담이 북중관계와 중국의 대북 정책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둘째, 중국의 대북 지원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사이의 교환 거래가 이번에도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결과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셋째, 천안함 사건에 대한 원인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이루어진 북중 정상회담이 한중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전략과 북중관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천안함 사건 직후 이루어지면서 북중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북중관계는 이미 외견상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갈지자 행보를 보여 왔다. 중국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미국과 그에 아부, 추동하는 세력들의 책동” 이라면서 중국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강력한 제재를 강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해 왔다. 2008년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무려 73%에 달하고 있다. 양국은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북한 방문과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경제협력을 강조하고 전통적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북중관계에서 이처럼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는 이면에는 중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단기 전술과 북한문제에 대한 장기 전략 사이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외교 전략을 고려할 때 최선의 대북 정책목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친중 정권 하의 북한체제의 안정적 유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목표의 대전제는 북한문제로 인해 중국의 부상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못지않게 북한의 체제위기 역시 중국 부상의 큰 장애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중단기적으로 북핵문제로 인해 중국의 주변 안보환경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6자회담을 통해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핵문제가 기본적으로 북미 양자간 현안이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여 중국식 개혁 개방 모델의 북한 이식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북한체제의 안정과 친중국 체제의 정착, 그리고 향후 북미관계 개선에 따른 중국의 상대적 영향력 약화에 대비한다는 중요한 전략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 역시 지난 네 차례의 방문과 마찬가지로 다롄大連, 텐진天津, 중관춘中關村 등 중국 경제개혁의 성공사례 지역에 집중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적극 지지할 것이며 북한에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건설의 경험을 소개해주고 싶다”며 더욱 노골적으로 접근하였다. 중국은 이러한 장기 전략을 위해서는 북핵문제로 인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방중이 성사된 배경에는 북한체제 불안정성이 중국에게 안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중국에게 북한은 현재 ‘전략적 부담’이지만 동시에 미래 ‘전략적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기에 북한이라는 카드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때문에 중단기적으로 북한이 가져오는 부담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친중국 체제로 안정화하여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시켜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관계의 변화까지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6자회담 전망

 

김 위원장이 이번 중국 방문에서 기대했던 선물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 지원과 협력, 후계계승과정에 있는 북한체제에 대한 지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해명의 기회까지 다양한 현안을 안고 있었다. 반면에 중국이 북한에 기대하는 선물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중국은 이미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기대하는 선물은 6자회담 복귀였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에서 이러한 양국 간의 비등가의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 초점이다. 만일 이러한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조만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 간의 물밑외교가 진행될 것이다. 북중관계 역시 안정적 관계를 회복해갈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현재까지 6자회담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만을 근거로 할 때는 일단 2009년 원 총리의 북한 방문 당시의 논의에서 뚜렷한 진전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회담에서 “양국은 9•19 공동성명에 근거해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대가로 중국이 제시한 경제지원의 내용 역시 과거에 비해서 명료하지 않다. 후 주석이 경제협력 심화 등 5개 항의 협력방안을 제안하고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역시 다분히 원론적이다. 이전 정상회담 직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던 것 같은 구체적인 경제지원 내용과 규모에 대한 소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4년여 만에 재개된 정상회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보다는 성과가 분명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2003년 이후 6자회담을 둘러싼 양국간 거래 패턴을 돌이켜 볼 때 그동안 중국이 기울여온 노력에 비해 사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양국간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 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6자회담 전망을 비관적으로만 속단하기는 일러 보인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도 적지 않다. 비록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져 있지만 중국은 물론이고 ‘핵 무기 없는 세상’을 기치로 내세운 미국 오바마 정부 역시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 재개에 상당한 기대를 표명해왔다. 그리고 6자회담 재개에 관한한 미국이 중국에게 일정한 역할을 일임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있다. 그동안 중국은 6자 회담 성사를 위해 셔틀외교를 통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실제로 북중 정상회담 전, 4월 29일 중국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전화로 6자회담 재개를 논의한바 있다. 이제 수순상 북중 정상간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미간의 재논의가 진행될 타이밍이다. 마침 5월 24일 중미간 전략경제대화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향후 북•미•중간 물밑 접촉의 성패가 6자회담을 전망하는 주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6자회담 참여를 설득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이 “유관 당사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천안함 사태 수습 이후 중국의 중재를 통한 회담 재개 가능성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읽혀진다.

 

천안함 사건은 6자회담 재개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천안함 사건이 확대되어 중국의 안보 불안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는 국제사회의 대다수 주체들이 동의할 수 있는 요지부동의 물증이 제시되는 경우, 중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대북 재제에 참여했듯이 이번에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증거가 확고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가능한 한 조속히 6자회담의 재개를 추진하여 위기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관계의 함의

 

김 위원장의 방중은 뜻밖에도 한중관계에 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그리고 한국 외교는 예기치 않게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 이 대통령의 방중, 그리고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남북한이 마치 중국을 놓고 새삼스럽게 외교경쟁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만들어져 버렸다. 북중관계와 한중관계가 제로섬(zero-sum) 게임의 관계에서 탈피한 지는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인식되어 오던 차에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중관계는 2003년 이후 북핵문제에 대한 위기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책 공조를 해온 경험이 있다. 즉 북핵문제는 한중 양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양국 관계발전의 동인으로 작용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8년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 되었다. 그런데 정작 북핵문제, 천안함 사건과 같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현안에 있어서는 양국간 이해와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천안함 사건과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중국변수’의 특수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박하게 전개될 고차원의 복잡한 국제적 함수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중국변수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우선 한중관계 18년의 역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중관계는 지난 18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이러한 외형적 성장기조에 묻혀 양국간 이해와 신뢰 강화라는 기초 체력 강화에는 오히려 소홀해 왔다. 이러한 18년간의 불균형한 발전과정이 바로 지금 한중관계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중간 상호이해 증진이라는 기본에서 다시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 바로 알기’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물론이고 날로 세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에게 우리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대북정책과 북중관계에 대해서도 희망적 예단과 감성이 아닌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통해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중간에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이 북한문제에 대해 더욱 긴밀히 논의하고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이 북한에 대해 확보하고 있는 정보와 수단을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활용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한국대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북한에 대한 정보와 채널, 그리고 레버리지leverage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북제재이든, 6자회담이든 한국이 나서서 5자를 설득하고 주도하는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북핵위기는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의 한국의 입지는 약화되는 역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겨냥해서라도 중국을 대상으로 한국이 북한과 외교경쟁을 벌이는 듯한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 향후 미중간의 세력경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독자적인 전략적 가치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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