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박사는 미국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국제관계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2010 NPR과 핵안보정상회의

 

오바마 정부의 《핵태세검토(NPR)》보고서가 마침내 발표되었다. NPR(Nuclear Posture Review)의 목적은 발간시점에서 향후 5~10년간을 내다보고 유지될 미국 핵정책과 전략 수립, 목표 능력과 전력태세를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냉전 이후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1994)와 조지 W. 부시 행정부(2002) 때 두 번의 핵태세검토를 단행한 바 있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NPR은 《4개년국방검토 (Quadrennial Defense Review: QDR)》, 《탄도미사일방어검토 (Ballistic Missile Defense Review: BMDR)》, 《우주전태세검토 (Space Posture Review: SPR)》등과 함께 국방부가 수행하는 4대 전략방위태세 검토 보고서 중 하나이다.

 

2010 NPR에서 제시된 미국 핵전략의 목표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핵 확산 및 핵 테러리즘 차단을 강조했다. 미국 핵전략 역사상 처음으로 핵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핵무기 보유국이 증가하는 것을 차단하고, 테러조직이 핵을 보유하는 핵 테러리즘을 막는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강력한 비확산 의지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를 강화하고 핵물질의 밀수나 절취를 막기 위한 국제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미국의 의지를 입증하기 위해 신 전략무기감축협정(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STAR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Comprehensive Test Ban Treaty: CTBT) 비준, 핵분열물질금지조약 (Fissile Material Cut-off Treaty: FMCT)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핵무기 역할 감소를 천명했다. 즉, 정책수단으로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전체적인 숫자도 감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면서도 핵 비확산 의무 준수 국가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선언한 소극적 안전보장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공식화했다. 이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NPR에서 생화학무기나 테러기지에 대해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제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면서도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 NPT)을 탈퇴했거나 위반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유사시 핵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셋째, 핵 보유고 수준을 낮추면서도 전략적 억지력과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위해 러시아, 중국 등 핵 강대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전략적 억지 및 안정 유지, 오판에 의한 핵전쟁 방지책을 제시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미 러시아와는 전략무기감축협정 (START) 후속협정을 타결지었다. 신 START 협정은 핵탄두를 1,550개, 전략발사체는 800기로 한정했다. 하지만 핵삼중체제(nuclear triad)는 유지되며, 단 다탄두탄(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 MIRV)은 모두 단일탄두로 축소된다(de-MIRVed).

 

넷째,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력 제공을 재확인했다. 이번 NPR은 미국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이 감소함에 따라,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에서의 억지력에서 핵무기 이외 전력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며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력 제공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섯째, 안전하고 방호되고 효율적인(safe, secure, and effective) 핵 보유고를 유지할 것이다.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탄두 개발 없이 앞으로 이미 검증된 기술과 요소만을 사용해 효율적인 핵 보유고를 유지할 것이다. 이를 위해 탄두 수명연장프로그램(Life Extension Program)과 핵연구 시설, 핵전문 인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이다.

 

한편, NPR 공개 직후인 4월 12~13일 워싱턴에서는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 NSS)가 열렸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지난해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프라하에서 선포한 ‘핵무기 없는 세계’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첫 걸음이다. 이 회의에는 5대 공인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물론이고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비공인 핵보유국을 포함해 현재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 등 47개국이 참석했다. 거기에 더해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 그리고 유럽연합 대표가 추가로 참석함으로써,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원자력 이용과 관련된 세계 모든 나라와 단체가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회의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핵안보 강화와 핵테러 공동대응을 위해 테러집단의 핵물질 접근 차단과 핵확산 방지가 집중 논의되었다.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처럼 정식 국가가 아닌 교전단체 등이 핵을 보유할 경우 미국은 물론이고 지구촌이 핵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회의에서는 이란과 북한처럼 NPT를 위반하거나 탈퇴한 국가들의 문제도 다뤄져서 앞으로 이란과 북한의 반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NPR, NSS, 그리고 NPT 검토회의

 

미국의 핵전략은 NPR과 더불어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5월 3일부터 시작된 NPT 검토회의까지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4월 6일 NPR 보고서 발표를 신호탄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신START 협정 서명(4월 8일, 체코 프라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4월 12~13일, 워싱턴 D.C.)로 숨 가쁘게 이어져온 비핵화를 위한 거대한 담론이 NPT 평가회의에서 최종 점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엘런 타우셔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차관은 NPT 검토회의를 두고 “핵의 봄春,(Nuclear Spring)을 마무리하는 행사”라고 정의했다.

 

새 NPR의 기본 방향은 대체로 지난 3월 5일 오바마 대통령이 핵확산금지조약 발효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미국이 핵무기의 숫자와 역할을 모두 줄여나가게 될 것이라며 핵무기 감축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이 안전하고 확고하며 효과적인 핵 억지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안보 전략상 핵무기 수와 역할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핵군축과 비확산,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세 가지가 프라하 연설에서 언급한 비전의 핵심 요소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오바마 정부의 NPR은 핵과 더불어 재래식 전력, 미사일방어 체제까지 상황과 맥락에 맞는 유연한 접근을 강조함으로써 케네디 정부 시절의 유연반응 전략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전략이 오바마의 희망대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비록 핵무기의 역할 축소와 비핵화를 강조하지만 오바마 정부도 적을 억제하고 동맹국의 방어를 보장하는 핵무기의 역할과 기능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전략은 핵의존 축소와 동시에 핵억지력 강화라는 일견 이율배반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들도 대체로 핵 감축이라는 기본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안보를 희생하는 방향으로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미국이 핵무기의 선제사용은 하지 않겠지만(policy of no-first-use) 극단적 경우에는 핵무기가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약간의 ‘계산된 모호성(calculated ambiguity)’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NPR과 한반도

 

미국의 핵태세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 동맹국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과거 소련의 위협을 체험했던 동유럽의 국가들은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 선언이 다른 핵보유국들의 도발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핵우산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할 경우 일본이나 터키 등 동맹국들의 자체 핵개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에 대한 NPR의 안보적 함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QDR, BMDR 등 주요 보고서들 간의 관계와 아울러 미국 전략방위태세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분석을 통해 한국에 미치는 안보적 영향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QDR에서는 미군의 전진주둔과 순환배치를 언급했는데,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증대를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NPR에서는 핵무기의 역할과 숫자의 축소가 시사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의도에 상관없이 핵우산 확장억지가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미국 국방부는 향후 2∼3년 이내에 핵탄두 장착 토마호크 미사일 퇴역을 완료할 방침이며, 토마호크 미사일이 없더라도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우방국에 대한 확장억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한미전략동맹 공고화를 통해 핵우산 확장억지를 강화하는 한편, 대북 비핵억지력(센서, 조기탐지, 정밀타격, 크루즈미사일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와 관련해 핵심은 역시 북한 핵문제이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의 NPR에 대해 이미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4월 9일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앞으로 각종 핵무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현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은 북한과 이란을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배제한 NPR이 부시 행정부 초기 정책과 달라진 게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더 나아가 북한 외무성은 4월 21일 발표한 비망록에서 6자회담 재개와 상관없이 한반도와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망록은 북한이 필요한 만큼 핵무기를 생산할 것이지만 핵군비경쟁에 참가하거나 핵무기를 필요 이상으로 과잉 생산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핵보유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적 핵군축 노력에 참가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보유국 지위와 핵 군축을 주장해왔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든 말든 북한은 엄연한 핵보유국으로 행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의 주장은 앞으로의 협상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활용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전술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주장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6자회담 재개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나온 입장 표명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북한의 행보는 6자회담 재개 카드를 꺼냄으로써 중국의 경제지원을 확보하는 한편,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에 쏠리는 국제사회 의혹의 시선을 무마하는 동시에 6자회담에 앞서 천안함 원인구명을 시도하는 한•미의 입장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방중은 그럴 가능성을 높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협상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협상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상의 과실만 챙기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것이 북한이 의도하는 바라면, 북한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공적公敵이 될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오바마가 북한을 ‘국외자(outlier)’라고 부르면서 소극적 안전보장 대상에서 배제한 것을 북한은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1~6개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발언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북한이 가졌을지도 모를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 강성대국’이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즉각 6자회담에 복귀해 핵폐기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우리의 비확산 노력을 소개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선진적인 원전 운영시스템과 핵안보 체제를 적극 알렸고,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하는 개가를 올렸다. 사실 우리는 총 전력생산 중 원자력 의존도가 거의 40%에 이르지만 북핵문제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정부는 이런 국제회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NPT 체제하에서 보장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대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의 새 NPR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 앞길에 어떤 암초가 기다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분명히 야심찬 비전인 동시에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안보위협에 다함께 대처하자는 세계를 향한 호소이기도 하다. 그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타결점을 찾을지, 그리고 국제사회가 그의 호소에 어떻게 귀를 기울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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