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식성명(Official Statement) 분석인가?

 

미중관계의 변화를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자료를 토대로 분석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양국 정부 수뇌부의 비밀문건들을 모두 열람하는 것이 가장 신뢰할만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안이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제한적으로 양국 핵심관료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정말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자료는 양국 정부의 공식성명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공식성명에는 일정부분 혹은 상당부분 프로파간다가 포함될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천명한 정부의 공식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정보의 편재화遍在化가 세계적으로 진행된 상황에서는 높은 비용을 치르게 하기 때문에, 공식성명은 향후 각국 행보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상당히 신뢰할만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느 범위까지를 공식성명으로 인정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에는 상당히 공개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투명한 정치 문화가 자리잡고 있고, 대외정책에 관한 한 각 부처간 공식성명의 경우에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정부의 입장들을 공식성명으로 인정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를 포함한 몇몇 주무 부처 사이트를 통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다소 폐쇄적인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부 정례 브리핑 이외에 공식성명으로 인정할 만한 자료가 많지 않다. 게다가 정례 브리핑의 경우에도 정부가 선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아 자료수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본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사실상 공산당에 의해 운영되는 당-국가 체제(party-state system)인 점을 감안하여 공산당의 관영매체에서 발표하는 사설까지를 공식성명 범위에 포함하여 분석하기로 하였다.

 

자료의 수집은 2009년 미중정상회담 이후 1년, G20 서울회의 개최, 시진핑習近平 중국 차기 주석의 등장 등으로 의미가 있는 2010년 11월부터 실시하였다. 분석자의 언어적 한계로 인해 영문 자료만을 수집하였으며, 대신 중국측 공식성명의 경우 중국이 자체적으로 발표하는 영문 텍스트를 수집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U.S.-China Relations (UCR) Statement Factsheet 시리즈를 통해 매월 공개하고 있다. UCR Briefing은 UCR Statement Factsheet 자료를 분석하여 매 4개월 마다 발표될 예정이며, 이번 제1호 UCR Briefing 보고서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의 공식성명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음 제2호 보고서는 2011년 3월부터 6월까지의 공식성명 자료를 분석할 예정이다.

 

핵심이익과 세력전이

 

UCR 시리즈(UCR Statement Factsheet, UCR Briefing)는 미중의 공식성명을 매일 수집하고 이슈별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제위기 이후 미중간 힘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가정하에 시작된 본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세력전이 이론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기존의 세력전이 이론은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국에 의해 유지되는 국제정치질서에 불만족을 느끼는 경우, 경쟁하는 양국의 힘이 균등(parity)해지는 지점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Kugler and Lemke, et al. 1996, 7-10; Chan 2007, 2)고 보고 ‘세력전이(power transition)’와 ‘전쟁 발발 시점(outbreak of major wars)’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세력전이가 반드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며 평화적 전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조건은 세력전이 상황에서 양자가 ‘서로의 핵심이익을 얼마나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Kupchan 2001, 18-33; Zhu 2006, 23) 그렇다면 ‘핵심이익, 즉 상대방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영역을 서로가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서 서로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고, 이러한 인식이 한 번 형성되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의 논리(Pierson 2000, 251-267)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평화적 전이 또는 전쟁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핵심이익’의 영역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양국 공식성명을 이슈별로 분류하여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의 핵심이익

 

공식성명에서 나타난 미중간 현안에 관한 입장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보다 큰 틀에서 미중이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는 각국의 핵심이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파악함에 있어서 미국의 경우는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가 2010년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문건(The White House 2010)이 중요하고, 중국의 경우에는 2009년 미중 ‘전략경제대화’(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에서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밝힌 ‘핵심이익’(core interest) 발언(中国新闻社 2009/07/29; U.S. Department of State 2009)이 중요하다.

 

먼저 오바마 행정부의 2010년 〈국가안보전략〉을 살펴보면, 미국은 국가안보전략의 우선순위를 ‘안보’(security), ‘번영’(prosperity), ‘가치’(value), ‘국제질서’(international order)의 4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밝히고 있다. ‘안보’의 영역에서는 비확산 및 핵안보, 증오•폭력 네트워크와의 전쟁, 그리고 이라크 및 중동의 안정을 강조한다. ‘번영’의 영역에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 리더십 제고의 근간이 되는 경제력의 회복과 세계 번영을 위한 균형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미국의 중요한 이익으로 상정하고 있다. ‘가치’의 영역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 가치의 수호가 미국의 근본적인 이익에 기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와 이를 위한 국제규범의 강화가 미국의 이익임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질서’의 영역에서는 기후변화나 전염병의 확산과 같이 이 시대가 직면한 세계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의 영역임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중국 다이빙궈 국무위원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미중 양자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서로 각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중국의 핵심이익을 3가지로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중국의 ‘기본 국가체제’(basic systems)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 보존, 둘째 ‘주권 및 영토보전’(sovereignty and territorial integrity), 셋째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발전’(economic and social sustained development)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연구(Swaine 2011)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3가지 핵심이익 가운데 특히 두 번째 핵심이익인 주권과 영토보전 문제를 가장 강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만,’ ‘티베트,’ ‘신장지구’를 어떠한 상황에도 양보할 수 없는, 물리력의 사용까지 불사하고 지켜내야 할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명확하게 언급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정의하는 방식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첫째, 미국은 자국의 핵심이익을 정의함에 있어서 명확한 순위를 제시하지 않는 것에 반해 중국은 명확한 우선 순위, 그 중에 특히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이익’의 영역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둘째, 미국은 명확한 우선순위를 제시하지 않는 대신에, 각각의 이익이 서로 ‘불가분하게 얽혀있어’(inextricably linked) 하나의 이익을 따로 추구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한 영역에서의 성공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의 성공에 토대가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분절적으로 핵심이익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으며, 이익들 사이의 연결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셋째, 결정적으로 미국은 ‘네트워크,’ ‘공동가치,’ ‘국제규범,’ ‘글로벌 질서’ 등의 언어를 사용하며 자국의 이익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은 ‘영토보전’ 및 ‘지속적인 성장발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자국의 핵심이익을 밝히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핵심이익 담론은 다분히 복합 네트워크(complex network) 인식을 기초로 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담론은 ‘국가건설’(nation building) 또는 ‘부국강병’ 모델을 그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양국은 같은 2010년대를 살고 있지만 발전경로상 다른 시대를 살고 있고, 이 때문에 핵심이익을 정의함에 있어서 서로 같은 단어를 사용할지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피하기 어렵고, 구동존이求同存異가 한계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11월 ~ 2011년 2월 미중간 핵심이슈

 

[표 1]은 지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발생한 주요현안들과 이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주요현안들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양국이 모두 세계 평화•안정•발전을 위해 ‘긍정적, 협력적, 포괄적’(positive, cooperative, and comprehensive) 미중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동’에 방점을 찍는 미국과 ‘존이’에 방점을 찍는 중국이 대다수의 현안에서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국 간 근본적인 대립이 ‘인권’이나 ‘대만, 티베트, 신장문제’와 같이 양국이 서로 핵심이익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나 ‘자유’와 같은 국제사회 규범을 수호하는 것이 미국의 핵심이익에 속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인류 보편의 권리’를 위한 것임을 계속하여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를 거부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이 ‘평화적인 부상’이 아니라 ‘공세적인 의도’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주권’과 ‘영토보전’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라고 수 차례 공식적으로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계속)

6대 프로젝트

미중관계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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