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보는 “한국인”, 그 변화를 추적하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정치적 정체성은 정치공동체 속의 ‘우리’(we)와 외부의 ‘그들’(they)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의 경우 오랜 세월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간 속에 혈연적,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을 지닌 채 살아왔기에 한민족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곧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에게는 유럽의 근대 민족국가가 형성될 때 나타난 것과 같은 혈연적-종족적 의미의 정체성과 시민적-영토적 의미의 정체성 간에 괴리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은 과거와 같이 그리 간단하게 구분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분단으로 ‘한민족 한국가’라는 민족주의의 기본 원리를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남북분단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남한 자체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형성되었고, 이제 통일에 의한 민족정체성과 국가정체성의 결합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최종 단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급속히 이완되고 있다. 또한 세계화와 대외 개방 그리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로 우리 사회의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구성이 다양해지고 ‘단일민족의 신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글로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해진 이유다.

 

단행본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탐색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동아시아연구원은 첫 “국민 정체성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이듬해 단행본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정치》를 발간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그 연장선에서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과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 이내영 고려대 교수)가 공동으로 2010년 두 번째로 실시한 2차 국민정체성 조사를 통해 지난 5년 사이 생겨난 정체성의 변화와 지속을 비교의 시각에서 추적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연구원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정치학, 사회학, 행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연구팀을 구성하여 종합적이고 통섭적 관점에서 한국인의 정체성 변화를 분석하였다.

 

남한만의 “대한민국 정체성”, 세계화 시대의 “글로벌시티즌십” 확산

 

이번 책은 모두 아홉 편의 연구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강원택은 남한에 국한된 국가정체성과 남북한을 모두 포함하는 민족정체성 간에 내재된 갈등에 주목하면서 남한만의 분리된 ‘대한민국 정체성’이 점차 강화되어 가는 추세를 지적하고 있다. 이내영은 북한과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분석하면서 5년 전에 비해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타자의식’이 커졌고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신중한 태도가 확산되고 있음을 밝혔다.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변화와 세계화의 추세는 한국인의 국제관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숙종은 한국인 사이에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국제사회에서 주인의식과 책임성으로 표현되는 글로벌시티즌십(global citizenship)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확보를 위해 외교력의 중요성을 경제발전 못지않게 중시하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신화 역시 세계화, 정보화의 진전과 함께, 자연재해, 질병, 경제위기 등 초국가적 이슈가 한국의 국익에 위협 요소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비군사적 비전통적 안보 이슈의 중요성에도 관심이 높아졌음을 밝혔다.

 

“민주화, 다문화 시대”, 한국인을 새롭게 정의하다

 

정한울과 이곤수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 분석을 통하여 한국인들의 경우 높은 수준의 민주적 시민성과 강한 성향의 민족주의가 공존하는 ‘민주적 민족주의’ 성향을 발견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민주적 시민성의 성장이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족 주권의식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한편, 윤인진은 민족, 국민, 출신국의 조합이 서로 다른 재외동포, 탈북자,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면서 한국인은 출생지와 혈통과 같은 종족적 요건과 국적과 법과 제도의 준수와 같은 시민적 요건을 동시에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이 두 가지 요건들이 서구사회에서처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요인으로 묶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황정미는 다문화주의의 수용성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문화 다양성과 다민족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한국인들이 아직 내면화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회가 앞으로 다민족•다문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거시적 차원의 정책 방향에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동의하고 있음을 밝혔다.

 

국가정체성의 변화와 새로운 국가의제의 등장

 

이러한 국가 정체성, 민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국가의제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문명재는 한국인이 원하는 국가의제를 공정한 분배와 복지국가 구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미래 성장 동력 발굴, 공존의 법칙이 통하는 다원적 통합사회 건설,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국가 건설 그리고 통일국가 건설과 국제리더십 발휘 등 크게 다섯 분야로 정리하면서 사회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인 복지정책의 수립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경제성장 정책의 마련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용욱은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물질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으며 이러한 성향이 세대에 걸쳐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제시했다. 물질주의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지위의 의미가 다른 가치들을 압도하고 물질적 성공에 천착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물질적 이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주요 사회 쟁점들에 대한 선호를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변화하는 “한국인”의 도전과 기회, 우리의 선택은?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대로 지난 5년 사이 한국 사회의 내부 구성의 다양성은 더욱 증대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정체성의 속성도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오랜 시간 동안 ‘단일민족’의 신화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시대적 환경과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발전 또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정체성과 관련된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독자들은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의 결과를 《한국은,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목차

1장 한국사회의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의 변화 | 강원택

2장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 | 이내영

3장 한국인의 안보와 대외인식 | 이신화

4장 글로벌정체성과 한국의 외교 | 이숙종

5장 한국사회 변화와 국가의제 | 문명재

6장 민주주의는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나, 약화시키나?_2005년, 2010년 데이터 비교를 통해 본 민주적 민족정체성의 가능성 | 정한울 · 이곤수

7장 민족에서 국민으로_재외동포, 북한이탈주민,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인식변화 | 윤인진

8장 한국인의 다문화 수용성과 국가정체성 | 황정미

9장 한국인의 물질주의 | 이용옥

 

부록 프로젝트 개요 / 질문지 / 결과비교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단행본의 원고를 일부 공개합니다.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한국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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