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역사적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일본 민주당 내각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정책구상을 내놓았다. 그간의 ‘협력’이니 ‘연대’니 하던 데서 ‘공동체’라는 표현이 처음 나온 것이다. 지식인의 담론에서 쓰이던 공동체라는 단어가 공식화된 타이밍이었다. 오늘날 세계의 시선은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부상하는 중국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된다. 이를 견제하는 미국이 있고, 또한 여전히 일본의 위치도 무시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는 향방을 알 수 없고, 동남아의 역동성은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실험이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 속에 일본은 과연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탈아입구(脫亞入歐)니 탈구입아(入歐脫亞)니 하는 식의 19세기적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 책은 21세기 네트워크과 되어가는 국제관계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각 분야별로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을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동아시아공동체론, 일본을 알아야 한다.

 

21세기 국제관계의 중심에는 동아시아가 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사적인 변화를 전망하게 한다. 미국은 여전히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에 있으며, 막강한 경제력의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전지구적 수준의 활동가에서 다시금 동아시아 지역에 힘과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하고 있다. 아시아 세 마리 용의 발전 신화는 여전히 유효하고, 그들을 답습한 신흥 발전국가들이 아세안을 중심으로 꿈틀대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서구사회는 발전이 야기한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였고, 이에 대한 해답을 아시아적 가치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핵 문제, 대만 문제, 발전 불균형, 인접국 간의 역사문제 및 영유권 분쟁, 자연재해, 환경문제 등 이 지역의 산적한 위기 요인 또한 관심의 대상이다.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논할 때 일본을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된다. 비록 중국 부상에 따른 견제의 의도에서, 그리고 미일동맹의 중요성에서 기인한 외교전략적 선회라 말할 수도 있지만, 일본이 아태 지역에 전략적 관심을 둔 것은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제국주의의 역사도 가지고 있거니와, 대미 일변도의 외교에 치중해 있던 시절조차 일본은 세계 경제대국으로서 동남아 지역에 대한 지속적 원조와 관심으로 영향력을 놓친 적이 없었다. 한반도에 대한 특별한 이해 또한 계속되고 있다. 그 누구보다 “동아시아공동체” 논의가 활발한 곳도 일본이며, 정부 차원의 솔선도 가장 본격적으로 나왔다. 경제적 문화적 힘을 배경으로 이제 일본은 외교전략적 차원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일본, 역사의 걸림돌을 방치할 것인가?

 

동아시아 지역화 및 지역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 일본은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정치 및 군사안보 영역에서 일본은 그동안 미일동맹에 의존하면서 소극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인간안보의 국제 공헌”, 미일동맹을 주축으로 한 “효과적 파워”(effective power)의 역할 등을 통해 새로운 입지를 마련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경제 분야에서 일본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양자간 EPA 체결을 통해 자유무역의 그물망을 확장시켜 왔으며, 동아시아 지역 금융협력 과정에서 아시아개발은행,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지속해 왔다. 이와 함께 문화/컨텐츠 분야에서 일본이 이 지역에 가지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최근 한류가 새로운 트렌드로 동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침투한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은 “쿨 재팬”에서 “아시아 컨텐츠 공동체”로 진화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리더로서 일본의 역할 여부는 오늘에 있지 않고 과거에 있다. 제국주의와 전범국의 과거사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으며 주변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은 과거사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보다는 과거에 대한 인도적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거론되는 독일의 역사청산 사례는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임을 알아야 한다.

 

신시대 한일관계의 도래와 동아시아 지역주의

 

21세기 국제질서는 미중 양강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한일관계 또한 과거의 미국 중심의 수동적 관계에서 벗어나 신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귀로에 서 있다. 지리적 근접성, 좋든 싫든 역사의 공유, 문화적 유사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양국은 정치 민주화와 자유주의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으며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국가 주도의 제조업 중심으로 수출에 집중하여 성장해 온 것도 유사하다. 또한 최근에 양국 시민사회 간 교류의 폭발적 증가는 국익을 넘어선 보편적 규범과 가치의 공유 기반이 획기적으로 넓어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핵심 파트너십은 신시대 한일관계에서 출발할 것이다.

 

목차 

 

1장 동아시아공동체의 역사적 재조명_담론과 정책 | 한상일

2장 동아시아 지역주의와 일본의 역할 | 이숙종

3장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 정책 | 김기석

4장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론과 안보정책 | 박영준

5장 일본과 동아시아 금융협력체제 | 김상준

6장 EPA정책을 통해 본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 | 김양희

7장 일본의 문화교류정책과 동아시아_“쿨 재팬”에서 “아시아 콘텐츠 공동체”로 | 강태웅

8장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론과 미국_미국의 EAS 및 TPP 참가를 중심으로 | 조양현

9장 일본의 동아시아공동체 전략과 한일관계 | 이원덕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단행본의 원고를 일부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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