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퇴행 진단 시리즈] ④ 한국 정치엘리트와 민주주의 퇴행](/data/bbs/kor_workingpaper/20250515143956733110491.jpg)
박선경 고려대 교수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갈등 및 문제 해결에 실패한 정치엘리트의 행태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박 교수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폭력을 통한 갈등 해결을 묵인 내지 조장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드러났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입지가 강화된 배경으로 보수정당의 총선 패배에 따른 당내 중도 세력 약화, 정당 간 초당적 교류 축소, 강성 지지층 및 극단적 뉴미디어의 영향력 확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Ⅰ. 서론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대통령제나 선거제도 등 권력구조의 제도적 결함 때문인가? 정서적 양극화나 민주적 규범 약화 등 대중 선호 차원의 변화에서 생긴 것인가? 이 글은 12·3 비상계엄 이후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서, 제도적 결함이나 대중 선호 차원보다는 정치엘리트의 선호, 행태, 그리고 이를 제약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권력구조나 선거제 등의 정치제도에 결함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제도적 결함은 1987년 이후 대체로 상수로서 한국 정치의 구조적 환경으로 작용했다고 보며, 현재의 상황은 제도적 결함 그 자체보다는 제도적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 혹은 제도적 결함을 악용한 정치엘리트에 의한 위기라고 진단한다.
또한 이 글은 대중 선호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이끌 만할 큰 변화는 없다고 본다. 후술하듯이 소수 강성 지지자의 압박이나 편향된 미디어 사용 등 시민 수준에서의 위기적 징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 5편 강우창의 분석에 따르면, 이념 분포, 정서적 양극화, 권위주의 레짐에 대한 지지, 정책 선호 등 다양한 측면에서 2024년의 대중 선호가 지난 몇 년과 달리 특별히 더 심각하게 민주주의 퇴행을 보여 준다고 진단할 만한 변화가 없다. 즉, 대중의 수요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근거는 약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이 글은 지금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위로부터의 위기’이고 12·3 비상계엄은 정치엘리트 차원에서의 갈등과 문제 해결의 실패가 헌정 질서를 흔드는 위기로 갑작스럽게 분출된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다른 나라들의 민주주의 퇴행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과 유사한 진단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랫(Levitsky and Ziblatt 2018)은 기성정당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엘리트들이 극단주의자를 막아내는 문지기(gatekeeper)로서의 역할에 실패했을 때 민주주의가 붕괴한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민주주의 퇴행을 다룬 바텔(Bartels 2023)의 책 제목은 “민주주의는 위에서부터 부식한다(Democracy Erodes from the Top)”이며, 민주주의 퇴행 연구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정리한 드럭만(Druckman 2024) 글의 소제목 중 하나도 “부식의 주체인 엘리트(Elites as Agents of Erosion)”이다. 크누어(Kneuer 2021)도 선출된 지도자들을 부식 과정의 모터(the motor of erosion processes)라고 비유했다(Kneuer 2021: 1447).
이 글은 한국도 이러한 해외 사례처럼 위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정치 엘리트로부터의 위기가 발생했는지 진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 2장에서는 12·3 비상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주요 정치인들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 린츠(Linz 1978)의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 구분을 사용할 것이다.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민주주의 헌정질서하에서 발생하는 정치인의 당파적 행동은, 민주주의 레짐 자체의 위기를 초래하는 행동과 구분되어서 설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이 가능할 때 누가 왜 반민주적이고 극단주의적 행태를 통해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왔는지 판단할 수 있다.
3장에서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등장 원인을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 초당적 교류의 약화, 인센티브 구조 변화라는 세 가지 틀로 탐색한다. 첫째,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는 보수계열 정당 내부 상황을 의미한다. 수도권 지역구에서의 연이은 총선 패배로 인해, 보수계열 정당에서 중도 성향 의원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축소되고 선거 심판 가능성이 낮은 지역의 강성 의원이 당을 주도하게 되면서 극단주의적 행태가 자제 혹은 견제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었다.
둘째, 원내 진입 이후 정치인의 훈련, 교육 및 소통 과정의 문제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의회민주주의는 타 정당 의원들과 소통하면서 각자의 정치철학이나 정책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일종의 정치적 학습과 대화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다. 만약 과거에 비해서 의회 내 초당적 교류나 학습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면,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민주적 원칙 아래 타 정당의 의원들과 단결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정량적 지표로 국회의원 연구단체의 개수와 구성의 다양성을 확인해 보았다. 1994년에 처음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이후 연도별 국회의원 연구단체 숫자는 증가했지만, 2016년 이후 숫자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또한 20대에 비해 21대와 22대로 갈수록 연구단체 참여 의원의 소속 정당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즉, 초당적 교류와 소통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의 행태를 제약하는 인센티브 구조 변화를 살펴본다. 최근 몇 년 간 정당정치는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과 일부 편향적인 뉴미디어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극단적인 목소리가 당내 여론에서 과대대표되는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 원칙보다 당파적 이익을 우선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오히려 당 내에서 더 큰 지지를 받는 상황이 현재의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Ⅱ. 위로부터의 위기: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
후안 린츠는 민주주의 레짐의 붕괴 원인을 다각도로 다룬 그의 1978년 책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어기는 정당과 정치인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트리는지 설명한다. 그는 정치엘리트들을 민주주의에 헌신적인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와 겉으로는 민주주의자인 척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 원칙을 어기는 반쪽짜리 민주주의자(semi-loyal democrat)라는 두 개의 유형으로 구분해야 민주주의 위기와 레짐 붕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첫째, 승패를 떠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하며, 둘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혹은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전략을 명백하게 거부한다. 문제는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민주주의 질서하에서는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유형 모두 평시에는 민주주의 규칙을 대체로 준수하면서 각자의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쟁하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누가 반쪽짜리인지 관찰이 불가능하다. 린츠는 이런 사전적 관찰 불가능성의 문제는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소된다고 본다.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와 충직한 민주주의자 간 구분은 자신의 소속 정당이나 지지자들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 행동을 했을 때의 반응으로 구별된다. 누군가가 폭력적이고 반민주적 행동을 보일 때, 충실한 민주주의자는 그런 극단주의자가 같은 당 정치인이나 지지자라고 하더라도 이들을 비판하고, 이들의 행동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견을 표출한다. 반면,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는 자기 편에서 발생한 폭력적이고 반민주적 행동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비판을 피하거나, 묵인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이를 지지하기도 한다.
레비츠키와 지블랫(Levitsky and Ziblatt 2023)은 린츠의 이러한 구분을 사용하여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예시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스웨덴 보수당은 파시스트를 주창하는 민족주의청년동맹 내 청년단원을 출당시켰다. 1981년 스페인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좌우파 모든 진영의 의원들이 쿠데타에 맞섰다. 이러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과 달리, 1934년 프랑스 폭동을 옹호하거나 묵인한 공화연맹당 의원들은 대표적인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이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최근 민주주의 위기 상황은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나누는 첫 번째 기준은 승패와 무관하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선거에서 부정선거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부정선거론자를 암시적으로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듯 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들(김도형 2025; 한예섭 2025)도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첫 번째 원칙을 위반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이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구분하는 두 번째 기준은 폭력 사용에 대한 용인이다. 정치적 갈등의 해결 수단으로 폭력 사용을 주장하거나, 폭력적 수단 사용을 합리화하거나, 폭력적 수단을 쓴 자기 편 사람을 묵인하는 행동 모두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두 번째 기준과 관련해서는 서부지방법원 습격사건을 적용할 수 있다. 2025년 1월 19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 집단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집행과 이에 따른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위한 영장실질심사에 반발하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하여 집기를 부수고 난동을 피우는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만큼 놀라운 일은 한 현역 의원이 이러한 폭력적 행동을 간접적으로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폭동 이전에 이미 했다는 점이며, 이후에도 일부 의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이러한 폭동의 의미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유지웅 2025).
또한, 12∙3 비상계엄 당일 계엄 해제 투표를 둘러싼 행동들도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를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12∙3 비상계엄은 헌법에 규정한 절차와 요건을 지키지 않은 상태로 선포된 것이고,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에 군을 동원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는 등 명백히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조치였다. 특히, 국회의사당에 헬기와 군이 배치된 것은 정치적 갈등을 군을 통한 폭력적 수단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조치였으므로, 국회는 이러한 폭력적 대결 상황을 종결하고 위기를 막을 헌법적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사유 없이 계엄 해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로 오해를 받을 행동을 한 셈이다.
충실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라는 유형은 한 정치인이 가진 불변의 고유한 자질이 아니다. 각자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즉, 과거에 충실한 민주주의자로 행동했던 의원들이 지금 자기 편의 위기 국면에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로 변했을 수 있고, 반대로 과거에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였다고 해도 노력과 학습을 통해 민주주의 원칙을 수호하는 충실한 민주주의자로 진화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원칙 수호의 헌법적 의무를 가진 정치인들이 어떻게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되었는가? 한때 충직한 민주주의자로 보였던 이들이 어떤 계기로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된 것일까? 다음 장에서는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 초당적 교류의 약화, 인센티브 구조 변화라는 세 가지 틀로 그 원인을 살펴볼 것이다.
Ⅲ. 원인 진단
1. 현상적 정치구도의 변화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21대나 22대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거나, 서부지법 폭력사태를 조장하거나 혹은 그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린츠가 묘사한 전형적인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극단적 행동의 현상적 근인(近因)은 연이은 총선 실패에 따른 보수계열 정당 내 주도 세력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20대 총선 이후 22대까지 줄곧 수도권 지역에서 보수계열 정당이 패배하면서, 대체로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중도 성향 의원들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선거 심판 가능성이 낮은 지역의 강성 의원이 당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림 1]은 20대, 21대, 그리고 22대 총선에서 주요 양당의 서울 및 경기 지역 득표율을 보여 준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 간 득표율 차이의 평균값은 3.63%(약 4,020표)에 불과했지만, 21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간 득표율 차이의 평균값은 11.77%(약 13,943표)로 커졌고, 22대 총선에서 두 당 간 득표율 차이 평균값은 8.99%(약 11,492표)였다.
[그림 1] 주요 양당의 서울, 경기 지역구 득표율
[그림 2] 주요 양당의 서울, 경기 지역구 의석 수
[그림 2]는 양당이 획득한 서울, 경기 지역 의석 수와 그 차이를 보여 준다. 서울과 경기의 108석 중 민주당이 20대에는 75석, 21대는 92석, 22대는 90석을 차지했다. 현행 선거제도의 낮은 비례성 때문에 실제 득표율의 차이에 비해서 의석 수의 차이가 매우 컸다. 수도권은 지역주의 영향이 낮아서 본선을 통한 심판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전국적인 여론이나 선거 지형에 따라 교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므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의 의원들이 당선되던 지역이다. 보수 계열 정당의 연이은 수도권에서의 패배로 중도 성향 의원들이 사라지거나 이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강경보수 성향 의원들의 주도권이 커지게 되었다. 당 내에서 개혁이나 쇄신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중도 성향의 당대표가 선출된 경우 당내 강경파에 의해 사실상 축출되는 방식으로 당대표가 교체되는 등의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정대연 외 2022; 조미덥∙민서영 2024). 즉, 보수 계열 정당 내에서 극단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동을 견제할 만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2. 초당적 교류와 정치학습 기회 감소
두 번째 원인으로 고려할 부분은 정치엘리트의 정치학습과 정당 간 소통의 부분이다. 국회의 의사결정 제도는 합의제적 모델과 다수결제적 모델이 섞여 있어서 의사결정 비용과 수용의 비용 모두 큰 비효율적인 형태이다(문우진 2016; 전진영 2015). 따라서 개별 의원들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국회 제도에서 초당적 교류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모델이든 궁극적으로 다른 정당과의 소통 없이 입법 성과를 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며, 모든 의사결정은 다른 정치세력과의 대화와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의회정치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다른 소속 정당 의원들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치인들은 갈등적 상황에서도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고도의 정치적 학습을 경험하게 된다. 의원들이 각자 원하는 특정 법안이나 정책을 서로 주고받는 로그롤링(log-rolling)식의 거래 기술을 학습하기도 하지만, 이런 학습 과정 속에서 상대 정당의 입장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기 때문에 오해에 기반한 갈등이 줄어들거나 소통비용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전의 의회정치 상황을 돌이켜보면, 다른 정당과의 초당적 대화나 교류뿐만 아니라 같은 당 내 다른 계파 간 소통도 원활하지 않지 않았다. 의원 간 소통과 초당적 교류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 위기 극복과 정치 안정을 위해서 한시적으로라도 초당적 협력을 하자는 제안은 공허한 메시지에 그쳤을 것이다.
과연 정말 최근 국회의원들이 이전에 비해 초당적 대화와 소통을 적게 했고, 그로 인해 서로 협력할 만한 신뢰를 쌓지 못했을까? 의원 간 신뢰의 정도는 정량적인 지표로 쉽게 확인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의원 간 초당적 교류의 횟수는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초당적 대화와 소통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연구단체로 불리는 공식적인 공부모임의 횟수와 그 다양성을 살펴보았다. 국회의원 연구단체는 1994년부터 국회의원연구단체지원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공식적인 모임으로, 국회의원이 소속정당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연구단체를 구성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이다. 연구단체 구성은 2개 이상의 교섭단체(비교섭단체 포함) 소속 의원 10인 이상으로 구성하고, 반드시 다른 교섭단체 소속 국회의원이 1인 이상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초당적 대화와 협력을 장려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또한 한 국회의원은 3개 연구단체를 초과하여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단체 가입은 의원의 정치적 정책적 관심사를 어느 정도 반영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단체 숫자, 단체 종류 및 참여 의원에 대한 정보는 열린국회 정보공개포털에 공개되어 있다.[1] 단, 의원별로 가입된 연구단체에 대한 정보는 16대 국회부터 공개되어 있다.
[그림 3] 연도별 연구단체 수
[그림 3]은 국회의원 연구단체가 생긴 1994년 이후 2024년까지 등록된 연구단체의 연도별 숫자이다. 1994년 이후 연구단체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했지만, 2016년에 연구단체의 숫자가 75개로 가장 많았고, 이후 20대와 21대로 갈수록 연구단체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물론 동일한 임기 내에서는 초반에 비해 후반에 연구단체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21대나 22대 국회의 연구단체는 20대나 19대보다 적은 편이다.
[그림 4]는 정당별로 연구단체 참여 비율을 보여준다. 20대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참여 비율이 비슷했던 반면, 21대와 22대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의원의 참여 비율이 다소 줄어들었다. 연구단체 내 의원 수의 분포를 봐도 최소 구성 요건인 10명을 겨우 넘긴 11명이나 12명 규모의 연구단체가 가장 많았다.
[그림 4] 정당별 연구단체 참여 비율
국회의원 연구단체에서 중요한 점은 한 연구단체에 얼마나 다양한 정당의 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가이다. 이를 정량화하기 위해서 샤논 다양성 지수(Shannon Diversity Index)를 대수별로 계산해보았다. 샤논 다양성 지수는 한 집단 내 구성 요소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지수로, 보통 생물학에서 종 내 다양성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지수가 높을수록 한 집단 내 종의 다양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림 5]는 각 대수별로 연구단체 내 소속 정당에 따른 샤논 다양성 지수를 계산한 히스토그램이다. 20대에 비해서 21대나 22대에서 다양성 지수가 높은 연구단체 개수가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평균값으로 봐도 20대에서 다양성 지수 평균이 0.25, 21대는 0.23, 22대는 0.21이라서, 20대에 비해 최근으로 올수록 다양성이 하락했다.
[그림 5] 연구단체의 다양성 정도
즉, 국회의원연구단체의 시기별 분포나 정당별 참여 비율, 그리고 샤논 지수로 본 연구단체의 다양성 정도 등 다양한 기준에서 분석했을 때, 21대 국회나 22대 국회가 20대 국회에 비해서 초당적 교류와 대화가 적었다.
3.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마지막으로 정치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를 살펴본다. 정치인의 행태는 궁극적으로 특정 행동을 제약하거나 추동하는 인센티브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충실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는 고정된 기질이 아니라 정치 상황에 따른 유동적 반응이기 때문에, 특정 의원들의 반쪽짜리 민주주의적 행태는 최근 변화된 정당 내 인센티브 구조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많이 언급되는 변화는 소위 말하는 팬덤 정치 혹은 강성 지지층과 편향된 미디어의 영향력이다. 신진욱(신진욱∙이세영 2023: 116)의 지적처럼 팬덤 정치, 정치 팬덤 혹은 강성 지지층 등의 표현은 학문적으로 정립된 개념이 아니며 비교적 최근에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많지 않다. 그러나 팬덤 정치를 소수 집단이 강력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정치과정에 활발하게 개입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시민 참여 방식이라고 매우 넓게 정의한다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 집단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민주주의 정치철학에서 오래된 질문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가 다수 시민의 참여에 의한 대표 선출이라는 면에서 시민의 적극적 참여는 민주주의 레짐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론가들은 시민의 참여 방식과 내용에 따라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경고한다. 달(Dahl 1956)과 같은 고전적 이론가들은 다수의 지배가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을 지적했지만, 반대로 최근 연구는 미국의 티파티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 등을 사례로 해서,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소수의 강력한 참여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상황을 경고한다(Eisenstadt 2002; Levitsky and Ziblatt 2023).
한국에서 언론이나 일부 평론가 등을 중심으로 문파, 개딸, 태극기부대 등의 팬덤 정치 집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흐름이 있다. 이런 관점들은 특정 정치인의 팬클럽이나 강성 당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한 의원에게 문자폭탄이나 전화, SNS 댓글 등 주로 온라인 수단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이런 관점들에 따르면 팬덤 정치는 감성적으로 편향되어 있고(오현철 2021), 제도권 정치를 대체로 거부하며(박상훈 2023), 혐오의 정치문화에 기반한다(김주형 2024). 팬덤 정치가 기존의 정치 매개집단인 정당, 노동조합, 사회운동 등 조직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생긴 결과물이며(박권일 2018),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이승원 2021) 무조건적인 비판은 안일하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지만(천정환 2017), 다수는 대체로 팬덤 정치의 부정적 면을 우려한다.
원론적으로 보면 시민들의 정치과정에 대한 적극적 참여는 권장할 일이다.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관료나 사회 특권층에 의한 정치엘리트 포획을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강한 선호를 가진 소수 집단의 적극적 참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결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참여 강도의 격차이다. 현대 정치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투표와 같은 저비용의 선거과정에만 참여하는 반면, 강성 지지자 집단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과정에도 자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전자와 후자의 참여 강도 차이가 크지 않다면, 강성 지지자층의 존재만으로 반드시 부정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전자의 참여 강도가 매우 낮은 반면 후자의 참여 강도가 매우 높다면, 강성 지지자가 배타적이거나 극단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참여 강도의 격차 그 자체만으로 민주적 반응성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정치인은 후자에 더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전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지므로 후자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강성 지지자층이 부정적 효과를 만들어 낼 두번째 조건은 이들이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이나 정책 방향을 지지할 때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서, 혹은 당파적 이득을 위해서 민주적 원칙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영향력에 의해 의원들이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편향적 뉴미디어의 존재는 강성 지지자의 악영향을 증폭시킨다. 최근 일부 편향적인 뉴미디어는 극단적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로 작동한다. 극단적인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당내에서 과대대표되는 구조 속에서 편향적 뉴미디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러한 목소리가 증폭될 때, 정치인은 이러한 부정적 인센티브 구조의 압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소수의 비민주적 강성 지지자 집단이 당파적 이득보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는 충직한 민주주의자를 압박한다면, 다른 정치엘리트들도 쉽게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처럼 행동할 유인에 빠지게 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보다 반쪽짜리 민주주의자가 오히려 당 내에서 더 큰 지지를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 집단 중 일부는 탄핵 투표에 참여한 의원들을 배신자로 공격했으며, 이들이 참여하는 집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에 대한 비난과 혐오만큼이나 탄핵에 찬성한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드러내는 발언자가 있었다(정성식 2024).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보여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적 태도에는 이러한 소수의 강성 지지자들이 만든 인센티브 구조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Ⅳ. 결론
이 글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제도나 대중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엘리트의 선호와 행태, 그리고 이를 규정하는 제약 조건과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에서 찾았다. 린츠가 제시한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의 구분을 통해, 정치엘리트가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보다 당파적 이해와 권력 유지에 집중하며 체제 위기를 촉발시킨 과정을 설명하였다. 3장에서는 보수정당 내 권력 구도의 변화, 초당적 교류와 정치학습 기회의 축소, 소수의 극단적 지지층의 압박을 반민주적 행태를 자극하는 요건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갖는다. 첫째, 현재의 위기가 보수 정당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반쪽짜리 민주주의자에 대한 분석이 대체로 보수정당 내부의 변화와 행태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외 다른 정당의 역할에 대한 분석은 빠져 있다. 둘째, 3장의 원인 분석은 대체로 간접적 지표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3장의 2절에서 초당적 민주적 정치학습의 축소를 보여주기 위해서 국회의원 연구단체 현황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회의원 연구단체 내부에서 얼마나 초당적인 대화와 교류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부재하다. 또한 국회의원 연구단체 외 다른 방식의 초당적 대화와 교류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점은 반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원인으로 제시한 세 가지 점 외에 유권자의 정서적 양극화나 정당 외 조직을 통한 동원의 문제 등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다 다루고 있지 못하다. 향후 연구에서는 이들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민주주의 퇴행의 메커니즘을 보다 정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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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경_고려대학교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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