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한국외교 2021 전망과 전략” 시리즈 세 번째 보고서의 저자인 손열 EAI 원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본 논평을 통해 부통령 시절부터 한일관계 개선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온 바이든 당선자가 2021년 출범하는 미국 신정부를 이끌며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과 개입을 예측합니다.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여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 견제의 수단으로 한일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미중 세력 경쟁 사이에서 공존을 모색하고 신(新)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수출규제와 강제동원 해법을 연계하여 접근하는 일본의 원 트랙(one track) 외교와 달리, 역사문제와 안보-경제 협력 의제를 이원화하는 투 트랙(two track) 접근법을 촉구합니다.

 


 

박근혜 정부 외교의 최대 실패 사례가 위안부 문제로 롤러코스터를 타며 악화된 한일관계이었다고 한다면, 문재인 정부 5년에서도 한일관계는 또다시 실패 사례로 첫 손꼽힐 가능성이 크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형해화되었고,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양국은 상호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며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피고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문제 해결을 둘러싼 대립이 지속되고 있고, 이 문제 진전 없이는 수출규제조치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 정부는 WTO 제소 중이다. 작년 한 해 경색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노력을 경주했지만 일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새해 들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 배상 판결로 국면은 다시 경색되고 있다. 2021년 과연 변화가 올 것인가. 올해 한국외교에 최대급 대외변수로 주목되는 미국 바이든 신정부의 출범은 한일관계에 변화의 충격을 줄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남은 일 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2013년의 바이든

2013년 12월 6일 조 바이든(Joe Biden) 부통령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며 미국은 한국에 베팅하고 있다”라고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도쿄-베이징-서울을 도는 6일간의 외교 일정은 대단히 전략적으로 설정된 것이었다. 바이든은 12월 3일 도쿄에서 아베 총리에게 한일관계 개선과 협력이 일본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임을 강조하였고, 베이징에서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장과 미국 기자에 대한 언론 탄압을 강력히 항의한 후, 서울에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와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미중 전략 경쟁 구도 속에 한국의 위치, 그리고 한일관계의 위상을 설정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바이든은 한일 간에 고유한 역사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그는 아베 총리가 역사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관계 개선을 설득하고, 12월 26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기 전 직접 전화하여 이를 만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이든의 본심은 중국의 도전에 맞서는 전략적 협력에 있었기 때문에,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정상회의를 기획하고 한국의 참여를 종용하였다. 2014년 3월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삼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은 한일 양국 사이 중재자로 나섰고, 이후 위안부 교섭에 깊숙이 관여하여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의 바이든

이제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이 한일관계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19년 여름 한일 양국의 대충돌에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 원인인 역사문제에 대해 어떠한 개입 및 중재 시도도 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GSOMIA) 종료 선언과 같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훼손할 수 있는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하였고 결국 한국 정부는 선언을 번복하기에 이르렀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 회복을 위해 동맹 관계의 강화와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적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거래중심적이고 양자주의적 접근과 달리 집합적 접근(collective approach)과 다자주의로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고자 한다. 미국의 물리적 능력의 상대적 쇠퇴를 만회하는 방법으로 동맹·파트너국들과 공동보조를 통해서 군사적 억제, 인권과 민주주의를 통한 규범 공세, 중국 시장의 차별적 규제 장벽에 대한 압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중추적 역할 요구는 2013년보다 더욱 커졌다.

바이든 정부의 신(新)전략은 분명 예측불가의 트럼프 외교에 비해 일본에 안정감과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는 동시에 상당한 도전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일본이 2021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략적 과제에 직면할 것임은 비교적 용이하게 예상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방위비 증액으로 실질적 군사력을 증강하여 지역의 안정(즉, 대중 억지)에 공헌하라는 압박을 가할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 국제 연대에 주도적 참여를 요청할 것이다. 일본은 표면적으로 가치 외교를 내걸었지만, 홍콩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탄압 문제 대응에서 보듯이 기본적 인권보다 국가 주권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에 향후 난처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끝으로 대중국 전열을 정비하는 차원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강하게 요구받을 것이다.

 

스가 총리의 고민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 정부는 준비되어 있는가. 1월 1일 신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드러나듯 스가 총리는 아베 외교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 호주, 인도, 유럽, 아세안 등과 협력하여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실현에 나서며, 동시에 중국, 러시아, 근린제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납치문제 해결을 강조할 뿐 한국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작년 9월 신임 총리 기자회견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그는 한국을 전혀 거론하지 않아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우려를 일으켰었다.

더욱이 문제는 스가 총리가 대외정책 차원에서 일관되고 전략적인 대응을 하기 어려운 국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위기가 지속되면서 2020년 일본의 GDP는 –6.4%로 예측될 정도로 경제는 전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으며, 새해 들어 연일 감염자 수 기록을 경신하자 정부는 제2차 긴급사태 선언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론은 차갑게 돌아서 니케이 여론조사 결과 내각 지지율이 9월의 74%에서 12월 42%로 급락하였다. 스가 내각은 코로나 대책과 경제 활성화 대책에 올인해야 할 처지이고 외교정책에 전향적 자세로 나설 여유가 없어 보인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관계 개선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미국의 관계 개선 압력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작년 11월 13일 EAI-브루킹스 연구소 공동세미나에서 마크 내퍼(Marc Knapper)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는 한일 양국이 미국과 함께 역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동행해야 한다며 관계 개선 압력을 가한 바 있다. 또한 국내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시한에 쫓기면서 사태를 방치하다가 양국 간 보복의 악순환이 재연된다면 문재인 정부는 엄청난 부정적 유산을 차기 정부에 떠넘기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현 정부 최대의 외교과제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을 활용하고자 하는 데 있다. 작년 11월 각각 스가 총리를 면담한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2021년 도쿄 올림픽의 외교적 활용을 언급한 바 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초청한 사례처럼 일본이 도쿄올림픽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할 수 있다면 남북관계, 북일관계, 그리고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과제와 전략

문재인 정부에게 한일관계 개선에 주어진 시간은 1년에 불과하다. 지난 10년에 걸쳐 양국 정치 지도층 간 민족주의적 갈등이 국민 전반으로 확산되어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감정적 대립이 자리 잡았음을 상기해 보면 문재인 정부와 스가 정부가 서로 수용 가능하고 국민적 눈높이에 맞는 징용과 위안부 문제 해법을 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스가 정부의 입장은 아베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징용 문제를 일으킨 쪽은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 측이 책임지고 해결해 달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월 8일 서울지방법원의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일본은 국제법(‘주권면제’원칙)과 2015년 정부간 합의를 위반한 한국측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법부 판단 존중,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전제로 한일 양국이 협력하는 방식의 해법을 찾자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고, 문재인 정부가 선거의 해에 전향적 발상으로 나올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투 트랙(two track) 접근 즉, 역사문제와 안보-경제 협력 의제를 이원화하고 탈동조화(decoupling) 하자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는 본래 미국이 제안한 원칙이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한일관계 개선(즉, 정상회담 개최)의 조건으로 삼는 이른바 원 트랙(one track) 외교를 고수하자 미국은 투 트랙을 강력히 권고한 바 있다. 현재 상황은 그 반대로서 아베 정부와 스가 정부는 수출규제와 강제동원 해법을 연계하는 원 트랙 접근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관계 개선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투 트랙 접근으로 풀어갈 정책 의제와 로드맵을 선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표면적으로 투 트랙 외교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 까닭은 안보-경제 분야 등에서 일본과 적극적으로 협력에 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한국 외교가 이른바 ‘북한우선(North Korea First)주의’에 기울어져, 일본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정책협조 유인과 동력을 찾지 못하는 탓이다. 일본은 남북관계 개선의 방해자(spoiler) 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여타 영역에서 협력의 중추적 동반자이다. 2021년은 협력 트랙의 본격적 가동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역사 트랙에서 정부는 복잡다단한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시도는 접어야 한다. 일본이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한국이 사법부 판결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대치하는 현재 상황을 극복하려면 양국 정치 지도층이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지도부로 연내 해결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현안 해결보다 관리에 주력하여 사태 악화를 방지하고, 관계 개선의 동력은 협력 트랙 쪽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강제동원의 경우,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 실시를 최대한 유예하고 일본 기업의 실질적 손해를 차단/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 양국이 또 한차례 보복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정치력을 모아야 한다. 위안부 판결의 경우도 양국관계를 위기국면으로 몰고 간 강제동원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2015년 합의를 재활용하는 등, 대화 국면을 유지해 협력 트랙과의 탈동조화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협력 트랙에서 정부는 도쿄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외교노력을 경주하되, 역사 문제와 연계해 해결하는 원 트랙 접근에 말려들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조급하게 징용 혹은 위안부 문제와 연계하는 패키지딜(package deal)을 시도한다면 2015년 위안부 합의의 교훈처럼 국내적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차기 정부에 커다란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바이든 정부 등장으로 가중될 한미일 협력의 압력에 대한 전략적 대처이다. 바이든 정부는 집합적 접근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을 필수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다. 안보, 무역, 개발, 가치/규범 등 다방면에서 한미일 협력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정조준하는 경우, 한일 양국은 미중의 세력 경쟁 즉, 기성 질서를 전복하려는 중국의 시도 혹은 중국의 성장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편을 들 수 없다. 여기서 양국의 전략적 이익은 일치한다. 북한을 포함해 이들이 정당한 경쟁과 공존, 공생을 이루도록 신(新)질서를 함께 모색하고 설계하는 초보적인 협력을 시도해야 한다.

둘째, 수출규제 조치 해제를 위한 좁은 논쟁에서 벗어나,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반발로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횡행하며 비지구화(deglobalization) 혹은 반지구화(anti-globalization)가 진전되는 추세를 돌리기 위해 일본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일 양국의 번영과 안정의 토대인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rules-based) 국제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양국의 협력 과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수출규제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셋째, 코로나 바이러스의 지구적 확산은 국제질서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고 있다. 국경을 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보다 효과적이고 강력한 국제협조체제가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상반기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감염병 제어 협력에 나서고, 이어 장기적 시야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구화(reglobalization)와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하기 위한 상호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끝으로 2021년 대일 정책은 국내 정치와의 디커플링 원칙을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 올해는 선거의 해이므로 반일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정치적 선택에 유리한 토양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리고 선거 국면과 중첩될수록, 반일 강경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는 정부와 정치 지도층의 용기와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 저자: 손열_ 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 최근 저서로는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2020),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서정혜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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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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