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아베 신조 재집권 후 일본과 한반도" 제하 EAI 특별 기획 시리즈의 마지막 논평이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논평은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가 집필하였으며, 한반도 평화구축 과정에서의 북일 수교 가능성과 그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북 강경 일변도였던 일본이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노선을 선회한 가운데, 아베 총리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북일 간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특히, 비핵화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는 조짐이 보일 경우 일본은 미일동맹의 대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으며, 북일 수교가 그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더욱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일 간 상당한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바, 앞으로 동북아 정세는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2018년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본

일본은 평창 올림픽이후 남북대화가 지속되고 북미대화의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이는 예비적 협의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일본은 미국을 통해 상황을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은 북한의 ‘미소외교’가 한미일 연계를 분단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줄곧 남북 화해 분위기를 경계하며 견제하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해서도 아직 평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며 평가절하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을 통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졸속 교섭과 타협에 경종을 울리고 냉정한 대처를 요구하는 것이 일본의 중요한 역할”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読売新聞 2018.3.10.).

그러나 TPP11이 칠레에서 서명된 바로 그날, 불과 몇 시간 후에 정의용 안보실장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하고 있었다. 이는 일본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사태였고, 1971년 닉슨 쇼크 이래 일본 외교가 충격에 빠진 날이었다. 아베는 북미회담 실시에 대한 백악관 발표가 있던 9일 오전 방미를 즉각 결정했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미국을 통해 한반도 상황에 개입하여 속도를 조절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북미정상회담 발표 직후부터 일본은 미일동맹을 통해 한반도 상황에 개입하려는 의도와 시도를 보였다. 위의 백악관 회담 사실을 전하는 일본의 보수 신문들, 즉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닛케이신문의 사설은 한미일 3국이 주도하는 국제적인 대북제재 전선을 흩트려서는 안 된다는 데 중심이 있었다(예컨대 産経新聞, 2018.3.21.). 4월 6일 아베-트럼프 전화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미일관계의 돈독함을 강조하며 트럼프에게 대북 제재 해제의 타이밍을 오판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를 전하는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한 뉴스 프로그램은 아베 총리가 외교 분야에서 트럼프의 개인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NHK ニュース シブ5時, 2018.4.6.).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나 미디어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미일동맹을 옹호해 왔던 사람들이 한반도 비핵화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면서 비관론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의 동력이 이어지면서 북한 비핵화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전될 것이다. 다만 비핵화 프로세스가 장기적인 과정임을 고려하면, 비핵화 속도가 지체되거나 그로 인해 북미관계가 이완되는 순간 미일동맹론자들의 반 트럼프 캠페인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 프로세스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거꾸로 비핵화가 일정한 성과를 올리고 북미관계가 새로운 전개를 보이게 되면 일본은 미일동맹의 대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대안 모색은 북일 수교 교섭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북일 수교의 의미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북일 수교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북일 수교는 북일평양선언에 기초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북일평양선언에서 약속된 경제지원은 북한이 기피하는 리비아 방식을 보완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보증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1988년에 한국 정부가 제안한 7.7선언의 방식을 재개하는 것이다. 7.7선언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남북한의 교차승인을 동시에 진행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992년까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일정한 성과를 올렸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 남북 유엔 공동가입 등이 그 성과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1990년엔 소련과, 1992년엔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진행된 북일 국교교섭은 실패로 끝났고, 북미 국교교섭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 상황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고 핵 미사일의 개발은 이를 바로잡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북미-북일 수교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거쳐야 할 당연한 수순이다.

한편,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베트남이 북한의 모델이 되려면 1980년대 초의 베트남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 압박(economic pressure)과 외교적 고립(diplomatic isolation)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때 이미 1973년 9월에 일본과 북베트남의 국교정상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 해 1월 파리에서 미국과 북베트남이 평화협정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또한 중일 국교정상화도 미국보다 한 발 앞서 이뤄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2년 7월 다나카의 방중으로 중일 양국이 전격적인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것은 닉슨 쇼크로부터 정확히 1년 뒤의 일이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1979년 1월, 미국이 베트남과 수교한 것은 베트남전쟁 종결로부터 20년이 지난 1995년 7월의 일었다. 일본 외교의 순발력과 기민함은 놀라운 적응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범위 밖에서 외교적 대안을 살려 놓는 일본 외교의 준비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노선전환과 그 배경

이와 더불어, 일본에는 민간 영역, 지방자치체 수준에서의 대북 외교 자산이 풍부하다. 지난 2월, 후쿠오카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100명 규모의 초당파 지방의원 방북단을 파견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반북 여론에 움츠려있던 이들이 ‘공기’가 바뀌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납치 일본인 가족들의 분위기도 북한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3월 이후 여론은 이러한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다. 4월 29일에 이루어진 닛케이신문 조사에서는 75%, 6월 17일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는 67%에 가까운 일본인이 북일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일본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도 보수지인 닛케이신문 조사에서 70%에 가까운 지지가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렇게 국내 분위기가 변화하는 가운데 아베 총리는 싱가포르 북미회담 이후부터 북한과 회담할 생각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6월 14일, 납치피해자 가족 등과 총리관저에서 면담하면서 아베 총리는 6월 12일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하고 “납치문제는 일조문제. 주체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결심을 피력한 바 있다. 고노 외상도 6월 14일 서울에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하는 가운데 “일본은 북한과 납치문제를 포함해서 여러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피력했다. 같은 날 일본 외무성 간부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북한 외무성 담당자와 접촉하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과의 조율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일본과도 대화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은 위원장도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일본과도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서, 종래의 주장처럼 납치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베 내각 간부는 같은 날 미일 정상 전화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납치문제에 관해 일본과의 대화에 대해 열려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공식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올해 들어 <김일성 주석과 일본의 인사들>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시리즈를 통해 북한은 북일국교정상화가 김일성 주석이 바랐던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일 국교정상화의 전망

이런 가운데 8월 말 워싱턴 포스트가 전한 북일 비밀회담이 주목을 끈다(Washington Post 2018.8.28.). 북일 비밀접촉은 7월 15일, 베트남 호치민시 호텔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측 대표는 김성혜(金聖恵)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전략실장이었고, 일본 측 대표는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 정보관이었다.

 6월 중순에 몽골에서 만났던 것이 양국의 외교라인이라고 한다면, 그로부터 한 달 뒤 양국의 정보라인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성혜는 평창 동계 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했으며 김영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워싱턴을 방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기념촬영도 한 바 있다. 최근의 활동 폭으로 보아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으로 판단된다. 기타무라 시게루는 폼페이오가 CIA 국장인 시절부터 일본 측 파트너였던 사람으로, 지난 5월 폼페이오가 방북했을 때, 북한 지도부에서 ‘아베 수상에 직접 연결되며 신용할만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폼페이오가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북일 교섭에 폼페이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기타무라가 나선 것이 사실이라면, 미일 간에 배후에서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과 중국이 공히 북일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면, 북일 정상회담 개최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아베의 자민당 총재 3선이 확정된 이후에는 북일 간에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아베 총리의 유엔 총회 연설에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압력’을 강조하던 지난 해 연설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로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추진 의도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전하는 가운데, ‘적절한 시기에’ 북일관계 개선을 모색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했다. 아베 총리의 연설은 북일 교섭의 목표가 ‘국교정상화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북일 교섭의 정상화를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관계 개선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시기’를 설정했다는 것은 국교정상화 이전에 해결할 현안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즉, 납치 일본인 문제에 대해 일정한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북일 사이에 상당한 접근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의 시계는 북일관계가 굴러가기 시작하면서 더욱 가파르게 돌기 시작했다. ■

 

■ 집필: 남기정_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도쿄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일본 도호쿠대 법학연구과 교수 및 국민대 국제학부 부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의 정치와 외교, 동아시아 국제정치이다. 최근 논저로는 "이용희의 냉전인식: 냉전과 분단 기원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 "한일관계에서 역사문제와 안보의 연동 메커니즘: 투트랙 접근의 조건과 과제",《한일관계 50년: 비교사적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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