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조양현_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연구부 교수 겸 외교사연구센터장.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하버드대학교 웨더헤드센터(Weatherhead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에서 아카데믹 어소시에이트(Academic Associate)를 역임하였다. 주요 관심 분야는 일본 정치외교, 동아시아국제관계 및 외교사(外交史)이다. 주요 저작으로 《アジア地域主義とアメリカ》 (東京大學出版會, 2009), 《글로벌 냉전의 지역적 특성》 (사회평론, 2015, 공저), 《한일관계, 이렇게 풀어라》 (김영사, 2015, 공저), 《동아시아 세력전이와 일본 대외전략의 변화》 (동아시아재단, 2014, 공저) 등이 있다.

 

 


 

 

주요 성과

 

한일중 3국 정상회의

 

11월 1일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그리고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참석한 제6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2008년 이후 매년 개최되다가 2012년 베이징에서 제5차 회의가 개최된 후, 위안부, 독도, 조어도 문제로 한일관계와 중일관계가 냉각되어 중단된 지 약 3년 반 만에 개최된 만큼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따라서 금번 회의의 최대 성과는 3국 정상회의의 재개 자체와 이를 통해 3국 협력의 추동력을 복원하고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 있다. 3국 정상은 “3국 협력의 완전한 복원”에 의견을 같이하고, 3국 정상회의 정례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현재 50여 개에 이르는 정부 간 협의체의 확대 발전에 합의하고, 각료회의 참가 등을 통해 3국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 TCS)의 역량 강화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는 한편, 3국협력기금(Trilateral Cooperation Fund: TCF) 설립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성과로는 3국 간 실질협력의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회의에서 채택된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 선언”에 따르면, 경제 분야에서 3국 간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협상을 가속화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의 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또한 ‘지속가능한 개발’과 관련하여 3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성공적 개최, 대기오염 및 황사 문제의 협력 확대, 고위급 북극협력대화 신설, 해양폐기물 공동모니터링 추진, 생물다양성 정책대화의 지속 등에 의견을 같이하였다. 인적 문화 교류 분야에서는 캠퍼스 아시아(Campus Asia), 청년 모의정상회의 등과 같은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고 관광교류를 촉진하기로 하였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핵 문제와 관련하여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점도 의미 있는 성과이다. 글로벌 이슈에서는 사이버안보 협력 및 비확산, 폭력적 극단주의 등 공동대응, 세계경제 및 금융 동향에 대한 효과적 대응, 기후변화, 지속가능개발 및 보건안보 관련 협력방안 모색에 3국이 뜻을 같이하였다.

 

한편, 역사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수준의 원칙 확인에 그친 것은 냉각된 3국 관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안보 면에서의 갈등과 반목을 가져오는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고 리커창 총리는 역사문제에 대한 공동인식은 상호 신뢰의 기반이라고 지적했지만,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전후 70주년 담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대 내각의 인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특정 과거에만 초점을 맞추는 자세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나마 공동선언에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라는 원칙을 반영함으로써, 지난 3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의 합의 내용을 정상간 공동선언의 일부로 격상시켜 확인한 점은 수확이었다.

 

한중 정상회담

 

3국 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10월 31일)에서 두 정상은 북한의 전략적 도발 억지, 북핵 불용(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통일 문제 관련 양국의 공동인식 및 공조체제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정상회담 등 일련의 정부 간 협의를 통해 북한 및 한반도 문제 관련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유도해 오고 있으며, 향후 북한 문제 관련 한미중 3국 간 협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9월의 한중 및 미중 정상회담, 10월의 한미 정상회담에 이은 금번 한중 회담은 북핵 및 북한 관련 한미중 차원의 협력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주목할 대목은 경제통상, 문화교류 등 실질 협력 분야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다. 양 정상은 늦어지고 있는 한중 FTA의 연내 발효를 추진하고, 한국산 쌀, 삼계탕, 김치의 대중국 수출을 위한 중국 측의 비관세장벽 완화 노력에 합의하였다. 또한 금융 및 로봇, 보건의료 등 고부가가치의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제3국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문화산업 관련해서는 관련규제를 완화하고 세계시장에 공동 진출하기 위한 산업협의체 출범에 원칙적으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역내 지역개발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간의 연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 국가 간의 경제협력을 진전시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통일 기반을 구축한다는 발상으로 동북아평화협력구상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대외전략의 한 축이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육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一帶)와 중국 연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합친 개념으로 시진핑 정부의 핵심 사업이다. 한중 정상회담 직후에 양국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일대일로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하였는데, 향후 인프라 건설, 금융 등 다방면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정상회담

 

11월 2일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양국 간 정상회담이었다. 단독 정상회담에서는 최대 관심사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주로 논의되었다. 양 정상은 “올해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전환점에 해당되는 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도록 지시했다.”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기본입장에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대응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아베 수상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사안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양측은 한일관계에서 위안부 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조속한 타결을 위해 양국 간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편 확대 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문제의 진전과 별도로 기타 현안에서 상호 협력을 확대한다는 이른바 투 트랙 어프로치(two-track approach)를 확인하고, 과거사 외의 기타 현안에 대한 폭 넓은 논의 및 실질 협력의 확대에 대한 다양한 합의가 있었다. 양 정상은 북핵 문제에 대해 한일 및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다자 차원에서도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한 상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1) 등 신(新)기후체제 관련 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고, 청년인재 교류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2016–2017년 임기)에 선출된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의 한일 협력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시의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또한 경제, 문화, 인적교류와 관련해서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대해서 협상의 가속화와 조속한 타결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측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의 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의 확대를 예상하면서 우리의 참여 동향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여, 한국의 TPP 참여와 관련한 협력의 여지를 남겼다.

 

 

평가 및 과제

 

한국은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서 동북아 지역협력의 상징인 3국 협력체제를 복원하고 정상회의의 정례화라는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의장국으로서 중일 간의 중개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지난달 한미 정상회의의 합의 내용과 연관되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국제사회 공헌 부분에서 논의와 의견 접근을 이루어냈다. 이를 통해 그 동안 일부에서 제기된 ‘중국경사론’을 상당 부분 불식시키고, 미중일 사이의 중개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역내에서 개별 양자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번 3자 회의를 계기로 그 틀 내에서 한중, 한일, 일중 양자회담의 기회를 마련하고,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제공한 점은 유동적이고 불투명한 동북아 정세의 긴장 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북한의 DMZ 도발 이후 국제적 관심이 한반도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한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과 연계하여 북핵 및 한반도 통일에 대해 3국 지도자 간 공동의 메시지를 재발신한 점과, 동북아평화협력구상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환영과 지지를 확보한 것도 눈 여겨 봐야 할 성과이다.

 

이렇게 볼 때, 금번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개최 자체로 의미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결과 면에서도 동북아 역내 평화나 한국의 외교적 존재감 확보 차원에서 소득이 적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3국 협력의 정착과 진정한 관계 증진,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조속 타결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향후 우리 외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3국 협력의 제도화 규범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3국 협력은 지정학적으로 중-일을 엮는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한국이 일중 간 지역협력의 주도권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데 대단히 유리한 협의체이다. 한중일 협력의 확대 심화를 위해서는 역사, 영토, 이념대결, 민족주의, 지역패권경쟁 등 양자 갈등이 3국 협력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화 규범화를 향한 3국의 노력과 함께 한국의 중재자적 역할이 중요하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향후 대일외교의 무거운 과제로 남았다. 다만 아베 신조 총리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끝난 문제라고 하면서도, 위안부 문제의 ‘타결’을 위해 협의를 가속한다고 합의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일본 정부가 문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속한 타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이 ‘골든타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일본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과 대외적 역할 확대에 꼭 필요하며, 한미일 공조와 한일 안보협력을 위해서도 매듭짓고 가야 할 문제라고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APEC, G-20 등 연내의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위안부 문제 협의의 진전을 확인, 촉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위안부 문제의 현실적 해결방안에 대한 국내 공감대 형성과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 관련 총 9차례의 국장급 회의에서 그 동안 논의된 서로의 입장을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한 셈이니, 이제 남은 것은 정치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 관련 일본의 법적 책임 혹은 국가책임을 둘러싸고 한일 양쪽이 100퍼센트 만족하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성 있는 어프로치는 법적 해결이 아닌 정치외교적인 타협일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의 타결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상호 양보에 따르는 정치적 비용을 지불한다는 각오와 양국 내의 공감대 형성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일 외교에서 ‘분리대응’ 기조를 정착시켜 과거사 프레임을 극복하는 것이 향후 우리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회담을 통해 한일 정상이 외교 공백을 없애고 이른바 ‘투 트랙 어프로치 전략’을 확인한 만큼,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경제, 안보 등 분야에서 국익과 실리를 추구한다는 기조에서 가능한 것부터 한일 간 실질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전반기를 통해 외교안보정책의 최대 난관은 한일관계와 남북관계의 정체였음에 비추어볼 때, 정권 후반기에는 한일관계에 돌파구를 열어 외교적 전략공간 확대의 레버리지(leverage)로 삼는다는 발상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파워 밸런스가 변화하고 미중일 간의 경쟁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 열강에 비해 국력이 열세인 한국은 중견국외교, 전방위외교, 중개자외교가 현실적인 선택지이다. 다자외교, 전략외교, 실용외교를 꿰뚫는 외교력를 키워 지역질서의 트렌드 세터(trend setter)가 되어야 한다. 지난 여름 이후 북한의 도발, 중국 전승절 행사 등으로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외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한중, (미중), 한미 등 양자 정상회의와 한일중 정상회의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상외교에서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을 주도하면서 한일관계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한반도 관련 문제에 대해 ‘잘 준비된 적극 행보’로 외교적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

 

 


 

 

[EAI일본논평]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일본연구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기획하고 발표합니다. 일본에 관한 주요 현안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과 분석을 제공하며, 바람직한 정책 개발을 위한 의견을 개진합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