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태웅_ 광운대학교 교수.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 영상문화론, 표상문화론, 일본의 문화정책 등이다. 최근의 주요업적으로는 《일본대중문화론》(2014, 공저), 《대만을 보는 눈》(2013, 공저), 《복안(複眼)의 영상》(2012, 역서),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2011, 공저), 《일본과 동아시아》(2011, 공저), 《교차하는 텍스트, 동아시아》(2010, 공저), 《전후 일본의 보수와 표상》(2010, 공저) 등이 있다.

 

 


 

 

쿨 재팬(Cool Japan) 정책의 변화

 

지난 2월 일본의 경제산업성(經濟産業省)이 발표한 “쿨 재팬 정책” 보고서를 살펴보자. 쿨 재팬 정책이란 내수 감소로 인한 경제활동 저하를 타개할 원동력을 찾기 위하여,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음악과 같은 콘텐츠산업, 그리고 의식주와 같은 고유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일본의 매력’을 부가가치로 바꾸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문화콘텐츠 진흥을 통한 경제발전 추진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쿨 재팬의 추진전략은 먼저 일본문화의 매력을 해외에 알리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일본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사업기회를 증가시키자는 구도이다. 추진전략에 구체성이 결여되고 허술해 보이지만, 그보다도 더욱 큰 문제는 쿨 재팬이 추진되는 ‘해외’의 범위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쿨 재팬 정책의 주요 대상국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타이와 같은 동남아시아로, 아시아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과 한국이 빠져있다. 그렇다고 쿨 재팬 전략에 처음부터 한국과 중국이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쿨 재팬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계기는 한국과 중국이었다.

 

이 계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문화교류를 통해 한중일의 외교적 갈등을 완화해보려는 의도이다. 2003년 내각에 ‘지적재산 전략본부’가 설치되어 당국 차원에서 쿨 재팬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4년 총리 자문위원회가 “문화교류의 평화국가 : 일본의 창조”라는 제목의 문화교류 촉진을 위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고 있던 때에 이루어졌다. 이 때 발표된 문화교류 정책을 읽어보면,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좋아하는 아시아 각지의 “일본 애니메이션 세대”를 육성하여,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일본에 호의를 갖도록 유도하자는 주장이 들어가 있다. 외교적 갈등을 쿨 재팬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의도가 깔려있던 것이다.

 

또 다른 쿨 재팬 정책의 추진 이유는 한류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의 경각심이다. 1998년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자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그전의 우려와는 달리, 한국의 한류가 일본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중국도 정부 주도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동만기지’(動漫基地)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대외문화기관 ‘공자학원’(孔子學院)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화 알리기에 나섰다. 더 이상 일본의 대중문화가 아시아를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게 되었고,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두 가지 서브컬처에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2008년 아소 다로(麻生太郎)가 총리였던 때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쿨 재팬 관련 보고서에는 위의 세 가지 시점, 즉 미래산업으로서의 측면, 외교적 갈등 완화의 수단, 한국과 중국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경각심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이 보고서는 쿨 재팬을 성장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산업으로 보고 있고, 또한 동아시아의 타자들에 맞는 컨텐츠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성장하는 콘텐츠산업을 인정하면서, 일본이 주도하여 ‘아시아 콘텐츠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베 정권에서 발표된 쿨 재팬 전략에는 한국과 중국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따라서 문화교류를 통한 외교적 갈등 완화 및 한국과 중국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경각심이 빠져버린 것이다. 이 보고서에 쿨 재팬의 미래산업이라는 측면은 남았지만, 한국과 중국을 빼고 논하고 있어 과연 쿨 재팬이 일본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지 의문시될 뿐이다.

 

한국과 중국이 빠진 이유는 현재의 경색 국면을 반영해서인지, 아니면 정책실행에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이는 아시아에서 동남아를 주 대상으로 문화교류를 전개해오던 1990년대 초중반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즉 아베 정권의 쿨 재팬 정책은 변화했다기보다는, 한국의 한류 이전, 중국의 경우는 WTO 가입으로 인한 문화시장 개방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 변화

 

일본 정부의 문화교류 정책이 변화가 아니라 회귀라고 한다면,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 또한 마찬가지로 회귀로 풀이될 수 있다. 2014년 연말에 발표된 내각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고 답한 일본인은 31.5퍼센트에 불과했고,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이가 66.4퍼센트에 달했다.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이가 전년에 비해서 8.4퍼센트나 늘어난 셈이다. 1990년대 30-40퍼센트 대를 유지하던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일본인 비율이, 2000년 이후 50퍼센트를 넘어선 것은 한류의 영향이 크다. 대중문화의 힘이 그 만큼 큰 것이다. 친근감을 느끼는 일본인은 2009년 63.1퍼센트로 정점을 찍었고, 그 때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 이는 34.2퍼센트에 불과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작년 조사에서 친근감 수치는 역전되어버렸다. 한류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일본 대중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변화를 잘 반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서점가에 진열되어 있는 한국 관련 서적들이다. 제목을 나열해 보자. 《악한론》(惡韓論), 《치한론》(恥韓論), 《태한론》(呆韓論), 《침한론》(浸韓論), 《대혐한시대》(大嫌韓時代), 《혐한의 논법》(嫌韓の論法), 《우한신론》(愚韓新論), 《흑한사》(黑韓史) 등등, 도대체 이런 단어가 성립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저급한 조어를 제목으로 한 책들이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다. 한 때는 한국을 이해하는 책이 잘 팔렸지만, 이제는 무조건 한국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책이 팔리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이 한국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일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선입견을 확인해 줄 뿐이다. 이는 그 동안 한류의 영향과 한일관계가 좋았음을 싫어하던 일부 일본인들의 ‘역습’일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끝이 안 보이는 어둠으로 치닫는 듯한 한일관계의 경색된 분위기 속에서 문화교류 측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한다 해도 비난만 받을 뿐 큰 의미가 없다고 포기하는 분야가 나오고 있지만, 이 시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한일 당국 간의 관계가 소원할지라도, 모든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교류의 끈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문화교류가 중요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는 민간 교류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 한일의 경색된 국면을 풀어줄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려는 기본적인 자세를 상호 간에 확인할 수 있는 장을 문화교류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문화교류 차원에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어보자. 첫째로 현재 지속되고 있는 문화교류에 대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난 3월 9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동아시아 문화도시” 페스티벌이 개막되었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화도시”는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한중일에서 공통점을 갖는 도시를 선정하고 축제와 학술대회를 통하여 서로의 공통성을 확인하자는 교류행사이다. 올해는 한국의 청주시, 중국의 칭다오(靑島)시, 그리고 일본의 니가타(新潟)시가 선정되었다. 초정리 광천수로 유명한 청주시,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칭다오시, 그리고 수 많은 유명 니혼슈(日本酒)의 산지 니가타시 등으로, ‘좋은 물’과 연관된 한중일의 세 도시가 뽑혔다. 각 도시가 축제를 개막하여 자체 행사를 갖고 여름에는 세 개 도시에서 순회행사가 이루어진다. 가을에는 한중일 공통의 문화인 젓가락을 테마로 한 전시 및 학술대회도 예정되어 있다. 이처럼 지속하고 있는 문화교류에는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아낌없는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로 문화교류 측면에서의 미래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한일관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색되어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성의 있고 진지한 사과가 있고, 그에 준하는 대처방안이 수립된다면 한일관계는 회복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대비책이란 바로 그 때를 준비하자는 이야기이다.

 

특히 현재 현저하게 영향력이 떨어진 일본에서의 한류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가 없었지만 한국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을 시행하자, 비로소 일본에서 한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마련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아직 풀지 않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 규제가 있음을 빌미로, 한류가 ‘불공정’ 문화교류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일본에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난이 요즘같이 경색된 한일관계 국면에서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가 풀지 않은 규제는 지상파의 일본드라마 방영 금지조치 및 라디오에서의 일본어노래 방송 금지조치 등이다.

 

만약 한일 간 경색된 국면이 타개될 조짐이 보이면 우리도 미래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남아있는 일본 대중문화규제를 푸는 일이다. 물론 국민여론과 당국자의 판단이 중요하겠지만,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일본에 다시금 한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론 환기 기능은 충분히 할 것으로 여겨진다. 미래는 대비하는 자들의 것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

 

 

 


 

 

 

 

 

[EAI 일본논평]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일본연구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기획하고 발표합니다. 일본에 관한 주요 현안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과 분석을 제공하며, 바람직한 정책 개발을 위한 의견을 개진합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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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한일관계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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