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인 우승지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블루밍턴)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를 역임했다. 연구관심은 북한정치, 남북관계, 국제정치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amid Inter-Korean Reconciliation in the Détente Period: Changes in the Threat Perception, Regime Characteristics, and the Distribution of Power” (Summer 2009, Korea Journal), “진화기대이론과 데탕트 시기 남북화해의 이해” (『국제정치논총』, 2008), “김정일 시대 북한의 국제관계론 이해를 위한 시론” (『국제정치논총』, 2007), “South Korea’s Search for a Unification Strategy” (Summer 2003, Orbis) 등이 있다.

 

 


 

 

초록

이 논문은 북한이 고립과 정체의 늪에서 벗어나 선진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자주와 주체를 강조하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폐쇄적 국가운영은 만성적인 정체를 불러왔다. 북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환골탈태가 불가피하다. 향후 북한은 요새국가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연결해 주고 해양성과 대륙성의 장점을 겸비한 수륙양용국가로 변환하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의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당위에서 출발하여 그 과정을 1단계, 2단계, 3단계의 3기로 나눈다. 1단계의 성격을 선군정치가 지속되면서 체제 안과 밖의 모순이 심화하는 쇠퇴의 시기로, 2단계의 성격을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하면서 선군체제로부터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가진 전이의 시기로, 3단계의 성격을 선군의 노선과 완전히 결별하고 선경과 선민의 노선 아래 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변환의 시기로 설정한다.

 

주제어

북한, 선진국, 요새국가, 수륙양용국가

 

 


 

 

1. 서론

 

일본 제국주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한반도의 분단은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남한은 20세기 패권국인 미국과 연대하여 수출지향 전략을 채택함과 동시에 국제시장질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성장은 또한 점진적인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남한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발판으로 삼아 선진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항일 유격대 중심의 지배세력을 구성하여 대륙국가인 중국, 소련과 연대하고 자력갱생에 의한 자립경제 수립을 목표로 하였다. 자주와 주체를 강조하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폐쇄적 국가운영은 만성적인 정체를 불러왔다. 김정일 정권은 핵무장을 통해 정권안보를 보장받으려 하고 있지만 선군정치와 선군경제 노선을 버리지 않는 한 ‘취약국가(fragile state)’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인권, 환경, 기후, 폭력, 빈곤 등 21세기 당면과제들을 해결하는 전선에서 남한은 G20의 주요 참여국으로서 세계 표준을 추수하던 역할에서 표준을 창출하는 역할 즉 ‘룰 추종자(rule taker)’에서 ‘룰 제정자(rule setter)’로 탈바꿈하고 있다. 신흥 성장국의 일원으로 남한은 국제무대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이어주는 고리의 역할을 하며 21세기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창조에 나름대로 이바지하고 있다.

 

세계화, 정보화와 함께 21세기 국제질서는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1990년대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국가들은 번영과 평화를 향한 경주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유독 북한만이 이 질주에서 한 발자국 비켜 서 있다. 선군과 핵무장의 대전략으로 북한이 남한과 함께 민주, 개방, 성장, 균부의 목표들을 수행할 수 있을지 자못 의심스럽다. 남북한이 함께 공진의 선순환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환골탈태가 불가피하다. 향후 북한은 ‘요새국가(fortress state)’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연결해 주면서 해양성과 대륙성의 장점을 겸비한 ‘수륙양용국가(amphibious state)’로 ‘변환(transform)’하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출범한 김정일의 선군정권은 남북대화를 시도하고, 미국 • 일본 등과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아직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주목할 만한 개혁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혁•개방의 추진이 현 정권의 권위주의적 지배구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핵심 지도부의 판단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북한이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계획경제를 고집하고 권위주의적 지배를 강화할수록 번영과 민주의 길은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는 북한이 고립과 정체의 늪에서 벗어나 선진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고 있다. 선진화는 과정으로서의 선진화와 최종 상태로서의 선진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선진화는 세계표준을 모방하고 추격하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세계표준의 창조자의 자리에 서려는 모든 노력의 합을 의미한다. 이 경우 북한의 선진화는 세계표준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북한 자신의 노력과 스스로 표준을 창출하려는 시도를 의미하게 된다. 이 장의 목적은 북한의 현재 조건 아래 가장 실현성이 높은 북한의 미래상을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단계적 선진화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즉 북한 현실에 대한 분석적 접근과 아울러 북한 정책결정자들에게 점진적인 선진화 방안을 제시하는 정책 제안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하의 논의는 북한의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당위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북한 엘리트 스스로의 구상과 의지에 의한 선진화 프로그램의 한 예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강령을 제시하는 데에는 ‘고난의 행군’을 힘겹게 넘긴 북한이 선택한 선군 노선으로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과제들을 풀기 어렵다는 부정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이 ‘선부先富’와 ‘선민先民’의 세계적 조류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와 강령이 필요한가? 내폭, 외폭 등 북한 급변사태가 내외에 고통과 부담을 준다는 전제 아래 비교적 덜 고통스러운 점진적인 개혁의 노정을 상정하고 그 과정을 1단계(단기), 2단계(중기), 3단계(장기)의 3기로 나누고 있다.

 

1단계는 선군정치가 지속되면서 체제 안과 밖의 모순이 심화하는 쇠퇴(decay)의 시기로서 북한은 이 단계에서 선군의 지속으로 선진과 민주를 향한 탈출구를 만드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2단계는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하면서 선군체제로부터 탈피하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가진 이행(transition)과 개혁의 시기로 상정한다. 이 시기 계몽수령의 등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부분적 개혁과 개방의 노선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3단계에서 수령의 지배체제가 종언을 고하면서 개혁과 보수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개혁의 우위로 귀결이 나게 된다. 즉 이 단계는 선부와 선민의 노선 아래 체제의 근본적인 변환(transformation)의 시기로 설정된다. 혁신을 용이하게 하는 개인, 사회, 제도, 국가의 등장으로 북한의 경쟁력이 신장될 것이며 선진의 목표에도 근접하게 될 것이다. 과도기와 변환의 단계에서 남한과 국제사회가 실천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이 될 것이다.

 

2. 선군시대 정치체제의 특징

 

1970년대부터 폐쇄와 계획의 비효율성으로 북한은 국가운영의 어려움을 겪는 체제의 경직화 과정을 걷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1990년대 중반 김일성 사망, 그리고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미증유의 경제난으로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체제 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김정일의 시도는 선군정치의 표방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선군정치의 시작을 1995년 1월 1일 김정일의 다박솔 초소 방문으로부터 찾고 있다. 1997년 10월 7일 중앙방송 정론을 통해 김정일의 ‘선군후로’ 발언을 소개하면서 북한은 지속적으로 경제에 대한 총대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탈냉전 시기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군정치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군이 선도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국주의 포위망 속에서 군사적 위협을 물리치고 사회주의 건설을 지속하기 위해 조직화된 군대가 선봉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군이 없으면, 인민도 없고, 사회주의 국가도 없고, 당도 있을 수 없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군이 약해지면 국가도 약해진다면서 군이 체제수호와 자주권수호의 첨병임을 밝히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소련의 몰락도 경제의 취약이 아닌 군대의 혁명성 부족 탓으로 돌리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경제위기로 포스트 김일성 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예측이 많았으나 현재까지 북한체제는 생존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이 노동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의 자리에 앉았고, 2000년대 들어와 두 명의 남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두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선군체제는 대내외적 위기 상황을 선군정치와 핵무장으로 탈출하려는 위기관리체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선군 북한은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려는 자강전략 아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군사기술 면에서 우위에 있는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비전통적 공격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군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군수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소비경제의 비효율성을 가져오고 있고, 군부 인사의 지나친 중용은 체제의 경직화를 초래하고 있다.

 

선군 시기 북한은 경제적으로 IT,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는 단번도약 전략, 남한 자본의 활용, 특구와 관광에 의존하는 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의 자원배분 능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북한 지도부가 일부 시장과 자율화의 정책을 취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선군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을 훼손하는 정책을 취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일부 제한적인 성격의 개혁 조치를 취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했고 2003년에는 종합시장의 등장을 용인하였다. 2003년 9월 임명된 박봉주 총리의 지휘 아래 개혁 노력이 탄력을 받으면서 계획과 시장이 병행되는 운영방식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개혁의 확대가 특권경제의 기득권 침해로 이어졌고 당과 군의 권력기관 등은 2005년 초부터 개혁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2007년 4월 박봉주 총리가 실각하였고, 2009년 11월 말 화폐개혁이 단행되었다. 현재 북한의 경제운영 방식은 시장을 억압하고 국가통제를 강화는 보수노선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계속) 


[서장] 2032 북한선진화의 길 : 복합그물망국가 건설
[1호] 북한 공진화전략 연구 : 정치   

[2호] 북한 공진화전략 연구 : 외교
[3호] 북한 공진화전략 연구 : 군사   

[4호] 북한 공진화전략 연구 : 경제
[5호] 북한 공진화전략 연구 : 인권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북한 바로 읽기(Global NK Zoom & Conn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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