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첫 날 북한의 신년사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식은 예년과 크게 달랐습니다. 인민복이 아닌 양복차림으로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단이 아닌 집무실 소파에서 신년사를 전했습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행보와는 달리,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병진노선의 승리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번 신년사에서는 북미관계를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북미관계 개선이 국내역량 및 남북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전제이기 때문이라고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분석합니다. 다만,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비핵화’라는 과제를 풀어야 하는데, 완전한 비핵화를 둘러싼 양측 간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과거와는 달리 조선 노동당 청사 접견실에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커다란 초상화가 내려다 보는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2019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는 2018년을 “우리 당의 자주 노선과 전략적 결단에 의하여 대내외 종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역사적 해”로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2018년 4월 20일에 그 동안 추진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신년사는 새로운 전략노선이 비핵화와 경제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병진노선의 승리를 토대로 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계속 상승시키고 사회주의 전진 속도를 높여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북한은 2019년 국내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나라의 자립적 발전을 확대 강화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진일보를 위한 확고한 전망을 열어 놓아야 할 투쟁 과업”을 달성해야 하므로,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 나가자”를 새로운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자립경제를 최우선적으로 강화하고, 사회주의 정치 역량을 백방으로 다지며, 사회주의 문명 건설을 다그치고, 국방력을 튼튼히 다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혁명의 일꾼들이 분발하여 투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북미관계의 개선이라는 국제역량과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남북역량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남북역량의 강화에 대해서 북한은 “지난 해는 70여 년의 민족분열 사상 일찍이 있어 본 적 없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격동적인 해”였다고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 주는 것이며, 판문점 선언, 9월 평양 공동선언,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 체육인과 예술인들의 활발한 인적 교류와 철도, 도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협력사업 등의 첫 걸음에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은 체제보장과 제재완화와 연관하여 두 가지 중요한 요구를 하고 있다. 우선 “북과 남이 평화 번영의 길로 나가기로 확약한 이상 조선반도 정세 긴장의 근원이 되고 있는 외세와의 합동 군사 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 자산을 비롯한 전쟁 장비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 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 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겨레의 단합된 힘만 보여 줄 수 있다면 외부의 온갖 제재와 압박도 민족 번영의 활로를 열어 나가려는 우리의 앞 길을 가로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주장들이 현실적으로 본격적인 협상의 의제가 되려면 우선 북한이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여 실천에 옮기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하고, 다음으로 남북관계의 군사적 긴장 완화가 현재의 신뢰구축을 위한 초기 단계를 넘어서서 보다 본격적인 운용과 구조적 군비 통제 단계를 거쳐야 하고, 동시에 동북아 체제가 공동 진화해야만 가능하다.

금년 신년사는 국제역량 강화를 위한 북미관계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북미관계 개선은 국내역량과 남북역량 강화의 핵심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북미회담을 “가장 적대적이던 조미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키고 조선반도의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6.12 조미 공동 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새 세기 요구에 맞는 두 나라의 요구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 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를 취해 왔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미래의 비핵화만 언급하고 과거의 비핵화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은 작년 12월 20일 조선 중앙통신에 발표된 “낡은 길에서 장벽에 부딪치기 보다 새 길을 찾을 것이 나을 것이다.”라는 논평이다. 이 글은 ‘조선반도 비핵화’와 ‘북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그릇된 인식’을 고쳐 주기 위하여 대단히 친절하고 자세하게 개념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은 싱가폴 정상회담에서 ‘북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지난 열흘 사이에 새로운 전략노선이 채택되지 않은 한, 이 평론의 내용은 신년사에서 말하는 북한 형 완전 비핵화를 자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북한 형 완전 비핵화를 위해서 북한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현재 3단계의 협상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첫 단계에서는 풍계리 핵 실험장과 미사일 엔진 실험장의 자진 폐기를 통한 신뢰구축 조치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유도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과거 핵의 일부인 영변 핵시설의 신고와 사찰을 받아들이는 대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체제보장을 위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식과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시각에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포함한 핵군축 회담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위한 3단계 협상 전략의 꿈은 실현 불가능하다. 미국과 북한은 현재 2차 정상회담을 위해서 마지막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출발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핵시설을 신고하고 국제 검증을 받으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 북한은 영변이라는 과거 핵시설만 부분적으로 신고하고 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이 과거를 포함한 완전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과 경제제재 완화를 대단히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2차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더라도 북미의 진정성은 여전히 상대방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완전 비핵화를 위한 3차 회담의 발판을 마련하기 어렵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나는 앞으로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 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오판하고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완전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 비핵화”의 인식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위한 현재의 노력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제의 심각성을 주관적 낙관론 대신 객관적 신중론의 시각에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한 현재의 제재와 억지가 완화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공조 하에 명백히 해야 하며, 북한이 ‘북한 비핵화’라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추진하면 북한이 희망하는 체제 보장과 제재 완화를 보장하는 적극적 관여의 동시적 현실화를 예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스스로가 ‘조선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를 21세기 북한의 새로운 자구(自求)책으로 인식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해야 한다. 

 

 

■ 집필: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 《한일 신시대 와 공생복합 네트워크》, 《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최수이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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